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스맨 : 시크릿 에이전트, 매튜 본

Ending Credit | 2015.02.25 12:54 | Posted by 맥거핀.

 

 

(영화의 내용과 결말이 들어 있습니다.)

 

 

<킹스맨 : 시크릿 에이전트>(이하 <킹스맨>)가 어떻게 재미있는지, 혹은 얼마나 글래머러스한 영화인지를 다시 이야기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또한 영화 속 소품들의 럭셔리함이나, 킹스맨 요원 해리 역을 맡은 콜린 퍼스의 수트빨 같은 것을 이야기하는 것도 내 능력을 넘어서는 일이다. 다만 나는 영화 속에서 나의 흥미를 끌었던 부분에 대해 그저 간략하게 이야기하고 싶은데, 예를 들어 영화 속에 등장했던 "현실은 영화와 다르다."와 같은 대사들이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이 대사는 영화에서 두 번 나온다. 처음 등장하는 것은 이 영화의 터닝 포인트라고 할 수 있는 해리(콜린 퍼스)의 교회 씬이다. 해리가 악당 발렌타인(사무엘 L. 잭슨)의 계략에 빠져 교회 안에서 광란의 살육을 벌인 후 어느 틈에 정신을 차리고 교회 밖으로 나오자 그를 기다리고 있던 발렌타인이 그에게 총을 쏘기 전에 그에게 빈정대면서 이 말을 건넨다. "현실은 영화와 달라." 두 번째는 영화가 끝나기 직전이다. 주인공 에그시(태론 에거튼)가 발렌타인의 경호원 가젤(소피아 부텔라)과의 최후의 일전을 벌이며 그녀를 제거한 후, 악당 발렌타인을 처치하기 직전, 발렌타인은 이게 영화라면 원래 이쯤에서 영화 속 주인공들이 악당에게 하는 대사가 있지 않느냐고 이죽거린다(이 영화에서는 '영화'라는 매체 혹은 다른 영화에 대한 언급이 자주 나오는 편인데, 예를 들어 악당 발렌타인은 그 언급의 빈번함으로 볼 때 스파이 영화 애호가 정도로 설정되어 있는 듯 하며, 해리가 에그시를 요원으로 끌어들이려 할 때 <프리티 우먼>이나 <마이 페어 레이디> 같은 영화들이 언급되기도 한다. 물론 이 영화가 <마이 페어 레이디> 같은 영화와 주제의식을 공유하는 지점이 있기도 하지만, 이 영화에 이렇게 '영화'라는 것이 언급되는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 때 에그시는 발렌타인에게 그 대사를 되돌려준다. "현실은 영화와 다르다." 그리고 발렌타인도 그 대사에 수긍한다.

 

위에서 언급한 광란의 살육 축제(적절하지 않은 표현이지만, 사실 이보다 적당한 말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가 벌어지는 교회에서의 씬은 어떤 액션의 구성이나, 카메라 워크, 혹은 씬 전체의 흐름 같은 부분에서, 많이 언급되었듯이 분명히 매우 인상적이며, 매혹적이다. 그러나 사실 내용적으로 보자면 조금 관객을 뜨악하게 만드는 부분도 있다. 흔한 말로 이를 일종의 반전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는데, 왜냐하면 여기에서 광란의 살육을 벌이는 주체가 지금까지 영화의 전반부에서 선(善)의 편에 선 좋은 멘토 해리이기 때문이며, 그에게 죽임을 당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비록 약간의 극단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해도) 그렇게까지 죽을 이유는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즉 여기에는 선한 인물이 무고한 사람을 (그것도 대량으로) 살상한다는 어떤 아이러니가 있다. 물론 영화 속에서 선한 인물이 어떤 계기로 인해(그것이 선한 인물 본인의 의지와 무관한 것이라도) 돌변하여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는 경우는 많다. 그러나 그런 경우에는 대부분 이전에 어떤 암시가 주어지거나, 혹은 그 장면의 처리가 상당히 조심스럽게 진행된다. 그런데 이 영화 <킹스맨>에서 가장 유쾌하게 묘사된 씬 중에 하나는 이 씬이다. 이 장면은 화려하고 즐거운 무엇처럼 묘사되었다. 그리고 이 뒤에 발렌타인의 부기가 따른다. "현실은 영화와 다르다."

 

즉 간단히 말해서 이 씬은 일종의 영화적 규약, 혹은 믿음을 무너뜨린다. 선한 이는 선한 이를 해치지 않는다는 그런 믿음 말이다. 물론 선한 이가 돌변하여 선한 이를 해칠 수도 있지만, 그렇다면 그 때에는 물론 그를 더 이상 '선한 이'라 부를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 <킹스맨>에서는 조금 다른 것이 이 장면이 이어진 후에도 해리는 여전히 선한 인물로 남으며, 영화적 서사흐름은 이 씬으로 전혀 깨지지 않는다. 아니 도리어 배가된다. 다시 말해서 이 씬이 건드리는 것은 인물이나 서사가 아니라, 어떤 '영화적 규약' 혹은 '영화'라는 것에 대해 물음이다. 즉 발렌타인이 이 때 현실이 영화와 다르다고 말할 때, 그것의 방점은 '영화'보다 '현실'에 찍혀 있으며, 발렌타인은 '이제 그런 것은 더 이상 영화가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해리의 세계, 즉 이 교회 씬 이전까지 이 영화의 기본 바탕에 깔려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스파이 영화의 글래머러스함, 즉 수트, 각종 소품, 매너, 느끼함, 단정함, 매력적인 여자, 신사, 예의, 술,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그 밑바탕에 깔려 있는 대의를 위한 희생과 같은 것들이다. 이는 단지 이 영화에 국한된 것이라고 말할 수 없는데, 왜냐하면 위에 언급하였듯이 발렌타인은 스파이 영화의 광팬이며, 그가 지금까지 보아왔던 스파이 영화란 다니엘 크레이그 이전의 제임스 본드 시리즈로 대변되는 그런 스파이 영화일 것이기 때문이다. 즉 발렌타인이 현실이 영화와 다르다고 할 때, 이는 이런 스파이 영화는 이제 더 이상 '현실적인 영화'가 아니라는 말처럼 들리며(왜냐하면 결국 발렌타인도 영화 속 인물이기 때문이다), 현실적인 스파이 영화는 이제 다니엘 크레이그 같은 피로한 노동자 유형의 007이 등장하거나, 제이슨 본과 같은 보다 현실에 발을 디딘 것 같은 인물이 등장하는 영화라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한편으로 그것이 물론 실제의 스파이 영화의 흐름에서 생겨난 '현실'이기도 하다. 이러한 새로운 타입007, 혹은 제이슨 본과 같은 새로운 유형의 스파이는 기존 스파이 영화에 대한 반동으로 생겨났으, 이러한 류의 영화들은 항상 이것이 '리얼' 즉 현실임을 강조하며 기존 스파이 영화의 글래머러스함에 질린 관객들을 끌어들였다. 그런데 세상일이 늘 그렇듯이 반동은 반동을 불러오며, 첨단은 복고를 낳는다. 이 영화 <킹스맨>은 이런 반동의 흐름에 다시 반동을 꾀하는 영화다. 발렌타인이 영화의 중간에 '이러한 것은 이제 영화가 아니야. 현실은 달라'라며 기존의 스파이 영화들에 영화적인 죽음을 선고할 때, 다시 그 발렌타인에게 죽음을 선고하며, '아니 그렇게 말하는 너도 영화잖아. 결국 영화란 원래 그런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즉 처음 발렌타인이 해리에게 "영화와 현실은 다르다."라고 말할 때 그 방점이 '현실'에 찍혀 있다면, 두 번째 에그시가 발렌타인에게 그 말을 건넬 때에는 그 방점은 '영화'로 옮겨와 있다. 그것을 뒷받침해주는 몇몇 구성들이 있는데, 예를 들어 영화의 초중반부 에그시와 록시 등이 킹스맨이 되기 위해 받는 훈련들은 리얼인 것처럼 포장되었지만(훈련 중 죽을 수도 있다고 겁을 주며, 마치 실제로 그런 것처럼 보여지지만), 사실은 시뮬레이션이며(결국 영화는 일종의 고도로 조직된 시뮬레이션이다. 예를 들어 기차길에 묶인 상태에서 비밀을 털어놓으라고 강요받는 영화 속 훈련처럼 말이다), 해리가 교회에서 살육을 벌일 때에 그것을 모니터로 바라보는 에그시나 멀린(마크 스트롱)의 뜨악함이 있으며(즉 이 장면에서 이를 멀린이나 에그시, 그리고 악당 발렌타인마저도 마치 영화처럼 모니터로 바라본다는 것이 재미있다. 멀린이나 에그시의 화면을 바라보는 뜨악한 표정이 새로운 유형의 스파이물을 보는 관객의 뜨악함이라는 이 영화의 조롱이 여기에 들어있지 않을까), 결국 에그시는 기존 스파이 영화의 어떤 장면들을 비슷하게 재현한 다음, 악당을 물리치고 사랑을 쟁취한다(예를 들어 기존 제임스 본드 시리즈에서 상당 부분 영화의 마지막이 결국 007이 여자를 후리는 것(그다지 좋은 표현은 아니지만)으로 끝났음을 생각해 본다면 말이다. 에그시가 발렌타인의 소굴을 부수는 마지막도 기존 본드 시리즈들을 꽤나 떠올리게 하는데, 그 영화들에서 항상 마지막 최후의 대결은 적의 소굴 한복판에서 이루어지기도 하거니와 적들의 하얀 위장복 같은 것도 연상시키는 부분이 있다).

 

물론 감독 매튜 본이 영리한 것은 복고가 단순한 과거의 재현이 되어서는 성공할 수 없다는 점을 알고 있다는 점이다. 거기에는 일정 부분 새로운 요소가 가미되어야 하는데, 그가 선택한 것은 이른바 병맛 컨셉, B급 감성이다. 예를 들어 발렌타인의 충복 가젤은 기존의 블랙플로테이션 영화 등에서 신체의 일부가 무기로 변형된 여성들의 계보에 넣을 수 있으며, 영화 속의 어떤 유머들(예를 들어 해리의 집 벽을 장식하는 선(SUN)지 같은 것들 말이다)이나 넘쳐나는 고어적 설정 등이 그러하다. 물론 그 고어적 설정들이 넘쳐나지만 잔인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또 한편으로는 그러한 B급 영화들이 기존에 구축해 놓은 구조에 빚진 것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이러한 B급 감성이 이러한 이 영화에 잘 결합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이 B급 감성과 이 영화의 이러한 메시지가 공유하는 지점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것은 무엇인가. 여러 가지로 말할 수 있겠지만, 편하게 예를 들어 말할 수도 있다. 우리가 어떤 고어나 피칠갑을 즐길 수 있는 것은 결국 그것이 현실과 적절한 줄타기를 행하기 때문이다. 즉 그것은 현실과 적당하게 비껴서 있다. 현실이 영화에 비척비척 밀고 들어올 때 그 쾌감은 높아질 수 있지만, 그만큼 관객의 자리는 위협받는다. 줄이 높아질수록 줄타기의 쾌감은 올라가지만 떨어질 때의 충격은 더 큰 것과 마찬가지다. 그것은 결국 영화는 '현실'과 다르다는 것이며, 영화는 영화라는 것을 인정하는 한에서, 그 줄의 높이를 어느 정도로 유지해야 하는가의 문제이다. 줄을 높일 수 있는 기술은 점점 발달하고 있지만, 그 떨어질 충격파를 계산할 정신은 여전히 빈곤한 것 같다.

 

 

덧.

내게 흥미를 주었던 캐릭터는 에그시나 해리보다는 악당 발렌타인인데, 이 영화의 발렌타인은 최근 몇몇 영화들의 캐릭터를 연상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이 천재 미치광이는 <인터스텔라>의 만박사나 <설국열차>의 윌포드와 같은 인물을 연상시키는데, 특히 윌포드와는 공유하는 지점들이 꽤 많다. 한정된 자원만을 소비하여야 하기 때문에 결국 인구를 줄이는 방법이 해결책이라는 그의 결론도 그러하거니와 그가 이를 위하여 내놓은 방법론, 즉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것도 그러하다. 그들이 공통적으로 자본주의의 끝에 서 있는 인물들이기 때문에 그런 것일까('설국열차'의 마지막 칸에 있던 윌포드, 그리고 0.1%의 플루토크라트 발렌타인).

 

 

 

 

 

- 2015년 2월, CGV 역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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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papierlune.tistory.com BlogIcon papierlune 2015.03.01 20: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그 대사들 기억납니다. "현실은 영화와 다르다". 꼭 2번 등장했고 에그시가 발렌타인에게 말했을땐 마치 해리를 대신해서 돌려주는 느낌이 들었어요. 영화보고 나서 정말 잠깐 그 대사가 생각났지만 이내 잊어버렸구요. 볼거리가 워낙 많은 영화다보니 그 대사들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볼 여지도 없었던것 같아요. 그리고 여기서 끄덕끄덕하며 글을 읽었네요. 솔직히 말하면 전 이 영화를 정말로 즐기지는 못했던 것같아요. 콜린퍼스의 수트발이 멋지고 그의 우산이 조금 탐났지만 그리고 물론 재미는 있었는데.. 즐기지는 못했습니다. 어쩌면 영화와 현실은 다른거잖아 라고 누군가가 내게 말할지도 모르겠어요. 후후

  2. Favicon of https://papierlune.tistory.com BlogIcon papierlune 2015.03.01 22: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방금 티스토리 앱을 설치하고 한 번 들어와봤어요. 스맛폰으로 첫 답글을 달아봅니다. 벌써 3월이라니! ^^;

  3. Favicon of https://noracism.tistory.com BlogIcon 맥거핀. 2015.03.03 16: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영화 보셨군요. 네 뭐 사실은 이런저런 생각하지말고 그냥 재밌게 보면 될 영화이기는 합니다. 저는 남성 관객들이 아주 좋아할 영화라고 봤지만, 의외로 여성 관객들도 재밌게 볼 수 있는 부분이 많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의외로 꽤 히트를 이어가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즐기시지는 못했다고 했는데, 어떤 B급 감성 같은 부분이었을까요. 저는 개인적으로는 약간 유머가 지나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하기는 했습니다. 블로그 글들도 보면 지나치게 잔인하다는 글들도 꽤 있더군요. 물론 잔인성이 다른 방식으로 유화되기도 했습니다만, 저에게도 약간은 필요이상으로 보였어요.

    오..근데 티스토리도 앱이 있군요. 뭐 근데 앱을 깔아도 앱에서 글을 쓸 수는 없을 것 같아서 저는 안 쓰게 될 것 같기는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