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하하, 홍상수

Ending Credit | 2010.05.12 01:53 | Posted by 맥거핀.


간만에 웃었다. 하하하. 홍상수 감독의 새 영화 <하하하>는 홍상수의 인장들이 물씬 드러나는 영화다. 예를 들어 영화에서 사용한 몇몇 장치들. 등장인물들을 비슷한 상황에서 비슷하나, 다르게 행동하게 함으로써, 거기에서 일종의 '반복과 차이'를 드러나게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밤과 낮>에서 사용한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등장인물이 과거를 회상하여 그것에 논평을 가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도 그렇다. 또 꿈은 어떠한가. 이 영화에서도 예전의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조금은 독특한 꿈 씬이 등장한다. 그리고 또 어떤 장면들은 예전 영화에서처럼 꿈인지 아닌지 약간 모호한 면도 있다. 또한 이 영화에 등장하는 배우들 역시 홍상수 영화에서 익히 보아왔던, 소위 '홍상수 사단'임을 하나의 인장 요소로서 빼놓아서는 안될 것이다. 물론 가장 중요한 점은 이것일 것이다. 즉 구조든 내용이든 간에 아무튼 이 영화 <하하하>는 홍상수 영화의 빼놓을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요소, 즉 '관객들의 웃음'을 여전히 유발한다는 점. 그런데 그 웃음이 예전과는 약간 다른 점도 있다. 예전의 웃음들이 관객들을 계면쩍게 만들어서 웃음을 유발하는 경우가 많았다면, 이 영화의 웃음은 조금 더 귀여운 웃음이랄까, 상쾌한 웃음이랄까.


그리고 <하하하>는 여름의 이야기이다. 夏夏夏. 여름여름여름. 그 세 번의 여름이야기. 첫 번째 여름은 문경(김상경)의 회상. 어머니를 만나러 간 통영에서 관광 해설가인 성옥(문소리)을 만나, 그녀에게 반해 쫓아다니는 이야기. 그리고 두 번째 여름은 중식(유준상)의 회상. 통영에서 그의 애인 연주(예지원)와 밀회를 즐기며, 후배 정호(김강우)와도 어울리는 이야기.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여름은 우리가 그 두 사람의 이야기로서 추론하여 만들어내는 이야기. 우리는 이 둘의 회상을 통해, 이들 각자가 알지 못하는 몇몇 중요한 사실을 안다. 예를 들어 가장 대표적인 사실. 문경은 성옥과 그녀의 애인에 대해 알지만, 그녀의 애인이 바로 중식이 말하는 후배 정호라는 사실은 모른다. 즉 우리는 두 사람이 하는 몇몇 얘기들을 통해서, 두 사람보다 이 이야기 전체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된다. 즉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는 소설에서 흔히 말하는 '전지적 관찰자'의 시점에서, 이 두 사람의 얘기를 본다('듣는다'가 아니라 '본다') 어쩌면 이 유머의 상당 부분은 여기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과연 우리는 이들보다 많이 알고 있을까.

아니, 나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뭐 이런 류의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왠지 이 영화의 메시지는 전작의 내용과 연결되는 것 같다. 이 영화의 메시지는 여러 가지를 말할 수 있겠지만, 아마도 그 중의 중요한 한 가지는 '좋은 것만 보라'라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씨네 21>에서 정한석이 말한 것처럼 좋은 것, 나쁜 것의 문제는 윤리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정한석은 말한다. '들뢰즈는 <스피노자의 철학>에서 도덕은 선악의 가치판단에 관계 되지만, 윤리는 좋음과 나쁨의 질적 차이에 관계된다고 설명해주었다. 좋음과 나쁨! 좋은 것만 보아라! 그러면서 들뢰즈는 "슬픈 정념은 언제나 무능력에 속한다"고 하였으며 윤리학이 해야 하는 삼중의 실천 중 첫 번째로 "(자연 속에서의 우리의 처지로 인해 우리는 나쁜 만남들과 슬픔들을 가질 수밖에 없는데) 어떻게 즐거운 정념의 극한에 도달해서, 그로부터 자유롭고 능동적인 감정으로 이행할 것인가?"하고 물었다.' 그러면서 이러한 것을 설명해주는 장면으로 문경이 성웅 이순신과 만나는 장면을 들었다. 그 장면이 이 철학적 내용에 대한 홍상수 식의 설명이라고 말이다. 

그저 몇 가지 잡설을 여기에 덧붙여 보자면, 이 내용은 앞에서도 말했지만, 전작의 제목을 연상시킨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라고 한다면 그것의 의미는 전체를 온전하게 놓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는 부분의 문제이며, 동시에 선악, 즉 도덕의 문제 또는 윤리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전체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때로 누군가를 비난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충고를 건네기도 한다. 그것은 선악의 문제일 수 있지만, 또한 윤리의 문제일 수도 있다. 우리는 (누구나에게 동일하다고 착각하고 있는) 우리 자신만의 윤리의 관점으로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말하는 것이다. 그것에 대한 대답이 어쩌면 '좋은 것만 보라'라는 것은 아닐까. 즉 우리에게 누군가가 '이 전체 모든 것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렇게 말하지 마'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너의 섣부른 도덕적 혹은 윤리적 잣대를 나에게 들이대지 마'와 거의 비슷한 의미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더 이상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런 말 하지 말고, (도덕이 아닌) 너 자신만의 윤리적 관점을 만들어갈 것, 그리고 다른 사람 역시도 그 사람의 윤리적 관점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여, 그것을 통해서 다른 사람을 들여다 볼 것. 그것을 실천하는 가장 간단하고도 좋은 방법이 '좋은 것만 보라'라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이 방법은 간단하기는 하나 매우 어려운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한편으로 잘 알지도 못하면서..라는 것에 대한 하나의 대답은 '내가 전체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좋은 것만 보려 한다'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홍상수의 관점에서 볼 때, '전체를 그대로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순신에게 문경은 묻는다. '아 그러면 있는 그대로를 보게 되는 거...뭐 그런 겁니까?' 이순신은 답한다. '아니지. 있는 그대로를 보는 게 아니지. 그런 게 어딨냐?')

사실, 내가 이 영화에서 가장 괴이쩍게 생각했던 부분은 이 영화의 구조였다. 즉 두 사람의 여행을 교차하여 보여주는 형식이 아니라, 두 사람이 여행을 다녀온 후, 술자리에서 만나 지나간 이야기를 주고받는 구조. 그리고 그 형식도 좀 수상쩍은 것이, 굳이 현재의 술자리를 스틸사진으로 처리하고 있는 것이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물론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이야기를 회상하는 형식은 홍상수의 영화에서는 그렇게 낯선 것만은 아니다. 그리고 일기를 도입하거나, 씬의 번호를 매겨서 장면을 나누는 형식 같은 것들과 마찬가지로 이 스틸사진들도 그렇게 생각하면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의 주제를 '좋은 것만 보라'라고 생각했을 때는 이것이 이해가 된다. 중요한 것은 그 형식이 아니라 내용이었던 것. 즉, 회상하는 형식으로 이야기를 보여주는 것은 한편으로, 실제 그들이 그곳에서 행한 행동과 그 후의 논평과의 불일치 - 예를 들어, 문경이 정호에게 맞았을 때도 문경은 그것을 '의연하게 대처해서 좋았다'고 회상한다. 사실은 어쩔 도리가 없어 맞은 것에 불과했으면서도 말이다 - 에서 생겨나는 솔직함이자, 예의 그 홍상수 식의 유머를 유발하기 위한 장치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그 형식보다는 내용이라는 점이다. 

이 술자리의 대화의 주제는 몇 번 반복되어 제시되듯이, '여름에 좋았던 일'을 서로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그 논평들은 '응, 좋았겠구나' '어, 좋았어'로 마무리되고 있다. 즉 이 영화의 주제인 '좋은 것만 보라'라는 것은 성웅 이순신의 말로써 직접 전달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주인공들의 아주 직접적인 행동을 통해서 실천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스틸사진들. 사진들이란 결국 무엇인가. 사진들은 결국 '좋았던 것'을 담아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여행을 다녀온 후, 동영상으로 기록을 남기는 것과 사진으로 남기는 것, 그 차이. 동영상과 달리 사진은 철저하게 좋았던 내용만이 담겨있다. 물론 동영상 역시 일정 부분 그런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사진은 거의 철저하게 우리가 원하는 것, 즉 우리에게 좋았던 것만 담기게 된다. 이 두 사람이 술잔을 나누면서 보여지는 스틸 컷들은 어떠한가. 대부분 이 두 사람이 잔을 부딪히고, 웃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가 이 사진만을 놓고 이 술자리를 판단한다면 어떨까. 우리는 이 사진들을 놓고서는 이 술자리가 '화기애애하고 좋았다'라고 밖에 추측할 수밖에 없다. 즉 우리는 이 스틸사진들을 통해서 이 술자리의 '좋은 것'만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의미에서 보면, 이 영화의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액자인 이 스틸사진이라는 형식은 그 자체로 이 영화의 전체 주제를 상징한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스틸 사진들과 회상 장면의 동영상들과의 대비, 그 놀라운 형식과 주제와의 결합.

즉 어떤 의미에서 본다면 이를 주인공들의 성장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즉 통영에서와 달리, 서울 근교 어디에선가 벌어지는 이 술자리는 주인공들의 '좋은 것만 보라'의 실천적 체험 현장이다. 좋은 것만 말하고, 좋은 것(사진)만 남기는 자리. 그리고 심지어는 이 술자리는 깔끔하게 끝나기조차 한다. '이제 마지막 잔하고 일어설까' 이런 류의 대사가 맨 마지막에 나오다니, 이게 홍상수 영화에서 가능했던가. 아무튼 망가져서야 끝장을 보는 것이 홍상수 영화의 술자리가 아니던가. 아니, 그것은 어쩌면 통영에서부터 미리 예고되어 있던 것인지도 모른다. 중식은 비록 불륜이기는 하나, 연주에게 청혼을 하고, 문경도 성옥에게 같이 캐나다로 가자며, 청혼 비스무리한 것을 한다. 청혼을 하는 홍상수의 주인공들이 다른 영화에서도 있었던가. 그들은 대체로 어떻게든 빨리 넘어뜨리고 보자는 쪽이었지, 청혼을 하자는 쪽은 아니었다. 청혼을 하는 홍상수의 남자들, 그 성장의 표식들은 상당히 놀랍기까지 하다. 이제 마지막 문제가 남았다. 이 표식들을 홍상수 영화에서 긍정의 의미로 읽어야 하나, 부정의 의미로 읽어야 하나. 내 생각에는 아무래도 그 전자 쪽에 좀 더 가까운 것 같다. 그래서 아무튼 긍정의 의미에서 하하하.

p.s. 이 영화의 문소리의 연기는 압권이다!

- 2010년 5월, 대한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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