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빛 속으로, 황규덕

Ending Credit | 2008.05.15 01:17 | Posted by 맥거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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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노라마 기억(panoramic memory)’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이 죽음의 위기에 빠졌을 때, 자신의 지나온 인생을 마치 파노라마를 보듯이 눈앞에서 보게 되는 것, 또는 그러한 현상. 영화 <아메리칸 뷰티>에서 레스터(케빈 스페이시)는 죽어가면서 아주 평화로운 상태에서 짧은 시간동안 자신의 지나온 인생을 하나하나 천천히 떠올리게 된다. 굳이 영화를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실수로 사고를 당하게 된 사람들, 높은 곳에서 추락하게 된 사람들이 겪은 이러한 파노라마 기억을 다룬 연구물들은 꽤 많다고 한다. 이러한 연구물들이 가지는 가장 큰 궁금증은 “왜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는가?”인데, 여기에는 의견이 꽤나 분분하다. 그러나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학설은 사람이 죽음의 위기에 빠져 정신적 쇼크에 빠지는 것을 방지하고자, 일종의 환각을 보여주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즉, 극단적인 통증과 스트레스에 몸이 반응하여 일종의 모르핀(엔돌핀)을 뇌가 급하게 전달하는 것이다. 즉 이것은 일종의 우리 몸이 살기 위한 하나의 반응이라는 것.

 

이 영화 <별빛속으로>는 어떻게 보면 위와 비슷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죽음의 위기에 빠진 상태에서 보는 환각들이 신비하게도 현실과 연결된다. 또한 영화는 노골적으로 장자의 호접지몽(胡蝶之夢)과 이 이야기를 연결시킨다. 어느 것이 꿈이고, 어느 것이 현실인가, 나비가 나인가, 내가 나비인가, 나는 살아있는가, 나는 죽어있는가. 영화의 스토리는 묘하게 중첩되며, 모호한 분위기는 관객들이 어느 것이 현실이고, 어느 것이 꿈인지 알 수 없게 해준다. 액자 안에 또 액자가 있고, 그 안에 또 액자가 있어, 그 액자 안의 사람이 액자 밖의 관객을 그리고 있는 꼴이다. 스토리를 말하는 것은 힘들 뿐이며, 크게 의미도 없다. 다만 영화는 묻고 있다. “시간이 정말 있을까, 파괴하는 시간이. 쉬고 있는 산 위에서 언제 시간이 성을 부수어 버릴까?”

시간과 기억의 문제는 영화가 즐겨 다루는 소재이다. 대부분의 영화에서 현재의 시간에서 과거의 기억을 다루는데, 때로는 이 기억을 뒤집어서 늘어뜨리기도 하고(<메멘토>), 다른 기억을 이식하기도 하고(<토탈리콜>), 심지어는 현재의 시간에서 미래의 기억을 다루기도 한다(<마이너리티 리포트>). 그러나 이 영화에서 다루는 것은 시간의 장벽을 넘어선 존재의 초월성, 존재의 영속성이다. 무엇이 우리를 이 험난한 세상에서, 혹은 화염병과 돌과 최루탄이 난무했던 시대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게 해주는가.

여기에 몇 개의 힌트가 있다. 영화의 초반부 나이든 독문과 교수 수영(정진영)이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서려는 순간, 학생들은 마치 무엇인가에 홀린 듯 수영을 바라보지 않고 앞만 바라보고 있다. 이 수영과 학생들의 단절에서 읽혀지는 묘한 공포감. 이 묘한 공포감이 벗겨지는 순간은 수영과 학생들이 둘러앉아 이야기를 하고,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이다. 그리고 영화는 젊은 수영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이 이야기의 시작에서 마찬가지로, 늙은 교수는 차분히 원서를 강독하고 있고, 학생들은 모두 말없이 그 내용을 받아 적는다. 그리고 이어지는 한 여학생의 이해할 수 없는 울음. 이것이 깨어지는 순간은 그 여학생이 수영과 강의실에서 나와 이야기를 시작하는 순간이다. 모두 같은 곳만 바라보는 순간에서 벗어난 서로의 마주보기. 이야기의 시작임과 동시에 누군가와의 연결.

 

다시 ‘파노라마 기억’으로 이야기를 돌려보면 이 연구는 우리에게 “왜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는가?”에 대한 답을 명확하게 주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한 가지 명확한 사실을 환기시킨다. 즉 이 모든 연구는 그 사람이 결국 살았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는 것. 그 사람은 죽을 위기에 빠졌지만, 결국에는 극적으로 구조되어 그들의 그러한 경험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해 줄 수 있었다는 것. 그렇게 본다면, 결국은 많은 사람들이 죽기 직전 아주 평화로운 상태에서 자신의 지나온 인생을 살펴보는 것은 다른 말로 이야기하면 우리가 살기 위해 아주 힘든 투쟁을 하는 것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우리의 의식이 우리의 지나온 인생을 살펴보며,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던 시간들을 떠올리며 평화로운 감정을 느끼는 것은 사실 우리의 의식을 잃지 않고 깨어있게 해주는 하나의 작용이라는 것. 우리 자신을 주인공으로 한 한편의 연극이 상영을 멈춘 순간, 우리의 인생도 끝날 것이라는 점. 그리고 그런 투쟁, 누군가의 기억을 가지고 싸우는 평화로운 투쟁에서 승리하고, 꿈에서 깨어 꽃밭에서 나오는 사람만이 삶을 지속할 수 있는 것이며, 다시 다른 기억을 만들어나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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