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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 우니 르콩트

Ending Credit | 2009. 11. 23. 22:04 | Posted by 맥거핀.



가끔씩 리뷰를 쓰기가 난감해지는 영화들이 있다. 이야기가 복잡하거나, 구성의 특이점이 있으면 그것에 대해 적어도 되고, 내가 잘 이해가 안 되었던 부분이 있으면, 그것을 탐구해보는 내용을 적어도 되고, 그 부분에 담긴 숨은 의미를 읽을 것이 있으면 그것에 대해 적어도 되고, 영화의 어떤 사적인, 공적인 의미가 있으면 그것에 대해 이야기해도 되지만, 어떤 영화들은 그런 이야기들을 하기가 난감해진다. 어떤 영화적인 기교가 거의 들어가지 않는 영화, 그렇다고 복잡하거나 난해한 구성도 아닌 영화, 거의 심심할 정도로, 사건들을 그대로 재현하는 영화들 말이다. 그런 영화들에 있어서는, 내가 그런 류의 리뷰들을 싫어하기는 하지만, 영화의 스틸컷들을 줄줄이 나열하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지 않은가 싶기도 하다. 스틸컷만을 줄줄이 늘어놓고, 그 밑에 그
스틸컷 장면의 간단한 설명을 적는 것을 리뷰를 쓰는 것으로 생각하는 그런 리뷰들처럼 말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중에서 또 어떤 영화들에 있어서는 아무 말도 안하고 넘어가기란 여간해서는 힘들다. 의외로 드물지 않은 경우지만, 그런 영화들에서 도리어 어떤 '진심'이 느껴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확실하게도, 영화들에게서 읽혀지는 진정성이란 그 영화적인 기교와는 별개인 것처럼 느껴진다. 물론 때로는 현란한 기교가 적시에 터지는 것을 보면서 느끼는 쾌감도 있지만 말이다.

이 영화 <여행자>가 그런 경우다. 이 영화는 어떤 영화적인 기교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감독이 영화적인 기교에 능숙하지 않아서 그랬을 수도 있고(이 영화의 감독 '우니 르콩트'는 이 영화가 데뷔작이다), 어쩌면 그런 부분을 일부러 배제했는지도 모른다. 이야기의 구성도 거의 평면적인 구성을 취하고 있다. 이 이야기는 아버지의 손을 잡고 보육원에 들어오는 소녀 '진희'의 모습으로 시작해서, 그 소녀 진희가 입양되어, 낯선 공항에 발을 내딛는 것으로 끝난다. 그 안의 이야기들도 그리 특별하게 구성되어 있지 않다. 사건들은 거의 시간순으로 배열되어 있으며, 그 안의 사건들은 우리가 익히 예상할 수 있는 그런 사건들이다. 낯선 곳에 적응하지 못하는 소녀, 그 안에서 싹트는 우정, 그리고 소녀들간의 다툼, 아버지를 찾아가고 싶다고 말하는 소녀, 반복되는 이별, 입양을 하기 위해 찾아오는 외국인들...그러나 이 이야기는 우리 마음 깊은 곳의 어디론가를 한없이 건드린다. 수차례의 반복되는 이별을 경험하고, 진희가 드디어 새로운 곳으로 한걸음 내딛으며, 단호하지만, 불안한 발걸음을 보여줄 때, 상당수의 관객들은 그 소녀의 앞날을, 앞날에 계속될 여행을 응원하는 마음이 된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비슷한 무게의 무거움이 가슴을 짓누른다. 우리는 또 저런 방식으로 얼마나 많은 아이들을 낯선 공항에 발을 내딛게 했는가. 그 아이들에게 더 좋은 삶을 살게 해준다는 명분으로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정당화했는가.

이 영화의 어떤 영화적인 기교, 혹은 낯설은 문법이 드러나는 순간은 영화의 처음 부분이 거의 유일하다. 영화의 처음, 이 영화는 아버지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 맛있는 것을 사주고, 케익을 사들고 보육원에 들어가, 보육원에 진희를 두고 나오기까지 영화는 대부분 아이의 눈높이에서 아버지의 얼굴을 감추며 세상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해서 아버지의 얼굴이 영원히 감추어지는 것은 아니다. 한 두 장면, 영화는 의식적으로 아버지의 얼굴을 비춘다. 아마, 그것이 성장한 후에도 진희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얼굴일 것이다. 그러니까, 이 처음 장면들은 결국 진희의 기억으로 재구성된 처음이다. 실제로는 아마도 그보다 훨씬 자주 그 상황동안 진희는 아버지의 얼굴을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얼굴들은 기억나지 않았을 것이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진희가 기억하고 있었던 것은 겨우 그 정도였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이 영화적 기교는 마지막에, 이 영화의 거의 유일한 플래시백 장면으로 등장한다. 공항에 내딛기 직전에 끼워넣어져 있는, 자전거를 타고 가며 뒷좌석에서 꼭 껴안았던 아버지의 따뜻한 등 말이다. 즉 이 영화의 영화적인 어떤 기교(라고 말하기도 좀 그렇고, 그저 영화적인 문법)는 오로지 진희의 기억을 나타내기 위해서만 보여지는 셈이다.

나는 이것이 어떤 의미에서는 진희의 기억을 다른 아이들의 이야기와 분리시키려는 의도가 조금은 담겨져 있다고 생각한다. 우니 르콩트 감독이 인터뷰에서 말했던 내용을 보면, 이 영화는 진희, 즉 (어떤 의미에서는) 감독 자신의 이야기를 재구성한 것이 아니다. 르콩트 감독 자신이 입양아였고, 영화 속 진희의 모습이 자신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부분이 있지만, 이 영화에서의 이야기들은 누구 한 명의 특정의 이야기라기 보다는 그 때의 모두의 기억이 결합된 결과라고 감독은 밝히고 있다. 즉 스트레이트하게 아무 기교도 없이 전달되는 이 가슴아픈 만남과 이별의 반복은, 누구 한 명의 특정의 가슴 아픈 케이스 아니라, 그 당시 많은 우리나라의 어린 아이들이 겪어야 했던, 역사적이고, 공적 기억임을 이 영화는 들려준다. 그래서 직선적이고, 단순하게 전달되는 듯 했던 이 영화는 개인의 사적 기억을 넘어서, 모두의 공공의 기억, 우리 역사 속에서 가슴 깊숙한 곳에 담아 놓았던 은밀하고 부끄러운 역사적 기억에까지 그 발걸음이 전달된다. 그것을 영화는 타자화된 시선을 통해, 객관적이고, 무덤덤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전달한다. 그리고 그 무덤덤함은 우리의 가슴을 무겁게 짓누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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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올해 본 영화 중 Best 3을 꼽자면, 이 영화를 꼽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진희가 공항을 벗어나 새로운 부모에게 걸어가는 그 마지막 장면은 단연 '올해의 장면'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아이는 '여행자'가 되었다. 그것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 하나는 삶은 결국 하나의 여행이라는 관점에서 본 여행자. 앞으로 살아갈 많은 날들이 아이에게는 결국 하나의 길고도 짧은 여행이라는 것 말이다. 다른 하나는 '여행자'라는 말이 가진 하나의 비극적인(혹은 무한한) 속성이다. 결국 '여행자'라는 것의 말의 안에는 '영원한'이라는 말이 들어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여행자가 여행을 멈추는 순간, 그(녀)는 여행자가 아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즉 그(녀)가 여행자로 불리는 그 동안은 그(녀)는 결국 여행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는 것, 영원히 고향에 정착하지 못하고, 어디론가로 계속 머나먼 길을 떠나야 한다는 것. 즉 여행자는 어떤 의미에서는 Camel의 노래대로 'stationary traveller'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떠나는 아이들에게 불러주는 마지막 노래인 '작별'과 '고향의 봄'은 참 서글프고, 인상적이다. 역설적이게도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단 한 곳, 고향에서만은 아마도 불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노래는 오로지 타향에서만이 그 의미를 가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 노래를 아이들에게 마지막으로 부르게 하는 것은 그래서 상당히 잔인해보이기도 한다.

그 '여행자'는 어떤 의미에서의 여행자일까. 이 영화의 영문제목이 <A Brand New Life>던가. 거기에 작은 희망을 걸어보고 싶어진다.



- 2009년 11월, 광화문 씨네큐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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