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지 말고 청바지 하나 사세요

The Book | 2009.04.14 23:37 | Posted by 맥거핀.
청바지 세상을 점령하다 - 4점
TBWA KOREA 지음/알마


"본 도서 리뷰는 TISTORY와 알라딘이 제공하는 서평단 리뷰 포스트입니다"


퀴즈 하나. 다음의 단어를 듣고 무엇이 연상되는가. '디젤'. 당신이 '디젤 엔진' 같은 걸 떠올렸다면, 아마도 당신은 기름값을 걱정하며 오늘도 조금 더 싼 주요소를 찾아 헤매는 오너 드라이버일지도 모른다. 혹은 당신이 영화배우 '빈 디젤'을 떠올렸다면, 액션영화를 좋아하는 영화광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당연히 청바지 '디젤'이지, 뭐 더 있어?"라고 생각했다면 분명히 패션에 약간은 관심이 있는, 청바지를 좋아하는 사람일 것이다. 디젤(DIESEL). 이 책의 설명에 의한다면 '전 세계 프리미엄진 가운데 가장 유명한 이탈리아 브랜드이며, 1978년 처음 선보인 이래, 전 세계에 걸쳐 200개가 넘는 매장을 보유하고 있으며, 생산량이 많아 다른 브랜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디자인이 다양하며, 초보자에게는 그만큼 실패할 확률이 적은 브랜드'다. 아..이게 갑자기 무슨 간접광고질이며, 망발이냐고? 그저 단지 나 같은 사람은 이 '디젤'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디젤 엔진 또는 디젤 기관 외에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으며, 이 '디젤'이라는 청바지 브랜드가 있다는 사실, 그리고 이 외에도 수많은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프리미엄진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는 것을 고백하려던 것 뿐이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거의 매일 청바지를 즐겨 입기는 하지만, 프리미엄진과는 거리가 멀며, 그나마도 몇 벌 없어서 두 세 개를 교묘히 돌려입는 중이다. 그러니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즐겨 입는다'라는 표현은 사치스러운 것일 것이다. '즐겨 입는다'라는 것은 '입을 수 있는 옷, 혹은 입어야만 하는 옷이 무수하게 많지만, 그 중 내가 이것을 특별히 좋아하기 때문에 자주 입는다'라고 할 때나 쓰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저 나같은 경우에는 '아껴 입는다' 혹은 '헐벗은 정도는 겨우 면했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을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두 세 벌 밖에 없는데도, 왜 거의 매일 청바지를 입는 것일까. 그것은 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편하다'라는 말은 주의해서 볼 필요가 있다. 이는 옷 자체가 편하다라는 의미는 아니다. 이 책에서 말하는대로, 결코 부드러운 천이라고 할 수 없는 데님으로 이루어진 청바지는 어떤 의미에서는 '현대판 코르셋'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며, 결코 그 자체로 편한 옷이라고 보기는 힘들다(적어도 나에게는). 여기서 '편하다'는 것은 아무 때나, 어떤 상황에서나 입을 수 있기 때문에 편하다는 것이다. 특별히 드레스 코드가 지정된 경우가 아니라면, 청바지는 언제 어느 때나 무리하지 않은, 튀지 않은 복장으로 보인다. 따라서 거의 매번 튀지 않고, 조용히 눈에 띄지 않는 것을 선호하는 나로서는 청바지를 자주 입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의 '편하다'는 '아주 튀는 청바지가 아니라면, 대체로 별로 눈에 띄지 않기 때문에 편하다'라는 의미에 가깝다. 그러나 한편으로 나는 때로 이 '편하다'를 과대해석하여, 대학원 면접시험장에도 입고 갔고, 모 대학 조교로 있을 때 시험감독을 하러 갈 때도 입고 갔다. 그리고 그 때마다 손가락질을 받았으니 내 '편하다'의 기준도 살짝 문제는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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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황한 이야기로 시작했는데, 아마도 이 책에서 요구하는 것들이 이런 것들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당신은 왜 청바지를 입습니까?"라는 질문. 그리고 그에 대한 나름의 해답. 이 책이 초점을 맞추고 있는 부분도 이러한 부분이다. 왜, 처음에는 미국 서부 금광 노동자들의 작업복에 불과하였던 청바지가 전세계로 퍼져 나갔으며, 전 세계인의 유니폼이 되었는가. 이 책은 그러한 것을 나름의 공식으로 설명하려 하고 있다. 

이 책에서 설명하는 나름의 공식이란 대략 이런 것이다. 미국에서 천막용 천에 불과했던 거친 데님은 잘 찢어지지 않는다는 장점 덕분에 리바이(Levi)에 의해 광산노동자들의 작업복으로 재탄생될 수 있었고, 실용성을 강조하는 미국인들에 의해 대량 생산, 대량 판매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양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세계최강국으로 발전한 미국은 팍스 아메리카나의 시대를 열며 코카콜라, 맥도날드, 디즈니와 함께 청바지를 전세계적으로 퍼지게 하였으며, 청바지는 자유와 저항이라는 상징성까지 얻으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되었다. 이후 청바지는 보보스(bobos)들에게 사랑받으며, 질적 성장을 하게 되었고, 하나의 종교가 되었다. 즉 내가 청바지를 선택하는 시대가 아니라, 청바지가 나를 선택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따라서 다음의 선언들은 이 책에서 최종적으로 주장하는 현재 청바지의 위치다.

키 176센터미터에 67킬로그램의 '스펙'을 가진 남자는 디젤의 자탄 청바지를 입을 수 있지만, 176센티미터의 키에 78킬로그램이라는 '스펙'을 가진 남자는 자탄을 입어서는 안된다는 분위기다. 이른바 '간지'가 나지 않는다는 이유다. (중간 생략) 청바지의 스타일을 무시한 채 살이 찌면 찐 대로 큰 사이즈의 청바지를, 살이 빠지면 빠진 대로 작은 사이즈의 청바지를 '이기적으로' 입을 수 있는 시대는 갔다.
인간은 청바지의 서식지다. 이들은 변화하는 다양한 시대의 가치들을 흡수 제공하며, 대표적인 인간의 외피로 자리잡았다. 의심스럽다면 지금 당장 당신의 다리를 내려다보라. 당신과 청바지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다.


이 도발적인 선언들은 다음과 같은 얘기다. 청바지를 입는 것에도 자신에게 맞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 즉 아무 청바지나 입어서는 안된다는 것, 또 역으로 말해서 어떤 청바지를 입었는가가 당신을 말해 줄 것이라는 것. 아주 맞는 얘기라고 할 수는 없지만, 뭐 틀린 얘기도 아니지..라고 생각하면서도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말 같다. 그랬다. 요즘 광고에서 내세우는 새로운 전략들. 즉, 이 물건은 아무나 쓸 수 있는 것이 아니예요. 당신이 이 물건을 쓰는 순간 당신은 아주 달라보일 겁니다..라는 거. 이 핸드폰은 이런 물건들을 쓰는 센스있는 사람들의 자매품에 불과하다는 것, 잇쯔 디퍼런트 스카이 같은 것 말이다. 또는 그곳에 살게 됨으로써 달라질 당신의 삶을 파노라마처럼 보여주는 아파트 광고 같은 것들 말이다. 

이건 좀 의심스러운데 말이야..하고 책 부제를 들여다보니 'TBWA KOREA가 청바지를 분석하다'라고 되어있다. TBWA KOREA? 광고회사다. ('그것도 매우 괜찮은 광고회사다'라고 자신들을 소개한다.) 이 책은 이 광고회사의 7명의 사원(카피라이터, 컨설턴트, AE 등)들에 의해 A부터 Z까지 철저하게 기획된 책이다. 어떤 목적으로? 물론 당신에게 청바지를 팔아먹어 보겠다는 목적으로 말이다. 즉 당신이 노동자건, 대학생이건, 혹은 보보스이건 간에 청바지가 당신을 다르게 보이도록 만들어 줄 것이다, 그러니 사세요 라는 것. 물론, 그렇게 단정짓는 것은 이 책에 대한 조금은 가혹한 평가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청바지 발전사에 대한 꽤나 흥미로운 고찰이기도 하고, 팍스 아메리카나를 이야기하면서도, 그것의 문제점 또한 살짝 짚어주는 영리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단지 그뿐이다. 이 책으로 어떤 인문학적인 사회문화사, 패션에 대한 조금은 진중한 고찰을 기대한다면 당신은 분명히 실망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음과 같은 얘기를 하는 책에 손을 들어주기란 꽤나 힘든 일이다.

이것이 진정한 종교다. 이제 트루릴리젼(True Religion)이라는 청바지 이름을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다. 사람들은 스스로에게 줄 수 없는 초감각적인 무엇을 청바지를 통해서 얻으려는 것이다. 그 결과 공구를 집어넣던 뒷주머니에는 수를 놓아 메시지를 담기 시작했고, 사찰에 있어야 할 붓다가 기타를 들고 로고 속으로 들어왔다. 한 슈퍼모델은 자신의 청바지를 세탁기에 돌린 가정부를 해고했다. 아마도 신성모독이 그 죄목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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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단이라는 명목으로 공짜로 받은 책이니, 되도록 좋은 말을 해주는 것이 공짜에 대한 예의겠지만, 솔직히 이 책을 사려는 사람이 있다면 재고해 볼 것을 권하고 싶다. 청바지의 역사 같은 것은 여성지의 가끔 남는 지면을 활용하기 위해 실리며, 아마도 그것은 훨씬 더 잘 요약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내용은 그런 여성지 2-3 페이지에 실릴 내용을 한 권의 책으로 늘려놓은 것에 불과하다. 그 요약 이상 알아서 무엇하겠는가. 무슨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청바지를 입는가를 알았다고 해서, 당신의 청바지 고르는 안목이 나아지지는 않는다. 그러고보니 이 책도 잡지처럼 이쁘게 구성되어 있다. 두 시간이면 읽을 분량을 한 권으로 늘려놓다보니 어쩔 수 없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럴 돈이 있으면, 청바지를 한 벌 사라. 그것이 이 책에서 좋아하는 실용성을 가장 잘 실천하는 길이다. 혹시 아는가? 프리미엄진이라도 사면 이 책을 부록으로 껴줄지. 그것이 이 책에 맞는 합당한 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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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befreepark.tistory.com BlogIcon 비프리박 2009.04.15 15: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마도 느낌은 비슷할 거예요.
    어떤 부분을 글로 적느냐 하는 것과 어디에 초점을 맞추느냐만 다를뿐. ^^
    트랙백 잘 받았구요. 답 트랙백 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