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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이 안 와 쓰는 글

끄적거리기 | 2012. 4. 8. 20:57 | Posted by 맥거핀.

* 며칠 전에 알라딘에 쓴 글, 옮겨둠.

1.

주말에는 주로 밀려있는 <씨네21>과 <한겨레21>을 번갈아가며 보았다. <씨네21>을 한 권 다 읽고, 다시 <한겨레21>을 한 권 다 읽고, 다시 <씨네21>을 다 읽고, 다시 <한겨레21>을 다 읽고...주간지라는 것을 그렇게 읽어야할 의무란 없을 테지만, 이상하게 집어들면 처음부터 빼놓지 않고 모든 기사를 꼼꼼이 읽어야겠다는 이상한 의무감이 생겨난다. 어렸을 때 매일매일 신문을 장시간 읽었었는데, 그러고보면 예전에 신문을 읽을 때에도 나는 신문 1면부터 마지막 면까지 차례차례 모든 기사를 읽었던 것 같다. 중간에 있는 경제면들 기사는 정말 재미가 없었지만, 어쨌든 그렇게 모든 기사를 빠짐없이 읽고나면 이상한 만족감이 생겼고, 뭔가를 많이 알게된 듯한 착각에 휩싸이곤 했다. 뭐 글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물론 주간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빼놓지 않고 읽는다고 해도, 그 중 기억에 남는 꼭지는 몇 개 뿐이지만, 나는 나머지 것들도 어딘가 머리 뒤쪽 잘 안보이는 틈에 조금씩은 들어가게 된다고 믿는 편이다. 그렇게 단편적으로 기억된 것들이 차곡차곡 쌓여 나중에 뭔가를 이야기하거나, 글을 쓰게 될 때 힘을 발휘하게 된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럴 때에는 처음 빛나게 기억했던 것들은 모두 그 빛을 잃어버리게 되고, 차곡차곡 쌓인 것들에 자리를 내주게 된다.

그런데 요즘은 또 온라인 상으로 많이 글들을 읽게 되니 머리가 점점 다르게 재조직되는 것 같다. 도대체 온라인 상에 있는 글들은 어떻게 읽어야 되는지 알 수가 없다. 위에서부터 차례로 읽어야 되는 것인지, 아니면 중간에 다른 색으로 강조되어 있는 부분을 먼저 보아야 하는 것인지, 사진이 들어간 부분을 먼저 읽어야 하는지 아니면 그 밑에 댓글부터 먼저 읽어야 하는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그리고 굳이 그렇게 하려고 하지 않더라도, 반짝반짝하는 것들이 먼저 눈에 들어오기 때문에 그것들을 먼저 읽어버리게 되고, 글의 전체 맥락을 파악하는 것은 점점 요원해진다. 아니, 어쩌면 내가 아직도 온라인 상에서의 글들을 조직하는 법에 대해 익숙치 않아서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PC에 익숙해지기도 전에 스마트폰이 나오고, 그리고 그 안에서도 트위터가 있고, 카톡이 있고, 사진으로 말하기(카카오스토리) 같은 것이 있으니 점점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새로운 것에 익숙해질 즈음에 늘 또다른 새로운 것이 나와 그 익숙함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것이 좋은걸까, 나쁜걸까.

2.

지나간 <씨네21>을 읽는 것은 늘 힘들게 만든다. 놓쳐버린 좋은 영화들이 너무 많았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예를 들어 <워 호스>에 대한 평에서 이 영화는 반드시 필름으로 보아야만 그 진가를 알 수 있다고 하는데, 그 진가를 맛볼 기회를 (잠재적으로) 영원히 놓쳐버리고 말았다. 이제 집에서 DVD나 컴퓨터 파일로 본들, 도대체 그 '진가'라는 것은 알 수가 없게 되버린 것이다. 물론 사실 조금 이해가 안되기는 한다. 필름으로만 맛볼 수 있는 진가란 게 도대체 뭐지? (뭐 예를 들어 MP3로는 절대 체험할 수 없는 극상의 경험이라든가, 수입산 냉동육으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맛이라는 글들을 보는 것과 비슷한 느낌.) 필름으로 보면 디지털로는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가 보일 것이라는 이야기인데, 그 무엇인가가 도대체 무엇일까. 예를 들어 필름으로 보면 말갈기의 미세한 털들이 더 선명하게 보이게 되고, 그 와중에 그 털들의 오묘한 물결무늬들이 뭔가 깨달음을 주는걸까. 그건 아닐 것 같은데, 말갈기의 털 같은 건 디지털로 도리어 더 잘 보일텐데. 아무튼 가까이에는 디지털밖에 없고, MP3밖에 없고, 물론 수입산 냉동육밖에 없다. '그 맛'이나 그 '극상의 경험'은 어떤 몇 사람을 거친 후, 그저그런 언어들로 마모되어 도대체 처음의 형태를 알 수 없는 거친 입자로만 나에게 전달된다.

반면 지나간 <한겨레21>을 읽는 것은 재미있다. 지나간 기사들은 몇 주 후의 전망을 하고 있는 경우들이 상당히 많은데, 나는 이미 그 전망이 현실이 되어 도래한 세계에 살고 있다. 타임머신을 타고 몇 주 후에 와있는 느낌이다. 예를 들어 몇 주 전의 <한겨레 21>에서는 불법사찰이 김종익 씨나, 남경필 전의원의 경우 등 몇몇 한정된 범위에서가 아니라 보다 큰 범위로 행해졌을 가능성에 대해 미세한 희망을 걸고 있는데, 아니나다를까 불법사찰은 보다 대규모로 저질러져 왔음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선거 전망도 그런 측면에서는 재미있고, 선거가 끝난 이후에 이 전망의 기사들을 보는 것도 꽤나 재밌으리란 생각이 든다. 아무튼 간에 나는 아직 어느 정당을 지지할지 정하지 못했다. 지역구 의원의 경우 새누리당, 민주통합당, 정통민주당 3명의 후보 밖에 없으니 비교적 선택이 쉬운데, 정당의 경우 어느 정당에 한 표를 던질지 고민스럽다. (통합진보당과 진보신당, 녹색당 3당을 놓고 '열린 마음으로' 고민하고 있다.) 그나저나 이번에는 너무 비슷비슷한 이름의 정당들이 많아 계속 헷갈리고 있다. 순전히 이름만 놓고 비슷한 계열로 묶어보면 민주통합당-정통민주당이 있고, 새누리당-한나라당이 있고, 통합진보당-진보신당이 있고, 국민생각-국민의 힘-국민행복당이 있고, 친박연합-미래연합이 있다. (그리고 양쪽 모두가 펄쩍 뛸 일이지만, 기독자유민주당과 불교연합당도 같은 계열로 묶을 수 있을 것 같다.) 도대체 뭐가뭔지 알 수가 없고, 5호16국 시대를 보는 느낌에 참 애매하고 어지럽다. 이거 뭐 애정남에 질문이라도 올려야 하나.

3.

'출발! 비디오 여행'에서 곧 개봉하게 될 영화 <인류멸망보고서>에 대해 보았더니 매우 흥미가 생긴다. 7년 동안 고이 잠자고 있다가 2012년 지구멸망에 맞춰 지각 개봉하게 된, 마야인이나 꿀벌에게 고마워해야 할 영화. 세 개의 스토리가 있는 옴니버스 형식의 영화인데, 하나는 역시 어김없이 등장한 좀비 이야기이지만 나머지 두 개는 꽤 흥미롭다. 하나는 인터넷으로 정체모를 사이트에서 당구공을 주문했다가 전 지구를 멸망 위기에 빠뜨리는 소녀에 대한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절의 가이드 로봇이었다가 스스로 깨달음을 얻어 (무려!) 설법을 하게 되는 로봇에 대한 이야기란다. 나도 매일 설법을 하시는 공자봇을 가까이 모시고 있는데 어찌 흥미가 가지 않을 수 있으랴. (예를 들어 트위터의 공자봇이 어느날 공자님 말씀만을 그대로 줄줄이 읊다가 깨달음을 얻어 스스로 새로운 말씀들을 창조해내기 시작하는 이야기라면 어떨까.)

최근에 단기적으로 관람 1순위로 놓고 있는 영화는 야마시타 노부히로의 <마이 백 페이지>인데(츠마부키 사토시와 마츠야마 켄이치를 보는 것도 물론 당연히 중요하다. 그거 무시 못한다. 누가 소녀들의 미남 사랑을 욕하랴), 이 영화도 동등하게 올려놓아야 겠다. 이와 별개로 중기적으로 기대하고 있는 영화는 리들리 스콧의 에일리언 프리퀄 <프로메테우스>이고, 장기적으로 기대하고 있는 영화는 아오야마 신지의 <도쿄 공원>이다. 아오야마 신지의 모든 영화를 최대한 찾아서 봐야겠다..그래야겠다..고 한지가 3년째인데, 아직도 그러지 못하고 있다.

4.

주말에 에드워드 양의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을 보고, 내친 김에 <하나 그리고 둘>을 보려다가 이것마저 보게 되면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을 것 같아서, 애써 참았다.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을 볼 때마다 느끼는 건데 257분짜리 영화인 이 영화는 늘 25.7분짜리 영화로 느껴지고, 2570분 후유증이 간다. 

5.

<한겨레21>에서 본, 미 앨라모고도 폭격장에서 실시된 인류 역사상 첫 핵폭탄 실험을 참관한 토머스 프랜시스 패럴 미 육군 준장의 당시 상황 보고.

"(핵폭발의) 결과는 전례가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장엄하고, 아름다웠고, 엄청났으며, 두렵기도 했다. 인간이 만들어낸 것 중에 이 정도로 엄청난 힘을 가진 현상을 전에는 본 적이 없다. ...주변의 모든 봉우리와 크레바스와 산등성이에 불이 밝혀졌다. 직접 목도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묘사가 불가능할 정도로 투명하고 아름다운 빛깔이었다. 폭발 직후 엄청난 후폭풍이 실험 참관자들에게 불어닥쳤다. 거의 동시에 소름 끼칠 정도로 강력한 천둥 소리가 이어졌다. 마치 심판의 날을 경고하는 듯했다. 우리 나약한 인간들이 신이 독점해온 힘을 탐하는 불경을 저지른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오펜하이머의 탄식 "이제 나는 죽음, 곧 세계의 파괴자가 되고 말았다."

(주: 그걸 아는 사람이 그래?) 

이어지는 기사의 한 대목.

"그해 8월 6일 새벽 2시 45분 에뇰라 게이를 몰고 티니언섬을 출발한 티베츠 대령은 같은 날 아침 8시 15분께 일본 히로시마 상공에서 '소년'(리틀보이)이란 암호명으로 불린 폭탄을 떨어뜨렸다. 폭탄에는 패럴 준장(주:위의 그 '패럴'이다)이 직접 써 넣은 글귀가 있었단다. '히로히토에게, 사랑을 담아서. T. F. 패럴.'"

이 부분을 읽다가 뭔가 형언할 수 없는 기분이 된다.

6.

키보드가 문자들을 씹어먹어서 더 이상 길게 쓰지 못하겠다. 특히 'ㄴ'자를 자주 잡아먹는 걸로 봐서 이게 맛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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