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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 그가 말하는 민주주의.

The Book | 2009. 9. 11. 02:00 | Posted by 맥거핀.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 - 10점
오연호 지음/오마이뉴스



"본 도서 리뷰는 TISTORY와 알라딘이 제공하는 서평단 리뷰 포스트입니다"



오마이뉴스의 오연호 기자의 책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는 여러가지로 마음을 복잡하게 만든다. 먼저 한 가지는, 이 책의 추천사를 故 김대중 전대통령이 썼다는 사실이다. 이미 이 세상에 없는 분의 목소리를 담은 책의 추천사를 쓴 그 분도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은 참 여러모로 안타까운 마음을 남긴다. 특히 그 추천사의 다음과 같은 대목에서는 말이다.

나는 비록 몸은 건강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마지막 날까지, 민주화를 위해 목숨 바친 사람들이 허무하게 생각하지 않도록,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내가 할 일을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연부역강(年富力强)하니 하루도 쉬지 말고 뒷일을 잘해주시길 바랍니다. 나와 노무현 대통령이 자랑할 것이 있다면 어떤 억압에도 굴하지 않고 민주주의, 서민경제, 남북평화를 위해 일했다는 것입니다. 이제 후배 여러분들이 이어서 잘해주길 부탁합니다. (p.8)


무엇부터 이야기해야 할까. 지난 몇 개월간 참 많고도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검찰의 정치 수사 공방 속에서 전직 대통령이 목숨을 끊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고, 그 자리에 참석해서 통한의 눈물을 흘렸던 또다른 전직 대통령은 그 후유증을 이기지 못하고 끝내 세상을 떴다. 그리고 그 이후 민주주의와 서민경제, 그리고 남북관계가 여전히 불안한 선상에 놓여있는 가운데, 정치권은 그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이 나왔다. 이 책은 故 노무현 전대통령과 오마이뉴스 오연호 기자가 나눈 3일에 걸쳐 이루어진 세 차례의 심층 인터뷰를 글로 묶은 것이다. 이 인터뷰는 노무현 대통령 집권 말기인 2007년 가을 경 이루어졌으며, 그런 만큼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직을 수행하면서 겪었던 여러 생각과 앞으로의 구상들, 그리고 그가 그간 정치를 행하면서 다져진 생각들이 차곡히 정리되어 나온다.

책을 읽으면서 사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그리고 한편으로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부분은 무엇보다도 故 노무현 전대통령의 죽음에 관련된 부분이다. 이 책의 내용만 놓고 보자면, 어떠한 경우에서든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것으로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어떠한 사람이든 자신의 죽음을 예측하고 어떤 발언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든 느낌은 솔직히 그런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강하고,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있으며, 꽤나 낙관적인 사람으로 느껴진다. 어쩌면 역으로 말해서 그런 것이 그의 정말 안타까운 죽음과 관련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가 겪은 일들로 주위 사람들이 어떤 고통을 받았다는 사실을 견디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물론, 지금의 이 시점에서 그런 것을 생각해 보아도 아무 의미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쉬움은 자꾸 그런 의미없는 물음을 하게 만든다. 그렇게 부러지지 않고, 조금 휘는 것이 어쩌면 더 강한 것이라는 것을 그도 분명히 알았을 터인데, 그럼에도 그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어떤 이유였을까. 그 동안에 어떤 압박감이 그를 짓눌렀을까.

책을 읽고나니, 크게 세 가지 부분을 생각하게 된다. 먼저 하나는 나 스스로에 대한 반성과 어떤 한계이다. 나 역시 故 노무현 전대통령에 대해 여러모로 오해를 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대표적인 오해 하나는 그가 어떠한 정치에 대한 철학 없이 자꾸 어떤 일들을 벌이고 있었다는 생각이었다. 그가 대통령직을 수행하며 한 많은 일들의 상당 부분이, 어떤 큰 밑그림 없이, 중요한 철학이 없이, 단지 조금 즉흥적으로 기획되고 처리된 것이 아닌가 하는 오해 말이다. 책을 읽어보니, 도리어 그 반대로 대부분의 것들이 오랜기간 준비되고, 여러모로 역사적인 흐름을 판단하여 진행된 일이 아니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아니, 사실 분명히), 나도 여러 보수 언론이 만들어낸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프레임에 갇혀 그를 바라보았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는 한편으로는 스스로를 반성하게 만들면서도 동시에 어떤 한계를 자각하게 만든다. 그의 오랜 정치 역정에서 나오는 역량을 따라갈 수 없는 당연함은 차치하고라도, 몇몇 간단한 것조차 제대로 바라볼 수 없게 만드는 이 현실에서, 어떤 것들을 그래도 비교적 진의에 가깝게 바라보기 위해서는 어떠한 것들이 필요한가.

두 번째는 (나를 포함한) 故 노무현 전대통령에게 기꺼이 한 표를 던졌던 사람들의 상당수를 등을 돌리게 만들었던 이라크 파병과 미국과의  FTA 체결에 관련된 부분들. 아마도 노무현 대통령은 현실의 평가만을 생각하지 않고, 역사적인 평가만을 생각했던 것이 아니었나 싶다. 그는 말한다.

그렇다면 현실의 평가와 역사의 평가가 다를 때 사람(정치인)들은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 사람은 결국 역사의 평가를 선택하게 됩니다. 그럴 때 그것은 자기 가치와 일치하게 되어 있죠. 왜냐하면 자기의 가치관이라는 것이 역사에 대한 예측과 같이 가기 때문에, 역사에 대한 예측을 바탕으로 해서 가치관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럴 때에는 현재의 평가, 현재의 민심을 포기하게 되는 것이죠. (p. 246)


글쎄. 그의 이런 말에는 동의할 수밖에 없지만, 과연 역사의 평가가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어떤 의문이 든다. 그 이후에 이어진 심상정 진보신당 대표와의 어떤 논쟁을 보아도, 그의 이런 판단은 아직까지 우리나라가 자립을 하기 어려운 국제정치, 국제경제의 흐름을 판단한 어떤 역사적 미래 예측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판단은 과연 적절했을까. 이런 역사적 흐름이 아직도 지속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섣부른 예측은 어렵겠지만, 그의 이런 판단이 그의 많은 지지자들을 등을 돌리게 하고, 노무현 정부의 다른 정책들의 추진에까지 악영향을 미쳤음을 생각해보면 여러 아쉬움이 남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이 책의 마무리 부분에 소개되어 있는 노무현 대통령의 민주주의론(論)이다. 이 책의 마지막 챕터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의 민주주의에 대한 철학을 엿볼 수 있다. 그것은 아마도 다음과 같은 한 마디로 집약할 수 있을 것이다. "권력은 위임하되, 지배는 거부하라." 이를 다른 말로 할 수도 있다. 故 노무현 전대통령의 비문에 새겨진 다음과 같은 글귀이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 아마도 노무현 대통령은 시민의 힘을 믿는 사람, 아니 누구보다도 강하게 믿는 사람이 아니었다 싶다. 그는 명쾌하게 말한다.

신자유주의든 구자유주의든 다 덮어놓고 보수의 핵심은 그겁니다. 성공한 사람이 주도해간다, 맡겨라, 통째로 맡겨라.
그럼 진보는 뭔가? 진보는 '그게 아니올시다.'입니다. 진보는 보수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 게 아니고요. 그건 기회를 평등하게 해주고 모두에게 같은 기회를 주면 우리도 다 잘할 수 있습니다. 무슨 소리 하십니까.' 권력도 나누고 지혜도 나누고 평등을 지향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강자에게 맡겨라.' 이 말은 보수가 지배력을 유지하겠다는 것이고, 진보는 이렇게 말하는 거지요. '지배하지 말고 합의해서 합시다.' (p. 252)


그랬다. 어쩌면 그는 시민의 힘을 믿는 진정한 진보주의자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말에는 명확한 한 가지의 전제가 따른다. 그것은 '깨어 있는 시민'이어야 한다는 것. 어떤 프레임의 덫에 갇혀 있는, 혹은 어떤 고정된 가치관에 길들여져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조직될 수도 없고, 조직되어서도 안된다는 것. 그것은 보수의 프레임이든 진보의 프레임이든 거의 비슷할 것이다. 스스로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자신의 생각들을 계속 돌아보며 어떤 고정된 가치에, 고인 물에 스스로를 가둬놓아서는 안 된다는 것. 설사 그것이 노무현일지라도-. 그것을 이 책은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노무현 대통령이 스스로 말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다만, 이런 말은 해두고 싶군요. 저도 부족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저도 부족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납득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을 두려워 하고 있습니다. 그런 분들은 속았다고 생각하기가 쉽지요. 그리고 실망하고, 다음에는 세상을 불신하게 되지요.
부족한 그대로 동지가 되면 좋겠습니다. (p. 287-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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