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회에서 '사과'란 가능한가

The Book | 2009.12.06 00:56 | Posted by 맥거핀.
사과는 잘해요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이기호 (현대문학,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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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도서는 Daum책과 TISTORY가 제공하는 서평단 리뷰 포스트입니다."


"당신은 오늘 하루 무슨 죄를 저질렀습니까?" 아마도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답할 것이다. "죄? 난 아무 죄도 저지르지 않았는데요..." 그러면 시봉과 나(진만)는 나타나 차례차례 돌아가면서 이렇게 얘기할 것이다. "지하철에서 옆의 사람을 살짝 밀고 빨리 올라탄 것도 죄가 될 수 있고요." "점심 시간에 동료와 밥을 먹으며, 남아있던 마지막 계란말이를 집어 먹은 것도 죄가 될 수 있지요." "엘리베이터에서 앞의 남자에게 살짝 한숨을 내쉰 것도 죄가 될 수 있고요." "회사 상사가 가끔 안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도 죄가 될 수 있지요." "당신이 생각하는 모든 것이 죄가 될 수 있어요." 그렇게 따지면, 당신은 이렇게 물을지도 모른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내가 아까 바퀴벌레를 잡아 죽인 것도 죄가 되겠군..흥." 그러면, 아마도 시봉과 진만은 그것은 죄가 아니라고 답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 죄는 사과를 할 수 없기(사과를 해야할 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바퀴벌레에게 사과할수야 없는 노릇 아닌가. 즉, 시봉과 진만에게 핵심적인 문제는 그것이 사과할 수 있는 문제인가, 아닌가에 있다.

왜 사과를 해야 하는가. 그렇게 해야만 그들은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시봉과 나(진만)는 어느 '시설'에 있었다. 그 시설의 남자보육사들은 그들에게 그들이 지은 죄를 고백하라고 늘 강요하곤 했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 고백도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죄를 저지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날, 그들은 죄를 고백하고 사과를 하면, 덜 맞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그 이후로 늘 죄를 짓고, 사과를 했고, 맞았다. 그들은 죄를 짓지 않은 날에도 그렇게 했는데, 그런 날에는 꺼림칙해서, 맞은 이후에 꼭 해당하는 죄를 짓고는 했다. 그리고 급기야는 그들은 원생들의 반장이 되어 그들의 모든 죄를 대신 고백하고, 대신 사과하고, 대신 맞아주었다. 시설이 문을 닫게 되고, 그곳에서 나온 그들은 살아가기 위해 그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행한다. 그것은 '사과'를 하는 것, 즉 남들이 지은 죄를 대신 사과해주고, 그 대가로 돈을 받는 것이다. 즉, 그들은 급기야는 이른바 '사과 전문가'가 된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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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이 소설의 중반까지의 이야기이다. 중반까지의 이야기를 적어 놓고, 읽어보니, 왠지 이 이야기는 말이 되는 것도 같고, 되지 않는 것도 같다. 그렇게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이 소설의 시점에서 그 이유를 찾아야 되는 것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은 계속 1인칭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는데, 사건들을 서술해주는 나, 진만은 어린아이, 혹은 거의 안이 텅빈 기계와 같은 상태에 계속 머물러 있는 존재이다. 그것은 그의 절친, 시봉도 마찬가지인데, 이들이 이러한 상태에 머물러 있는 이유는, 사실 모호하다. 일반적으로는 이들의 이러한 지체에는 다른 어떤 이유가 제시되기 마련이지만, 이 이야기에서는 오히려 이 '시설'이 이들을 이렇게 만든 것으로 여겨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시설이 이들을 통제하는 방식은 크게 두가지이다. 하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들이 '몸에 좋은 것'으로 알고 있고, 급기야는 그것에 의지하게 만드는 알약. 그리고 다른 하나는 남자 보육사들에 의해 행해지는 죄의 추궁과 사과, 그리고 그에 이어지는 린치. 아무튼, 이런 이유로 거의 어린아이와 같은 상태에 머물러 있는 주인공이 전하는 이야기는, 아무 감정이 실리지 않은 겉의 의미와는 달리, 계속 그 이면에는 다른 의미들을 담고 있다. 여기에서 이 소설의 모호하고도 독특한 분위기와 짧은 문장들로 이어지는(어린아이, 혹은 기계는 긴 문장으로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리듬이 생겨난다.


원장 선생님은 우리에게 종종 연극을 하자고 말했다. 그것이 우리의 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말도 했다. 우리는 항상 엄마 역할이었고, 원장선생님은 매 맞는 아들 역할이었다. 대사 또한 매번 같았는데, 우리는 지휘봉으로 원장선생님의 엉덩이를 때리면서, "그렇게밖에 못 하겠어! 그렇게밖에 못하겠냐고"라고 소리쳐야 했다. 그러면 원장 선생님은 "엄마, 엄마, 더요, 더 때려주세요!"라고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엉덩이를 우리 얼굴을 향해 높이 들어 올린 채, 엉엉 소리 내어 울기도 했다. 그리고 연극이 모두 다 끝나고 난 후엔, 우리에게 초코 우유나 요구르트를 건네 주었다. (p.51)


어떻게 보면, 이 이야기는 일종의 우화(寓話)로 볼 수 있다. 본시 우화에서 즐겨 써먹는 수법 중의 하나는 겉으로는, 어리석은 주인공이 등장하여 벌이는 이야기를 코믹하게 전달하는 듯 하지만, 사실 그 속에는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교훈을 담아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몇몇 설정들은 상징성을 띠게 마련이다. 예를 들어서 두 명의 남자 복지사의 외양을 묘사하며, 키가 작은 쪽은 늘 의사들이 입는 흰 가운을 걸치고 다녔고, 키가 큰 쪽은 청바지에 군화를 신고 다녔다고 묘사하는 장면들 같은 부분 말이다(게다가 키가 큰 쪽은 머리숱마저 적다). 이는 한편으로 보았을 때, 흰 가운이 근대적인 문명, 지식을 의미하는 것으로, 군화가 군대, 질서, 체제를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즉, 이러한 근대적인 문명과 체제적 질서는 결국 어린아이와 같은 이들에게 무지막지한 폭력을 휘두르며, 없는 죄를 고백하라고 강요하는 존재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이 남자복지사들보다도 더욱 위험한 존재는 원장이다. 진만이 구치소에 있는 원장 선생님을 찾아간 이 장면을 잠깐 보자.


나는 재빨리 물어보았다. 제복을 입은 남자가 계속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왜요?"
"죄는 모른 척해야 잊혀지는 법이거든."
원장선생님은 말을 하곤 씨익, 짧게 웃었다. 그러곤 반대쪽 문을 열고 나갔다. 나는 그의 등에 대고 꾸벅, 다시 한  번 고개 숙여 인사했다. (p.215)



죄는 모른 척해야 잊혀지는 법이다...요즘에 이 말처럼 맞는 말도 없지 않을까. 자신의 죄를 모른 척하고,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그 죄는 더 이상 아무 문제도 되지 않으며,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 간다. 누구의 경우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와 달리 자신의 죄임을 고백하고 나선 사람은, 그 죄로 인해 엄청난 고통을 받거나, 사회에서 추방되기도 한다. 히틀러가 말했던가. '대중은 큰 거짓말일수록 쉽게 속기 마련'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원장 선생님은 모든 것을 다 안다는 듯이, 그에게 짧은 미소를 날리기까지 한다. 그러나 대중은 여전히 어리석거나, 혹은 변하지 않는다. 진만은 '시설'에서 늘상 했던 대로, 등에다 대고, 꾸벅 인사를 할 뿐이다. 그(원장 선생님)의 앞의 모습이 어떤지 전혀 모른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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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세상 속에서, 나(진만)와 시봉은 끊임없이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사과하고, 맞는 것으로 그 죄를 사하려 한다. 자신들의 죄 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죄까지 말이다. 따라서 어떤 의미에서는, 이들은 현대판 예수와 같다. 다른 모든 이들의 죄를 떠안아, 기꺼이 십자가에 자신의 몸을 내맡겼던 예수와 같이 말이다. 그러나 예수의 찬란한 부활로 마무리되는 성경과 달리, 이 이야기는 석연치 않은 비극성을 남긴다. 그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 그런데, 하나는 이들의 이런 사과는 결국 어떤 파국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이다. 그리고 아마도 그 파국은 오래 전부터 예정되어 있는 파국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표면적으로 그것은 복지사들로부터 시작된 폭력의 방식이 다른 더 거대한 폭력으로 확대되어 마무리되는 양상이지만(어쩌면 여기에 작가의 진실이 들어가 있는 것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그 진실이란 '죄'라는 것은 결국 근원적으로는 '사과'할 수 없다는 것) 실상은 그 폭력의 시작은 그들에게 복지사들이 폭력을 가하던 것보다 더 오래전, 아버지가 진만을 시설에 버려두었을 때부터 시작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이 소설의 마무리.


나는 잠깐 뒤돌아, 병원의 파란색 십자가 네온사인을  바라보았다. 멀리 왔다고 생각했지만, 아직도 병원의 십자가는 높은 곳에서, 가까운 곳에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돌렸다. (p.220)



밝게 전달되는 가벼운 이야기인 듯 했던 여기에 이 소설의 비극이 숨어있다. 여전히 병원의 십자가는 가까운 곳에 있다. 즉, 우리가 아무리 사과를 한다 해도, 시봉과 진만이 나 대신 아무리 사과를 한다 해도, 죄를 끊임없이 묻는 사회는 여전히 우리 곁에 존재한다. 그리고 시봉과 진만이 말한대로, 죄는 셀 수 없이 많다. '당신이 생각하는 모든 것이 죄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은 급기야는 죄를 만들어내기까지 한다. 이러한 사회에서 당신은, 아니 나는, 어떻게 죄를 짓지 않고 살아갈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