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교사, 김태용

Ending Credit | 2017.01.13 11:05 | Posted by 맥거핀.

 

(스포일러 있습니다.)

 

 

어떤 영화를 볼까 망설였다. 최근에 거의 극장에 가지를 않아서 후보군은 많다. 먼저 첫번째 후보군은 별로 실패하지 않을 것 같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봤고, 볼 것을 권하고 있는 목록들이다. 흥행을 이어나가고 있는 <마스터>, 꽤 흥미로운 스토리를 가진 <패신저스>, 관객들에게 꿈의 체험을 가져다준다는 <라라랜드>. 아니면 다른 후보군도 있다. 믿고 보는 감독들의 영화들, 그러니까 신카이 마코토의 <너의 이름은>이나 켄 로치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 같은 영화. 이 영화는 그 사이에 애매하게 끼어있는 것처럼 보였다. 두 가지 이유에서 이 영화를 골랐다. 하나는 감독의 전작 <거인>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이것이 현재의 시장에서 꽤나 모험적인 시도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한국 영화 시장에서 여성 원톱 혹은 투톱 영화는 드물다. 처음 이 영화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여성 두 명이 전면에 있는 그 포스터 때문이었다. 최근에 한국영화에서 이렇게 여성 두 명이 전면에 있던 포스터가 있던가? 이해영의 <경성학교>(공교롭게도 이 영화도 배경이 '학교'다) 혹은 이언희의 <미씽: 사라진 여자> 외에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최근의 한국영화들은 남성들을 여러명 출연시켜야 흥행할 수 있다고 믿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그것은 <마스터>가 다시 한번 증명하고 있다.) 물론 나는 여기에서 남성과 여성 사이에 다시 케케묵은 줄을 긋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리고 노파심에서 첨언하건대 이 영화가 무슨 페미니즘 영화라고 주장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약간 반농담으로 말하자면 사실 제목부터가 반페미니즘이라고 할 수도 있다. 감독은 인터뷰에서 구글에서 '여교사'를 검색해보고 놀랐다고 말했다.) 다만 이것이 모험적인 시도이며, 개인적으로 모험적인 시도를 좋아한다고, 그래서 골랐다고 강변하고 싶을 뿐이다.

 

 

김태용의 영화 <여교사>에는 크게 두 가지의 축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나는 계급이라는 축(흔히 말하는 금수저, 흙수저)이며, 다른 하나는 치정이라는 축이다. 여기에 다른 하나의 축도 더 작동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영화는 그것을 거의 무시하거나 별로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것은 교사와 학생의 관계라는 윤리의 축인데, 글쎄... 이 축마저 작동하면 너무 복잡하다고 생각해서인지, 아니면 그 축은 이제 더 이상 그렇게 우리 관객들에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서인지, 별로 심각하게 다루지 않는다. (재미있는 것은 여교사로 나온 김하늘이 오래전 드라마 <로망스>에서 같은 역할을 맡은 적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때 오로지 문제되던 것은 이 윤리의 축이었다. 하기는 <로망스>는 오 필승 코리아,가 울려퍼지던 해의 드라마였다.) 아무튼 영화 상에서 그 윤리는 거의 희미해졌다. 적어도 교사 효주(김하늘)에게나 다른 교사 혜영(유인영)에게나 죄책감 같은 것은 거의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 죄책감이 비어버린 공간을 채우는 것은 다른 것들인데 그것은 앞서 이야기한 계급이나 치정과 같은 것들이다.

 

이것은 일종의 삼각형으로 작동한다. 계급의 측면에서 보면 두 명의 흙수저가 있고, 한 명의 금수저가 있다. 치정의 측면에서 보면 두 명의 여교사가 있고, 한 명의 남학생이 있다. 계급의 측면에서는 당연히 흙수저가 금수저보다 약자이며, 치정의 측면에서는 잃을 것이 많은 (여)교사가 더 약자이다. (물론 이 경우에는 당연히 반대로 말할 수도 있다. 일종의 권력을 가진 교사가 학생보다는 더 강자라고 말하는 것이 일반적이겠지만, 일단 재하의 캐릭터가 그렇게 그려지지 않았으며,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이것이 여교사와 남학생 사이의 관계라는 점이다. 간단히 말해서 그 반대를 상상해보라. 남교사 두 명과 여학생 한 명이라고 가정해보면, 이 영화는 완전히 다른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효주는 이 약한 것 두 가지를 모두 가졌다. 그녀는 아주 간단히 말해서 계약직 여교사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를 상상하기는 별로 어렵지 않다. 이런 영화에서 불안한 삼각형의 고리는 필연적으로 해체되기 마련이며, 변화가 일어나는 쪽은 그 고리에서 늘 가장 약한 쪽이다. 다만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그 변화가 어느 방향인가 하는 점일 뿐이다.  

 

이 마지막에서 영화는 결국 가장 파국적인, 혹은 가장 비극적인 결말로 향해간다. 사실 이 마지막 부분의 구성은 꽤나 흥미로운데, 이야기의 흐름이 급박하기도 하거니와 설명이 되지 않는 빈 공백을 남겨놓기 때문이다. 마지막 직전에 효주는 결국 백기투항을 선택한 것처럼 보인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혜영에게 투항한 효주는 혜영과 함께 (아마도 혜영이 묵는 것처럼 보이는) 호텔에 간다. (여기에서는 두 가지 정도의 추가의문점이 생긴다. 하나는 왜 하필이면 호텔인가,라는 점이고 - 이 공간에 대해서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 다른 하나는 이 호텔 씬이 하필이면 이런 구도로 시작하는가,라는 점이다. 이 마지막 씬에서 효주는 거의 혜영의 하녀처럼 보인다. 물론 이 두 가지는 부차적인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효주의 투항과 이 호텔 사이에는 무엇인가가 생략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효주가 혜영에게 무릎을 꿇었던 운동장 장면과 효주가 주방에 있고, 샤워를 마친 것처럼 보이는 혜영이 효주에게 심부름을 시키며 누워서 자기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재잘거리는 이 호텔 장면 사이에는 감정의 진폭이 있으며, 그 사이에는 생략된 무엇인가가 들어있는 것처럼 보인다먼저 말해야하는 한 가지. 이 영화는 어떤 생략들을 주무기로 삼는 것처럼 보인다. 예를 들어 영화의 시작에서부터 그런 것은 잘 드러나는데, 영화는 캐릭터를 설명하려는 씬들을 생략한 후 곧바로 이야기로 들어간다. 어떤 교사가 임신하고 그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이사장의 딸 혜영이 새로운 교사로 온다. (사실 갑작스럽게 이렇게 툭 자르고 들어가는 것 또한 일반적인 한국영화들에서 잘 보여지지 않았던 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효주는 그 혜영에게 노골적으로 반감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도리어 혜영은 효주와 친해지려고 하는 것처럼 보이는데도 말이다. 여기에서 의문. 효주는 왜 혜영에게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내보이는 것일까. 다른 교사들의 말대로 혜영에게 먼저 나서서 친한 척을 해도 모자랄 판인데 말이다.

 

영화에서 생략이란 사실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생략에서 필연적으로 생겨나는 공백은 상상을 통해 이야기를 여러 결로 다채롭게 만들기는 하지만, 지나친 생략은 관객에게 어떤 풀리지 않는 의문을 만들어 지치게 만들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에서는 약간은 독이 되는 듯한 느낌이다. 효주의 캐릭터를 충분히 설명하지 않고 효주와 혜영의 관계를 먼저 드러내는 것은 흥미로운 시도이긴 하지만, 어떤 의문들을 만들고 그 의문들은 결국 영화의 마지막까지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것이 앞에서 말한 일종의 '공백'이라고 할 수 있는데, 나는 영화의 마지막들을 보면서 효주의 행동이 이해가 되면서도, 한 가지 '사소한 질문'을 하고 싶어졌다. 결정적인 트리거는 무엇이었을까. 재하(이원근)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서였을까, 아니면 자신이 사랑했던 재하(와의 관계)를 혜영이 너무 하찮게 여겨서였을까. 둘 중의 어느 하나라고 딱 잘라 말할 수는 없겠지만, 굳이 무게를 재어 본다면 그 중의 어떤 것이 더 무거울까.

 

약간 도식적으로 이야기한다면 처음이 더 무겁다고 한다면 그것은 치정의 무게이고, 나중이 더 무겁다고 한다면 그것은 계급의 무게이다. 그 둘 중의 어느 쪽일까. 나는 그 질문, 그 무게를 들여다보는 것이 이 영화에서는 이상하게 중요한 것처럼 보인다. (조금 더 이야기하자면) 우리와 마찬가지로 효주도 그 무게를 잘 몰랐던, 혹은 여전히 모르는 척하고 싶었던(그래서 자존심을 조금이라도 지키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녀는 그곳에 굳이 재하를 부르고 무게를 달아보려 한다. 사실 이미 답은 나와있고, 자신도 답을 아는 것처럼 보이는데도 말이다. 영화의 서늘한 점은 사실 그 마지막의 파국적인 결말에 있지 않다. 아마도 가장 서늘한 점은 흙수저들이 가졌던 거의 유일한 무기이자 가능성이자 희망인, 사랑마저도 이 영화에서는 부정된다는 사실이 아닐까. 도식적으로 말한 김에 조금 더 도식적으로 말하자면 계약직 여교사 효주와 가난한 남학생 재하의 사랑은 존재한 적이 없었고(아니 존재한 적이 없었다고 말하는 것이 다행이라고 해야할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마저도 혜영의 장난감이라고 말해야하니까.), 효주는 그 과정에서 오래된 남자친구와의 관계도 끝나버린다. (한 가지 더 첨언하자면 결국 이 오래된 남자친구도 재하와 크게 다르지 않아보인다는 사실이다.)

 

영화의 처음과 마지막 씬을 다시 기억해보자. 영화의 시작부, 임신한 정규직 여교사가 휴직에 들어가자, 교감은 계약직 여교사들에게 임신을 하면 재계약을 하지 않도록 계약서를 받는다. 그리고 마지막 홀로 남은 효주는 빈 교무실에서 혼자 남아 무엇인가를 먹는다. 이 처음과 마지막 장면이 상징하는 것이 있지만 나는 그보다는 다른 것을 말하고 싶다. 이미 그 이전에 그녀가 무엇인가를 홀로 먹는 것을 본 적이 있으니까. 남자친구가 짐을 챙겨서 나가고 텅 빈 집에서 그녀는 홀로 아침을 먹었다. 그녀는 쓸쓸하고 위태롭게 보였다. 서늘할 정도로.     

 

 

- 2017년 1월, CGV 부천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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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papierlune.tistory.com BlogIcon papierlune 2017.01.29 01: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성들이 포스터 전면에 등장했던 한국영화중엔 언급하신것 외에 김혜수 김고은의 <차이나타운>이 생각나요. 그것말고는 기억이 안나네요.어쩌면 정말 그런 영화가 거의 없었던것 같기도하고요. 맥거핀 님의 <여교사>리뷰를 읽으니 영화를 봤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더 커지네요. 치정과 계급의 축 사이에 영화가 일부러 놓쳤거나 소홀하게 처리해버린 다른면, 윤리적인 측면에 대해서 말이죠. 영화를 봤다면 난 어떻게 바라봤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니 영화를 보긴 봐야할것 같아요.

    너무도 오랫만에 리뷰를 읽게돼서 반가웠고 보고싶었던 영화여서 여러번 읽었습니다. 영화는 정말 냉정하고 서늘할 것 같은데 그래서 더 보고싶기도하고요.

    다른 계급에 속한 이들이 사랑이나 우정으로 엮이는 이야기들은 판타지에서나 가능한것 같고 (너무나 판타지스러웠던 시크릿가든, 하지만 그래서 좋아했어요) 서로에게 혹해서 사랑으로 맺어지나 끝내 파국을 향해가는 이야기들은 서늘하고 냉정하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을 하게되네요. (파스칼 레네의 레이스뜨는 여자 )

    • Favicon of https://noracism.tistory.com BlogIcon 맥거핀. 2017.02.01 01: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맞아요. 말씀하신 그 영화도 있었죠. 요즘의 한국영화를 보면 너무 자본중심적으로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여성들이 중심이 되는 메이저 영화가 잘 만들어지지 않는 이유는 단 한 가지죠. 돈이 안되기 때문입니다. 투자사가 모든 것보다 우선해서 영화의 가장 앞머리에 나오기 시작한 이후부터 한국영화들은 점점 이상해졌어요. 그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영화는 냉정해요. 감독의 전작 <거인>에서는 마지막에 약간 보듬는 듯한 시선도 있었는데, 이 영화에서는 냉정하게 끊어버려요. 그것이 어떤 '영화적으로' 봤을 때는 더 좋은 끝맺음이었을 거라고 생각은 하지만, 뭐랄까요..마음이 좋지가 않아요. 거기서 냉정한 거는 맞는 건데, 안 냉정했으면 좋겠다..싶은 이상한 마음이랄까요. 이런 마음이고 보면, (그럴리야 없겠지만) 제가 영화를 만든다면 아마도 영화가 상당히 별로 일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