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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을 대하는 방법

끄적거리기 | 2009. 1. 12. 20:44 | Posted by 맥거핀.

막장의 전성시대다. <아내의 유혹>, <너는 내 운명>과 같은 막장드라마들, 요즘 잘 나가는 MC 김구라, 그리고 MB. 이 셋은 왠지 공통점이 있다. 그 지나온 날들에는 구린내가 나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용인해 주었다는 것. 그래서 그 결과 요즘에 엄청나게 잘 나간다는 것. 그래서 그들을 아마도 묶어서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막장의 전성시대.

<씨네 21>에서 이러쿵저러쿵 여러 말을 했지만 사람들이 막장드라마를 보는 이유는 결국 한 가지다. 왜? 재밌으니까. 얼키고설킨 인물들의 관계와 그 관계의 중심부를 헤집는 결정적인 대사, 그리고 등장인물들의 발연기와 결정적인 순간에 딱 잘라먹는 편집의 솜씨까지. (내일 이 시간에 계속...) 그리고 <씨네 21>에서 밝힌대로 시대극, 액션활극, 정치드라마, 기업드라마, 멜로, 로맨틱코미디를 넘나드는 장르의 컨버전스함이 더해져 놓칠 수 없는 '재미'가 된다. 여기에 도덕 따위는 필요가 없다. 어설픈 계몽은 엿이나 먹으라지. 너무 착하거나 도덕적인 주인공들은 재미가 없단 말이야. 뭐 이런 태도.

왠지 시청자가 이러한 막장드라마를 대하는 태도는 김구라나 MB에 대하는 자세를 연상시킨다. 요즘 잘나가는 MC 김구라가 예전에 누구에게 무슨 욕을 했던 간에, 요즘의 시청자들은 그가 웃기기 때문에, 재미를 주기 때문에 본다. 욕 좀 하면 어때. 그래도 웃기기는 하잖아. 여기에 방송사는 시청자의 마음 한 구석에 남을 일말의 죄책감조차 덜어주기 위해 예전 그가 가장 욕했던 사람 중의 하나인 문희준과 콤비를 만들어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한다. 저것 보라구. 예전에 저렇게 욕을 먹었던 문희준도 용서하고 같이 저렇게 신나게 다니는데, 뭐가 문제가 된다는 거야. 내가 괜히 그런 마음을 가질 필요는 없다구.

이건 MB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아..이런 걸 쓰려고 하니, 마음 한 구석에 더럭 겁이 난다. 아마도 나도 잡혀가면 '30대 무직 백수'라고, '사회에 불만을 가진..' 이런 수식어를 달고 나오겠지?) 지난 대선 때, 온갖 비리와 의혹의 중심에 있었던 MB를 사람들은 기꺼이 대통령으로 만들어주었다. 음..BBK니 친인척들의 비리니, 소망교회니 어쩌니 해도 말이야...뭐 그러면 어때. 경제를 살린다잖아. 저 백수 청년도 국밥집할머니도 지지한다는데, 그깟 돈 얼마 해먹은 게 요새 세상에 무슨 큰 오점이라도 돼나. 경제를 살린다는데. 얼쑤.

그리고 딱 1년가까이 지난 지금. 우리는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고 있다. See the Uns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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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씨네 21>, 즉 no.687은 막장드라마들을 특집기사로 다루고 있다. 기사에 이런 대목이 있다. '현재 막장드라마를 막장으로 규정하는 대표적인 이유는 소재의 자극성과 억지스러운 이야기이다. 당연히 이 두 가지는 시청률과 결부된다.' 이 말에 전체적으로는 동의하지만, 일부분에는 동의하기가 어렵다. 막장드라마가 막장인 이유를 소재의 자극성과 비현실적인 스토리에서 찾을 수도 있지만, 사실 이것은 일부분에 불과하다. 보다 중요한 것은 특정의 소재를 다뤘다는 것이라기 보다는 '그 소재를 어떻게 다루는가'에 있다. 이른바 이 드라마들은 현실을 어떻게 그려내고 있는가의 문제.

불륜, 치정, 살인, 독설, 계약결혼, 밀고, 배신, 복수..이 모두는 한편으로 '자극적인 소재'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이 자극적인 소재들은 이들 드라마에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이 소재들은 여타의 드라마에, 그리고 많은 영화들의 소재이기도 하다. 막장드라마들이 자극적인 소재를 써서 그렇다고만 한다면, 훨씬 더 강도높은 불륜과 살인과 배신과 복수의 이야기들이 나오는 다른 영화들은 그보다도 더욱 지독한 '막장'인건가.

문제는 이들 드라마들이 이런 소재들을 활용하는 방식, 즉 이 모든 사건들을 어떻게 그려내고 있는가에 있다. 이들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별다른 고민과 사유(思惟) 없이 불륜하고 치정하고 살인하고 밀고하고 배신한다. 이는 마치 몇 개의 분기점을 가진 게임과 닮았다. 불륜을 저지를 것인가, 말 것인가라는 분기점에서 시청자들은 당연히 'yes' 버튼을 누르고, 이로써 게임은 필연적으로 다음 스테이지 '발각'과 '분노', '복수'로 넘어가게 되며, 게임의 캐릭터들은 기계적으로 반복된 패턴을 보여주게 된다. 이로써 문제는 '왜' 터뜨리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더 화끈하게' 터뜨리는가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에는 최고조로 높아진 갈등의 벽 앞에서 최종의 분기점의 질문이 나오는 것이다. '용서하시겠습니까?' 그리고 시청자들은 당연히 'yes'를 클릭하고 게임을 끝낸다. 그래서 바로 전회까지도 사시미칼을 쥐어주면 서로 회라도 뜰듯한 두 주인공이 감동의 눈물을 뚝뚝 흘리는 마지막회를 보게 되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요즘의 '리얼'을 표방하는 많은 예능프로그램들에서 이와 비슷한 변주를 보기도 한다. 그 프로그램들에는 '리얼'을 표방하며 등장인물들의 여러 복잡한 관계도가 그려진다. 그곳에서는 10분 단위로 등장인물들의 감정이 급변한다. 10분전만 해도 어색해하던 어떤 인물들은 어떤 사건을 계기로 간이라도 빼줄 듯 친해지기도 하고, 금방 다시 사이가 소원해지도 한다. 남녀 관계도 마찬가지. 이번 주 토요일에 이 두 청춘스타는 서로에게 호감을 보이며 급속하게 친해지는 듯 하지만, 바로 다음 주 토요일에 '파경'을 맞기도 한다. 그것도 아주 패턴화된 호감과 패턴화된 파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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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 21>의 이번 주 기사는 한 마디로 실망스러웠다. 글쎄.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시청자들이 왜 이런 드라마를 보는가'인듯 싶지만, 그 기사의 내용들은 '재미있기 때문에 본다' 그 한마디를 길게 늘인 것에 불과했다. 드라마 제작환경의 측면에서 이러한 드라마의 출현을 분석하는 기사는 나쁘지 않았지만, 거기에 이어지는 명장면 베스트 7, 클리셰 인물들과 대사들 같은 기사는 뭘 말하고 싶은 것인지 잘 모르겠다. 이런 명장면들과 명확한 캐릭터들이 있으니, 이 드라마들을 꼭 보라는 것인가, 아니면 보지 말라는 것인가, 그도 아니라면 욕하면서 보라는 것인가. 이번 주 기사의 컨셉은 아마도 '빈정대기'인가.

시청자들이 이러한 드라마를 보는 이유를 별로 알고 싶지는 않다. 그보다는 이러한 드라마가 왜 나오고 있는 것인지 드라마 제작환경의 측면에서뿐만이 아니라, 다른 여러가지 측면에서 분석해주는 기사가 더 좋을 뻔 했다. 이러한 드라마를 쓰는 작가들의 인터뷰를 곁들이거나, 사회학자나 비평가 혹은 평론가들의 시각을 덧붙여서 말이다. 그것으로 부족하다면 앞으로 필요로 하는 드라마는 어떤 것인지, <씨네 21>이 생각하는 좋은 드라마들은 무엇인지 이야기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을 것이고. 적어도 빈정대는 것보다는 말이다.

막장들은 그들의 막장 행태에 빈정댈수록 신나서 더 막장질을 한다. 욕먹는 것이 인기있는 것인줄 알고 말이다. (그래서 막장이다.) 그런 막장들에게 막장질을 못하게 하려면 시작해야 한다. 그들의 막장질을 용인하지 않는 것. 그것이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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