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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박찬옥

Ending Credit | 2009. 11. 16. 21:41 | Posted by 맥거핀.



(영화에 대한 미리니름이 될 수 있는 내용이 있습니다.)


낮게 깔린 안개 사이로 자동차들이 지나간다. 그 중 한 대의 자동차 안에는 은모(서우)가 앉아 있다. 그녀는 7년 전에 죽은 언니와 같이 살았던 곳, 그리고 3년 전 같이 살던 형부 중식(이선균)을 떠나 인도로 떠났기전 살았던 그 곳, 파주로 가는 중이다. 그녀의 언니는 자동차 사고로 죽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 곳에는 지금 그 형부 중식이 철거민대책위원회(철대위)를 이끌고 있다. 물론 아직 그녀는 그 사실을 모른다. 필시 얼마 후에 그녀는 형부를 만나게 될 터이니, 그것을 알고 모르고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이 아직은 베일에 싸여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흐릿한 안개들 사이로 무심하게 파주를 가리키는 안내 표지판이 나타나며 영화는 시작한다.

시작부의 이 이미지들은 영화를 전체적으로 지배한다. 흐릿한 안개들 사이로 나타나는 은모 얼굴의 클로즈업 숏. 흐릿한 안개들 만큼이나 모든것은 명확하지 않다. 왜 3년 전에 그녀는 도망치듯이 이곳을 떠났는가, 그리고 왜 그녀는 다시 파주로 돌아가는가, 그리고 그녀의 언니는 어떻게 죽었을까, 중식은 왜 아직 거기에 남아 철대위를 이끌고 있는가, 그리고 중식은 왜 굳이 언니의 보험금을 그녀 앞으로 돌려 놓았을까, 그리고 아마도 가장 중요한 질문- 그녀는 그를, 혹은 그는 그녀를 사랑하고 있는가. 클로즈업된 그녀의 혹은 그의 얼굴은 아무 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관객은 처음에는 그 얼굴들에서 무언가를 읽어내려고 애쓰다가 이내 포기하고 만다. 그 얼굴들은, 어떤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많이 겪고난 사람들의 얼굴이 그렇듯이, 어딘가에서 표정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관객이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감독의 자비 뿐이다. 어서 숨겨진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끄집어내 주기를-.

그러나 이 이야기들은 친절한 방식으로는 전달되지 않는다. 어쩌면 조금은 이상하게 보일 정도다. 은모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다시 그녀의 얼굴을 잡으면서 마치는 이 영화는, 도리어 중간에는 은모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상당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은모는 중식이 서울에서 어떠한 일들을 하면서 지내왔는지 모르고(여자 선배와도 어느 정도의 관계였는지 잘 알지 못하고), 언니가 어떻게 죽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중식이 왜 그녀 앞으로 보험금을 돌려 놓았는지도 모르고, 중식이 어쩌다가 철대위를 이끌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 관객들은 그 중 몇몇의 이야기를 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안다고 생각한다. 이 차이, 은모가 모르고, 우리는 알고 있는 것(혹은 알고 있다고 믿는 것, 또는 오해하고 있는 것)의 차이, 이것이 은모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몇 개는 명확하지만, 또 몇 개는 여전히 흐릿하다. 그리고 감독은 시점을 흩뜨리는 것으로 모자라, 현재-8년 전-다시 현재-7년 전-3년 전-다시 현재로 돌아오는 기이한 방식의 연결로 이 흐릿함을 가중시킨다(더구나 시점을 과거로 이동시킨 후에 다시 현재로 돌아오는 순간은 명확하지 않다). 이 흐릿함은 인물들의 묘사에도 여전히 이어진다.

간단히 말하면, 중식은 선하고, 타인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고귀한 인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관객은 몇몇 부분에서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그가 은모를 위해서 모든 책임을 떠맡고, 철대위를 이끌고 하는 것들이 단지 어떤 고귀한 희생이라고만 말할 수 있는가. 그 이면에는 왠지 다른 것들이 결합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명확하지는 않지만, 그것의 하나는, 마치 어린아이와도 같은 심한 나약함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밑에서 화염병 공격이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위에서 돌아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그의 표정, 혹은 주차장에서 자동차에 틀어박혀 차를 팔고 있는 그런 모습, 가게에서 혼자 소주병을 앞에 두고 술을 마시는 모습, 아니 그런 사소한 것까지 말하지 않더라도, 영화의 시작 부분을 다시 기억해보자. 그는 수배된 상태로, (아마도 자신을 대신해) 감옥에 간 선배의 부인(이자 또다른 선배)에게 얹혀 살고 있다. 아마도 그는 결정적인 순간에 도망쳤을 것이다. 그리고 게다가 그는 그녀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기까지 한다. 물론 이러한 몇 가지들로만 그를 비난하는 것도 온당치는 않아 보인다. 그는 몇 개의 이질적인 것들이 교묘하게 배합되어 있다는 인상을 준다. 그것이 그를 쉽게 판단할 수 없게 만드는 부분이다. (이것을 운동권 지식인의 일반적인 나약함으로만 연결시키는 것 역시 또한 부당할 것이다.)

아마도 그의 반대편에 나이트클럽 사장(이경영)이 있을 것이다. 마지막 은모에게 짓는 그 미소는 거의 악의 화신에 가까운 미소로 보인다. 그리고 그 미소는 종교적인 어떤 것을 생각나게 한다. 공교롭게도 영화를 본 이날은 일요일이었고, 교회에서의 그 날의 말씀의 소재는 창세기에서 하와(이브)가 뱀에게 유혹을 당하는 장면이었다. 우리는 알고, 그녀는 알지 못했던 몇몇 일들 때문에, 그녀는 결국 악마의 화신과 손을 잡은 셈이었다. 박찬옥 감독이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아마도 이는 '배덕(背德)'일 것이다. 그리고 박찬옥 감독의 좋은 표현대로, 마지막에 그녀는 그녀 안의 괴물을 들여다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를 단지 배덕이라고만 말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답을 주저하게 된다. 어쩌면 그녀가 배덕한 것이 아니라, 배덕을 당했다고 말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기꺼이 파주로 돌아왔지만, 다시 상처를 안고 그곳을 떠나야만 했기 때문이다. '다시는 이곳에 돌아오지 말라'는 이야기까지 들으며.

그러니 어쩌면 이 모든 것의 실마리는 은모(서우)가 쥐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결국 중요한 질문은 그녀는 그를, 혹은 그는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는가-이다. 은모는 혼자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으면서도, 어떤 것을 공유하고 싶지는 않아한다. 그녀와 언니의 사이에 중식이 나타나자, 그녀는 둘 사이를 떠나버렸고, 다시 언니가 죽자 중식에게 돌아왔고, 다시 그들 사이에 중식의 여자선배가 끼어들자, 다시 그들을 떠나버렸다. 그리고 다시 파주로 돌아왔지만, 결국에는 그를 놓아버렸다. 그녀가 중식에게 한 마지막 질문에 대해, 그녀가 원했던 답은 무엇일까.


.....................................

자꾸 이야기에서 답을 찾으려는 것은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이 영화에서 이야기보다도 훨씬 중요해 보이는 것은 그 이미지들이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중요해보이는 것은 무엇보다도 계속 반복되는 이미지인 불의 이미지, 들끓어오르는 이미지이다. 이 끓어넘치는 것, 그리고 그것과 연결되는 불은 이 영화에서 계속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 아이에게 쏟아넘쳐 상처를 입히는 뜨겁게 끓어오르는 물, 그리고 죽은 언니의 등의 화상 자국, 가스 폭발 사고, 불타오르는 화염병...계속 물들은 끓어오르고 넘치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히고, 죽음에 가깝게 그들을 데리고 간다. 이 끓어넘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가장 간단하게 유추해 볼 수 있는 것은 결국 그들의 욕망이다. 무엇인가를 향한 그들의 욕망은 그들, 혹은 그들 주위의 어떤 것들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힌다. 그러나 그들은 어쩔 수 없다. 그 욕망들은 그들이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동력이기 때문이다. 그 끓어오르는 욕망이 없다면 그들은 결코 살아갈 수 없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차(茶)를 팔던 중식에게 뜨거운 물이 떨어지던(팔 물이 동나던) 장면은 한편으로는 재미있어 보이기도 한다. 아내도 죽고, 은모도 떠나버린 상태에서 살아갈 희망을 잃고 차나 팔며 살아가는 중식에게, 차를 탈 뜨거운 물이 떨어져 버리는 이 장면은 왠지 중식 그 자신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무튼, 그래서 그들은 그렇게 무너져 내리는 건물 속에서 필사적으로 화염병들을 던지는 것이다. 그리고 아래에서 또다른 죽음의 사신들은 그들에게 또 죽음의 물줄기들을 쏟아 붓는다. 그 욕망이 꺼지게 하려고, 그 살고자 하는 치열한 몸부림을 멈추게 하려고 말이다. 

그 물들이 끓어오르다 못해 폭발하는 상태,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안개다. 결국 안개라는 것은 수증기. 즉 물이 끓어오르다 못해, 다른 어떤 것으로 변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파(破)괴되어 가는 도시이자 흐릿한 안개로 낮게 깔린 도시 파주(坡州)는 끓다가 넘쳐버린 욕망으로 꿈틀거리는 도시이다. 그 도시에서의 욕망은 여러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그것은 아주 저열한 수준에서는 번쩍거리는 나이트 불빛이기도 하고, 누군가에는 땅을 독점하고 그곳에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 거대한 이익을 남기려는 욕망이기도 하고, 누군가에는 그저 살아남기 위해 무너져내리는 건물에 들어가 포크레인에 맞서야 하는 피맺힌 욕망인지도 모른다. 그 욕망의 중심의 한 가운데에, 중식과 은모의 욕망이 있다. 이 욕망은 이루어질 수 없는, 혹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아주 많은 것들을 뛰어 넘어야 하는 그런 욕망이다. 이루어질 수 없는 욕망들의 운명의 길이란 그저 들끓는 것밖에는 남아있지 않다. 그것은 들끓다가 못해, 자욱한 안개로 남을 수밖에 없는 그런 욕망이다. 그러므로 이들의 이야기가 안개가 자욱한 파주에 은모가 들어오는 것으로 시작해서, 은모가 중식과 아닌 미애와 함께 이곳을 떠나는 마지막으로 이루어진 것은 어쩌면 필연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 마지막 장면에 안개가 있었던가. 기억이 흐릿하다.


- 2009년 11월, 광화문 씨네큐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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