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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아브르, 아키 카우리스마키

Interlude | 2011. 12. 13. 17:12 | Posted by 맥거핀.



<르 아브르>에 대한 짧은 평. 이 영화는 소위 말하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이다. 악인은 벌을 받고, 선인은 착한 일에 대한 보답을 받는다. 불가능은 가능해지고, 기적은 (말그대로) 예기치 않게 찾아온다. 그런데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이 영화는 그 내용만 동화와 비슷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 형식이나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도 동화 혹은 아주 어린아이들을 상대로 한 만화와 비슷해진다. 그것은 영화의 첫장면에서부터 감지할 수 있는데, 무표정한 등장인물들의 모습에 뭔가 코믹적인 분위기가 감돌고, 사건은 과장된 효과음으로만 제시되며, 그것은 이들에게 (그리고 그것을 보는 우리에게도) 아무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아이들을 위한 만화에서 등장인물이 크게 얻어맞아도 우리는 그가 죽지 않을 것을 안다. 왜냐하면 이것은 아이들을 위한 만화(동화)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톰과 제리>에서 우리는 결국 톰의 모든 악행이 제리에게 위해를 끼치지 못할 것을, 그리고 결국 톰이 제리를 잡아먹지 않을 것을 안다.) 그러므로 이것은 따스하고 유머러스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동시에 뭔가 약간은 기괴한 인상을 풍기는 것도 사실이다. (많은 동화가 결국 아주 기괴한 이야기임을 생각해본다면 말이다.) 


그런데 더욱 흥미로운 것은 여기에 아주 힘든 이야기가 결합된다는 점이다. 아프리카인들의 유럽으로의 (아마도 불법적인) 밀항(인간 거래), 그리고 그 와중에서 한 소년의 탈출. 많은 이들이 결코 상상하지 않는, 아주 먼, 뉴스에서나 나올, 아니, 뉴스에서도 잘 나오지 않을 그런 이야기. 동화적인 분위기와 이 힘든 서사가 결합하였을 때 어떤 이야기가 탄생할 것인가. 그런데 이 영화는 이 힘든 서사가 결국 한계에 부딪혔을 때마다 쉬운 선택을 한다. 이 아주 힘든 서사가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혀 좌초될 위기에 이를 때마다 쉬운 동화적 데우스마키나가 출현하여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 몇몇 장면들을 이야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소년이 컨테이너에서 탈출할 때의 동화적인 시퀀스들, 감옥에서 소년의 할아버지를 만나야 할 때 동화적 거짓말이 먹혀드는 것, 혹은 소년의 탈출 비용으로 3000유로가 필요했을 때 남편과 아내의 조금은 우스꽝스러워보이는 동화적 화해.

글쎄. 이것이 어떤 영화적 솔직함이라고, 현실을 과장하거나 기만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물론 우리는 늘 영화에서 표면적으로 이야기되는 것과, 그와 다른 층위에서 작동하는 것들을 분리하여 바라볼 필요가 있다. 또한 한편으로 늘 동화라는 것이 그 표면에서 이야기하는 권선징악 외에 다른 층위에서 중요한 진실을 이야기하여 왔다는 사실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이 인물들의 소박한 진심이 서사적인 커다란 벽에 부딪혔을 때, 그 커다란 벽이 그저 간단한 동화적 처치로 사라져버리는 것을 보면서, 불편함을 조금 느낀 것도 사실이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도중에 찾아오는 몇 개의 작은 (거짓과 같은) 기적들 속에서 마침내 찾아온 진짜 기적, 그 기적을 보며 헛웃음이 나왔던 것은 아마도 나뿐이었겠지.



덧.

같은 이야기를 다르덴 형제의 <약속>은 소년과 아프리카 여인을 지하철 속의 출구없는 통로에 가둬놓는 것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그리고 지하철의 소음은 화면이 사라진 이후에도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아주 아름다워 보이나, 그것을 애써 들여다보기 불편한 세계가 <르 아브르>의 세계라면, 처절하고 고통스러워보이나, 기꺼이 들여다봐야할, 그리고 들여다볼 수 밖에 없는 세계가 <약속>의 세계는 아닐까. 




- 2011년 12월, 씨네큐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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