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용 곤충 스카우팅 리포트

The Book | 2011. 4. 18. 22:45 | Posted by 맥거핀.

당신은혼자가아니에요
카테고리 시/에세이 > 나라별 에세이 > 영미에세이
지은이 조슈아 아바바넬 (함께읽는책,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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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키에르케고르가 알면 썩 좋아하지 않을 제목을 가지고 있는 이 책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는 그 제목이 의미하는 바대로, 지금도 당신의 아주 가까이에서, 혹은 당신의 살 속에서 멋진 성찬을 즐기고 있을 가정용 곤충들을 설명하고 있다. 빈대, 이, 진드기, 파리, 개미, 바퀴벌레, 흡혈진드기 등등의 이 가정용 곤충들은 인간의 거의 모든 부분을 공격하고, 나무를 뜯어먹고, 애완동물의 피를 빨아 마시고, 수많은 2세들을 낳고, 서로서로를 잡아먹기도 하고, 이곳저곳 쉴새없이 뛰어다니면서 소동을 불러 일으킨다. 그러나 우리네 인간들은 사실 그것을 거의 감지하지 못한다. 우리들은 눈에 보일 때마다 그들을 때려잡고, 가끔은 보이지도 않지만 후려치기도 하고, 이상한 가려움증을 느끼면서 손톱 끝으로 긁어내기도 하고, 더이상 못견디면 때로는 '벌레와의 전쟁'을 선포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극히 일부분에 대항하는 것일 뿐이다. 예를 들어 이 책에도 그런 내용이 나오지만, 우리가 어떤 벌레 한 마리를 우연치 않게 발견한다면, 우리가 보지 못하는 그 근처에는 그 개체가 분명히 한국시리즈 7차전을 관람하는 인파만큼 북적거리고 있으리라고 장담해도 좋다.

사실 이 책의 제목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보다 그 부제 '가정용 곤충에 관한 은밀한 에세이'는 이 책의 보다 많은 것을 설명하고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벌레들은 가정용 곤충(Household Bugs)들이다. 그리고 그 '가정용'이라는 말이 함의하는 것처럼 이 책은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 인간의 관점에서 쓰여진 책이다. 사실 이 가정용이라는 말이 어떻게 보면 참 웃긴 것이, 어떠한 '가정용 동물(가축)'도 우리에게 그렇게 불러줄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들은 그저 우리 인간의 필요에 의해서, 그들에게 '가정용'이라는 명찰을 붙이고, 우리 곁에 놓아두고, 우리 멋대로 인간과 가장 친한(!) 동물의 지위를 그들에게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재미있는 점은 이 '가정용'이라는 말이 '곤충'이라는 말 앞에 붙을 때에, 그 관계는 역전되는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이다. 동물의 경우와는 달리, 우리들은 이번에는 그들이 최대한 우리들에게서 멀어지기를 바란다. 바퀴벌레 구이나 불개미 만두를 좋아하는 몇몇 사람을 빼놓고는, 우리 모두는 그들이 우리 눈에 최대한 띄지 않기를 바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곤충들이 철저하게 그들의 필요에 의해서 우리 인간들의 곁에 달라붙어 있다. 그러므로 '가정용 곤충'이라는 말은 사실 어쩌면 다음과 같이, 즉 우리 인간들이 사실은 이 곤충들의 '가정용 숙주'라는 것으로 바뀌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 책은 다음과 같은 익살스러운 경고문구를 표지에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은 생물학 서가에 놓일 책이 아닙니다. 당신과 한집을 쓰는 '작은 가족'에 대한 은밀한 에세이입니다.' 위 경고문구가 말하는 바대로, 이 책은 생물학적 도감이라기 보다는, 위트를 담은 에세이에 가깝다. 예를 들어 각 곤충의 소개 말미에는 이 곤충들을 퇴치하기 위한 방법이 소개되고 있는데, 그 소개방법을 그대로 따라하다가는 당신은 아마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사실 그러나 이 책의 방법들을 탓할 것도 못되는 것이, 기생생물을 퇴치하는 가장 완벽한 방법은 그 숙주(바로 당신!)를 없애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이 책의 내용들을 과학적인 관점에서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보다는 일종의 호러 영화(ex. 에일리언)를 보는 마음가짐으로 그저 나와는 먼 일이라고 상상하고 읽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에일리언이 당장 내일 지구를 습격할 것이 명백하다면 우리가 그 영화를 즐길 수 있겠는가. 그 영화를 즐길 수 있는 이유가 그것이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고 믿기 때문에 가능한 것처럼, 우리가 이러한 일이 지금 우리 곁에서 일어나지 않는다고 믿는 것이 이 책을 훨씬 즐겁게 즐기는 방법이다. 

개인적으로는 책을 읽는 내내 TV에서 하는 <스펀지>를 보는 느낌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 프로그램을 썩 좋아하지 않는데, 왜냐하면 도대체 그 정보들이 우리에게 유용한 것인지 전혀 공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병 속에 있는 달걀을 뒤집는 방법을 알 수 있다고 해서, 우리 삶의 뭔가가 달라질까. 잘 모르겠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이 가정용 곤충들의 아주 세부적인 생김새와 그들이 어떤 먹이를 좋아하는지 안다고 해서 우리가 이 곤충들과의 동거를 더 잘해낼 수 있을까. 역시나 잘 모르겠다. 어차피 그들과 같이 살아가야만 한다면, 어쩌면 모르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 

덧.

이건 조금 다른 얘긴데, 요새 프로야구 스카우팅 책자를 열심히 보고 있다. 게임을 자주 볼 수 없으니, 그 대안으로 그렇다면 책이라도 사서 보자,는 생각이 들어서 보고 있는데, 꽤나 재미있다. 그래서 그런 건지 몰라도 이 책을 읽으면서 왠지 이 책은 가정용 곤충들의 스카우팅 리포트같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특성, 습관, 그리고 상세한 사진, 그리고 (프로야구 스카우팅 리포트와 같이) 특정의 관점을 가지고 있지 않고 일종의 백과사전적이라는 점에서. 그래서 그저 재미로 적어보는 이 책에 나온 가정용 곤충들의 스카우팅 리포트. 인간이라는 투수를 상대로 한 타자 편이다. 컨택(어떤 범위에 나타나는가), 장타력(얼마나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는가), 타석에서의 끈질김(얼마나 퇴치하기 어려운가)라는 관점에서.

빈대: 전천후로 타구를 보낼 수 있는 스프레이 히터이다. 장타가 좋은 편은 아니나, 경기 후반 치명적인 뜬금포를 종종 터뜨린다. 타석에서 아주 끈질기며, 어떠한 상황에서도 볼을 골라내어 1루로 출루할 수 있다. 발도 빠르니, 전형적인 1번타자 유형.

이: 투수가 비듬을 발라 던지는 스핏볼을 아주 좋아한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타격이 좋은 편이라 보기 힘들고 장타력도 그다지 뛰어난 편은 아니다. 타석에서도 볼을 길게 보지 못하고 쉽게 휘두르는 스타일. 맞춰잡는 투구가 필요하다.

집먼지진드기: 이와 마찬가지로 비듬스핏볼을 아주 좋아한다. 장타력은 별로 없으나 타석에서 선구안이 아주 좋아, 낮은 타율에서도 높은 출루율을 자랑한다.

모낭진드기와 옴진드기:  무시무시한 생김새로 타석에서 투수에게 위압감을 주며, 넓은 컨택 범위와 한 시즌 20개 이상의 홈런을 칠 수 있는 장타력을 소유하고 있다. 전형적인 중거리 타자 유형.

서양좀벌레와 집게벌레: 언더핸드와 같은 특정 유형의 투수(책)에만 강점을 가지고 있다. 타석에서도 상당히 인내심을 가지고 있는 편이니 경기 후반 대타로 사용하면 좋다.

파리: 투수의 구질이 더러우면 더러울수록 좋은 타격을 자랑하는 특이한 유형의 타자이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플라이볼을 많이 양산하는 타자이며, 결승타를 유독 많이 쳐낸다. 실투는 아주 치명적일 수 있다.

개미: 투수의 공보다는 투구시의 습관이나 버릇 등을 관찰하고, 그것을 타격으로 연결해낸다. 컨택이 좋지는 않으나, 맞았다 하면 장타이다. 타석에서도 아주 끈질긴 편이며, 연습벌레, 일명 '기계'로 알려져 있다. 집안 대대로 야구를 해온 야구 가문.

바퀴벌레: 명예의 전당에 오를 수 있는 가정용 곤충계의 이대호(심지어 이대호와 체형도 비슷하다). 투수에게 아주 공포스러운 타자로 각인이 되어 있으며, 뛰어난 선구안을 자랑하며, 어떤 투수의 어떤 볼도 가리지 않는다. 컨택, 장타 모두 뛰어난 타자로 지난 수만년간 좋은 시즌을 이어오고 있으며, 이번 시즌도 당연히 기대된다.

흰개미: 서양좀벌레와 같이 특정 유형의 투수(나무)에만 강하다. 역시 특정 유형의 투수가 등판했을 때 기용할 수 있는 타자.

벼룩과 흡혈진드기: 넓은 컨택 범위를 가지고 있으며, 거의 모든 구질에 강점을 가지고 있다. 힘이 아주 좋아 단타보다는 주로 장타를 생산하는 유형. 벼룩의 경우 넓은 외야수비를 자랑하는데, 특기는 펜스 위로 점프하여 홈런 타구를 걷어내는 것. 일명 '홈런 도둑'.

의류해충과 부엌해충: 타격보다는 대주자, 대수비 요원으로서 강점을 가지고 있다. 단, 작전 수행 능력이 그다지 뛰어나다고 볼 수는 없는데, 감독의 지시를 거의 안듣고 스스로의 판단으로 게임에 임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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