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에서 미래를 보는 것.

The Book | 2010. 11. 21. 01:51 | Posted by 맥거핀.
거꾸로보는고대사민족과국가의경계너머한반도고대사이야기
카테고리 역사/문화 > 한국사 > 한국고대사
지은이 박노자 (한겨레출판사,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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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는 한국사회에서 특이한 존재이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나, 한국 고대사를 전공하고, 한국에 귀화하여 '블라디미르 티호노프'가 아니라, 한국인 '박노자'가 된 그의 이력도 그러하지만, 그가 한국 사회에 직격으로 쏟아내는 비판들을 통해서도 그러하다. 박노자는 항상 우리에게 고정관념을 탈피할 것을, 우리를 둘러싼 몇 겹의 사회적 장벽들을 뛰어넘어 사고하기를 강변한다. 그의 발언들은 한국의 정치적인 문제에서부터, 사회적 제도의 문제, 지식인 사회의 문제, 스포츠나 생활 습관을 대하는 자세에 이르기까지 거의 한국의 전 사회에 걸쳐져 있다. 그리고 그는 거침없이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으며, 때로는 가끔 지나치다 싶은 데까지 나아가기도 한다. 그런 면에 있어서, 그는 한국 사회에 분명히 필요한 존재이며, 의견이 존중되어야 마땅한 인물이다. 한국인이면서도, 진정한 외부자의 시선을 자처하며, 우리 사회를 들여다보고, 새로운 각도에서의 해결책을 제시하는 역할을 그보다 잘해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그의 주종목인 고대사에서 '다르게 보기'를 자처하고 나섰다. 모스크바 국립대학에서 고대 가야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이래로, 그는 한국 고대사에 대해 꾸준히 연구하고, 글을 써왔다. 주간 <한겨레 21>에 꾸준히 연재해온 "거꾸로 보는 고대사"라는 칼럼도 그 중의 하나인데, 이번에 책으로 묶어져 나왔다. 이 칼럼들에서 그가 원하는 것은 사실 이 제목에 농축되어 있다. 즉, 기존에 우리가 가지고 있던 고대사에 대한 여러 지식들에 의문을 가져보자는 것. 학교 교육을 통해 가져온 고대사에 대한 어떤 인식들을 이번에 '거꾸로 보는' 작업들을 통해 다른 시각에서 살펴보자는 것이다.

물론 그간 다른 시각에서 우리의 고대사를 살펴보자는 논의들이 지속적으로 전개되어 왔다. 특히 기존의 주류 학계의 사관, 혹은 식민주의적 사관을 벗어나고자 하는 민족주의적 시각들을 기반으로 한 논의들이 그렇다. 그러나 박노자는 여기에 일침을 가한다.

세계 각국의 민족주의적 사학에는 한 가지 놀라운 공통점이 있다. 근현대사를 서술할 때 '우리들의 피해'를 강조하여 민족/국민의 상(像)을 역사적 정통성이 있는 '피해자'로 그리면서, 고대사의 상(像)은 '우리들의 위대성' 위주로 그린다는 점이다. 근현대사에서 '우리'가 타자를 침략했다면 그것은 '우리'의 정통성을 훼손하는 일로 인식되지만, 고대사에서는 위대한 정복군주들이 '우리'의 자랑거리가 되곤 한다. (p. 10)

그러나 오해가 없어야 할 것은 박노자의 이런 논의가 어떤 재야사학자들의 민족주의적 사관을 공격하고, 올바름을 가장한 '우리 역사 깎아내리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박노자의 논의는 그보다는 어떤 제3의 시각을 향해 있다. 그것은 이제 우리의 고대사를 바라보는 해석의 시각이 미래의 시각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즉 기존의 고대사를 해석하는 시각이, 지배계급 중심적인 시각이 반영된, 우리 민족의 위대성을 표출하여 국민국가로서의 정체성을 만드는 것이었다면, 이제 새로운 시각은 우리의 고대사를 다르게 해석함으로써 동북아시아의 새로운 세계 질서를 만들어가기 위한 기초를 닦아나가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오늘날 지배계급의 팽창적 야망이 아닌 다수 한반도인들의 진정한 이해관계에 맞는 고대사를 지향한다. (중략) 지금 우리의 과제는, 지역 내의 이웃나라들과 보다 잘 어울리고, 다양한 소수자들에 대한 관용을 가지고, 피지배계급이 지배계급의 영향력을 견제할 수 있는, 성숙한 동북아시아의 사회민주적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중략)
한 마디로, 이 책에서 다루고자  하는 것은 '우리 선조들의 고대 국가들의 위대성'이 아니다. 고대 한반도를 둘러싼 지역에서 벌어지는 물적, 인적, 사상적 흐름, 국가가 아닌 민중을 비롯한 한반도 주민의 다양한 계층, 집단이 서술 대상이다.
(p. 13-15)



우리가 가진 고대사에 대한 기존의 지식들을 깨뜨리기 위해 박노자는 계속 묻는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다. 1부에서는 "우리는 만주의 주인이었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고조선이 중앙집권적 국가가 아니었음을 밝히며, 따라서 고조선에 의한 만주의 영토적 지배는 일종의 오해였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낙랑 및 한사군을 일종의 침략 세력으로 보거나, 고구려를 강대한 제국으로만 보는 시각에 문제가 있음을 밝히기도 한다. 2부에서는 "신라는 민족의 배신자였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을 하나의 민족으로 보는 시각의 위험성을 보여주며, 그 당시의 외교적 관계를 염두에 두며 당과 발해 등의 주변국가까지 포괄하여 전체 구도를 볼 것을 주문하고 있다. 즉 이러한 박노자의 시각으로 보면 통일 신라 역시도 단일민족이나 종족으로 보기는 어려운 것이다. 3부에서는 "일본은 언제나 우리의 적이었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임나 일본부설이나, 왜와 백제의 관계들을 다시 살펴보고 있다. 이를 생각하는 데에 있어서, 식민주의적 관점이나, 민족주의적 관점에 따른 시각, 즉 후대의 역사로 비롯된 일종의 콤플렉스적 시각들을 배제하고, 중립적인 시각에서, 그 당시의 맥락을 살펴볼 것을 주문한다. 마지막 4부에서는 고대의 성(性)문화나 민중의 생활사를 살펴보는 글들을 통하여, 기존의 고대국가를 살펴보는 시선들이 후대의 시각들에 의하여 새롭게 '창조'된 것임을 밝히면서, 고대 국가가 단순히 종교와 전제정치의 억압만이 존재하던 곳이 아니라, 사적 소유와 정치적 발언이 허용되던 활력의 국가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이 가치를 가지는 것은 위의 내용들에 의해서이기도 하지만, 사실 다른 부분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지점도 있다. 그것은 고대사 연구, 그 자체에 대한 박노자의 시각을 생각해봄으로써 가능하다. 그것은 아마도 고대사 연구란 '사실'의 문제라기 보다는 '해석'의 문제에 가깝다는 것을 밝히는 과정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박노자는 "역사쓰기는 늘 취사선택의 과정이고, 늘 서술 주체의 시각이 개입하게 돼 있다"라고 말하며, 머리말을 통해 자신이 고대사를 어떤 방향으로 해석할 것인가를 명확하게 밝히며, 이것이 무엇을 위한 것임을 말하고 있다. 또한 상당수의 본문에서도 명확한 결론을 내리기 보다는 이러한 방향으로 추측이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식으로, 조심스럽게 독자를 유도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의 고대사 논의들은 그렇지 않다. 그 논의들은 자신들의 '해석의 시각'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를 독자들에게 숨기며, 마치 명확한 사실만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독자를 이끌어가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명확한 사실이란, 사실 얼마나 명확한 것인가. 고대사의 많은 자료들은 여전히 베일에 감추어져 있으며, 혹여 베일을 벗었다 할지라도, 그것에는 후대의 다른 시각들이 새롭게 덧붙여진 경우들이 많다. 또한 그 당시의 명확한 사실을 기술했다 할지라도, 그것을 어떠한 시각에서 기술했는가에 따라서 해석의 여지란 무한한 것이다. 예를 들어 지금 한국과 미국의 관계를 기술한 몇 개의 글들만이 1000년후의 사람들에게 공개된다면, 그들은 한국과 미국의 관계를 어떻게 해석할 수 있는 것인가. 혹자는 촛불 시위를 예로 들며, 한국과 미국이 적대적이었다고 할 것이며, 혹자는 미군이 한국에 주둔한 것을 들며, 한국이 미국의 식민지였다고 밝힐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고대사를 이야기하는 데에 있어서, 박노자처럼 조심스럽게, 또한 자신의 해석 의도를 밝히는 것이 차라리 나을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박노자 역시 대다수의 고대사학자들처럼 일부의 자료들을 편의적으로 취사선택하는 경향이 있으나, 그것은 이러한 맥락에서는 이해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박노자 글들은 앞에서도 논의하였지만, 미래를 지향하고 있다. 최근 며칠간의 아시안게임으로 촉발된 대만의 반한 시위와 그에 대한 우리나라 네티즌들의 경멸적인 대응을 보며, 이러한 것의 이면에 들어있는 것들을 생각해 보게 된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러한 것들에는 분명히 그간 우리의 역사교육이 초래한 일말의 사고관이 개입되어 있다는 것이다. 반만년 역사의 민족적 자긍심만을 강조하는 기존의 역사교육을 받아온 대다수들이(우리 및 대만 모두) 그런 일방적인 시각을 가지지 않을 도리란 없을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박노자와 같은 미래 지향적인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적어도 당신이 그런 대만의 시위에 맞서서, 우리도 대만의 국기를 불태우는 것이 해결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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