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뢰인, 손영성

Ending Credit | 2011.11.15 14:42 | Posted by 맥거핀.




(영화의 결말부에 해당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뒤늦게 <의뢰인>을 보았다. 보고 나니, 역시 손영성 감독답군,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이 영화에서 가장 의아한 점은 초반의 정황증거를 거의 마지막까지 끌고간다는 점이다. 중요한 정황증거들은 영화의 초반 브로커(성동일)나 사무장(김성령), 또는 강변호사(하정우)의 입을 통해, 혹은 감독의 장면 제시로 인해 친절하게 이미 관객들에게 전달된다. 아내가 살해당했고, 남편은 살해 혐의로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외부인의 침입 흔적은 전혀 없고, 남편이 들어오는 것을 본 목격자의 진술도 있으며, 아내는 심지어 며칠 전 남편에 대한 심한 공포심을 토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문제는 이것이 오로지 정황증거일 뿐이라는 것. 흉기도 사라졌으며, 무엇보다도 사체가 없다. 실제 증거가 될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대부분 이런 영화, 장르물에서는 중간에 무엇인가 결정적인 증거가 나오며, 사건의 급박한 전개가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사체가 발견되거나, 보다 직접적인 증언을 해줄 목격자가 나타나거나, 아니면 하다못해 흉기라도 발견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는 영화의 거의 마지막에 이르러 안검사(박희순)가 최후진술에서 이런 말로 발언을 시작한다. 인정한다고. 정황증거 외에 아무런 증거가 없음을 인정한다고 말이다. 아마 장르영화 팬이라면 여기서 "장난해?" 정도를 속으로 외쳤을 법도 하다. 도대체 2시간 가까이 되는 러닝타임 동안 무엇을 한걸까. 우리는 도대체 이 시간 동안 무엇을 보고 앉아있던 것일까.

그 빈 러닝타임을 이 영화는 맥거핀들로 채운다. 영화의 중간중간 무엇인가 결정적인 것이 출현한다는 느낌이 드는 때가 있다. 촛불, CCTV, 교통사고 목격자, 사라진 가짜시체(더미)...그러나 이것들은 영화의 거의 마지막에 이르면 홀연히 사라져버린다. 이들 중 어느 것도 사건의 향방을 뒤엎을 만한 결정적인 단서가 되지 못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영화 내내 감독이 던져주는 떡밥들에 차례로 낚여 긴 시간동안 멍하니 스크린을 바라본 것이다. 그리고 영화의 거의 마지막에 이르러 드디어 반전이 발생한다. 범인이 아님을 눈물로서 항변하고, 어떠한 물적 증거 없이 오로지 정황과 인상만으로 범인으로 지목된 남자가 재판에서 결국 무죄판결을 받지만, 사실은 그가 진범이라는 그런 반전이. 이것을 과연 반전으로 부를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는 조금 옆으로 밀어놓고라도, 그러니까 단순히 이것만 놓고 보면, 우리는 떡밥들을 물다 못해, 결국은 2시간 동안 거짓말만 본 셈이다. 거짓으로 만들어 놓은 대담한 법정극의 전말, 신기루와 같은 성들. 우리는 이 신기루 오아시스들을 앞에 놓고 물을 마시지 못하는 허망함만을 느껴야 하는 걸까.

손영성 감독은 아마도 이 모든 것을 기꺼이 계획했을 것이다. 일단 먼저, 그는 전작 <약탈자들>에서 전력이 있다. <약탈자들>은 여러 거짓(혹은 진실)들이 촘촘하게 얽힌 거대한 미로와도 같은 영화였다. 우리는 그 영화에서 곳곳에 놓인 허방다리들을 만났고, 기꺼이 그 허방다리들을 밟고 어둡고 막막한 어지러움 속으로 굴러떨어졌다. 결국 목적은 그 복잡한 미로 속에서 길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었다. 목적은 그것이 얼마나 거대하고 복잡하게 만들어진 미로인지를 깨닫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목적은 이번 영화 <의뢰인>에서도 마찬가지다. 강변호사는 영화의 시작 부분에 이야기한다. 사건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실외에서 일어났는가, 실내에서 일어났는가. 그리고 (이번 사건과 같은) 실내 사건의 경우 증거가 생겨날 수밖에 없으며, 중요한 포인트는 '스토리'를 잘 짜맞추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랬다. 문제는 그 '스토리'였다. 스토리를 얼마나 잘 만들어 관객(배심원)들을 그 스토리 속에 빠뜨릴 수 있는가의 여부. 그것을 간파한 강변호사는 중간에 약간 위험하고 대담한 방법을 쓰기도 한다. 범인으로 의심받는 한철민(장혁)을 도리어 자신이 자극하여 스토리의 결을 풍성하게 만드는 것. 왜냐하면 스토리에서는 결국 감동이 중요하고, 개연성이라는 것이 중요해지는 법이니까. 

그러므로 이렇게 놓고보면 사실 마지막의 반전은 반전이 아닌 셈이다. 즉 그 반전의 목적은 관객을 다른 결말로 이끌기 위함이 아니라, 이 2시간 동안 본 이야기 자체조차도 결국은 거대한 거짓말, 혹은 만들어진 이야기였음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 반전 그 자체의 전개 과정만 놓고 보아도 알 수 있다. 범인으로 의심받는 남자가 있고, 그에게는 정황증거밖에 없다. 그러나 그 범죄를 입증하려는 쪽은 무엇인가 영화내내 수상쩍은 구석이 있는 것처럼 보이고, 남자는 자신이 범인이 아님을 계속 항변한다. 이 영화에 어떤 반전이 있다고 할 때 당신이 익히 상상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남자가 결국 범인이 아닌 것은 당연히 반전이 될 수 없다(그게 반전이라면 검사측에게 영화 내내 그렇게 뭔가 미심쩍은 뉘앙스들을 켜켜이 쌓을 이유가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상가능한 선택지는 단 하나밖에 남지 않는다. 그러나 당연한 말이겠지만, 예상가능한 선택지는 물론 반전으로서의 기능은 할 수 없다. 그러므로 한편으로 예상가능한 선택지를 고의로 하나밖에 남겨두지 않은 이 이야기를 <프라이멀 피어>나 여타의 반전극과 비교하는 것 또한 조금은 민망한 일이 될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이 영화가 대중영화가 아니었다면, 조금은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마지막에 그 친절한 설명적인 결말보다는, 강변호사의 쇼가 펼쳐질 때 뒤도 돌아보지 않고 어떠한 미동도 없이 살짝 미소만 짓는 한철민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영화를 끝내는 것은 어땠을까. 진실은 저 너머에...)

결국 이 영화는 진실이라는 것은, (정황적인) 이야기들 속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것을 증명할 아무 실체가 없이 오로지 이야기만으로 이야기되는 것의 무서움을 이 영화는 말하고 있다. 영화 속 강변호사는 재판에서 승리했지만, 결국 그 자체로는 잘못된 결론을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패배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는 승리했다. 정황증거로만 판단하는 것이 어떤 잘못된 판단을 야기할 수 있음을 스스로의 행위로 증명했기 때문이다. (즉 이 영화의 식대로라면 당연히 그 반대의 경우 - 범인이 아닌데, 범인으로 형을 받는 경우 - 를 상정할 수 있다.) 그러나 아마도 보다 무서운 점은 우리는 그런 속에서도 무엇인가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야기를 조금 돌려 질문을 한 가지 해보면, 만약 우리가 이 영화의 배심원이라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더구나 배심원이라면 이 영화를 본 관객들보다 더욱 제한적으로 사건을 알 수 밖에 없다. 그 제한적인 사실만을 놓고, 배심원은 그리고 더 넓게 보면 어떤 특정의 사건을 바라보는 우리들은 아주 작은 문제에서부터 한 사람의 생과 사가 걸린 중요한 문제에 이르기까지 어떤 판단을 내린다. 그 판단들에서 생겨나는 어지러운 균열들을 전작 <약탈자들>에서부터 이 영화 <의뢰인>에 이르기까지 감독은 흥미로운 이야기의 외피를 두르고 그려나간다. 본인이 하고싶은 이야기를 하면서 대중영화로 자연스럽게 안착하는 좋은 본보기.  




- 2011년 11월, CGV 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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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류가나 2011.12.01 15: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고 갑니다
    더미가 의미없이 왜 나왔을까 궁금했는데 맥거핀 이라는 단어 하나로 모든 게 설명이 되버리네요 감독의 전작도 무척 보고싶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