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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프리스(helpless), 아오야마 신지

Ending Credit | 2008.04.05 00:34 | Posted by 맥거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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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새드 배케이션>을 보고, 아오야마 신지의 세계관에 흥미를 가지고, 감독이 직접 집필한 동명의 소설 <새드 베케이션>을 읽고(이 소설은 영화 내용과 거의 같기 때문에 특별히 이야기할만한 것은 없지만, 아무래도 소설이다 보니 등장인물 캐릭터가 영화보다는 훨씬 디테일하게 보여지고 있다는 것이 좋았다. 다만 영화를 보고 난 이후에 소설을 읽으니 장면장면마다 영화 장면이 떠올라 소설을 읽을 때의 특유의 상상력이 제한을 받는 느낌이다), 이 영화의 10년 전 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 아오야마 신지의 1996년도 작 <헬프리스(helpless)>를 다운받아 보았다(그러나 아무래도 모든 영화는 영화관의 스크린으로 보아야 제격이다. 다운 받아 작은 컴퓨터 화면으로 나홀로 보는 것은 느낌이 다르다. 분명히 이 영화도 스크린으로 보았더라면 느낌이 달랐을 것이다. 다운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번은 방법이 없었다-라고 변명 중).

 

이 영화에서는 여전히(사실 이와 반대로 말해야겠지만) 아사노 타다노부가 주인공 켄지 역을 맡고 있고, 야스오의 동생인 유리 역도 여전히 츠지 카오리가 맡고 있다. 그래서 이 영화들은 자연스럽게 연속성을 가지는 동시에 <새드 배케이션>의 켄지와 <헬프리스>의 켄지를 나란히 놓고 볼 수 있는 흥미로운 비교 지점을 제공한다. 그러나 켄지는 여전하다. 선과 악이 혼합된 중첩적인 존재, 그래서 전혀 그 속을 알 수 없는 남자(물론 모든 ‘인간’이라는 존재가 선과 악이 혼합된 중첩적인 존재다. 그러나 대다수의 인간들은 그러한 선과 악을 마음 속 깊은 곳에 숨겨 놓고, 자신의 필요에 의해서만 그 일부분을 슬그머니 꺼내 보인다. 그러나 이 켄지라는 인물은 정제되지 않은 선과 정제되지 않은 악이랄까. 때를 타기 이전의 선과 악이랄까). 아사노 타다노부의 속을 알 수 없게 하는 연기는 여전하다.

 

이 영화는 서늘하고 무섭다. 이 영화는 결코 폭력과 살인을 뜨거운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그 시선은 말할 수 없이 차가우며, 날카롭다. 이 영화에서 결말은 사실 이미 예정되어 있다. 감독은 이 차가운 결말을 이미 예정지어 놓고, 그 결말을 피해보려 미친 듯이 애쓰는 주인공들을 지극히 차가운 시선으로 관조한다. 아니나다를까, 주인공들은 예정된 비극적인 결말 속으로 조용히 달려간다(이 영화는 많은 폭력 장면을 담고 있지만, 이상스럽게도 조용하다. 그것이 더욱 무섭게 만든다). 그리고 켄지는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한다. 그 응시하는 눈빛은 마치 이렇게 묻고 있는 듯 보인다. 왜 우리를 구해주지 않으시나요? 당신은 이렇게 될 것을 모두 다 알고 있었잖아요?

 

야스오(마츠이시 켄)가 보스가 죽어버린 사실을 알면서도 계속 미친 듯이 보스를 찾는 것이나, 켄지가 아버지가 있는 병원으로 자주 전화를 걸어 확인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같다. 켄지가 그나마 지금까지라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가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며, 켄지가 아버지를 잃어버린 순간, 그는 보스를 잃어버린 야스오와 똑같은 인물이 된다. 켄지의 아버지, 그리고 야스오의 유사 아버지, 그리고 이제 그 모두의 부재(不在). 야스오는 이 부재 속에서 자신을 버리는 길을 택하지만, 켄지는 다시 유리라는 새로운 가족을 만나, 멀고 먼 길을 떠난다. <새드 배케이션>에 이르는 긴 길을. (아마도 <새드 배케이션>의 시작부분에도 Johnny Thunders의 노래와 함께, 거리의 풍경을 위에서 부감으로 찍은 화면이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영화(헬프리스)의 시작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 영화의 마지막에도 길이 나온다.)

 

이 <헬프리스>의 아버지의 부재와 <새드 배케이션>의 치요코-사에코-코즈에라는 강한 여성들의 등장(한편으로는 모계사회를 연상시키는)과 ‘마미야 월드’의 기묘한 유사가족이 묘하게 접점을 이루지만, 아직 아오야마 신지의 세계관은 모호하다. 아마도 이는 그의 3부작 중의 하나인 <유레카>를 보아야 뭔가 잡을 수 있을 듯. (이건 여담이지만 이 영화 <헬프리스>는 약 1시간 20분 남짓, 그리고 <새드 배케이션>은 2시간 20분 정도, 그리고 <유레카>는 3시간이 넘어간다. 영화를 개봉하고자 하는 영화사의 입장에서는 절대 반기지 않을 감독이다. 하긴 궁금해서 찾아본 아오야마 신지 감독의 얼굴이 왠지 강단있어 보여서 픽 웃음이 나기는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