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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센던트, 알렉산더 페인

Interlude | 2012. 2. 20. 15:25 | Posted by 맥거핀.




잔잔한 이야기와 무난한 결말. 아마도 이 영화의 미덕은 그런 것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미래의 어느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던 가까이에 있다는 것, 그리고 누구나 자기 몫의 인생을 살고 자기 몫의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것,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별 걱정 없이 보이는 삶일지라도, 그만큼의 고통과 그만큼의 미움과 그만큼의 오해와 또 그만큼의 사랑을 가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아마도 삶은 어떠한 결정적 분기 이후에도 다시 비슷하게 반복되는 무엇인가를 가지고 지속된다는 것. <어바웃 슈미트>, <사이드웨이>의 알렉산더 페인은 이번 영화 <디센던트>에서도 여전히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전작들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는 이 영화에서도 하나의 메타포를 등장시키고 있는데, 그것은 누구나 알 수 있듯이 하와이이다. 겉으로 간략하게 보기에는 크게 문제가 없어 보이는 맷 킹(조지 클루니)의 삶처럼 하와이 역시 그저 알려진 평화로운 휴양지일 뿐이지만 그 내부로 들어가면 거기에는 삶이 있고, 땅을 개발하고, 리조트를 건설하는 것과 같은 복잡한 문제들이 있다는 것, 거기에 사는 사람들은 하와이안 셔츠를 입은 마냥 평화로운 사람들인 것처럼 보이지만, 다들 비슷한 무게의 복잡한 문제들을 안고 산다는 것. 물론 거기에서 알렉산더 페인이 가치를 두는 것은 '디센던트'로서의 삶이다. 그것은 작게는 맷 킹의 한 가족이 지켜내야 할 가치이기도 하고, 크게는 하와이언들이 지켜내야 할 가치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영화 속에서 가장 재미있게 보이는 부분 중의 하나는 하와이 땅을 둘러싸싼 맷 킹의 선택이다. 그는 그 까닭으로 뭔가 거창한 이유를 내세우는 듯 보이지만, 사실 그럴까. 중요한 것은 가까이에 있다는 페인의 메시지로 볼 때, 아마도 이 자체가 하나의 반농담일 것이다.)

그러나 아무튼 이 영화를 보고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다면 나는 영 따듯한 인간은 못된다는 사실이다. 이 영화의 따듯함이 영 마음에 와서 닿지 않으니 이를 어쩌나. 영화 속 맷 킹은 자조를 섞어서 말한다. 자신들은 아이를 비싼 사립학교에 보낼 수 있는 부유한 백인들일 뿐이라고. 내가 느낀 생각도 비슷했다. 이는 그저 어느 하와이 땅부자의 가족과 가치 재발견 프로젝트라고 밖에 느껴지지가 않으니. 하이힐을 신고 뛰는 여자들이 대거 등장하는 칙릿 영화들과 이 영화가 특별히 다른 게 뭐가 있지? 그런 영화들이 뉴욕과 패션을 양념으로 추가했다면, 이 영화는 하와이와 두 딸들을 양념으로 추가했을 뿐이다. (물론 하이힐을 신고 뛰는 것도 나름의 힘든 삶일 것이다. 그러나 정 그렇다면 그 하이힐 꼭 신어야만 하는 걸까. 물론 여기에 하이힐은 커녕 운동화를 신을 '수' 있을지 고민하는 삶을 이야기하는 것은 오바일 것이다.) 즉 알렉산더 페인은 이 남자 맷 킹을 동정까지는 할 수 없더라도, 어느 정도는 연민하기를 바랬을 것 같다. 갑자기 아내를 잃고, 자신과 전혀 소통이 되지 않는 두 딸과 함께 남겨진 데다가 땅을 둘러싼 여러 복잡한 문제만으로도 머리가 아픈, 더구나 뒤늦게 그 아내의 비밀까지 알게 된 한 남자에 대한 약간의 연민을 관객이 가지기를 바랬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아마도 분명히 나만 그런 것 같은데) 돌이켜보면 영화 내내 나를 지배하는 정서는 이 남자에 대한 연민이 아니라 일종의 부러움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는 모든 칙릿 영화들이 내세우는 최종의 정서이기도 하다. 부러움과 그 부러움으로 만들어지는 대리만족.) 엄청난 사고를 치는 것처럼 등장한 두 딸의 문제는 단지 애교일 뿐이고(말이야 바른 말이지, 영화 속 두 딸의 모습은 요새 우리 아이들의 모습에 비하면 약과일 뿐이다. 그들은 영화내내 시종일관 아버지와 잘 대화하는 좋은 딸일 뿐이다), 하와이 땅을 둘러싼 맷 킹의 고민은 현금을 손에 쥐는 부자가 될 것이냐, 아니면 땅부자가 될 것이냐의 고민일 뿐이다. 물론 그리고 그 최종적인 부러움의 근원은 칙릿 영화를 보고 감탄하는 모든 이들의 부러움의 근원이 '뉴욕'과 '명품'이듯이, 나에게는 '하와이'와 '살랑살랑대는 음악'이다.

물론 안다. 이것은 단지 삐딱함의 정서, 뭐 간단하게 말해서 일종의 열폭이라는 것. 어쩌면 내 무의식 깊숙이에 자리잡고 있는 '있는 자들'에 대한 반감일지도 모르겠다. 그저 전작들에서도 어느정도는 느꼈지만 알렉산더 페인의 영화들은 내 취향이 아닌 것으로만 정리해두자. 아무튼 이 치유계 영화를 보며, 무의식을 억지로 내리누르려고 하는 나를 보게 되니 도리어 더 피곤해진다. 예를 들어 아주 비싼 식당에서 '그간 너무 비싸서 우리 식당을 이용해보지 못했던 당신을 위해 내놓았다'고 말하는 특별 세일 메뉴를 먹으러 갔더니, 맛있기는 한데 이상하게도 계속 먹으면서도 그 맛보다는 주머니속 얇은 지갑만 생각나는 느낌이랄까. 무난한 연출력을 가진 감독이 만들어낸 무난하고 좋은 이야기라고 말하기에는 나의 무의식과 욕망이 계속 걸린다. 아무래도 더 얘기하다간 안 좋은 얘기가 계속 나올 것 같아서 이쯤에서 마무리.


덧.

각종 수상경력과 '올해 오스카는 따놓은 당상이다'와 같은 평들로 도배된 이 영화의 포스터가 이 영화에 은연중 내재된 정체성을 묘하게 말해주는 것 같다. 서점에서 잘 나가는 베스트셀러 자기계발서의 뒷 표지가 꼭 이런 모양이었다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말이다. 뭐 아닌게 아니라 아카데미가 꽤나 좋아할 영화인 것도 같다. 조지 클루니가 '익히 예상할 수 있는 익숙한 그 연기'를 보여주기는 하지만, 괜찮은 연기를 보여주는 것도 사실. 



- 2012년 2월, 롯데시네마 피카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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