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래 전에 본 영화인데, 정성일 평론가가 <씨네21>에 실은 무지무지하게 긴 이 영화의 리뷰를 읽고, 그 아우라에 압도되어 뭔가를 적어보려는 것을 포기했다. (정성일 평론가의 그 좋은 리뷰는 아래의 링크에) 그러다가 갑자기 오랜만에 이 영화 생각이 났다. 그리고 뭔가를 적어보고 싶은 생각이 났다. 하기는 뭐, 평론가야 그걸로 먹고 사는 분이고, 나야 재미로 적는 것 뿐 이니까.
http://www.cine21.com/Article/article_view.php?mm=005004004&article_id=50184
http://www.cine21.com/Article/article_view.php?mm=005004004&article_id=50185
이 영화 <미스트>는 위에 정성일 평론가가 지적한 대로. 여러 방향으로 해석될 수 있는 많은 드러난 이야기와 함께, 동시에 숨겨진 이야기와 맥락을 담고 있는 영화다. 괴물들이 나오는 B급 공포물의 외양을 두르고 있는 이 영화는 그 내부를 한 꺼풀 들어내 보면 평론가들이 한 번 쯤 글을 쓰고 싶어 죽겠어할 많은 숨은 이야기거리들을 담고 있다. (아마도 그래서 정성일 평론가는 이 영화를 해석하는 무려 7가지의 판본을 이 긴 글에 담으셨을 것이다.) 괴물들이 출몰하는 B급 공포물, 생태파괴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재난 영화, 좀비물, 가족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하나의 기묘한 드라마 등 여러 다양한 판본으로 읽힐 수 있는 이 영화를 또한 하나의 심리실험극으로도 볼 수 있는 지점이 여기에 있다.
이 영화에는 두 가지의 재미있는(?) 심리실험이 있다. 내가 이것을 심리 ‘실험’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이 영화의 슈퍼마켓이라는 공간이 마치 하나의 거대한 실험실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실험이 일어날 수 있는 최적의 조건 - 주위와의 완전한 고립, 외부에서 제공되는 여러 독립변인들(괴물들의 출몰), 피실험집단 내부를 여러 다양한 계층으로 구성(이렇게 다양한 나이와 인종, 경제력, 사회적 계급을 갖춘 실험집단을 구성하기에 최적의 공간으로서 슈퍼마켓 이상 가는 것이 있겠는가?) - 을 갖춘 이 공간은 마치 이 공간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듯한 착각을 준다. 과연 이 폐쇄된 공간 속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변해나갈 것이며, 어떤 방식으로 주위의 위협에 대응할 것인가?
첫 번째 실험은 ‘믿음’의 문제이다. 영화의 초반부, 주인공 데이빗은 괴물의 존재를 믿으며, 슈퍼마켓 뒷문을 열지 말라고 경고하지만, 주위의 사람들은 데이빗을 믿지 못하며, 심지어는 그를 겁쟁이라고 조롱한다. 그러나 문이 열리고 한 사람이 죽고 나서야 그들은 데이빗을 믿게 되고, 문을 닫고 돌아온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하나 또다시 다른 사람들에게 불신을 당한다. 하나의 믿음이 어떤 식으로 전파되며, 어떤 식으로 불신되는가를 보여주는 이 장면은 현실의 하나의 작은 축소판이라는 점에서 상당히 인상적이며, 어떠한 의미에서는 이를 하나의 종교와 관련지어 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신을 절대적으로 믿지 않는 사람들이 어떤 하나의 일을 계기로,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깊이 종교적 신앙심을 가지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로 처음의 데이빗을 믿지 못하던, 함께 슈퍼마켓 뒤로 갔던 사람들은 ‘그 일’이 일어난 후 다른 사람들보다 앞장서서 일의 해결에 나서게 된다. 그래서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반신반의하는 사람들보다는 절대 부정하는 사람들이 절대 긍정도 가능하다.’
두 번째 실험은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인물인 카모디 부인과 관련지어서 발생한다. 정성일 평론가는 이 영화 <미스트>를 읽는 하나의 방법으로서 안개를 가스로 보며, 이를 홀로코스트의 느슨한 비유로 보았지만, 나는 여기에서 하나의 파시즘 사회의 탄생을 본다. 파시즘은 익히 잘 알려진 대로 구성원들의 절망과 공포를 그 자양분으로 삼아 기능하는 체제이며, 권력에의 관심을 외부의 적으로, 또는 내부의 희생양으로 돌린다. 히틀러의 나치즘이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바이마르 정권 하에서의 비참한 독일 민중의 막연한 절망과 공포를 이용하여 탄생이 되고, 그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영국과 프랑스 등의 외부의 적과 체제 내외부의 유대인들에 대한 핍박을 그 동력원으로 삼아 유지한 것과 마찬가지로, 이 영화에서는 외부의 괴물들이 출몰하는 고립된 슈퍼마켓을 배경으로 카모디 부인을 정점으로 한 하나의 작은 파시즘 사회가 탄생한다. 카모디 부인은 외부의 괴물들의 공격을 예언하고 종교적 의미를 부여하는 식으로 사람들의 불안과 공포감을 점점 교묘하게 이용하여 증폭시키며, 그러한 사람들의 불안과 공포를 체제 내부의 적, 즉 데이빗 일행들에게 돌림으로써 그 체제를 유지시켜 나간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카모디 부인의 광기는 히틀러나 무솔리니의 광기를 느슨하게 연상시키며, 카모디 부인이 데이빗 일행과 맞설 때 두 남자가 각각 칼을 빼들고 나서는 것은 마치 SS친위대를 연상시킨다. (물론 두 남자의 직업이 요리사(아마도?)와 정비공임은 파시즘에 열광한 주력 세력이 소상인이나 숙련공 등의 당시 독일 민중의 중하층 계급이었음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동시에 이에 맞서는 리더인 데이빗의 직업이 예술가(화가)임은 또 은근히 상징하는 바가 있다.) 그래서 다시 여기에서 파시즘 시대의 광기와 이성의 마비를 보며, 사회 구성원들의 절망과 공포가 한 사회를 어떻게 파괴시키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정성일 평론가는 묻는다. 처음에 모두가 죽은 것으로 생각했던 그 아이 엄마가 살아남은 것을 보며, 과연 그녀의 생존이 무엇을 증언하느냐고. 이 생존의 윤리와 기억의 증언은 무엇을 말하는 것이냐고. 물론 이는 정성일 평론가의 말대로 슈퍼마켓을 하나의 거대한 포로수용소로 보고, 안개를 가스로 하는 홀로코스트의 느슨한 비유로 이를 읽을 때 가능하겠지만, 이 질문은 여전히 유효한 듯하다. 그녀의 생존은 무엇을 증언하는가. 모두가 절망과 공포에 빠져있을 때 자신의 아이를 살리러 그 슈퍼마켓 문을 열고 떠난 그 아이 엄마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우리 사회는 현재 점차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으며 사회의 보이지 않는 어두운 구석으로부터 절망과 공포는 점점 그 지형을 넓혀가고 있다. 과연 이런 사회가 파시즘의 무서운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부터 시작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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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이네요. 잘 보았습니다. 트랙백 남기고 갑니다.
안녕하세요. 잘 읽으셨다니 감사합니다. 트랙백 해주신 글도 읽으러 가겠습니다.^^
혼자 보기 아까운 리뷰라..댓글 남겨봅니다. 제3회 충무로국제영화제 공식블로그(http://chiffs.tistory.com)에서 잊을 수 없는 내 인생의 영화에 대한 리뷰를 공모합니다. [도전! 나도 리뷰스타] 카테고리에 제시된 4 가지 테마 중 하나를 택해 자신의 블로그에 리뷰를 작성한 뒤, URL을 트랙백 혹은 댓글로 남겨주세요. 당선되신 분에 한해 공식블로그를 통한 해당 리뷰 노출과 소정의 기념품을 제공해드립니다. 1차 이벤트 기간은 8월 10일 까지 입니다.
아..충무로 국제영화제.
작년에 거기서 <매드 디텍티브> 등등 좋은 영화 많이 봤던 기억이 나네요.
내 인생의 영화라..아직 뭐 생각나는 영화가 없는데.
생각나는 영화가 있으면 글 남겨 볼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