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Recent Post»

Recent Comment»

« 2024/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긴 이력서

The Book | 2012. 7. 24. 23:05 | Posted by 맥거핀.
어쩌다사회학자가되어피터버거의지적모험담
카테고리 정치/사회 > 사회학
지은이 피터 버거 (책세상, 2012년)
상세보기





사회학을 공부하고 싶었다. 물론 뭔가를 공부하고 싶어한다고 말하는 대부분의 고등학생이 그렇듯 사회학이 무엇인지 잘 몰랐다. (당연하게도 지금도 잘 모른다.) 처음에 가고 싶었던 과는 신문방송학과였는데, 그건 왠지 더 자유분방한 학생들이 가는 과라고 생각했고, 가장 무엇보다도 점수가 모잘랐다. 그래서 사회학이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다. 어문학 쪽은 원래 잘하는 편이 못되었고, 사학과 같은 쪽은 재미있어 보이나 취직이 잘 안된다 그러고, 심리학 쪽은 취향이 아니고, 경제학이나 경영학 쪽은 평소에 전혀 재미를 느끼지 못했고, 뭐 사회학이 괜찮겠네,라고 생각했다. 뭐 잘 모르지만, 사회에 대해서 일단 전반적으로 어느정도 알게되지 않겠어, 나중에 신문방송학 쪽과도 연계해서 공부할 여지도 있을테고. 그래서 점수가 커트라인에 대롱대롱 걸렸지만, 호기있게 원서접수 첫째날 '사회학과'라고 쓰여진 원서를 들고 갔다. 그러나 이미 첫째날 사회학과는 경쟁률 1이 넘어 있었고, 나는 그만 자신감을 잃고는 체육관 바닥에 주저앉아 '사회학과'를 벅벅 지우고는 다른 과를 적어넣었다. 아직 1이 넘지 않은 조금은 더 만만해 보이는 과를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오판이었다. 마지막날 최종 확인한 경쟁률은 사회학과는 그 숫자에서 크게 변동이 없었고, 내가 지원한 과는 6대1이 넘어 있었다. 모두들 나처럼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이후 내 인생에서 사회학이 거론될 기회는 없었다. 그래서 이 책이 재미있겠다고 생각했다. 어느 노 사회학자의 유머스러운 지적 모험의 여정이라니. 사회학에 대해 어느 정도 알게 될 뿐만이 아니라, 뭐 그게 아니더라도 최소한 유머러스한 글쓰기에 대해서 배우게 되겠지.

그러나 이것도 오판이었다. 일단 이 책에 나온 것만 보자면 사회학이 어떤 학문인지 알 수가 없다. 책의 저자 피터 버거가 책 중간중간에 늘어놓는 사회학에 대한 단편적인 부분들이 있다. "사회학자는 어떤 종교적인 현상이 '진짜'인지 아닌지는 판단할 수 없지만, 그 현상의 실증적인 양상은 탐구할 수 있다.(p.91)""사회학의 분석적인 부분은 당연히 '가치 중립'적이어야 하지만, 그 실제 적용은 좀 더 인간적인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해야 도덕적으로 정당하다." 이런 부분만 놓고 보면 사회학의 임무는 어떤 사회현상이 좋다 나쁘다의 가치판단을 가지지 않고, 그 현상만을 탐구하되, 다만 그에 대한 적용, 즉 그 사회현상을 이야기하는데는 인간주의적 관점을 놓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그러나 사실 이 '인간주의'라는 말이 가지는 허구성을 우리는 어느정도 눈치채고 있다. '인간적인 사회'라는 것은 대체로 어느 특정의 관점을 정당화시키는 수사적인 의미로 주로 사용된다는 것을 우리는 어느 정도 알고 있지 않은가. (예를 들어 모든 대선 후보들이 내미는 '인간 중심'이라는 슬로건 말이다.) 책에 나오는 예를 하나 들어보면 그는 그의 책 <현실의 사회적 구성>에 나오는 부분들과 구성주의의 영향에 대해 밝히며 자신은 구성주의자가 아니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그 때의 시대정신이나 분위기, 실제로 일어난 경향을 볼 것이 아니라, 자신의 처음 집필의도를 봐줄 것을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말대로 "그런 사회적 사실들은 우리의 바람과 무관하게 발견될 수 있는 확고한 현실성을 가진다.(p.126)" 즉, 사회학적으로 봤을 때는 중요한 것은 그의 본래의도가 아니라, 그것이 어떤 영향을 주고받은 것처럼 보이는 그 사실 자체일 것이다.

물론 그가 사회학자로서 그런 의도(입장)와 사실의 문제를 구별하지 못했을 리는 없다. 그도 당연히 어떤 것에 대해 입장을 가지고(그것이 설혹 '인간적'이라는 모호한 입장이라도), 모든 사실에 대해 발언할 수 있다. 그는 말한다. "이런 맥락에서 '이중 시민권'이라는 개념이 유용하다. 사회과학자는 두 개의 모자를 쓴다. 그는 특정 분석 규준을 충실히 지켜야 하는 학문 공동체의 구성원이다. 또한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도덕적인 고려를 해야만 하는 정치 공동체의 구성원이기도 하다. 그 두 모자는 상당히 다르다. 특정 진술을 할 때는 어떤 모자를 쓰고 했는지 분명하게 밝혀서 정직하게 알려줘야 한다. (p.281)"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 맞는 말은 본인은 잘 지키지 않는 것 같다. 그는 어떤 모자를 쓰고 했는지 잘 알려주지도 않을 뿐더러, 때로는 일부러 모자를 바꿔서 쓰는 것 같다. 예를 들어 그는 '성장의 신화(자본주의)'와 '혁명의 신화(사회주의)'를 모두 거부한다고 주장하였다가, 동아시아를 보고 나서는 그 생각을 바꿔 '성장의 신화'는 지지하되 '혁명의 신화'는 거부하게 되었다고 밝힌다. "달리 말해 성장의 신화는 대체로 경험적으로 타당한 약속을 제시한다. 반대로 사회주의 혁명은 약속을 이행하는 법이 없다.(p.176)" 반박할 수도 있는 주장이나 묻고 싶은 것은 그게 아니다. (예를 들어 두 가지 질문 정도는 가능할 것 같다. 이것이 동아시아 사회를 정말 면밀히 관찰한 후에 나온 지적인지, 또 하나 성장의 신화가 경험적으로 타당한 약속을 제시한다고 했는데, 이 '경험적으로'라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다만 그의 이런 주장이 과연 사회학자로서 얘기하는 것일까, 아니면 자신이 지지하는 개인적 신념에 따른 정치적인 주장인 것일까,라는 것이 궁금할 뿐이다. 그는 이것을 사회학적인 연구로 인해 도달한 결론인 것처럼 말하고 있는데, 그가 가진 그간의 개인적 신념을 보면 그 개인적 신념과 상당히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즉 그는 과연 어떤 현상에 대한 탐구로서 이런 결론에 도달한 것일까? 설혹 그렇다고 해도, 책에 나온 논거들로는 이는 너무 재빠른 단정이 아닌가. (그가 책에서 사회학 입문 과정에서 암기한다고 말한 유명한 '토머스의 금언'이 떠오른다. '만일 우리가 어떤 상황이 실재한다고 규정하면, 그 때문에 그 상황은 실재하게 된다.')

잘 모르겠다. 알 수가 없다. 아마도 이는 어떤 오해인지도 모르겠다. 그 오해를 풀기 위해 그의 생각을 자세히 들어보고 싶지만, 그는 자신의 생각을 자세히 이야기하지 않는다. 책의 대부분은 그가 지은 저술을 짧게 요약하고, 그 연구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과 그들과 자신의 관계와 그들의 간단한 약력을 늘어놓는 것으로 채워지고, 뭔가 생각이 좀 나온다 싶으면, 그가 재미있다고 주장하는 유머들 혹은 일화들로 모호하게 마무리된다. (그러나 이 유머들은 참 재미가 없다. 그는 심지어 유머에 관련한 책도 저술했으니 그 이유를 잘 알 것이다. 그에 따른다면, 우리가 오스트리아 출신의 미국의 나이든 사회학자가 내뱉는 유머를 재미있어한다면 그야말로 이상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니까 이 책은 피터 버거의 책으로 쓰는 긴 이력서 같다. 책을 통해서 그가 저술한 책의 목록들과 그가 여행한 나라들, 그의 동료 연구자들, 그리고 그의 대학 재직이력은 자세히 알게 되지만, 그것 뿐이다. 이력서는 말 그대로 저자의 이력을 말해줄 뿐, 그의 생각까지 말해 주지는 못한다. 즉 이 책을 통해서 그의 이력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게 되지만, 사회학에 대해서는 알게 되는 것이 거의 없다. 물론 어떤 한 사람의 이력에 대해서 알게 되는 것은 흥미로울 수 있다. 이 책의 제목대로 그것이 어떤 '지적 모험'이라면 더구나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을 '지적 모험'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는 모험을 할 마음 같은 것은 별로 없어 보인다. 모험이란 무릇, 여기저기 깨질 각오를 하고 이곳저곳에 부딪히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처음부터 그렇게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는 어디에 심하게 부딪힌 적도 없고, 그러므로 깨진 적도 없다. 물론 깨지지 않았다고 해서, 그 입장이 욕먹을 것은 아니며 중도 보수라는 그의 입장이 비판을 받을 이유는 없다. (보수 반동이라면 이야기가 조금은 다르겠지만.) 다만 자신의 반대입장에서 쏟아지는 비판에 대해 계속 자신의 입장을 변호하며, 이것이 사회학에서의 올바른 태도라고, 사회학적 당의를 씌울 때에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는 이 두 가지 관점, 그러니까 정치적인 관점과 사회학적인 관점을 시종일관 흩트려 놓기 때문이다. 그는 뉴욕과 보스턴과 미국에 애정을 가지고 있는 사회학자로서 유럽과 중국과 남아프리카공화국과 그곳의 사태를 보고 있는 것이지, 그가 말한대로 객관적인 입장에 서 있는 때가 별로 많지 않아 보인다. (정말 아이러니한 점 중에 하나는 그가 사회학자이면서도 사회운동에 알레르기를 보인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금연 운동이나 페미니즘 혹은 대중집회 같은 것 말이다. 그러나 그가 애정을 보내는 자본주의라는 것도 어찌 보면 거대한 사회운동 중의 하나가 아닐까. 즉 그는 자신의 마음에 드는 사회운동과 아닌 사회운동을 구분하여 그것에 애정어린 분석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필요이상으로 비판이 길어진 듯 하다. (날씨와 LG야구 때문이다.) 피터 버거는 자신의 책에 달린 서평을 꼼꼼이 들여다보는 편인 것 같기는 하지만, 그가 어느 촌구석 인터넷서점에 달린 이 글까지 읽어볼 확률, 그리고 그것을 읽고 어떤 나이든 사회학자가 자신의 입장을 수정할 확률은 한없이 0에 수렴하므로 조금 더 생산적인 얘기로 글을 끝내도록 하자. 사회학을 지망하고자 했으나 잘 지워지지 않는 지우개로 체육관 바닥에서 지망하는 과를 바꿔야 했던 사람, 그래서 사회학에 대해 뭔가 알고자 했던 사람, 혹은 최소한 뭔가 유머러스한 글쓰기에 대해 배우고자 했던 사람에게는 비추. 대신 이런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미국에서 대학교수, 학자라는 지식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자 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곳에 들어가고 싶은 사람들 혹은 들어가지 못하더라도 학자인 척하고 싶은 사람들. 이 책은 적어도 그런 사람들을 위한 일종의 사회학적 분석보고서는 된다. 다만, 하나 주의할 점은 이 책은 진짜 학자가 되는 법에 대해서는 나와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진짜 학자가 될 수 있도록 생각하는 법 대신에 자신의 저술과 자신의 학문적 업적과 자신의 뛰어난 동료들과 자신의 훌륭한 박사과정 학생들을 독자들에게 최대한 거부감을 덜 느끼게 하며 나열하는 법 정도는 배울 수 있다. 그리고 (애석하게도) 그 정도면 학자라고 하기에 충분하다(고 믿어지는 세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