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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6.21 인크레더블 헐크(The Incredible Hulk), 루이스 리테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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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헐크의 바지는 왜 결국 찢어지지 않는 것일까?

 

영화를 보고 종로거리를 걸어 나오며, 지금 여기에도 헐크가 나타나면 재밌지 않을까 하는 괜한 상상을 해봤다. 헐크가 나타나 거리 한가운데를 쿵쿵 걸어 다니는 그런 비주얼 말이다. 국회의원이라는 작자는 말 한마디로 길거리에 나선 100만의 국민들을 천민으로 만들고, LG 투수진은 한 게임에서 14개의 볼넷을 선물하고, 날씨는 슬슬 더워지고...하는 뜨겁고 질척질척하고 꽁기꽁기한 야만의 세계, 그런 세계 한 가운데에 헐크가 나타나,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아스트랄한 비명을 질러주면 무언가 낫지 않을까.

왜 슈퍼히어로물이 범람하는가? 라는 질문에, 개인 존재의 유한성과 그의 극복에의 희구에서 찾는 어떤 철학적인 이유를, 또는 세계의 강대국인 미국과 그의 주변국과의 관계에 대한 희미한 반영인 인문사회학적 이유를, 또는 어렸을 적부터 마블코믹스의 팬들이 어른이 된 후 다시 똑같은 소비를 반복하는 경제사회학적인 이유를 댈 수도 있겠지만, 생각보다는 사람들은 꽤나 단순한 것 같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여서, 그냥 단지, 나도 저러한 힘으로 오늘도 사람들과의 소통에 대해 골몰하시는 소통의 달인 ‘오해’ 이MB 선생님이라든가, 연장 일대일 동점에서 멋지게 에러를 범하시는 LG 모 선수를 날려버리고 싶다는 실현불가능하면서도, 실현불가능하기 때문에 열망하는 그런 상상을 가능케 해주는 하나의 감정이입의 도구로서 슈퍼히어로를 볼 뿐이다.

 

그러나 사실 이 친구 헐크, 아니 브루스 배너 양반은 참 그런 단순한 감정이입의 대상으로만 쓰고 날려버리기에는 꽤나 불쌍한 구석이 있다. 그까이꺼 하기 싫으면 때려 치우면 되는 배트맨이나 슈퍼맨, 아이언맨 등 다른 여타의 많은 슈퍼히어로들과는 달리, 이 친구는 하기 싫다고 안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일단은 아무리 안하려고 해도 화가 나면 어쩔 수 없다. 요즘 같은 세상에, 아무리 틱낫한 스님과 같이 화 다스리기 수행을 한다 해도 한나라당 주 모 의원이 100분 토론에 나와서 날리는 썩소 크리를 몇 번 보고나면, 그 치밀어 오르는 분노는 어찌 다스린단 말인가. 그리고 변하고 난 뒤 정상으로 돌아온 후 그 처참한 모습이라니. 도대체가 이것은 새벽 4시까지 술 마시고 지하철 바닥에서 토한 후 집으로 돌아와 쓰러져 잔 다음날의 모습이라든가, 전설의 박신양의 거지 신공(밑의 관련사진 참조)을 능가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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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브루스 배너 박사는 꽤나 소심남이다.  일단은 창백한 피부와 축처진 눈꼬리는 '내가 소심남이오'하는 말을 굳이 하지 않아도 관객 누구나에게 알 수 있게 해주거니와(이는 물론 항상 '소심 이미지'에서 급변하는 캐릭터를 많이 맡아왔던 에드워드 노튼의 캐릭터에 기댄 바도 있다), 영화 곳곳에서도 소심남적 면모는 잘 드러난다. 상대방을 멋지게 제압하고, 혹은 멋지게 제압하지 않더라도 기지와 재치를 발휘하여 적진으로 숨어드는 다른 캐릭터와는 달리, 사람좋은 웃음을 날리며 고작 피자 한 판으로 경비원을 회유하여 건물로 잠입(?)하는 모습이라던가, 사랑하는 여자가 다른 남자와 함께 있는 모습을 목격하고도, 일라이저에게 따귀맞고 방문 뛰쳐 나가는 캔디같은 폼으로 뛰어나가 쓰레기통 뒤에 숨는 모습이라니. 하기는 뭐 변한 뒤라고 얼마나 달라지겠는가. 사랑하는 여자를 안고 울부짖던 킹콩과 마찬가지로 사랑하는 여자를 안고 괴로워하는 초록 헐크의 그 선량한 눈망울이라니. (글 옮기는 과정에서 이 문단이 누락된 것을 발견하고 뒤늦게 추가.-_-)     
                 
그의 이러한 소심남적 면모는 그가 싸워야 하는 대상이 무엇인가를 살펴보는 것으로도 짐작할 수 있다.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알아보는 하나의 방법으로 그의 적이 누구인가를 살펴보는 방법은 꽤나 추천할 만하다. 그것은 이MB의 적이 초중고딩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가능성 있는 논거가 된다.

여타의 다른 슈퍼히어로들이 조커에서 마그네토, 그린 고블린으로 이어지는 그럴싸한 적을 가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헐크 역시 마지막에 <에이리언 VS 프레데터>를 연상시키는 혈전을 벌이며 적과 싸운다. 그러나 그 상대방이 헐크의 가장 큰 적수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헐크의 가장 큰 적은 자기자신이다. 변신하기 전 브루스 배너 박사가 그토록 원하는 것은 자기 안의 헐크를 제거하는 것이다. 지킬박사가 하이드를 없애버리기 위해 그토록 애를 쓴 것과 마찬가지로 브루스 배너 박사는 과학의 힘을 빌려 헐크를 제압하고자 한다. (물론 이는 한 가지 아이러니를 생각하게 한다. 과학의 힘으로 탄생한 헐크를 제압하기 위해 또다른 과학의 힘을 쓴다?) 이는 소심남들의 오래된 전통이었다. 소심남들이 원하는 것은 자기 안의 소심기(氣)를 없애는 것이다. 과학의 힘을 빌리든 아니든 말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얼토당토않은 부제의 답을 생각해 본다면, 답은 이미 나왔다. 그가 엄청난 소심남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해와 같이 넓은 마음으로 미국산 소고기와는 달리 미국산 청바지는 질이 좋기 때문에 그의 청바지가 고작 무르팍 좀 뜯어지고 허리만 좀 늘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하려고 해도 그의 그 거대한 몸집을 생각해 본다면 이는 말이 안 된다. 여자친구가 사온 엄청난 신축성의 쫄바지도 단지 보라색이라는 이유만으로 거부하는 소심남 브루스 배너 박사. 그의 변신으로 바지가 터지게 되면 그의 소심한 마음까지 같이 터질 것을 염려한 신의 현명한 뜻인 게다. 변신에서 깨어난 후 축 처진 눈꼬리로 자신의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아랫도리를 바라보는 브루스 배너 박사. 생각만 해도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