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브한 생각

끄적거리기 | 2008.07.06 16:01 | Posted by 맥거핀.

어느 것이나 대개가 그렇지만, 논쟁이 오래 지속될수록 처음의 논쟁의 주제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그 논쟁의 부산물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되는 경우가 많다. 지금의 촛불집회 정국도 그렇다. 처음에 이것은 광우병 위험이 높은가, 그렇지 않은가, 그리고 미국과의 협상이 잘 진행된 것인가, 그렇지 않은가가 논쟁의 초점이었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대체로 다른 쪽으로 논점이 이탈하고 있는 것 같다. 처음의 광우병 논란은 이제는 ‘광우병 위험은 어느 정도 있으며, 미국과의 협상도 잘 된 것으로 보기는 힘들다’라는 쪽으로 결론이 내려졌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제는 재협상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 촛불집회의 성격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의 문제, 그리고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보수신문사들에 대한 광고 중단 운동을 비롯한 보수언론에 대한 대처 문제, 다음 아고라로 대표되는 네티즌들의 의견 표출과 그것의 여론화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의 문제, 촛불집회에서 발생한 경찰들의 과잉진압과 시민들의 대응에 대한 문제 등 여러 다양한 쪽으로 문제들이 발산되어 나가는 것 같다.

이렇게 많은 문제들이 표면 위로 떠오르게 되면서 나 같은 경우는 점점 혼란에 빠지는 것 같다.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가를 살피는 것이 다양한 측면에서 일어나면서 논지를 정리하기가 점점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 문제에 대해서 점점 이야기하는 것이 조심스러워지는 것을 느낀다.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해서 말하지만, 다들 어느 정도는 자신의 입장을 명확히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 같다. 특히 요즈음에는 대부분의 인터넷 커뮤니티(평소에는 그런 정치적인 문제와 전혀 관계가 없는 스포츠, 음악, 컴퓨터, 친목 동호회들 말이다)에서 이 문제들에 대해서는 두 가지 입장 중의 하나인 것 같다. 침묵하거나, 아니면 ‘반 MB와 조중동, 친 촛불집회’라는 암묵적인 기류 말이다.

 

전자의 경우라면 모를까, 후자의 경우라면 요즘에 내가 느끼는 것은 무언가 ‘지나치다’는 것이다. 양상이 복잡해질수록, 아이러니컬하게도 중간의 얘기들은 사라진다. 대부분 극단적인 이야기들이 힘을 얻고, 자극적인 사실일수록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복잡한 진실보다는 단순한 겉 표면만이 금방 부각되고, 널리 퍼져나간다. 예를 들어 요즘에 이슈가 되는 문제 중에 하나인 이른바 조중동 신문에 대한 광고 중단 운동 문제만 하더라도, 그것 자체가 심각한 양상도 아니고, 그것에 대해 우려를 가지고 있는 시각도 많다. 그러나 부각되는 것은 그것을 지지하지 않으면, 당신은 조중동 편이라는 지나친 단순화와 흑백논리이다.

나? 글쎄, 나의 경우라면 분명히 이는 지나친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조중동에 대한 광고 중단 운동을 반대하는 것과 조중동을 지지하는 것은 분명히 다른 문제다. 확실히 이것은 MBC <뉴스 후>에서 말했듯이 2005년 황우석 박사 사태 때 <PD수첩>에 대한 광고 중단 압력을 넣었던 문제를 연상시키는 부분이 있다. <PD수첩>이 조중동으로 바뀌었을 뿐 사태는 비슷하다. <PD수첩>의 내용이 옳으니 그에 대한 광고 중단은 잘못되었다고 말한다고 해서, 조중동의 내용이 잘못되었으니 그에 대한 광고 중단은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물론 나 역시 조중동은 언론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그에 더 나아가 쓰레기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특히 최근 약 한 달 동안의 조중동의 논조는 차마 눈 뜨고 보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분노를 넘어서 실소를 자아내게 하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에 대한 광고 중단 운동을 지지하기는 어렵다. 우리가 필요한 것은 조중동이 얼마나 쓰레기인지 그것을 꾸준히 알리고 그 신문을 더 이상 사람들이 선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선택의 문제를 내세우기 전에 그에 대한 선택의 기회마저 없애는 것은 아주 특수적인 몇몇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온당하지 못하다.

 

이와 비슷한 문제로 요즘 논쟁이 되고 있는 촛불집회에 대한 경찰의 대응에 대한 문제가 있다. 시민들의 폭력적인 행동이 (조금이라도) 있기 때문에 경찰이 그런 대응을 한 것인가, 아니면 경찰이 과잉진압을 했기 때문에 시민들의 어떤 폭력적인 행동이 있었던 것인가의 문제를 따지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닭이냐, 달걀이냐의 문제를 따지는 것과 비슷하다. (물론 여기에서 불법집회인가, 아닌가는 또 다른 문제가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누가 먼저 했는가가 아니라, 실제로 양쪽에서 어떻게 했는가가 중요하다.

이에 대해 저번 <100분 토론>에 나왔던 김민웅 교수가 지극히 온당한 얘기를 했다. 시민들에게서 폭력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버스를 끌어낸다거나, 경찰들에게 돌을 던진다거나 하는 행동 같은 것들. 그리고 이 모든 행동들은 당연히 배격되어야 할 것이다), 당연히 법의 제재를 받아야 옳다. 그와 마찬가지로 경찰의 비폭력적인 집회에 대한 폭력적인 대응 역시 당연히 법의 제재가 있어야 한다. 아무 폭력적인 행위를 하지 않은 여성에 대해 방패로 내려찍고, 시민들에게 돌과 이상한 물건을 던지고, 소화기를 뿌려대고, 심지어는 쇠파이프를 휘두르는 행위는 어떤 진압수칙에도 있지 않고, 당연히 배격되어야 하며 그에 마땅한 제재가 있어야 한다. (혹 진압수칙에 있다고 해도 아무 보호 장구도 갖추지 않은 시위대에 적용되어서는 안 되는 것은 자명하다) 시민의 폭력이 있었다고 해서 경찰의 과잉진압이 정당화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경찰의 폭력이 있었다고 해서 시민의 폭력 역시 정당화될 수는 없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이것이 너무 나이브(naive)한, 당연한 소리가 아닌가라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세상을 바꾸는 것은 극단적이고, 공격적인 것이 아니다. 나이브하고 당연한 것이 세상을 바꾼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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