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치바나 다카시에게 얻는 지적 자극

The Book | 2009.02.17 17:30 | Posted by 맥거핀.
피가 되고 살이 되는 500권, 피도 살도 안되는 100권피가 되고 살이 되는 500권, 피도 살도 안되는 100권 - 8점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박성관 옮김/청어람미디어

<피가 되고 살이 되는 500권, 피도 살도 안되는 100권>. 꽤 오래 전에 사둔 책인데, 얼마 전에 읽었다. 처음에는 제목만 보고 500권에 대한 호평과 100권에 대한 악평이 실린 책인 줄 알았는데, 너무 축자적으로 생각한 듯 하며, 실제로 그런 것은 아니다. 다치바나 다카시가 쓰는 악평은 어떤 것인가, 궁금했었는데, 그 궁금증의 해결은 조금 미뤄놓아야 할 듯 하다.

다치바나 다카시는 훌륭한 저널리스트로, 새로운 지식을 탐구하는 인물로, 그리고 엄청난 독서가로 알려져 있다. 이 책은 다치바나 다카시의 독서 일기라고 볼 수 있는데,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다치바나가 자신의 책을 가득 모아놓은 그의 이른바 '고양이 빌딩'을 자유롭게 거닐며, 책장에 꽂혀 있는 책들을 자유롭게 소개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고, 2부는 그가 <주간 문춘>에 연재하였던 독서 일기 몇 년 치를 모아 놓은 것이다. 그래서 1부에서 다루는 책들이 주로 그가 그의 지식을 형성하는 젊은 날에 읽었던 책들과 그간 여러 저널을 써오면서 읽었던 책들이 주가 된다면, 2부에서는 독서 일기를 썼던 당시에 관심을 가지게 된 책들이 주를 이룬다. 권말의 책 목록을 살펴보니 대략 900-1000권 정도의 책들이 소개되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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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치바나 다카시의 관심은 사실 전 분야에 가깝다. 책 뒤편을 보면 그를 형성한 지식의 '재료'와 키워드가 나와 있는데, 그 키워드의 목록은 인간, 지구, 우주, 자연과학과 테크놀로지에서 시작하여 신화와 역사, 종교, 전쟁, 환경과 생태학을 거쳐, 성과 사랑, 현대정치의 역학, 금융공학과 세계경제에 이른다. 즉 인간사의 거의 모든 부분과 거의 알려진 지식들이 그가 관심을 가지는 전부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그의 책 소개가 가지는 가장 큰 장점이다. 그가 관심을 가지는 책들은 특정 분야, 특정의 관심에 국한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원래, 메타(meta)-책 적인 내용을 좋아하는 터라, 이런 책 소개를 위한 책들은 꽤나 관심을 가지고 즐겨 보곤 한다. 그러나 그간 여러 책 소개 책들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그런 책 소개들이 특정의 분야에 국한된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책을 소개하는 대부분의 필자들은 자신의 분야에서는 상당히 일가(一家)를 이루고 있지만, 다른 분야의 지식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책 소개도 특정 분야에 치우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다치바나 다카시의 책 소개는 거의 전 범위를 넘나든다. 물론 이 책 소개는 특정 분야를 깊게 파지는 않는다. 그저 그 분야에서 읽어두어야 할 책들과 그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을 짤막하게 언급하는 식이다. 가끔 길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그래서 한편으로 이 책 소개들은 TV 뉴스 같은 데에 나오는 짤막한 스폿(Spot) 형식의 책 소개들을 연상케 한다. 어쩌면 여기에 다치바나의 저널리스트적인 면모가 드러나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 책은 책 소개들을 가득 담고 있기는 하지만, 여기에는 다치바나 다카시의 책을 대하는, 혹은 글을 대하는 자세, 그리고 사회 현상들을 대하는 자세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다치바나가 좋은 글에 대해 말하는 다음과 같은 부분이 그렇다.

내가 종종 하는 말이지만,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입출력비(입력 대 출력의 비율)가 100대 1 정도는 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책 한 권을 쓰려면 100권을 읽어야 하는 셈이다.
전방위를 넘나드는 다치바나의 책 소개는 놀라운 지적 자극의 연속이다. 그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의 들어본 적 없는 철학자(예를 들어, 비코 Giambattista Vico)의 저서를 소개하다가, 갑자기 비트겐슈타인으로 돌아서서 한참 말하다가, 지바 데쓰야의 <내일의 조>를 이야기하고는 우주와 지구의 이야기로 넘어가는 식이다. 또 그러다가는 갑자기 이상한 고대 전설에 대해 말하기도 하고, 성(性)의 신비로움에 대해 말하기도 한다. 이렇게 보면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사상의 흐름을 따라가기가 어렵지 않겠는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어차피 책 소개다. 꼭 처음부터 읽지 않아도 어느 페이지를 열어서 보아도 상관 없고, 그 어느 페이지에서나 일정량의 지적 자극을 맛볼 수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 수많은 책들의 상당수가 아직까지 우리나라에는 출판되지 않은, 그리고 앞으로도 그다지 출판의 가능성이 높지 않은 책들이라는 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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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다치바나의 사상에 대해 짤막하게 언급하고 넘어 가고자 한다. 이 책을 읽다보면 몇몇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 예를 들어 이 책에 소개되는 상당수의 책들이 일본 군국주의 시대를 다룬 것들이라든가, 우리나라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석연치 않은 일본 고대사나 천황을 다룬 책들이 나온다거나, 국가의 과학기술 진흥책에 대한 강조와 같은 것들이 그렇다. 그가 그동안 여러 다른 책들에서 주장한 내용들이 과학기술의 관심으로 부강한 국가를 건설해야 한다거나, 젊은이들의 지적인 쇠퇴를 지적한 것들임을 생각해보면 일견 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이 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를 쉽게 우익[각주:1], 또는 내셔널리스트라고 부를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그 답을 주저하게 된다. 국가라는 체제 혹은 시스템을 부정하지 않는 한,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고, 강한 국가가 되기를 바라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물론 여기서의 강한 국가란, 다른 나라를 괴롭히고, 다른 나라를 억압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나라 국민들을 어떻게 그 국가 안에서 평화롭게 살게 해줄 것인가라는 정치 및 사회의 작동 방식을 말하는 것이다. 그의 좌익의 운동에 대한 꾸준한 관심, 생태학(ecology)에 대한 관심, 그리고 지구인으로서 그리고 우주의 일원으로서 인간에 대한 관심을 생각해 볼 때 이런 낙인은 조금은 지나친 측면이 있다.

어쩌면 그의 저널리스트로서의 모든 것에 대한 관심, 그리고 모든 것을 알고자 하는 지적인 욕망을 추구하는 인간으로서의 태도가 이런 오해를 불러일으키는지도 모르겠다. 이것이 정말 오해인지 아닌지는 그의 <천황과 도쿄대>[각주:2]와 같은 저서라든가 앞으로 나올 책을 읽고 판단해야 할 것이다.


p.s. 앞으로는 읽은 책은 무조건으로 한 줄이라도 좋으니까 글을 남기자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저 읽기만 해서는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



http://noracism.tistory.com2009-02-17T08:30:580.3810
  1. 여러 일본 배우들에 대한 우익 논쟁이나, 요즘 제기되는 작가 오쿠다 히데오에 대한 우익 논쟁과 같은 우리나라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우익인가, 아닌가하는 논쟁은 너무 간단하게 우익이다 혹은 아니다라고 규정되는 측면이 큰 것 같다. 확실한 것은 '한국을 좋아한다'라고 한 마디했다고 해서 '친한' 또는 '개념있는' 게 아닌 것처럼, 한 번 영화에 출연했다고 해서, 혹은 책 내용 중 한 줄 이상한 것이 있다고 해서 '우익' 또한 아닌 것이다. [본문으로]
  2. 다치바나의 이 책이나 혹은 가라타니 고진과 같은 다른 일본 사상가의 책들을 읽고 보면 '일본인에게 있어 천황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안 할 수가 없다. 확실히 천황이 일본인의 사상에서 위치하는 지점은 한국인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어떤 것인 듯 하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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