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블릭 에너미, 마이클 만

Ending Credit | 2009.08.15 01:41 | Posted by 맥거핀.



(영화 내용에 대한 미리니름일 수 있습니다.)



몰락해 가고 있는 영웅을 바라 보는 것은 많이 마음 아픈 일이긴 하지만, 늘 흥미롭다.  그가 가고 있는 이 길의 끝에는 파멸만이 존재한다는 점, 그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임에도, 그것을 향해 조금씩 돌진해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안타까움과 함께 비장한 아름다움을 준다. 동료도 모두 잃고, 주위에서도 그를 버리고, 경찰이 마지막까지 그의 숨통을 죄어 올 때, 그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선택은 한 탕 크게 하여 여기를 뜨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마지막 일을 벌이기 직전, 몇 안 남은 동료가 그에게 묻는다. "넬슨이 너무 조급해하는 것 같지 않아?" 조급해하는 사람을 쓰지 않는 것, 그가 가진 철칙 중에 하나다. 그러나 그는 지금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다고 대답한다. 그러나 그 '넬슨'이 기어이 사고를 치고,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흐르고 만다. 이 때 존 딜린저(조니 뎁)는 단호하면서도 중간중간 살짝 주저하는 빛을 보인다. 물론 그는 빠른 속도로, 단호한 몸놀림으로 움직이고 있지만, 그의 눈은 중간중간 초점을 잃고 다른 것을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아..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철칙을 무너뜨린 대가를 치르는 것인가. 그는 약간 후회하는 듯도 보이지만, 살아남은 동료들을 끌어모아, 어떻게든 탈출한다. 여기서의 조니 뎁의 연기는 참으로 인상적이다.

사실 영화가 흥미로워지는 건, 영화가 중반을 넘어서, 존 딜린저가 파멸의 길로 조금씩 들어서고 있는 순간이다. 아니 사실 정확히 말하자면, 파멸의 길로 들어섰다기 보다는, 그 파멸의 길의 끝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 순간부터라고 말해야 할 터이다. 그가 감옥에 갇힌 동료들을 탈출시켜 멋지게 은행을 터는 영화의 첫머리부터 그는 이미 파멸의 길에 들어섰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영화 속 존 딜린저의 애인 빌리(마리안 코티아르)는 존 딜린저에게 말한다. 당신에게는 두 가지 길 밖에 없다고 말이다. 잡히거나 죽거나. 그러나 그는 코웃음친다. 경찰은 너무 멍청해서 나를 잡을 수 없어. 그는 허세를 부리고 있었다. 그랬다. 그건 허세였다. 잡히고 나서 웃으며 인터뷰를 하며, 경찰과 어깨동무를 하는 것, 또는 은행을 털며, 은행여직원을 인질로 잡아, 그녀에게 입고 있던 코트를 벗어주는 것 같은 것들 말이다.

허세는 아마도, 불안의 산물일 것이다. 대부분 불안한 사람들은 허세를 부리게 마련이다. 주가가 2000선에 곧 도달할거야...2000이 뭐야, 곧 3000까지도 갈 거라고...라고 누군가가 말한다면, 그는...내기해도 좋다. 마음 속 한 구석에는 엄청나게 불안해하고 있을 것이다. 주식에 투자한 그 많은 돈이 날라가면 어떡하지, 어떡하지, 어떡하지..하고 말이다. 존 딜린저도 불안했을 것이다.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와 같은 갱들의 도시 시카고, 이 시카고에서 멋지게 한 탕 해서 어디론가 뜰 수 있을까, 그 전에 잡히거나 죽거나, 역시 둘 중의 하나로 끝나지 않을까..하고 말이다. 그래서 그는 계속 호기를 부린다. 그래서 영화가 마지막을 향해 가면서, 그의 허세가 점점 커지는 것은, 역으로 그를 둘러싼 불안이 점점 커지는 것으로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그래서 말이다. 당신의 옆자리에 혹시 존 딜린저가 앉아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오른쪽을 보시고, 이번에는 왼쪽을. 이런 약간은 우스꽝스러운 광고가, 불켜진 극장에서 흘러나오며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옆을 차례로 돌아볼 때 미동도 하지 않고 꼿꼿이 앞을 보고 있는 존 딜린저를 수많은 관객 한 가운데서 잡는 샷이나, 경찰서에 들어가 '존 딜린저 특별수사팀' 사무실로 유유히 걸어들어가, 야구경기에 관심이 몰린 틈을 타서 사무실을 천천히 돌아보며 "지금 몇 대 몇이죠?"라고 묻는 존 딜린저를 뒷 모습으로 잡는 샷은 아름다우면서 동시에 연민을 불러 일으킨다. 그는 저 순간에 얼마나 불안했을까. 그러면서도 동시에 얼마나 불안해하지 않으려고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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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만 감독의 몇몇 영화들, <히트>나 <콜래트럴>, 그리고 이번 영화 <퍼블릭 에너미> 같은 작품들을 보면 멋드러진 총격전 장면들과 더불어 위의 존 딜린저와 같은 매력적인 캐릭터가 나온다. 내 생각에는, 그 캐릭터들이 매력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위에서도 말해듯이, 불안해 보이면서도, 불안해보이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에 있다. 꼭 불안이 아니더라도, 어떤 것을 나타내려고 하는 것과 그것을 숨기려고 하는 양가적인 감정이 미묘하게 교차하며 드러나는 것이 캐릭터의 매력을 가중시킨다는 말이다. 이는 어떻게 보면, 마이클 만 감독의 역량이 출중해서라기 보다는 그가 그려내고자 하는 세계가 대체로 그런 것과 맞닿아 있다는 데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만드는 캐릭터들은 대체로 자존심이 무척 강하고, 일종의 자기 확신을 가지고 있으며, 약한 것에는 약하게, 강한 것에는 강하게 대할 줄 아는 인물들이다. 그러나 이 인물들은 대체로 커다란 위험을 목전에 두고 있으며, 주변에서는 점차 고립되고, 파멸은 거의 예정되어 있다. 이 거대한 자기 확신이 예정된 파멸로 달려가 그것에 부딪힐 때, 그 파장 속에서 어떤 것들이 드러나는가. 그것을 마이클 만은 조용히 잡아낼 줄 안다. 인물의 그림자에 난사된 총알들이 박히는 것으로, 혹은 경찰에게 잡혀가는 여자를 구하러 갈까말까 망설이는 아주 짧은 멈칫거림으로 말이다. 

그래서 그랬을까. 왠지 마이클 만은 이 캐릭터를 부각시키기 위해 기꺼이 다른 캐릭터를 희생시키는 것처럼 느껴진다. 예를 들어 존 딜린저의 곁에는 여러 동료들이 따르지만, 이 중에 특별히 개인적으로 기억나는 캐릭터는 없다. 그저 동료들은 존 딜린저의 곁에서 폼나게 있다가, 한 명씩 조용히 사라져갈 뿐이다. 존 딜린저의 애인인 빌리도 어떤 의미에서는 상당히 평면적으로 그려져 있다. 남자를 위해, 혹은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남성의 눈에 비친 여성으로서만 말이다. 아마도, 이와 관련해서 가장 큰 희생자는 영화를 이끌어가는 다른 한 축인 퍼비스 형사(크리스천 베일)일 것이다.퍼비스 형사는 전체적으로 존 딜린저의 가장 큰 적수이면서, 영화의 나머지 한 축으로 보이지만(혹은 한 축이 '되어야' 할 것으로 보이지만), 별로 인상적으로 기억나는 부분이 없다. 존 딜린저와의 몇 번의 맞대결에서는 약간은 머뭇거린다, 혹은 우왕좌왕한다는 인상마저 준다. 그래서 그랬을까. 존 딜린저의 마지막 말을 여자에게 전하는 폼나는 역할도 그의 몫이 아니다. (어쩌면 이는 크리스천 베일의 어떤 부분과도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다크 나이트>의 스포트라이트는 그가 아닌 히스 레저의 몫이었으며, <터미네이터: 미래 전쟁의 시작>에서도 그는 주인공이면서도 그다지 주목받은 캐릭터가 아니었다. 무려 '존 코너'였지만 말이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의 다른 하나의 장점은 그 캐릭터들뿐만이 아니라, 그 시대 자체를 생각하게 해준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거리나 의상, 자동차, 극장과 같은 물질적인 재현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 시대에서 존 딜린저와 같은 사악하지 않은 반 사회적 영웅에 열광하는 것, 혹은 경찰이 그를 공공의 적으로, 즉 '퍼블릭 에너미'로 정하고, 그를 잡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것(시작부에 경찰이 과학적인 수사방법을 통해서 그를 잡을 것이라고 공표하지만, 경찰이 결국 활용하는 방식은 죽을 위험에 처한 사람에게 약을 투여하지 못하도록 하고, 여자에게 잔인한 폭력을 행하는 등의 결국 '그 방식'이었다.)이 어떤 사회 심리를 반영하고 있는가를 돌이켜 생각하게 한다. 존 딜린저가 잔인한 폭력을 사용하지 않아서, 혹은 은행은 털어도 은행 고객의 돈은 털지 않았기 때문에 그를 민중들은 응원했다? 글쎄. 은행 돈이라는 것도 결국 고객들의 돈이고, 그는 어쨌든 사람을 죽게 만들었다. 아마도, 이는 대공황 시기 사람들의 심리가 어떤 방식으로 작동되는지를 살펴보는 하나의 흥미로운 지점일 것이다. 그리고 마이클 만은 그런 시대 속으로 우리를 성큼 들어서게 만든다. 꼭 실감나는 총격전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마이클 만은 총격전에 특화된 감독이긴 하지만 말이다.





- 2009년 8월, 롯데시네마 건대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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