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IDF 영화 단상들 1 - 교차하는 순간들

Ending Credit | 2013.10.29 17:53 | Posted by 맥거핀.

EIDF(EBS 국제다큐영화제)에서 본 영화 단상들 첫번째.


부즈카시(Buzkashi!), 나지브 미르자, 2012

낯선 땅에서 벌어지는 낯선 스포츠에 대한 그러나 그렇게 낯설지만은 않은 이야기. '부즈카시'란 중앙아시아 유목민들이 벌이던 놀이에서 유래한 전통 스포츠로 타지키스탄에 널리 퍼져있다. 이는 죽은 염소를 땅에 놓고, 달리는 말을 타고 재빨리 그것을 '잡아채서' 정해진 곳까지 이동시키면 득점을 획득하는 게임으로, 많게는 백명이 넘는 인원(과 말)이 동시에 참여하기 때문에 매우 격렬할뿐더러, 늘 사고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도 또 그렇다고 해서 또 그렇게 무모한 위험만이 있는 것만은 아니며, 박진감과 스릴이 넘치는 게임이기도 하다. 영화 <부즈카시>는 이 '부즈카시'에 선수로 참여하는 세 사람의 이야기를 축으로 하여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개인 대 개인으로서 게임에 참가하는 전통의 방식을 고수하는 베테랑 챔피언 아잠과 현대식 훈련으로 팀을 짜서 게임에 참가하는 크루세드, 그리고 새롭게 게임에 참여하는 젊은 유망주 아스카가 그들이다.

여기에는 익히 보아왔던 충돌 지점이 있다. 전통적인 훈련 방식과 전통적인 게임 방식을 존중하고 그에 최선을 다하는 아잠과 현대적인 훈련 방식으로 새로운 전환을 꾀하는 크루세드의 충돌이 그것이다. 아잠은 팀을 짜서 훈련하고, 팀을 짜서 게임에 참여하는 크루세드 측을 '마피아'라고 부르면서 비난하고(일종의 팀으로서 게임을 하게 되면, 당연히 유리할 수밖에 없다. 화투판에 팀을 짜서 들어오는 것과 마찬가지다), 반면 크루세드는 한꺼번에 백명이 넘는 인원이 뛰어드는 현재와 같은 방식은 스포츠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의 꿈은 이 '부즈카시'가 올림픽 정식종목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젊은 유망주로서 그 한 가운데에 놓여 있는 아스카가 있다. 그는 아잠의 방식
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크루세드의 방식을 택할 것인가. 그러니까 이 <부즈카시>라는 영화의 미덕은 일종의 '이야기'가 살아있는 것에 있다. 특색을 가진 인물들과 그들의 충돌과 그 사이에서의 어쩔 수 없는 선택. 많은 영화들이 꿈꾸지만 사실 잘 만들어내고 있지 못한 것을 이 영화는 능숙하게 구사하고 있다.

영화가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이야기 상에서의 충돌 외에도 다른 충돌들도 잡아내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여기에는 모든 것이 느리게 흘러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 유목의 공간과 빠르고 격렬한 부즈카시가 보이는 충돌 같은 것이 있다. 격렬한 부즈카시를 보여주는 사이사이에 느린 호흡의 장면들 - 예를 들어 아잠이 산등성이를 뛰면서 훈련하는 장면을 먼 전경에서 정지된 카메라로 잡아낸다거나 하는 장면들 - 을 삽입하고, 아주 가까이에 붙어서 말과 사람들의 충돌을 보여주다가도 카메라는 언뜻언뜻 아주 뒤로 물러나 먼 발치에서 그 스포츠를 지켜보는 관객들의 표정을 느리게 살핀다. 이러한 정과 동의 충돌은 어쩌면 이곳 타지키스탄의 현재를 말해주는 것은 아닐까. 산과 양과 염소와 유목민만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곳에도 변화는 일어나고 있고, 느린 이곳에도 빠른 다른 것들이 점점 들어오고 있다. 크루세드의 훈련장에 울려퍼지던 빠른 비트의 음악처럼 말이다. 그러므로 영화의 마지막에 무엇인가 쓸쓸한 기운이 감도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빠른 변화 속에 이들이 언젠가 사라질 운명의 것임을 우리가 예감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그러나 그렇게 슬퍼할 것만은 아니다. 영화는 또 마지막에 새로운 탄생을 보여주기도 하니까. 아잠의 아들은 언젠가 의사가 될 것이고, 새로 태어나는 새끼 염소도 있으니까. 사라짐과 탄생이 교차하며 삶은 이어진다.


100m 위의 고독(The Solitary Life of Crane), 에바 웨버, 2008

에바 웨버의 이 27분짜리 짧은 다큐는 고공의 크레인에서 외롭게 일하는 기사의 하루를 다룬다. 영화가 취한 방법은 조금 색다른데, 영화가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크레인 위에서의 그들이 아니다. 사람 한 명 앉으면 꽉 들어차는 그 공간의 답답함이나 폐쇄성이 아니라,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그들이 보는 세계이다. 100m 위의 좁은 공간에서 그들은 세상을 관찰한다. 지상에서는 누군가가 집을 나서고, 집안을 청소하고, 옥상 위에서 파티를 즐기고, 혼자 앉아서 식사하고, 놀이터에서 아이들과 놀아주고, 비오는 퇴근길에 우산을 쓰고 귀가를 재촉하고, 전화로 누군가에게 화를 내고, 아무도 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며 방에서 옷을 갈아 입는다. 영화는 우리가 크레인 기사의 입장에서 그 세계를 같이 보기를 바란다. 혼자 들어가서 24시간이 넘게 앉아있어야 하는 좁은 크레인 위에서, 사람들을 100m 위의 고공에서 멀리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좁은 크레인 위에서 그들은 누구보다도 고독하다. 그렇지만 아이러니한 것은 그들이 일 외에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밖에 없기 때문에 그 사람들을 도리어 가깝게 느낀다는 점이다.

때로는 100m 위의 고독한 크레인 기사들은 어떤 이의 생활에 대해 누구보다도 많이 알게 된다. 그들이 매일 집안을 언제 청소하는지 알고, 그들이 밥을 주로 누구와 먹는지 알고, 누가 누구와 친한지 알고, 언제 일어나고 언제 잠자리에 드는지 안다. 그리고 그들이 때로 보이지 않으면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닌지 걱정하게 된다. 즉 역설적인 것은 그들은 고독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타인들을 바라보고 생각하게 됨으로서 고독하지 않게 된다는 사실이다. 반면 대부분의 우리는 시끌복잡한 지상의 세계에서 고독하지 않지만, 나 이외의 타인의 삶을 거의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점에서 고독할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어쩌면 진정으로 고독했던 것은 다른 많은 삶을 바꾸기 위해 그런 곳에 올라갔던 김진숙 위원과 같은 이들보다 한번도 그런 고공의 크레인을, 그리고 크레인 위의 사람을 생각해보지 않은 우리들일 것이다.) 마지막, 영화는 런던 시내에 올라가 있는 수많은 크레인의 모습을 보여주며 비춘다. 지상의 삶을 관찰하는 수많은 관찰자들이 그곳에 있다. 매일매일 어떻게 하면 새로운 것을 쌓아올릴까 고민하는 이곳 서울에는 아마도 그보다 훨씬 많은 크레인이 있을 것이다. 고공의 관찰자들이 거기에 있다. 그들은 우리를 보지만, 우리는 그들을 보지 못한다.


블랙 아웃(Black Out), 에바 웨버, 2012

늦은 밤, 불이 켜진 공터에 청소년들이 삼삼오오 모여있다. 뭐 그다지 놀랄 건 없다. 어느 곳에서나 어두워질수록 나이든 사람들은 어떻게든 집으로 가고, 반면 청소년들은 집을 나와 집에서 할 수 없는 것들을 하고 싶어서 안달하는 법이니까. 그런데 가까이에서 본 아이들의 모습은 조금 색다르다. 그들이 하고 있는 것은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는 것 같은 일탈 행위들이 아니고, 책을 읽고 공부를 하는 것이니까. 이곳은 서아프리카의 기니. 인구의 80%는 전기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고, 그나마 가동되는 전기도 발전소 시설의 낙후로 번번이 끊기기 일쑤이며, 아이들은 '전기를 지원해주는 집'이 부럽다고 말하는 곳이다. 시험 기간이 되면 아이들은 공항 근처로 모여든다. 시험 기간이 되면 우리네 도서관이 붐비듯이 그곳에는 공항의 공터가 붐빈다. 늦은 밤까지 불빛이 공급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비행기 소음과 날벌레들 옆에서 그들은 수학 공식을 외우고, 인체의 기관을 살피고, 주요한 세계사의 사건들이 일어난 년도를 외운다. 그러므로 제기되는 것은 왜 이렇게 환경이 열악한가라는 물음보다도, 이러한 환경 속에서 그들이 왜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려고 하는가라는 물음이다.

사실 어떻게 보면 그 두 가지의 물음은 연결되어 있다고 볼 수 있는데, 그것을 영화는 두 가지의 교차하는 축을 이용해서 보여준다. 하나는 기니의 열악한 현실이다. 정치는 군부 쿠데타 등으로 불안정하고, 발전소를 비롯한 제반 시설들은 낙후되어 있으며, 풍부한 자원들은 거의 모두 외국으로 반출되고 있다. 그리고 다른 한 축은 그러한 현실을 보고 공부하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들이다. 그러므로 아이들의 꿈은 대부분 공무원이나 정치인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나라가 정치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안정되기를 바라며 그런 세상이 오게 하기 위해 나름대로 애쓰고 있다. 공항의 불빛 속에서 공부를 하면서 말이다. 그것을 영화의 마지막은 보여주는데, 학교의 최종 시험일에 아이들은 시험을 치르고 성적은 학교의 벽에 나붙는다. 그러나 바로 그 날 라디오에서는 대통령궁이 괴한의 공격을 받아 파괴되고, 대통령은 피신했다는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다. 불안정한 정치에 조그마한 희망을 가져오리라 여겨졌던 대통령이 말이다. 그렇게 희망과 절망이 교차한다.

희망은 늘 무엇인가에 공격을 받는다. 아이들의 공부를 하겠다는 희망은 때로는 블랙 아웃(정전)에, 그리고 때로는 공부를 하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부모들의 뜻이나 가족을 돌보고, 돈을 벌어야 하는 경제적인 부분 같은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힌다. 그러나 그러한 아이들을 가르치는 학교의 늙은 선생님은 힘주어 말한다. 삶의 본질은 희망이며, 희망 없는 삶은 죽음이라고 말이다. 희망의 친구는 늘 신념이다. 그 희망이 이루어지리라는 신념에 희망은 살아남고 삶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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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인가가 교차한다. 느림과 빠름, 정과 동, 전통과 현대, 이전 세대와 미래의 세대. 혹은 고독하지만 타인을 보는 사람들과 고독하지 않지만 타인을 보지 않는 사람들. 혹은 희망 없는 현실과 희망을 만들어내려는 노력. 좋은 다큐멘터리는 그렇게 교차하는 것들을 잡아내 그 교차점들과 가까워지는 것 혹은 멀어지는 것을 지그시 살펴보도록 함으로서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숙고하게 한다. 물론 그 무엇인가 중의 하나는 그 다큐멘터리를 보는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서 교차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게 하는 것이 될 것이다.



- 2013년 10월, 인디스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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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condolences.tistory.com BlogIcon 애도가 2013.11.10 15: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블랙아웃 만 봤는데 인간본연의 욕망과 아프리카에대해서 다시 생각해볼수있는기회가되더군요...다른 다큐도참좋더라구요 비틀즈다큐.특히저는 구글북스다큐 추천해드려요...보고나면..구글싫어진다는ㅋㅋㅋ

    • Favicon of https://noracism.tistory.com BlogIcon 맥거핀. 2013.11.10 23: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구글 북스 라이브러리..그때 보려고 했는데 매진이라서 못봤어요. 구글은 저도 썩..구글에 돌아다니는 저의 예전 여러 흔적들을 다 없애고 싶다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