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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1.23 렛미인 Let The Right One In, 토마스 알프레드손 (2)
 



(늘상 그렇지만, 스포일러 있음)


날은 어둡고, 눈은 끊임없이 흩날리고, 새는 낮게 하늘을 선회하고, 어디선가 낯선 동물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북구의 어느 밤. 피가 모두 어디론가로 사라진 채 죽어 있는 남자는 눈이 녹아 흘러내리는 하수구 옆 도랑에 버려져 있다. 목에는 작은 이빨 자국만 남겨진 채.


이러한 이야기는 사실 이제 너무도 많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인간의 피를 먹어야만 살 수 있는 뱀파이어라는 존재. 그리고 그의 천형과도 같은 운명. 그 잔인하면서도, 스산한, 그러면서도 묘한 에로티시즘을 발산하는 그런 이야기들. 그러나 이런 이야기라면 어떨까? 그 뱀파이어가 어린 소녀이고, 그 옆 집에는 세상 누구와도 쉽게 소통을 하지 못하는 아웃사이더 소년이 살고 있다면. 이런 작은 설정에서 출발한 이 영화는 때로는 예상되는 지점에서, 그리고 더 자주는 아주 뜻밖의 지점에서 보는 이들의 마음을 건드린다.



영화의 제목은 <렛미인 Let The Right One In>. 영화에서도 설명되지만, 뱀파이어는 그 곳의 누군가가 초대해 주어야지만 그곳에 들어갈 수 있다. 바로 이 제목은 그를 설명하고 있는 셈인데, 이 설정은 조금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이 영화는 (당연한 말이겠지만) 다른 여러 뱀파이어를 다룬 문학이나 영화들에게서 많은 부분을 빚지고 있다. 즉 다른 영화의 클리셰들이 이 영화에서도 계속 반복된다는 것인데, 예를 들어 뱀파이어는 햇빛을 보면 안된다거나, 뱀파이어에게 물린 자는 뱀파이어가 된다는 설정 등이 그러한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초대해 주어야만 들어갈 수 있다는 설정이 다른 영화나 문학에 있었던가? 아니 그건 그렇다치고, 초대받지 않고 들어간 뱀파이어는 몸의 곳곳에서 피를 토해내게 된다라...

물론 이와 비슷한 것은 다른 이야기들에도 있을 것이다. 뱀파이어는 결국 인간이 아닌 '어떤 것'이기 때문이다. 동물일수도, 괴물일수도, 혹은 악마일수도 있다. 그러나 이 피를 토해내게 된다는 설정이 자못 의미심장한 것은, 뱀파이어는 피를 먹어야만 살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피는 뱀파이어에게는 무엇보다도 소중한 것. (뱀파이어 소녀 '이엘리'는 피를 담은 통을 놓고 온 아버지에게 소리친다. 어떻게 그것을 놓고 올 수 있냐고. ) 

어떤 의미에서 뱀파이어의 '피'와 같은 것을 인간의 입장에서 대입해 보면 '마음'과 같은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무엇일까?) 물론 피와 달리 인간의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때로 마음이 눈에 보일 때도 있다. 우리가 누군가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을 내어 놓아야(드러내 보여야) 한다. ('이엘리'의 온 몸에서 피가 흘러내리는 것처럼) 그리고 대부분의 인간들은 누군가의 마음을 갈구한다. 뱀파이어가 피를 갈구하듯이 말이다. (그러나 물론 우리는 다른 사람의 마음에 이빨 자국을 내어 그것을 빨아들일 수는 없다. 그것이 가장 슬픈 점이다. 또 어떤 의미에서는.)

그리고 그렇게, 누구와도 소통하지 못하던 소년 '오스칼'은 뱀파이어 소녀 '이엘리'에게 마음을 건넸고, 뱀파이어 소녀 '이엘리'는 기꺼이 자신의 피를 건넸다.



영화의 마지막, (뭐 아마도 그럴 수 밖에는 없겠지만) 소년과 소녀는 멀리 길을 떠난다. 해피 엔딩이라고 말해주고 싶지만, 그렇게 보기에는 너무 스산한 풍경이다. 기차 커튼은 열려진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으로 흩날리고, 기차 안에는 그들 외에는 어떤 승객도 찾아볼 수 없다. 이들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어쩌면 세상의 끝으로. 누구도 그들을 찾을 수 없는 곳으로 가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들은 갈 수가 없다. 왜냐하면 (다시 또 당연한 말이지만...;;) 뱀파이어는 다른 사람의 피를 먹어야만 살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과 멀어지려고 하나, 다른 사람과 멀어져서는 살 수 없는 존재. 그것이 바로 뱀파이어의 가장 슬픈 점이다. 또 어떤 의미에서는.

(아마도 이 부분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주는 존재가 '이엘리'의 아버지일 것이다. 다른 사람과 최대한 거리를 유지하며 살려고 하나, 그럴 수 없는 존재. 영화의 시작부에서 여러 '장비'들을 능숙하게 재빨리 챙기는 그의 손놀림은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 많은 우리네 아버지들을 연상시켜 마음을 아프게 한다. 아버지들은 늘상 말하지 않는가. 이 일을 때려치우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건, 마누라와 자식새끼 때문이라고.)

그래서 그들은 검게 시작된 엔딩 크레딧이 서서히 붉은 빛으로 변해갈 때, 마지막 붉은 빛이 화면에서 사라졌을 때 즈음에는 또다른 곳에 도착해 있을 것이다. 날은 어둡고, 눈은 끊임없이 흩날리고, 새는 낮게 하늘을 선회하고, 어디선가 낯선 동물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북구의 어느 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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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papierlune.tistory.com BlogIcon papierlune 2009.03.17 23: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때 이제부턴 오스칼이 이엘리를 위해서 아버지가 해야 할 일을 대신 할 수 밖에 없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러자 그 '아버지'라는 존재가 어쩌면 처음엔 오스칼과 같은 만남으로 시작된 것은 아니었을까 .. 라는 생각까지 (결국엔)들고 말았죠. 좀 억지스런 생각일지는 모르지만요. ^^;

    • Favicon of https://noracism.tistory.com BlogIcon 맥거핀. 2009.03.18 22: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 리뷰를 쓰고 그 이후에 다른 글들을 보니, 거의 대부분 그렇게 보시는 시각이 많더군요. 원작소설에도 '하칸'이라는 캐릭터로 나온다더군요. (아버지가 아니라)
      뭐 저는 거의 기본배경지식이 없는 상태로 봐서, 그냥 단순하게 아버지라고 봤지만요. (우리네 아버지들을 연상시키도 했구요.)
      네..마지막이 스산하죠. 오스칼이 선택한 삶이라고는 하나, 그 나이에 선택을 하기는 어렵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