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코(Sicko), 마이클 무어

Ending Credit | 2008.04.09 15:15 | Posted by 맥거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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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대로, 이 영화는 계몽영화다. 그것도 상당히 편파적이고 선동적인 계몽영화다. 물론 ‘계몽’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 편파와 선동을 담지할 수밖에 없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상당하다. 잘 알려진 대로 미국 의료보험 민영화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이 영화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정보를 상당히 중요한 정보처럼 부각시키기도 하고, 동시에 말해주어야 할 것들에서 조용히 입을 다물기도 한다. 일례로 영국과 프랑스의 무상 의료 시스템이 가능할 수 있는 막대한 세금 부과에 대해서는 교묘하게 넘어가기도 하며, 미국의 사례는 지나치게 나쁜 쪽으로 집중되어 있고, 영국과 프랑스의 사례는 지나치게 좋은 쪽으로 집중되어 있다. 급기야 마이클 무어는 ‘그라운드 제로’의 영웅들을 이끌고 쿠바를 방문하는데, 이는 의도적으로 너무 좋은 쪽으로 포장되어 있다. 즉 마이클 무어는 관타나모 기지에서 받아들여주지 않으니 쿠바로 갈 수 밖에 없었다 라는 식으로 말하지만, 아마 쿠바로의 방문은 사전에 계획되어 있었을 것이며, 쿠바는 체제의 우수성을 설명하기 위하여 좋은 쪽으로만 그들을 이끌었을 것이다. 어떤 체제나 외부의 방문자들에게는 체제의 밝은 면만 보여주려 하기 때문이다. (북한이 그러듯이 말이다. 물론 북한만 그러는 것은 아니다.) 물론 이것 또한 마이클 무어에 의해 철저히 계획되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불균형한 선동 영화를 기꺼이 관람해줄 수 있는 것은 이 모든 것의 기본은 너무나도 당연하기 때문에 받아들여져야만 하는 것,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우리가 길을 가다가 어느 낯선 사람에게 심하게 맞아서 생명의 위기에 빠져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 때 다행히도 경찰이 지나간다. 우리는 경찰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그러자 경찰이 이렇게 말한다. “폭력에서 당신을 구해주는 것은 100만원을 내시면 가능합니다.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당연히 말이 안 되는 일이지만, 이 당연한 일이 미국에서는 의료의 분야에서 일어나고 있다. 돈이 없어서 제 때 치료를 받지 못해, 암이 온 몸으로 퍼지고, 잘려나간 손가락을 접합하지 못하고, 3개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는다. 누구나 길거리에서 폭력을 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는 것처럼, 누구나 아프면 치료받을 권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왜냐하면 이는 생과 사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누구라도 죽게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 누구라도 최소한 (적어도) 살 권리는 있다. 이는 누구라도 아는 일이며, 교과서에도 명시되어 있는 일이다. (하워드 진(Howard Zinn)은 이런 말을 했다. “그렇다고 완전한 평등을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평등은 결코 이뤄낼 수 없습니다. 당신의 스웨터가 내 스웨터보다 좋은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둘 모두가 스웨터를 입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이를 이 영화에 빗대어 보자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당신이 아프면 1인 특등실에 입원하고, 내가 아프면 6인 공동실에 입원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 둘 다 입원할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마이클 무어는 묻는다. 우리가 도서관도 공짜로 이용하고, 소방서나 경찰서도 공짜로 이용하는데, 왜 의료서비스는 안되냐고. 경찰서나 소방서가 없으면 우리 삶이 위험에 빠지는 것처럼 병원이 없어지면 우리 삶이 위험에 빠지는 것도 마찬가지인데(‘어떤 의미에서는’ 도서관도), 왜 의료서비스만 공공복지의 영역이 아닌, 경쟁의 영역에 들어가 있어야 하느냐고.

 

하기는 몇 년 전에 이 영화가 개봉했더라면 어쩌면 이 영화를 그저 아주 재미있게 즐겼을지도 모르겠다. 저저 미국넘들이란 말이지 ...하고 조소를 보내면서 말이다. (모든 메시지를 제외하고 그저 영화 그 자체로만 본다면 말이다. 마이클 무어는 그의 다른 영화들에서도 그랬듯이 상당히 귀여운 구석이 많다. 그는 적어도 농담을 할 줄 안다. 그것도 아주 재미있는 농담들을 말이다. 이번 영화에서는 음악을 가지고 상당히 장난을 많이 치는데, - 난데없이 스타워즈 음악이 나온다거나 하는 식으로 - 내용은 아주 심각하지만, 그러한 몇몇 귀여운 구석 때문에 슬며시 웃음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그 교묘한 편집 능력도 여전하고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한국에 이런 마이클 무어 같은 감독이 하나 있어서 MB를 다뤄주면 상당히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지난 대선 때 MB의 BBK 의혹 같은 거 말이다. 그가 자신의 안티 사이트 운영자에게 수표를 보냈다는 장면에서는 헛웃음이 나왔지만.) 그러나 아래와 같은 기사를 보고 이 영화를 보면 마냥 웃기만은 힘들어진다. 정말이다. (그리고 급기야는 이런 생각이 든다. 병원에서 10시간을 기다려도 치료를 받게 된다면 행복한 거라고. 앞으로 병원에서 마냥 기다리라고 해도 뭐라고 하지 않겠다고.)

(솔직히 조선이나 중앙이나 동아일보 쪽 기사를 가져오고 싶었는데, 네이버에서 이들 3개 신문의 뉴스 내용을 ‘의료산업화 이명박’ 혹은 ‘의료보험 민영화 이명박’으로 검색하면 단 1개의 뉴스도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편향된 한겨레 기사를.)

 

그래서 계몽이란 건 엿이나 먹으라고 생각하지만, 아주 편파적인 계몽 영화를 보고 이런 계몽적인 글을 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사실 언제나 그렇듯이 정작 계몽을 당해야 할 사람들은 이런 계몽적인 것을 안보는 경향이 있다. (성에 대해서는 지 아버지보다도 더 많이 아는 친구들이 성교육 시간에 눈을 더 많이 반짝이는 것처럼 말이다.) 오늘 단성사 7관에도 딱 10명이 앉아 있었다.

그래서 하는 얘긴데, 이런 편파적인 계몽 영화는 돈 주고 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이나, 어차피 그거 봐봤자 마이클 무어의 배나 불러주는 것밖에 안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나(하긴 이미 배가 많이 부르긴 했다), 댓글 올리다가 지쳐 잠시 쉬고 싶은 나라당 알바들이나..그 외 누구라도 원한다면, 쪽지나 댓글을 남겨주면 방금 다운 받은 따끈따끈한 ‘식코’ 무비를 기꺼이 보내드리겠다. 물론 자막의 질은 보장하지 못하지만.


*저도 파일은 더이상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5/4 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