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 8점
최규석 지음/창비(창작과비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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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도서 리뷰는 TISTORY와 알라딘이 제공하는 서평단 리뷰 포스트입니다"


정치에 관심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화까지는 나지 않지만, 좀 많이 별로다. 정치라는 것이 우리 삶의 얼마나 많은 부분을 좌지우지하는지 알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기도 하려니와, 무엇보다도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대부분 본의 아니게 큰 영향을 미치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 삶의 거의 모든 것들이 분리되어 움직이는 것은 없다. 예를 들어 내가 어떤 물건을 사거나 혹은 사지 않거나 하는 사소한 경제 행위도 타인에게 (일종의 나비효과가 되어)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러나 정치의 영향은 이보다 훨씬 직접적이다. 예를 들어, 지난 대선에서 MB에게 기꺼이 표를 던져준 많은 사람들 덕분에, 그리고 투표장에 가지 않은 또다른 많은 사람들 덕분에, 지금도 어딘가에서 사람들은 용역에 얻어맞고, 또다른 누군가는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돌아왔다고 말할 수도 있다.


여기 이 한 권의 만화는 그런 것을 말한다.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 또는 정치에 대해서 냉소하는 것이 어떠한 결과를 낳게 되는가. 그것은 어떤 형태로 우리에게 돌아와 우리의 뒤통수에 POLICIA 방패를 날리는가. 이 만화가 그것을 보여주는 방식은 어쩌면 진부하다고 말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인지도 모르겠다. 1987년 6월에 대학을 다니던 가난한 지방 출신의 법대생, 동생을 위해 희생하고 열악한 노동환경의 공장에 다니는 그의 누나, 아무 것도 모르는 평범한 시골 아낙네였다가 그 아들을 위해 앞으로 나서는 어머니, 데모하는 학생들을 빨갱이라고 욕하던 그의 아버지, 부당한 사회 현실을 외면하고 직업전선의 길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그의 형....아마도 여기에서 조금만 더 이야기를 발전시키면 SBS 주말특집기획류의 드라마를 하나 뽑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그 이야기에서는 주인공은 결국 법대를 졸업해 검사가 되고, 집회현장에서 만났던 여학생은 몇 년 후 조폭 두목의 정부가 되어, 우연히 어딘가에서 만나게 되고...뭐 그렇고 그런 이야기가 되겠지. 그러나 이 만화는 이런 이들을 패턴화된 후일담으로 풀어내어 이들에게 비감한 느와르와 가슴아픈 멜로를 부여하여 이들을 애써 우리와 분리하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이 만화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그들의 살아온 줄거리가 아니다. 중간에 잠깐 언급되기는 하지만, 결국 여기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한 사람의 열 걸음이 아니라, 열 사람의 한 걸음'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모두의 무관심 속에서 한 사람만이 관심을 가지고 모든 것을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열 사람이 아주 큰 관심은 아닐지라도, 그것이 자신과도 조금은 관련이 있는 문제임을 인식하는 것, 그래서 조금씩 나아가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 이야기는 말한다. 조금씩 나아간다고 해서 길거리에 나서서 구호를 외치고, 촛불을 들면서 나아가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 이야기의 마지막에서 상징적으로 설명된다.

소중한 백지 한장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고통받던 이는 고통이 사라지길 바랐고
누울 곳 없던 이는 보금자리를 바랐고
차별받던 이는 고른 대접을......

그렇게 각자의 꿈을 꾸었겠지만

우리가 얻어낸 것은 단지 백지 한장이었습니다. (p. 171)



모두가 벌어지고 있는 문제들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이 자신의 문제라고 인식하고,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작은 백지에 행사하는 것.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이며, 그것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 어떤 이들이 어떠한 희생을 감내하였는지를, 이 마지막은 상징적으로 말해준다. 물론 여기에 몇 가지 이야기를 덧붙이면, 이것을 쓰는 나도, 이를 읽는 당신도 아마 슬플 것이다. 그렇게 얻어낸 소중한 백지로 1987년 대선에서 결국 누가 정권을 잡았는지, 혹은 이 책에도 잠깐 지나가는 이야기이지만, 박종철 열사가 그렇게 지키려고 했던 박종운이 17대 총선에서 어느 당 후보로 출마했는지를 알게 된다면 말이다. 그러나 그러한 것만으로 냉소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이 이야기는 다시 일깨운다. 단지 그러한 것들은 100도씨의 물에 불순물을 투여하여 비등점을 낮춘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말이다. 사람도 100도씨가 되면 끓는다는 것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할 일은 간단하다. 언제든 100도씨가 될 수 있도록 눈과 귀를 열어두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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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개인적으로 더욱 흥미롭게 보았던 것은 이야기의 뒤에 '그래서 어쩌자고?'라는 제목으로 붙은 민주주의 학습만화이다. 후기에 작가가 밝힌 바대로, 이 책이 어떤 교재의 용도로도 사용되는 만큼 어떤 의미에서는 본편보다 더욱 중요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이 만화는 그림체도 엉성하고, 내용도 짧지만, '민주주의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한 번 숙고하게 만든다. 여기에서는 여러가지 내용을 말하고 있지만, 사실 핵심적인 내용은 하나인 듯 하다. 민주주의란 결국 정당성(legitimacy)를 확보하는 것을 말한다는 점이다. 즉 민주주의란 다수결에 의해서 결정하는 것, 혹은 법의 힘으로 어떠한 것을 결정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여러가지 용어로 말할 수 있지만, '평등한 배려'를 하는 것, 혹은 각자 개인이 심의된 의사를 가지고, 그 의사를 하나로 결집해나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물론 이 짧은 만화가 모든 것을 설명해줄 수는 없다. 사실 어떤 의미에서는 조금은 근원적인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 '평등한 배려' 혹은 '심의된 의사'라는 것에는, 인간에 대한 어떤 근본적인 믿음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선한 의도, 타인에 대한 배려와 같은 것이 인간의 근본적인 성향이라는 그런 믿음 말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우리가 타인을 배려하고 모두가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지 못하는 것은 그렇게 행동하는 방법에 대해 알지 못하기 때문, 혹은 어떤 필요한 사실들을 알지 못하고 잘못된 정보, 잘못된 논조들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인간은 알면서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그렇게 행동할 수 있는 존재들인 걸까.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러나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 짧은 만화에서 정답을 찾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이 만화 역시 현명한 끝맺음을 하고 있다. 민주주의에 대해 더 공부해 보라는 것, 민주주의에 대해 공부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질수록, 이 체제는 더 잘 유지되고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전국의 중고등학생들이나 나같은 덜떨어진 어른들에게 필요한 책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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