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비 (BOBBY), 에밀리오 에스테베즈

Ending Credit | 2010. 2. 13. 17:30 | Posted by 맥거핀.



(약간의 미리니름 있습니다)




이 영화는 정치 영화다. 글쎄. 정치라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따라서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겠지만, 이 영화는 상당히 노골적인 정치색을 띠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 몇 가지 이유들을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여러 리뷰들에서 이야기된 것처럼 영화의 제작을 둘러싼 몇 가지 이야기들. 이 영화는 미국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아직도 추앙받고 있는 로버트 케네디(Robert F. Kennedy)의 마지막 날을 다루고 있으며, 영화에 출연한 많은 할리우드 스타들- 마틴 쉰, 안소니 홉킨스, 로렌스 피쉬번, 헬렌 헌트, 샤론 스톤, 데미 무어, 크리스찬 슬레이터, 샤이어 라보프, 린제이 로한, 애쉬튼 커처, 헤더 그레이엄, 프레디 로드리게스 등 -역시 대부분 민주당 지지자들로서 거의 개런티를 받지 않고 출연했다는 점, 그리고 이 영화는 지금에서야 우리나라에서 개봉했지만, 실제로 미국에서 제작되고 개봉한 시기는 2006년, 민주당 지지자들에게는 참고 견뎌야 했던 시기였던 부시의 시대였다는 점 등이다.

그러나 굳이 그러한 영화 주변의 이야기들을 끌어모으지 않더라도, 영화를 보고 나면 이 영화의 정치색은 거의 명백해진다. 그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 그렇다. 하나는,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주인공인 바비, 즉 로버트 케네디는 모사되지 않는다는 점. 즉 이 영화에서 로버트 케네디는 누군가가 그 역할을 맡아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당시의 자료화면과 실제 연설목소리로 대치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영화 속 로버트 케네디의 연기가 필요한 시점에서도 연기자는 끝내 얼굴을 드러내지 않으며, 카메라는 교묘하게 그의 얼굴을 피해서 지나간다. 이 이유는 명백하고도 단순하다. 그것은 결국 관객들에게 이 사건이 가짜의 사건이 아님을, 즉 만들어내거나 모사한 어떠한 것이 아니라, 실제의 사건임을, 그가 행하는 모든 말들이나, 행동이 각색된 것이 아니라, 그 날 것 그대로라는 점을 끊임없이 상기시키기 위함이다. 또 하나는 마지막에 이어지는 총격 사건에서 계속 울려퍼지는 그의 육성 연설문. 명 연설 중의 하나로 알려져 있는 이 연설은 영화 속 마지막과 어우러져, 관객에게 직접적인 메시지를 던져준다. 아마도 상업영화에서 마지막에 이렇게 정치인의 연설을 십여분 이상 직접적으로 들려주며 영화를 끝내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이것만 보아도 이것이 노골적인 정치 영화임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것이 노골적인 정치영화라고 말한다고 해서, 이 영화가 영화 자체로서의 어떤 울림을 주지 못하는가라고 묻는다면 그건 아닌 것 같다. 이 영화는 조금은 산만하고도, 묘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 영화를 실제로 이끌어가는 것은 이 영화의 타이틀 롤인 바비, 즉 로버트 케네디가 아니라, 로버트 케네디가 총격을 받던 그날, 앰배서더 호텔에 있던 여러 인간 군상들이다. 그 인간 군상들의 면면은 다양하다. 돈 드라이스데일의 6경기 연속 완봉 투구를 보러가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일을 해야 하는 멕시코인 호텔 직원, 호텔의 지배인으로서 다른 여직원과 불륜 관계에 빠져 있는 남자, 알코올에 찌들어 있는 나이든 여가수, 옛날을 회상하는 것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늙은 호텔 직원, 마약에 빠져 할 일을 제쳐두고 마는 철없는 선거운동본부의 운동원들, 고압적이고 인종차별주의적인 호텔의 또다른 직원, 남편의 불륜을 알게 된 여자, 항상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비춰지는 것에만 관심이 있는 상류층 여자, 스타가 되려는 꿈을 가진 젊은 여자, 새로운 세상을 생각하는 흑인 조리장, 베트남에 남자를 가지 않게 하려고 그다지 원치 않는 결혼을 해야 하는 여자, 로버트 케네디의 인터뷰를 어떻게든 따내려고 하는 체코인 여기자....이 모든 인간 군상들은 여러가지 관계로 얽혀 있기는 하지만, 모두들 모두 별개로서 작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별개로서 작동한다는 것은, 이런 얘기다. 즉 이들이 같은 공간에서 조금은 얽혀들어가 있는 상황에서 말하고 움직이기는 하지만, 그들 각각의 생활은 분명히 서로서로 그다지 직접적이고 큰 관계는 없고, 직업적 관계로 얽혀있는 않는 한 대부분 앞으로 특별히 만날 일이 없이 서로서로 살아가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사실 그것이 아니라는 점을 이 영화는 보여준다. 보여주는 방식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직접적인 방식. 즉 마지막 총격에서 로버트 케네디와 같이 총격 세례를 받고 쓰러져 있는 이들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이들의 별개처럼 보였던 삶이 사실은 얽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공동의 재난에 같이 빠져 있는 모습으로 이들 삶의 연관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즉 많은 재난 영화들이 궁극적으로 담고 있는 메시지인 재난에 빠져 있는 인간군상들의 모습을 한꺼번에 보여줌으로써 공동체성의 회복을 묻고 있는 것과 유사한 방식. 그러나 이 방식은 엄밀히 따져 볼 때 여기에서는 가짜다. 왜냐하면 이 영화에서는 그 총격 이후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재난 이후의, 즉 총격 이후의 그 재난을 극복하는 모습을 여기에서는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총격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그저 상징성만을 띠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즉 이 영화의 여러 다양한 주인공들이 한꺼번에 총에 맞고 쓰러져 있는 마지막 장면들은 그저 시각화된 상징에 불과한 것. 

그보다 궁극적인 것은 로버트 케네디가 총격을 받고 쓰러지는 그 사실 자체에 있다. 결국 정치란 우리 삶과 그다지 멀리 있지 않다는 것, 의외로 상당히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것을 그 영화는 말해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케네디가 쓰러지는 그 순간을 보여주면서 영화는 케네디의 연설을 오버랩시킨다. 그러나 하나 아이러니컬한 점은 그 연설의 주된 메시지는 평화의 메시지라는 것이다. 이제 폭력을 중단시키자는 것, 미국 내에서의 인종차별적인 폭력, 베트남에서의 폭력, 그리고 팔레스타인 등의 여러 다른 지역에서 일어나는 폭력을 이제는 중단시키고, 이제 평화의 메시지를 서로서로에게 불러일으키자는 것이 그 연설에서의 주된 메시지이다. 그러나 그 메시지를 전달했던 주체는 이제 또다른 폭력의 희생자가 되어 사라진다. 비슷한 메시지를 전달했던 킹 목사가 죽은지 얼마 지나지 않은 후 일어난 또하나의 비슷한 죽음. 이 죽음은 어떤 절망을 불러일으켰을 것이고, 이 절망은 분명히 당 시대의 인간 군상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즉 이 영화에 등장한 수많은 인간군상들이 굳이 총에 맞지 않았더라도 이들의 일상은 이 이후에 분명히 달라졌을 것이다.

그래서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아마도 이것인 듯 하다. 그렇게 본다면, 결국 우리 삶들이 서로서로 분리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영화에서 말하는 불륜이니, 직장동료니 하는 관계로 직접적으로 얽혀 있는 경우가 아닐지라도, 우리는 당대의 시대분위기, 시대흐름이라는 것에 의해서, 그리고 직접적으로는 정치라는 것에 의해서 결국 얽혀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니 더 이상 방관하지 말고, 그것을 자신의 문제라고 생각하라고. 당신이 "나는 정치에 관심이 없어요."라고 말할 때 당신은 자신이 양쪽에 있어서 공정하다고 생각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당신은 한 쪽 편을 들고 있는 것이라고. 왜냐하면 그것은 현재의 시대흐름을 긍정하는 것, 혹은 조금은 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현재의 지배구조를 긍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당신은 그것에 대해 어떤 불편함을 느끼지 않으니까. 만약 그것이 당신 삶의 어떤 부분에서 심각한 불편함을 야기한다면, 그래도 당신은 더 이상 정치에 관심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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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

1968년 로버트 케네디는 총격을 받았고, 그 해 공화당의 닉슨이 대통령이 되었다. 글쎄. 그 때 로버트 케네디가 대통령이 되었다면 무언가 달라졌을까. 잘 모르겠다. 역사에 있어서 가정이란 무의미한 것이다. 즉 예를 들어서 그 이후에 이라크전이 일어나지 않지 않았을까...라고 묻는다면 그것은 무의미한 질문일 것이라는 얘기다. 그리고 아무튼 2006년에 이 영화는 미국에서 개봉했고, 그 이후에 2009년에 오바마는 처음으로 흑인으로서 미국대통령에 취임했다. 

그리고 2010년 한국에서 이 영화는 개봉했다. 김대중, 노무현 두 전직대통령은 예기치 않은 죽음을 맞았고, MB 정부는 아직도 3년이나 남았다. 글쎄. 나는 로버트 케네디가 되었으면 미국이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그리고 세계도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적어도 한 가지는 알겠다. 다른 어떤 것은 몰라도 적어도 던지는 메시지 하나는 천지차이라는 점. '당신'을 잘 살게 해주리라고 말하는 메시지와 '우리 모두'가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게 해주리라고 말하는 메시지. 당신이라면 어느 쪽을 지지하는가. 나라면 후자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는 '당신'을 잘 살게 해주리라고 말하는 사람이 보여주는 당연한 세상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 2010년 2월, 롯데시네마 건대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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