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온 남자, 도쿄에서 온 여자 - 6점
권진.이화정 지음/씨네21


"본 도서 리뷰는 TISTORY와 알라딘이 제공하는 서평단 리뷰 포스트입니다"


오래전 자주 갔던 곳을 한동안 찾지 않다가, 오랜만에 거기 들렀을 때, 유달리 심한 낯설음을 느끼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 같다. 자주 찾던 단골집, 작은 헌책방들, 길가의 벤취, 골목 사이사이에 난 작은 길, 그런 것들이 사라졌을 때 나는 길을 잃고 헤매고, 약간 비애감을 느낀다. 이곳 서울은 그런 일이 유독 잦다. 그만큼 서울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으며, 많은 공간들이 점점 새롭게 변하고 있다. 물론, 어떤 공간이든 낡은 것들을 새롭게 바꿀 수는 있으며, 오래되고 쓸모 없어진 것들을 없애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공간이 사라진다는 것은 거기 있던 사람도 없어진다는 이야기다. 공간만 새롭게 변하면서 사람은 그대로인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 공간에 들어설 때면, 나는 반드시 묻고 싶어진다. 여기 있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어딘가에서 다시 새로운 공간을 만들었을까, 아님, 그저 어디론가로 사라져 버렸을까. 30년이 넘게 서울에서 살아온 나에게 비친 서울은, 사람들이 사라지는 도시다. 그리고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어야 하는 복잡하고 어려운 도시다.

이 책 <뉴욕에서 온 남자, 도쿄에서 온 여자>는 외국인의 눈에 비친 서울을 말한다. 이들의 눈에 비친 서울은 어떨까. 여기에는 총 7명의 인터뷰이가 나오는데, 이들은 유럽, 미국, 아시아 등 다양한 국가 출신의 사람들이며, 인종이나 나이, 성별 등도 조금씩 차이가 있다. 그러나 왠지 이들 7명은 비슷비슷한 것을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서울은 복잡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도시라는 것, 과거의 것과 현재의 것, 미래의 것이 공존하는 칼라풀하고 파워풀한 도시라는 것, 때로는 지나치게 빠른 변화가 어리둥절하고, 슬프게 만든다는 것,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현대적이고 편리하다는 것 등등. 이들의 눈에 비친 서울이 왠지 비슷비슷하게 보이는 것은 몇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먼저 눈에 띄는 한 가지 이유는 이들이 모두 아티스트, 작가, 댄서, 미술가 등 예술적인 일들을 해나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할 수 있겠다. 이들의 눈에 비친 서울은 예술적인 창의성에 도움을 주는 어떤 역동적인 요소들을 가지고 있는 도시이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역동성이 획일화된 개발풍경에 의해 점점 사라져가는 도시라고 말할 수도 있다.

아마도 그래서, 이들 대부분이 서울에서 기억에 남는, 혹은 자신이 좋아하는 장소를 꼽으라면 서울 강북권에 있는 곳들을 이야기하고 있을 것이다. 홍대 근처나 북촌, 통의동, 연신내, 종로 같은 곳들 말이다. 왜냐하면 강남은 정말 획일화되어 가고 있으니까. 이제는 강남 어디를 돌아보아도 대부분 비슷한 풍경이니 말이다. 늘어선 건물들과 잘 정돈되어 있는 가로수와 아파트촌들. 이제 강남의 다양성이란 그저 건물의 디자인의 다름을 가지고 말하는 수 밖에는 없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서울 거의 가장자리지만, 이곳에도 그야말로 '잘 정돈된' 어떤 풍경들 밖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곳도 거의 강남권이 되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보았을 때 이들이 본 서울이 비슷비슷하게 보이는 것에는 다른 이유도 있는 것 같다. 물론 그 하나로, 이 책의 인터뷰의 질문들이 약간은 피상적인 것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도 있다. 이 책의 많은 질문들은 어떤 구조화되고 체계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인상 보다는 그저 카페에서 차 한 잔 나누면서 여러가지 것들을 편안하게 묻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따라서 어떤 것에 대한 생각이 깊이 이루어진다기 보다는 그저 느낌이나 인상들에 그치는 것처럼 보여진다. 그것은 어쩌면 이 책의 컨셉과도 관계가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어떤 서울의 문제점을 나열하거나, 개발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제공하기 위해 기획된 책이 아니다. 그저 가볍게 외국인의 눈에 비친 서울이란 곳이 어떤 느낌인지 살펴보고, 그리고 그 속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서울의 공간들은 어디인지 가볍게 전달하는 책이다. 다른 말로 하면, 가벼운 트랜스 음악이 흘러나오는 카페에서 차 한 잔 홀짝거리며, 주위를 잠시 둘러보다가, 다시 펴고 읽으면 되는 그런 종류의 책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조금 더 냉소적으로 보자면, 결국 외국인이 말하는 서울이란, 이 정도가 한계인 듯 하다. 그들 눈에 비친 서울이란, 과거의 어떤 전통들이 아직은 어느 정도 남아있는 곳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스타벅스가 널리 깔려있어서 편리한 도시, 외국인에게 약간은 배타적인 면도 있지만, 또 친절한 사람들이 많이 있는 도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우리가 그들에게 듣고 싶었던 것도 결국 그 정도였을 것이다. 어떤 비판을 듣고 싶기는 하지만, 날이 선, 아프게 들려오는 비판이 아닌, 그래도 어떤 면에서는 긍정하고 안심할 수 있는 그런 정도의 비판. '미수다'에서 아주 살짝 더 나간 정도의 그런 비판 말이다. 그래서 이들이 어떤 개발의 문제, 사라져가는 풍경들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그것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된다. 이들이 옛것, 어떤 전통적인 풍경들을 서울의 참모습이라고 이야기할 때, 그것은 단지 이들에게는, 도리어 그것들이 새롭고, 흥미로운 풍경들이어서가 아닐까. 이들이 사라져 간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그 '사라졌다'라는 것은 과연 '무엇'이 사라졌다는 의미일까. 그래서 어쩌면, 이 책의 카피에 나온 '누구나 다 안다고 생각하지만 아무도 몰랐던 서울 이야기'를 이들에게서 듣기란 애당초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 아니었는지도 모르겠다.


p.s. 이 책의 사진들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공간을 찍은 수많은 사진들은 공간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서울의 어느 곳이나 점점 비슷비슷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까지는 남아 있는 것들이 꽤 많은 것 같다. 하긴 이 마저도 위태위태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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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 자신의 방식으로, 조금씩 시작하라

The Book | 2009. 8. 19. 00:43 | Posted by 맥거핀.
거꾸로, 희망이다 - 10점
김수행 외 지음/시사IN북



"본 도서 리뷰는 TISTORY와 알라딘이 제공하는 서평단 리뷰 포스트입니다"


여전히 위기는 지속되는 것 같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위기가 지속된다기 보다는 위기라는 것이 이제 일상화의 단계로 접어든 것 같다. 이것은 단지 MB 정부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 MB 정부는 항상 상상하던 것 이상의 것을 보여주고 있고, 전혀 예상치 못하던 일이 연이어 일어나고 있기는 하지만, 이 위기라는 것을 전적으로 MB 정부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물론 오해하지 마시라. 난 그들이 책임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 정부가 이 위기들을 헤쳐나가는 어떤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기 보다는 지속적으로 이 위기들에 기름을 붓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이 위기들이 이렇게 계속되는 것에는 보다 근원적이고, 중요한 무엇이 있다는 느낌이 든다는 말이다. 여기서 위기라고 해서, 어떤 정치적인, 혹은 사회적인, 경제적인 위기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보다 근원적인 것은 생각의 위기, 사상의 위기다. 물론, 언제 어느 시대에나 사상의 위기라는 것은 늘상 말해져왔고, 어떤 측면에서는 과장되게 부풀려진 측면도 있다. 그러나 요즘의 이 위기는 심상치 않은 면이 있다. 그래서, 모두가 다른 모두에게 묻는다. 이 위기를 그래, 도대체 어떻게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인가.

여기 <시사IN>에서 마련된 6개의 강좌는 그런 것을 묻기 위해 시작되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우리는 어떻게 좋은 삶을 살 것인가.''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나와 내가 아닌 것의 경계를 묻는다.''세계 공황의 위기 속에서 한국 경제가 갈 길은 어디인가.''상상력은 어떻게 해서 생기나?''위기의 경제, 위기의 사회. 그 대안과 해법을 상상한다.''역사는 후퇴하지 않는다. 때로 에돌아갈 뿐이다.' 그 6개의 주제를 <녹생평론>의 창간인 김종철이, 칼럼니스트이자 심리학자인 정혜신이, 마르크스 경제학의 대부 김수행이, 여성문화와 청소년문화에 대해 늘 날카로운 담론을 생성해온 조한혜정이,  시민운동가 1세대 박원순이, 역사를 보는 따스하고도 날카로운 시선 서중석이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은 그런 6개의 강좌를 한 권의 책으로 묶어 내었다. 책은 어떤 커다란 수정이나 가필을 거치지 않고 강의를 거의 그대로 수록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을 읽는 순간, 우리는 그 강의실 한 구석에 놓인 의자에 앉은 수강생이 되어 그 강의를 함께 한다. 그리고 몇몇 순간에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살짝 졸기도 하고, 어떤 의문을 품기도 한다.

강의를 다 듣고나니, 2가지 생각이 든다. 먼저 하나는 이 강의들이 공통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들이다. 이 책은 앞에서 말한대로, <시사IN>에 의해 기획된 6개의 강의를 담고 있다. <시사IN>에서 이 6개의 강의를 시작할 때, 잡은 테마는 '혼돈의 시대, 위기 속에서 길을 묻다'라는 것이었다. 즉 많은 사람들이 점점 어려워지는 경제상황, 자고 일어나면 문제가 터지는 사회, 정치적인 상황 속에서 삶의 가치관을 잃고 혼란으로 빠져들 때에 그런 우리들에게 어떤 도움을 주고자 했던 것이다. 그 도움이란, 대가(大家)들의 지혜를 빌리는 것이다. 여기 6개의 강좌를 진행하는 사람들은 생태학, 심리학, 경제학, 시민운동, 여성학, 역사학 등 각기 다른 분야에서 연구 및 활동을 해온 분들이지만, 모두 그 분야에서는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둔, 혹은 끊임없이 새로운 담론들을 생성하고 있는, 나름 그 분야에서는 일종의 대가들이라 할 수 있다. 이 사람들이 말하는 위기를 헤쳐나가는 방법,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방법은 무엇인가.

약간은 놀랍게도, 그것들은 어느 정도 통하는 면이 있어 보인다. 그것은 이 책의 제목인 '거꾸로, 희망이다'라는 것과 맞닿아 있다. 지금의 시기가 위기라고 하지만, 역으로 생각했을 때 이 위기라는 것이 결국 기회라는 것이다. 어떤 기회? 지금까지와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기회 말이다. 어떤 하나의 사회가 하나의 방향으로만 계속해서 나아갈 때, 사람들은 다른 방식의 삶을 생각해 보기 어렵다. 그러나 그 사회가 어떤 위기에 봉착했을 때, 그제서야 사람들은 달리던 발을 멈추고, 자신의 지나온 길을 되돌아 본다. 그리고 다른 방향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는가를 모색하기 시작한다. 아마도 뭔가 대단한 답을, 엄청난 대안을 기대하셨던 분들은 맥이 풀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자신의 분야에서 가장 높은 최정점에서 밑을 돌아보는 이 대가들의 해답은 결국 그것이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의, 좀 더 자신과 밀착한 삶이 필요하다는 것.

더 이상 증거가 따로 필요 없다 할 만큼 아주 분명한 사례를 들려드릴게요. 아우슈비츠 생존자를 연구한 결과 중에 이런 것이 있어요. 수감자는 일주일에 생수 한 병 정도의 식수를 배급받았답니다. 그런 상태에서 아주 고된 노동을 하면서 지냈던 거죠. 그걸 다 마셔도 목숨을 연명하기가 어려운데, 반을 남겨서 얼굴을 씻는 사람도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같이 있던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어처구니없고 무모한 행동처럼 보였겠죠. 그런데 연구 결과에 의하면 얼굴을 씼었던 사람들의 생존율이 훨씬 더 높았습니다. 굉장히 중요한 점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그런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자기 존재를 배려하고 보이지 않는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게 목숨을 연명하는 데 훨씬 더 효과적인 방법이었다는 거죠.   

- 정혜신에게 김어준이 '위기의 심리'를 묻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나와 내가 아닌 것의 경계를 묻는다.' p. 120-121 
 

다른 하나는 이 책, 그 내용 이상의 것에서 살필 수 있다. 그것은 위기가 일상화가 된 시기, 이 시기에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가 찾을 수 있는 것은 결국 고리타분한 학문 속에 들어있는 어떤 것이라는 점이다. 즉 녹색의 생태학에서, 따분한 심리학에서, 철지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에서, 혹은 해방 전후 시기를 다룬 역사학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밖에는 없다는 것 말이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들을 듣고, 그것에서 어떤 해답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또 의외로 상당히 많이 있다는 것을 이 책은 말해준다. 여기서 강의를 하고 있는 6명의 학자들과 그 학자들 곁에서 강의를 진행한 또다른 6명의 학자들과, 그 강의를 듣고자 강의실을 가득 메운 수많은 청중들이 그것을 증거하고 있다. 결국 그 해답이란, 무엇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그것에 대해 공부하는 것에서 출발한다는 것에 모두들 기본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즉 위기를 극복하는 것은, 이성과 지성과 학문의 힘에서 모든 해답을 찾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며, 그 해답을 함께 나누고, 그것을 실천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 강의들은 기본적으로 사회자와 강연자와의 짧은 대담으로 시작하여, 강연자의 강연을 거쳐, 청중과의 질의응답으로 끝맺고 있다. 강연 내용을 거의 그대로 옮긴다는 이 책의 원칙에 따라, 청중들과의 질의응답도 거의 그대로 옮겨져 있는데, 이 질의응답들을 보면 재미있다. 대부분 청중들은 강연자의 어떤 기본적인 취지나 사상에는 공감하면서도, 약간은 주저하는 빛(?)들을 보인다. 즉 그렇게 사는 것이 옳다, 혹은 좋다는 것은 알지만, 실제로 그러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은 여러 제약들이 따른다는 항변이다. 물론 약간의 말하는 방식의 차이는 있지만, 그럴 때마다 대부분의 강연자들이 말하는 결론은 하나인 듯 하다. 그것은 이것이다. "거창하게 시작하려 들지 마라. 항상 중요한 것은 처음 내딛는 작은 발걸음이다. 각자 자신의 방식으로, 조금씩 시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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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 8점
최규석 지음/창비(창작과비평사)


"
본 도서 리뷰는 TISTORY와 알라딘이 제공하는 서평단 리뷰 포스트입니다"


정치에 관심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화까지는 나지 않지만, 좀 많이 별로다. 정치라는 것이 우리 삶의 얼마나 많은 부분을 좌지우지하는지 알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기도 하려니와, 무엇보다도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대부분 본의 아니게 큰 영향을 미치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 삶의 거의 모든 것들이 분리되어 움직이는 것은 없다. 예를 들어 내가 어떤 물건을 사거나 혹은 사지 않거나 하는 사소한 경제 행위도 타인에게 (일종의 나비효과가 되어)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러나 정치의 영향은 이보다 훨씬 직접적이다. 예를 들어, 지난 대선에서 MB에게 기꺼이 표를 던져준 많은 사람들 덕분에, 그리고 투표장에 가지 않은 또다른 많은 사람들 덕분에, 지금도 어딘가에서 사람들은 용역에 얻어맞고, 또다른 누군가는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돌아왔다고 말할 수도 있다.


여기 이 한 권의 만화는 그런 것을 말한다.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 또는 정치에 대해서 냉소하는 것이 어떠한 결과를 낳게 되는가. 그것은 어떤 형태로 우리에게 돌아와 우리의 뒤통수에 POLICIA 방패를 날리는가. 이 만화가 그것을 보여주는 방식은 어쩌면 진부하다고 말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인지도 모르겠다. 1987년 6월에 대학을 다니던 가난한 지방 출신의 법대생, 동생을 위해 희생하고 열악한 노동환경의 공장에 다니는 그의 누나, 아무 것도 모르는 평범한 시골 아낙네였다가 그 아들을 위해 앞으로 나서는 어머니, 데모하는 학생들을 빨갱이라고 욕하던 그의 아버지, 부당한 사회 현실을 외면하고 직업전선의 길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그의 형....아마도 여기에서 조금만 더 이야기를 발전시키면 SBS 주말특집기획류의 드라마를 하나 뽑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그 이야기에서는 주인공은 결국 법대를 졸업해 검사가 되고, 집회현장에서 만났던 여학생은 몇 년 후 조폭 두목의 정부가 되어, 우연히 어딘가에서 만나게 되고...뭐 그렇고 그런 이야기가 되겠지. 그러나 이 만화는 이런 이들을 패턴화된 후일담으로 풀어내어 이들에게 비감한 느와르와 가슴아픈 멜로를 부여하여 이들을 애써 우리와 분리하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이 만화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그들의 살아온 줄거리가 아니다. 중간에 잠깐 언급되기는 하지만, 결국 여기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한 사람의 열 걸음이 아니라, 열 사람의 한 걸음'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모두의 무관심 속에서 한 사람만이 관심을 가지고 모든 것을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열 사람이 아주 큰 관심은 아닐지라도, 그것이 자신과도 조금은 관련이 있는 문제임을 인식하는 것, 그래서 조금씩 나아가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 이야기는 말한다. 조금씩 나아간다고 해서 길거리에 나서서 구호를 외치고, 촛불을 들면서 나아가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 이야기의 마지막에서 상징적으로 설명된다.

소중한 백지 한장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고통받던 이는 고통이 사라지길 바랐고
누울 곳 없던 이는 보금자리를 바랐고
차별받던 이는 고른 대접을......

그렇게 각자의 꿈을 꾸었겠지만

우리가 얻어낸 것은 단지 백지 한장이었습니다. (p. 171)



모두가 벌어지고 있는 문제들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이 자신의 문제라고 인식하고,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작은 백지에 행사하는 것.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이며, 그것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 어떤 이들이 어떠한 희생을 감내하였는지를, 이 마지막은 상징적으로 말해준다. 물론 여기에 몇 가지 이야기를 덧붙이면, 이것을 쓰는 나도, 이를 읽는 당신도 아마 슬플 것이다. 그렇게 얻어낸 소중한 백지로 1987년 대선에서 결국 누가 정권을 잡았는지, 혹은 이 책에도 잠깐 지나가는 이야기이지만, 박종철 열사가 그렇게 지키려고 했던 박종운이 17대 총선에서 어느 당 후보로 출마했는지를 알게 된다면 말이다. 그러나 그러한 것만으로 냉소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이 이야기는 다시 일깨운다. 단지 그러한 것들은 100도씨의 물에 불순물을 투여하여 비등점을 낮춘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말이다. 사람도 100도씨가 되면 끓는다는 것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할 일은 간단하다. 언제든 100도씨가 될 수 있도록 눈과 귀를 열어두는 것.
............................

사실 개인적으로 더욱 흥미롭게 보았던 것은 이야기의 뒤에 '그래서 어쩌자고?'라는 제목으로 붙은 민주주의 학습만화이다. 후기에 작가가 밝힌 바대로, 이 책이 어떤 교재의 용도로도 사용되는 만큼 어떤 의미에서는 본편보다 더욱 중요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이 만화는 그림체도 엉성하고, 내용도 짧지만, '민주주의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한 번 숙고하게 만든다. 여기에서는 여러가지 내용을 말하고 있지만, 사실 핵심적인 내용은 하나인 듯 하다. 민주주의란 결국 정당성(legitimacy)를 확보하는 것을 말한다는 점이다. 즉 민주주의란 다수결에 의해서 결정하는 것, 혹은 법의 힘으로 어떠한 것을 결정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여러가지 용어로 말할 수 있지만, '평등한 배려'를 하는 것, 혹은 각자 개인이 심의된 의사를 가지고, 그 의사를 하나로 결집해나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물론 이 짧은 만화가 모든 것을 설명해줄 수는 없다. 사실 어떤 의미에서는 조금은 근원적인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 '평등한 배려' 혹은 '심의된 의사'라는 것에는, 인간에 대한 어떤 근본적인 믿음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선한 의도, 타인에 대한 배려와 같은 것이 인간의 근본적인 성향이라는 그런 믿음 말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우리가 타인을 배려하고 모두가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지 못하는 것은 그렇게 행동하는 방법에 대해 알지 못하기 때문, 혹은 어떤 필요한 사실들을 알지 못하고 잘못된 정보, 잘못된 논조들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인간은 알면서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그렇게 행동할 수 있는 존재들인 걸까.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러나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 짧은 만화에서 정답을 찾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이 만화 역시 현명한 끝맺음을 하고 있다. 민주주의에 대해 더 공부해 보라는 것, 민주주의에 대해 공부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질수록, 이 체제는 더 잘 유지되고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전국의 중고등학생들이나 나같은 덜떨어진 어른들에게 필요한 책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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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amorfati.tistory.com BlogIcon 맑은독백 2009.08.10 11: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사람의 열걸음 보다 열사람의 한걸음이 중요하단 말은 씹어도 씹어도 의미있게 다가오네요..
    세상을 진지하게, 이면을 보고자 하는 노력들이 어쩌면 요즘세상엔 일종의 소외처럼 느껴지기도 하구요..

    마지막 말마따나 저처럼 덜떨어진 어른을 위해 회초리 드는 심정으로 읽어봐야겠습니다.

    • Favicon of https://noracism.tistory.com BlogIcon 맥거핀. 2009.08.11 02: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한사람의 열결음보다 열사람의 한걸음이 중요다는 말..
      많이 들어왔지만, 참 그것을 실제로 보여주는 것은 어려운 것 같아요.
      결국 그것은 자신의 옆을 돌아보는 것이 필요하니까 말이죠.
      누가 얼마나 나아갔는지, 쳐지고 있는 사람은 없는지..
      때로 자신을 억누를 수도 있어야 하구요.
      우리는 항상 연대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과연 우리는
      얼마나 연대하고 있는지..다시 새삼 깨닫게 됩니다.

무엇이 비싼 와인을 만드는가

The Book | 2009. 7. 24. 23:38 | Posted by 맥거핀.
와인 정치학 - 4점
타일러 콜만 지음, 김종돈 옮김/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


"본 도서 리뷰는 TISTORY와 알라딘이 제공하는 서평단 리뷰 포스트입니다"



'정치학'이라는 말을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따라서 이견의 여지는 있겠지만, 이 말은 '와인'과는 분명히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인간사 모든 곳에는 무엇인가의 힘이 작용하고 있고, 그 힘은 보이는 곳에서, 그리고 대부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은 것을 뒤바꾸어 놓는다. 그것은 와인산업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보면 와인을 제조하고 판매하는 것은 간단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와인이라는 것은 어떤 땅에서, 어떤 해에 얼마나 좋은 품종의 포도가 생산되는가에 따라 결정되는 문제이고, 거기에 다른 어떤 힘이 개입될 여지는 비교적 적지 않겠는가..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마도 너무나도 순진한 생각임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와인 비평가와 평론가들은 와인이 최종적으로 병에 담기기까지의 과정에서 재배 지역과 와인 제조방식의 중요성에 대해 널리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와인 소비자들이 인식하는 것보다 더 많은 부분에서 와인 정치학이 영향을 미친다. 정치학은 어디에서 어떤 와인을 재배할지와 라벨에 무엇을 쓸지, 어떤 와인을 수입하고 수출할지, 어떤 와인을 지역 상가에서 구매할 수 있을지, 와인 가격은 얼마로 정할지 결정하지만 가장 중요하게는 병 속에 담긴 와인의 품질을 절대적으로 결정하게 된다. (p. 15)


그렇다면 답은 나왔다. 와인이란, 그저 땅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혹은 그 해의 날씨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일종의 복불복 상품은 아니라는 얘기다. 그것에는 수많은 힘들이 작용한다. 그 힘은 다양하다. 제조업자와 유통업자 간의 보이는, 혹은 보이지 않는 밀고당기기는 물론이고, 그 해의 '위원회'에서 어떤 결정을 내리는가에 의해서, 혹은 국가의 법안이나 시책에 의해서, 다른 여타 산업들과의 관계의 문제와 관련해서, 한 비평가가 그 와인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리는가에 의해서, 그리고 때로는 환경론자들의 압력에 의해서 많은 것들이 달라진다. 그 달라지는 것들이란, 앞에서 말한대로, 어떤 와인이 어느 가격으로 결정되는가, 혹은 어떤 와인이 어디에서 팔릴 수 있는가, 혹은 어떤 와인은 왜 와인으로 남아 있지 못하고, 증류처리소로 옮겨져 연료인 에탄올로 바뀌는 운명을 맞이해야 하는가 같은 것들이다. 

이 책은 와인에 작용하는 그러한 수많은 힘들에 대해 약간은 흥미로운 내용들을 담고 있다. 전체적으로 이 책은 와인을 생산하는 거대한 두 축인 미국과 프랑스의 와인산업을 비교하면서 그 와인산업의 역사를 추적하기도 하고, 때로는 그러한 와인산업에 영향을 미친 다른 영향들을 주목하기도 하면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그리고 너무 산업적인 측면에만 주목하는 우를 범하지 않으면서, 와인 비평들이 행하는 여러가지 문제점이라든가, 와인산업에 환경을 중시하는 사람들이 미치는 영향 같은 것들에도 지면을 허락하는 영민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 정확히 말하면 이 이야기를 칭찬해 줄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이다. 전체적으로 이 책이 가지고 있는 큰 문제점은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압축시키지 못하는 것에 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 책의 가장 주된 내용은 미국과 프랑스의 와인산업을 비교하여 이야기를 끌어가는 데에 있으나 비교의 기준은 명확하지 못하고, 이야기는 중심을 잃고 여기저기서 떠돈다. 와인산업의 역사를 추적하고는 있으나, 그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제시하지 못하고 흔들린다. 설명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어떤 주장을 제시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어떤 것이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식으로 뉘앙스는 살짝 풍기지만, 그것에 대해 확고한 근거를 제시하지도 못한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배는 난파하여 침몰하는 도중에 몇몇 쓸만한 이야기들만이 침몰하는 배 주위에서 어지럽게 떠다닌다. 그것은 예를 들어, 사회적으로 음주가 가진 위해성에 대해 비판을 가하는 주장들과 와인 유통과의 모종의 관련성에 대해 논의하고 있는 다음의 대목과 같은 것들이 그렇다.

경제학자 브루스 옌들은 금주령에는 동의하지만 경제적 이유와 윤리적 이유라는 서로 다른 이유로 협력했던 밀매업자들과 초기의 절제운동 지지자들의 움직임을 묘사하기 위해 "밀매업자와 침례교도들"이라는 표현을 처음으로 사용했다. 지역의 밀매업자들은 자신들의 밀조 과정에서 경쟁 요소를 제거하기를 원했고, 절제운동 지지자들은 성경의 글귀와 함께 음주가 끼치는 사회적 해악에 대한 인식을 기반으로 주류 판매를 폐지하는 데 온 힘을 쏟았다. 금주령 이후에 금주운동 지지자들의 연합세력은 밀매업자들이라기보다는 유통업자들이었다. 각각의 주는 해당 영토 내에서 주류 운반에 대한 자체적인 규정을 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주류의 생산과 유통, 그리고 최종 판매업을 분리하는 규제들에서 많은 이들이 유통업자의 역할을 선택했다. 따라서 와인 양조장은 와인을 유통업자들에게 판매하고, 이들은 소매업자나 레스토랑에 납품한다. (p. 158)

.........................

사실 이 책의 가장 큰 문제점은 번역투의 엉망인 문장들에 있다. 위의 인용한 부분을 다시 한 번 잘 읽어보라. 뭔가 좀 어색하지 않은가. 전체적으로 무슨 내용을 말하고 싶은지는 알겠으나, 문장도 필요 이상으로 길고, 어색한 번역투와 잘못된 문장들이 가득 차 있다. 예를 들어 이런 문장 말이다. "주류의 생산과 유통, 그리고 최종 판매업을 분리하는 규제들에서 많은 이들이 유통업자의 역할을 선택했다." '규제들에서~선택했다'는 이상한 구조는 물론이거니와, '역할을 선택했다'는 어색한 번역투를 고수하고 있다. 그래도 이 인용한 부분은 그나마 문장들이 조금은 나은 부분이다. 전체적으로 이 책은 앞 부분에서 뒤로 갈수록 번역가가 조금씩 정신을 차리는지, 조금은 문장들이 나아진다. 처음에는 "파커의 영향력이 너무나 커서 수많은 와인 양조업자들은 그의 미각을 만족시키기 위해 자신들의 와인을 그가 "쾌락적인 과일들의 폭탄"으로 만드는 데 혈안이 되어왔다."처럼 해괴한 문장들도 나온다.   

아마도 이는 책의 문장들이 원래 엉망이거나, 번역가의 번역 능력이 형편없거나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내 맘대로 추측해 보자면, 이 책의 저자인 타일러 콜만(Tyler Colman)이 박사논문을 책으로 만들었다고 말하는 것을 볼 때 책의 본래 문장 자체가 형편없을 것이라고 여겨지지는 않는다. 아마도 번역가의 초벌번역을 어떤 퇴고의 과정도 거치지 않고 그대로 책으로 낸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혹은 대표 번역가의 이름만 건 다른 새끼 번역가들의 번역인지도 모른다. 여기에도 '정치적'인 어떤 것이 개입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여튼, 엉망인 문장들이 책에서 시종일관 지속된다는 점에서, 이 책의 내용과는 별개로,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다. 아무리 흥미롭고 재밌는 내용을 담고 있어도, 그것이 어떻게 전달되는가의 문제는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좋은 책의 기본은 좋은 문장들을 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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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amorfati.tistory.com BlogIcon 맑은독백 2009.08.10 11: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번역.. 아 제가 다 뜨끔합니다. ㅠ.ㅠ
    어쩌더 어중이 떠중이인 제가 번역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하루하루가 괴로움의 연속입니다.
    빈약한 어휘력에 한글 구사력까지..

    다음 번역은 절대 없다란 맘가짐으로 체념 비슷하게 하고 있습니다. ^^

    • Favicon of https://noracism.tistory.com BlogIcon 맥거핀. 2009.08.11 02: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블로그에 글 쓰시는 것 보면 잘 하실 것 같은데요?
      저도 예전에 잠깐 번역 같은 것 좀 해본 적 있는데, 그거 못할 짓이더군요. (물론 전문적인 건 아니구요.)
      번역은 약간 시간 싸움인 것 같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여기서 어떤 표현을 사용하면 좋을지..
      계속 생각하다보면 어느 순간 딱 맞는 표현이 생각날 때가 있더군요.
      그 때 버티지 못하고, 대강 이 정도면 되겠지..하는 순간 날림 번역이 되는 걸 겁니다.^^

스타는 미쳤다 - 6점
보르빈 반델로 지음, 엄양선 옮김/지안


 "본 도서 리뷰는 TISTORY와 알라딘이 제공하는 서평단 리뷰 포스트입니다"

여담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우리나라만의 특징인지, 외국도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책의 제목들이 점점 자극적이 되어가는 것 같다. 우리나라 저자의 책들은 뭐 그러려니 하는데, 외국 저자의 책들까지 그러는 것을 보면 딱하다. 왜냐하면 외국 저자의 책들은 그럼으로써 원제와 아주 달라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도대체 이런 제목은 저자의 허락을 받고 다는 것일까. 혹여, 그렇지 않다면 이는 저자나 그것을 읽게 될 독자에 대한 테러행위라는 것을 모르는 것일까.

그래도 '스타는 미쳤다: 성격장애와 매력에 대한 정신분석 리포트'라는 이 책은 그나마 나은 편인지도 모른다. 이 책의 원제는 'Celebrities'. '유명인' 또는 '명사'라는 간단한 제목이 자극적이고도 뭔가 복잡한 제목이 되어 버렸지만, 그래도 약간의 관련성이나마 있으니 그나마 이해해주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보면 책의 제목이 이렇게 되어버림으로써 이 책이 마치 '모든 스타들이 성격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식으로 오인되는 위험성이 생겨난다는 점도 지적할 수밖에 없다. '오인'이라고 말한 것처럼, 이 책에서 주장하는 것은 그러한 것이 아니다. 성격장애를 가진 스타들의 사례를 자극적으로 나열한 책도 아니다. 그보다는 성격장애의 여러 특징들을 나열하고, 어떠한 연유로 그런 성격장애에 이르게 되는지를 설명하려는 책에 가깝다. 물론 책에는 여러 스타들의 사례도 나오지만, 그런 스타들은 도달하기 쉬운 하나의 예에 가깝다. 즉 모든 스타들이 성격장애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스타들이 그런 성격장애를 가지게 될 확률이 높다는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물론 여기서 몇 가지 문제를 생각해보아야만 할 것이다. 먼저 첫번째 문제는 책에서 지적하는 바와 같이 어느정도의 선을 '비정상'인 성격장애로 보아야 할 것인가라는 점이다. 영화 <체인질링>에서 자신의 아이가 다른 아이와 바뀌었다며 문제를 제기한 안젤리나 졸리는 경찰에 의해 정신병원에 갖히게 된다. 여기서 만난 한 여자는 이 '정신병'이라는 것이 사실 거의 의사의 자의적 기준에 가까움을 말해준다. "당신이 정상적으로 행동하려 할수록 그들은 당신을 더 이상하게 볼거야. 당신이 많이 웃는다면 착각에 빠져있거나 자기만의 세계에 갇혔다고 여길것이고, 만약 안 웃는다면 우울증에 걸렸다고 생각할거야." 저자도 같은 문제를 지적한다.


상적인 '성격'에서 '성격장애'로 넘어가는 경계는 모호하다. 사람들이 저마다 가진 뚜렷한 성격적 특성들은 정상적인 범위 내의 편차일 수도 있지만, 정상성의 경계를 넘어가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대체' 정상적'인 것이 무엇이냐는 의문이 생긴다. 그러나 정상적인 행동과 병적인 행동을 구분할 수 있는 절대적인 기준은 없다. (p. 23)



두번째 문제는 이 책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와 관련되어 있다. 이 책에서는 스타와 성격장애에 대해서, 그리고 성격장애와 매력이라는 것에 대해서 어떤 관계가 있음을 논하고 있다. 먼저 생각해보아야 할 것은 이것이 인과관계인가, 아니면 단순한 상관관계에 불과한가 하는 점이다. 예를 들어 '성격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대체로 매력적이다'라고 말했을때, '이는 성격장애가 있기 때문에 매력적으로 보인다'라는 인과관계로 보아야 할 것인가, 아니면 '성격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대체로 매력적으로 보인다'라는 상관관계로 보아야 할 것인가. 이 부분은 저자 역시 주의해야 할 부분임을 상기시키고 있다. 


예를 들어 설명해보자. 어떤 과학자가 키가 큰 사람이 작은 사람보다 셈을 더 잘한다는 주장을 펼친다. 근거로 센티미터로 표시한 키와 산수능력 사이의 상관관계를 제시한다. 이때 해당 조사가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는 사실은 밝히지 않았다. 열세 살짜리가 여덟 살짜리보다 산수를 더 잘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키가 큰 사람들이 작은 사람들보다 더하기와 곱하기 실력이 월등하게 높다는 주장이 그럴듯해 보인다. 제3의 변수, 즉 나이를 밝히지 않는다면 말이다. 나이를 밝히고 계산했더라면 상관관계는 0으로 나타났을 것이다. 즉, 키와 성적 간에는 아무 관계가 없는 것이다.
이를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별개인 두 현상 사이에 상관관계가 높다고 해서 그것이 곧바로 둘 사이의 인과관계를 증명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p. 111)



이를 넘어간다고 해도 여전히 문제는 존재한다. 즉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문제다. 즉 성격 장애와 매력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해도, 그것이 어떤 인과관계인가. 성격장애가 있기 때문에 매력적으로 보이는 걸까, 어떤 매력이 성격장애의 동인이 되는 것일까. 스타와 성격장애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성격장애가 스타를 만드는 것일까, 아니면 스타가 된 이후에 성격장애가 생겨나는 것일까.
...........................

저자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서 상당히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하고 있기는 하지만, 특정의 관점에 동의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 관점이란 성격장애가 스타가 되는 것에, 그리고 스타로서 매력을 발산하는 것에 일정 정도의 영향을 미쳤다는 생각에 어느 정도 동의하는 것이다. 저자는 성격장애가 있는 스타들의 어린 시절을 추적하며, 그 어린 시절의 어떤 경험들이 성격장애, 특히 경계성 성격장애[각주:1]에 이르게 하였으며, 그 경계성 성격장애들이 타인들에게 어떤 매력을 발산하게 함으로써, 스타가 그만한 위치에 오르게 하는 이유 중의 하나였다고 말하고 있다. 예를 들어 성격장애의 하나의 요소인 연극성이나 자아도취성 같은 것들이 타인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는 하나의 이유가 될 수도 있음을 말하는 식이다.

그러나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위의 문제가 명쾌하게 해결되지 않는 한, 이와 같이 말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이 따르는 것이기도 하며 여러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성격장애가 매력에 어떤 영향을 미친다고 말할 수 있는가. 스타가 매력을 발산하는 것은 그의 어떤 외모나 특출한 능력과 관계된 것이지, 성격장애와 관련이 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것 아닌가. 또한 연극성 성격장애나 자아도취성 성격장애가 스타의 지위를 유지하는 데에 도움을 주었다고 할 수는 있어도, 경계성 성격장애는 이와 다른 문제이지 않은가.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여러 질문은 꼬리를 문다.

또 한편으로 저자의 태도에도 약간 의문이 든다. 저자는 어떤 특정의 이유- 예를 들어, 가정 내에서의 학대, 성폭력 -만으로 성격장애가 온다고 단정할 수 없으며, 성격장애는 여러 복합적인 요인들을 모두 고려하여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저자가 스타의 성격장애를 밝히기 위해서 쓴 방법이란, 그의 어린 시절의 경험들을 살피는 것뿐이다. 물론 그 스타들이란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대부분이므로 가능한 방법이란 이런 것 밖에 없다고 변명할 수 있지만, 스타가 어린 시절의 특정의 경험으로 성격장애에 이르렀다고 말하는 듯한 이러한 태도는 본인이 말한 문제를 고스란히 반복하는 것이다.
.....................................

따라서 어떤 의미에서는 저자가 스타들의 가정사와 매력과 성격장애를 고찰하려고 하면 할수록 읽는 독자들은 더욱 미궁에 빠진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이 책의 매력은 점점 줄어든다. 도리어 이 책이 매력을 발산하는 부분은 그러한 스타들의 이야기가 배제되었을 때이다. 성격장애의 치료와 관련된 약물들의 이야기, 그리고 성격장애의 원인들을 가정, 교육, 문화, 유전 등 여러 요소를 폭넓게 고려하며 펼치는 이야기들은 꽤나 흥미진진하며 읽을만하다. 따라서 이 책을 스타들의 내면을 살피는 도구로만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내면을 살피는 도구로서 활용할 때 이 책의 매력이 발산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p.s. 저자는 보르빈 반델로. 책 날개에 보면 정신장애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으로 독일에서 의과대학 교수이자 정신과 전문의로 활동하고 있다고 소개되어 있다. 그런데 저자의 문제인지, 아니면 번역가의 문제인지 책의 문장들의 구성이나 문단 연결이 어딘지모르게 깔끔하지 않은 데가 있다. 특히 책의 마무리나 에필로그는 조금 뜬금없다는 인상마저 준다. 

  1. 이를 '경계성' 성격장애라고 하는 것이 맞는지 모르겠다. 이것이 원래 외래용어임을 생각해보면 영어명이 Borderline Personality Disorder이므로 '경계선' 성격장애라고 하는 것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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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서 자기(self)와 대면하기

The Book | 2009. 6. 20. 20:51 | Posted by 맥거핀.
 
미술관에는 왜 혼자인 여자가 많을까? - 6점
플로렌스 포크 지음, 최정인 옮김/푸른숲


본 도서 리뷰는 TISTORY와 알라딘이 제공하는 서평단 리뷰 포스트입니다"


미술관에는 왜 혼자인 여자가 많을까? 아마도 사회학자들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문화에 대한 관심과 충분한 재력과 넉넉한 시간을 가지고 있는 여성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는 것에 대해 이야기할는지도 모른다. 혹은 전직 큐레이터라면 요즘 여성들을 타겟들을 한 기획성 전시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는 추세와 문화에 목말라하는 여성들과 효과적인 마케팅 방법의 결합에 대해 이야기할는지도 모른다. 혹은 영화사 홍보팀에 다니는 사람이라면 최근 미술관에 점점 손님을 빼앗기고 있는 것에 대한 걱정과 이런 혼자인 여성들을 어떻게 영화관으로 발걸음을 하게 만들지가 훨씬 더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할는지도 모른다. 출판계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추세에 재빠르게 발맞추어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집과 현대 미술을 알기 쉽게 소개한 글들에 주목하는 기획을 내놓을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엄청난 야구광이자, 몇 년 째 혼자 살아온 좋게 말하면 싱글남, 나쁘게 말하면 노총각인 선배 J는 아마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야, 뭐, 야구장에 혼자인 남자들이 많은 것과 같은 이치지."

<미술관에는 왜 혼자인 여자가 많을까?>의 저자 플로렌스 포크(Florence Falk)는 심리치료사이다. 그래서 그녀는 일종의 심리학적인 입장에 입각한 대답을 내놓는다. 그녀들이 미술관에 가는 이유는 그곳에서 자기(self)를 대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위대한 화가의 작품을 감상하는 것이 주목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혼자인 여성들은 그곳에서 여러 작품들을 대면하며, 그것을 감상하는 것과 동시에 스스로를 마주하고, 마음을 가라앉히며, 평소에 돌아보지 않았던 자신에 대해 고민하며, 고독을 만끽한다. 물론 이렇게 말하면 몇몇은 물음을 제기할 것이다. 아니, 고독을 즐기러 꼭 미술관까지 가야하나. 그냥 집에서 혼자 조용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고독을 만나면 될 것이 아닌가. 그러나 저자가 얘기하는 고독은 다른 이와 관계를 끊고 집안에 고립되어 내면에만 침잠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랫동안 혼자 지내다 보니 나는 고독이 선물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모든 여성이 나와 같이 삶이 바뀌는 경험을 할 수 있다. 그러나 혼자라는 것을 바로보기 위해서는 먼저 혼자인 것이 외로움을 뜻하는 것이 아니며, 고립이나 소외나 실패가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혼자인 것이 이런 것들과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혼자 사는 여자로서 나의 첫 번째 과제였고, 여성 내담자들과 상담을 할 때 내가 강조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혼자임이 무엇인지 이해함으로써 가장 큰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어떤 의미로든 혼자인 여성들이라고 확신한다. (p. 60-61)


이 책은 명백히 여성 독자를 타겟으로 쓰여졌다. 따라서 나같은 남성 독자들이나 혹은 일부의 여성 독자들은 나름의 해석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 책은 그저 독신녀들, 혹은 이혼녀들이 자신의 입장을 합리화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이 아니겠냐고(아마도 이렇게 생각한다면 두 번이나 이혼했다는 저자의 경력이 고려되었을 것이다), 혹은 그렇게 혼자 있는 것이 중요하고, 자기를 만나는 것이 중요하고, 고독을 즐기는 것이 중요하면, 지금 당장 남편 있는 모든 여자들은 이혼 서류를 들고 법원으로 달려가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말이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그것은 오해에 가깝다. 이 책은 이혼이나 독신을 합리화하지도, 이혼을 선동하지도 않는다. 일단 간단히 생각해보면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든 하지 않든 간에, 실제로 독신인 여성들은 점점 늘어가고 있으며, 이혼하는 여성들은 꾸준히 늘어가고 있다(물론 남성들도 그러하지만, 이 책의 타겟은 여성이다). 그리고 독신의 여성들(결혼적령기가 지났건 아니건 간에)이나 이혼한 여성들은 현실적인 여러 문제로, 혹은 심리적인 여러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다. 이 책은 그런 여성들에게 일종의 도움을 주고자 하는 의도로 쓰여졌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더 큰 것은 여기서 말하는 고독을 즐기고, 자신을 대면하는 일이 남편, 혹은 남자친구, 혹은 동성친구가 없는 여성들에게만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모든 여성들에게 요구되는 일이다. 혼자 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어린시절을 돌이켜 보며, 타인과 관계를 맺고, 혼자인 것과 친해지며, 밖으로 나가, 고독을 즐기고, 마침내 자신을 찾는 것(지금까지 얘기한 것은 한편 이 책의 목차이다)은 모든 여성들에게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 물론 쉽게 이야기해서 그것은 누구나가 혼자가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그렇게 하지 않고 자신을 잃어버리면, 상대방(혹은 타인)에게 의지하게 되고, 상대방이 자신을 떠날까봐 끊임없이 두려워하게 되고, 자존감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

요즘 이러한 류의 심리학적인 문제를 다룬 책들이 늘어가고 있는 듯 하다. 그리고 서점에서도 이러한 책들을 모아놓은 코너가 요즘에는 대부분 따로 있으며, 항상 사람이 북적거린다. 그리고 그러한 책들 중에는 대박을 친 책들도 몇 권 있다.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와 같은 책들이 아마도 대표적일 것이다. 나는 이러한 책들은 대부분 그 책의 내용이 어떠한 것인가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 책에 어떠한 내용이 있건, 어떤 중요한 얘기가 있건, 혹은 얼마나 정곡을 찌르는 말들이 있건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아마도 그것들의 많은 부분은 당신이 이미 알고 있는 점일 것이다. 문제는 책을 중간중간 손에서 놓고 생각을 얼마나 하게끔 하도록 하는가에 그 책의 진정한 효용이 있다. 책 안에 아주 수많은 이야기들, 혹은 정곡을 찌르는 이야기들이 있다고 해도 그것을 읽고, 그냥 내려 놓은 후, 자신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않고, "그래 좋은 말씀들이시네."하고 넘어간다면, 이러한 책들의 효용은 아마도 거의 없다고 해야할 것이다.

이 책 <미술관에는 왜 혼자인 여자가 많을까?>의 경우도 그러하다. 이 책의 저자 플로렌스 포크는 심리치료사답게 자신이 다룬 수없이 많은 사례들(여기에는 무엇보다도 자신의 사례가 포함된다)을 충분히 이야기하고 있다. 이 모든 이야기들이 재미있고, 때로는 가슴아프게 하고, 때로는 어떤 깨달음도 주지만, 중요한 것은 한가지이다. 결국 이 모든 사례들은 모두 타인의 사례라는 점이다. 이 모든 사례들은 모두 타인의 각기 다양한 사례들일뿐,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문제, 혹은 내 주위의 상황과 일치할 경우란 거의 없을 것이다. 혹은 일치한다해도 그 사례가 해결된 방식이 정답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책을 덮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것에 있다. 스스로에 대해 생각하고, 현재의 나 자신을 마주하는 것, 그것이 아마도 이러한 류의 독서가 완결되는 방식일 것이다.
....................................

마지막으로 책의 제목으로 다시 돌아가 보기로 하자. 미술관에는 왜 혼자인 여자가 많을까? 아까, 농담삼아 선배 J의 이야기를 했지만, 어쩌면 그 말에 어떤 진리가 담겨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야구장에 혼자인 남자들이 많은 것, 그것은 야구장이 혼자인 남성들이 주위의 비난어린, 혹은 이상한 눈초리를 피해서 혼자 숨기에 적절한 장소라고 인식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남성들은 상대적으로 여성에 비해 이러한 주위의 시선에서 훨씬 자유롭다. 일례로 미술관에 간 혼자인 남성은 별로 그런 시선을 받지 않지만, 야구장에 간 혼자인 여성은 상대적으로 그보다는 어떤 시선을 받지 않는가.(여기서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여자 혼자 야구장에 가면 남들이 괴롭힌다거나 집적댄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최근에는 많이 사라졌지만, 아직도 뭔가 그것을 어색하게 보는 시선, 그리고 그것이 당연한 것으로 느껴지지 않는 어떤 생각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의미이다.) 즉 미술관 같은 공간들이 '그나마' 여성들에게 혼자인 공간으로 허용되고 있다는 것, 그것에 어떤 우리 사회의 어떤 보이지 않는 폭력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닌지도 모르겠다는 조심스런 물음이다. (일례로 남자 혼자 삼겹살 집에서 고기를 구워 먹는 것, 그런 사소한 것도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에서 얼마나 희화화되는가? 여자는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이 책의 제목에서는 왠지 그러한 보이지 않는 폭력이 읽혀진다.


여성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뭔가 결점이 있는 존재로 생각하게 만드는 사회, 그리고 우리 여성에게 직접 가해지는 수많은 폭력을 생각하면, 여성이 혼자 있을 때 불편한 감정을 느끼고 혼자 있는 것을 피하게 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혼자 사는 여성들의 과제는 이런 감정과 대면하고 싸워서 고독이 주는 보상을 즐기는 것이다. (p.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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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noracism.tistory.com BlogIcon 맥거핀. 2009.06.20 20: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3주 안에 서평써야 하는데..쪼오끔 늦었다. 하..그래도 이왕 읽은 책이니 뒤늦게라도 올림.

당연한 말(言)들의 향연

The Book | 2009. 6. 11. 23:49 | Posted by 맥거핀.

지혜의 숲에서 고전을 만나다 - 8점
모리야 히로시 지음, 지세현 옮김/시아출판사


본 도서 리뷰는 TISTORY와 알라딘이 제공하는 서평단 리뷰 포스트입니다"

어떻게 보면, 요즘 여러가지 새로운 방식으로 이른바 '고전(古典)'들이 그 힘을 얻고 있는 듯 하다. 학교에서 고전을 다룬 강의도 많고, 그 외 여러 고전을 강독하는 강좌들도 많으며, 출판사들에서도 앞을 다투어 여러 고전들을 새롭게 소개하고, 조명하는 책들을 발간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반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고전은 여전히, 어떠한 의미에서는 예전보다 훨씬 더, 경시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고전은 고루하고 당연한 말만 가득한 지루한 책,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며, 고전을 읽으려고 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애써 외면하려 하는 사람들도 많다.


아마도 이것은 고전 자체의 문제라기 보다는, 그 고전을 이어받은 후세 사람들의 문제라고 해야 할 것 같다. 특히 이는 그간 고전을 탐독하고, 이야기해 온 '어른들'에게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소위 배웠다는 사람들, 혹은 어떤 높은 위치에 오른 사람들은 종종 고전을 인용하며 '한 말씀' 하시기도 하고, 고전 중의 한 말씀을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고 자랑스레 소개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이들이 가끔 보여주는 자신의 말들과 너무도 다른 행동들, 자신의 좌우명과 완전히 배치되는 행동들은 그 사람 뿐만이 아니라, 이 고전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우리가 때로 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공자님 말씀 하고 있네, 흥."하고 냉소적으로 내뱉을 때, 우리는 은연중 그 고전들까지도 냉소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소개할 <지혜의 숲에서 고전을 만나다>의 저자 모리야 히로시는 다음과 같은 그렇게 '입만 살은 자들'에게 일침을 가한다.


나는 이 책을 30대 이상의 이 사회를 열심히 지탱해나가고 있는 사람들, 특히 40대 이상의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다. 중국고전은 단순히 지식과 교양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적합하지 않다. 이는 어디까지나 실학實學으로, 머리로 이해하기보다는 실천했을 때 의미가 있으며 비로소 그 값어치가 살아난다고 할 수 있다.
(p. 5)



따라서 이 책은 어디까지나 실용서다. 이 책은 <채근담>, <논어>, <맹자>, <삼국지>, <역경> 등 30여 개에 달하는 중국 고전 중에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도움이 될 만한 몇몇 구절들을 뽑아 소개하고, 그에 대해 간단한 설명을 붙이는 구조로 되어 있다. 그리고 읽는 이가 실제로 생활을 살아가는 데에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각 고전 별로 구절을 뽑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고전들을 섞어 다시 재배열 하고 있다. 즉 이 책의 큰 챕터들은 다음과 같다. 인간관계의 지혜, 사람을 쓰는 지혜, 소박한 일상의 지혜, 상황에 대처하는 지혜, 인생을 위한 지혜, 세상을 현명하게 사는 지혜. 

이러한 실용서들은 처음부터 독파하는 것보다는 필요할 때마다 필요한 부분을 읽으면 그만이다. 꼭 필요하지 않더라도 별로 재미없다 혹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느끼면, 다음 파트로 넘어가면 된다. 그래서 나도 고백하건대, 책을 다 읽지 못했다. 굳이 분량을 이야기하자면 한 3분의 2 가량 읽었다. 그러나 사실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완독한 후, 책장 멀리에 꽂아두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 생각된다. 이 책은 한 번 덮은 후 다시 읽지 않아도 되는 그런 류의 책이 아니다. 그보다는 가까이에 두고 생각날 때마다, 혹은 마음이 울적할 때마다, 혹은 답답할 때마다 가끔씩 꺼내어 조금씩 읽는 것이 좋은 그런 류의 책이다. 그래서 나도 책장 가까이에 대학 때 선물로 받은 <논어> 옆에 꽂아두었다.

전체적으로 이 책은 당연한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 그러나 가끔 당연하지만,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 혹은 과거의 내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구절들이 있다. 그런 부분들이 한 두 군데가 아니지만, 그 중의 한 부분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이 부분은 최근의 정치상황과 맞물려서도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사람을 책망할 때는 함축이 필요하다
                                   責人要含蓄 <신음어呻吟語>

'함축含蓄'이란 하고 싶은 것을 전부 드러내지 않고, 여운을 남긴다는 뜻이다. 사람을 책망할 때는 이러한 '함축'이 필요하다고 한다.
왜일까? 이에 대해 두 가지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우선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다. 비록 상대방에게 100퍼센트 잘못이 있다고 해도 마구잡이로 몰아붙이면 당하는 사람으로서는 좋아할 리가 없다. 그런 식으로 하다 보면 반드시 불만과 반발이 생겨난다. 잘못하면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무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
(후략) (p.80)



이 책에는 이러한 당연한 말들이 가득 들어 있다. 아마도 이러한 당연한 말들은, 당연한 말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시대, 상식이 상식으로 받아들여지는 사회에서는 별 의미를 가지지 못할 것이다. 누구나가 이러한 삶의 원칙들을 중시하는 사회라면, 이러한 말들이 더 이상 무슨 의미, 무슨 힘을 가질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지금의 현재는 어떤 의미에서는 비상식적인 것들이 출몰하는 시기, 상식이 통하지 않는 시기이다. 당연한 말을 하면 불온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시기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 꼭 어떤 정치적인 의미를 가지고 하는 말은 아니다. 책을 읽으면서 어떤 부분은 너무 정치적인 의미를 담아 읽히기도 했고, 파란 기와집 사시는 분이 생각나기도 했지만, 그것은 부차적인 문제이다. 아마도 어떻게 보면, 처음에 이야기하였듯이 고전이 강조되고, 고전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 그리고 이런 책들이 출판된다는 것은 일종의 위기의식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느끼고 있는 일종의 위기감 말이다.

그래서 역설적이지만, 더 이상 이런 책이 출판되지 않는 사회가 오기를 희망한다. 당연한 이야기를 하면, 그것이 의미심장하게 들리지 않고, "뭐 그리 당연한 이야기를 하시나." 이러면서 사람들이 별 의미를 두지 않는 사회가 오기를 희망한다. 이 당연한 말들의 향연이 더 이상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 곳, 그곳은 아득히 멀기만 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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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befreepark.tistory.com BlogIcon 비프리박 2009.06.12 16: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연한 이야기를 할 수도 있긴 하겠지만
    모리야 히로시가 이 책에서 보여주는 방식은 확실히(!)
    당연한 이야기의 의미를 두지 않게 합니다.
    좀 독하게 말하자면, 이런 책이 출판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 Favicon of https://noracism.tistory.com BlogIcon 맥거핀. 2009.06.13 00: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하하.출판되지 않기까지 바라시는군요.^^
      저는 마음이 약해서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잘 못 까(?)겠어요. 왠만하면 장점을 찾아내주고 싶어요.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이 책은 그저 대책없이 착한 거
      뿐(혹은 날카롭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이 들거든요.
      정치적이나 다른 의도가 있으면 그에 대해 공격할 수 있겠지만,
      너는 왜 날카롭지 못하냐고 까기는 힘든 것 같아요.

(가짜 인간들로부터) 아이들을 구하라

The Book | 2009. 5. 22. 17:23 | Posted by 맥거핀.

고민하는 힘 - 10점
강상중 지음, 이경덕 옮김/사계절출판사


"본 도서 리뷰는 TISTORY와 알라딘이 제공하는 서평단 리뷰 포스트입니다"

처음에는 가벼운 책이려니 싶었다. 무게도 가볍고, 안에 들어있는 내용도 가벼운 그런 책, 비슷한 어조로 비슷한 방법을 이야기하는 많은 자기계발서 류의 하나. 더구나 표지의 그 커다란 저자사진이라니. 저자사진이 앞면에 커다랗게 박힌 책들은 왠지 신뢰하기가 어렵다. 이 책의 경우와는 조금 다르지만, 대체로 연예인들이나 유명인사들이 쓴 책들이 그렇다. 책의 내용보다는 유명인사의 인기도의 덕을 보려는 책들. 그런 책들은 대체로 실망감을 주고 끝난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 책은 조금 달랐다. 책의 무게는 가볍지만, 생각보다는 훨씬 진중하고, 무거운 내용들을 담고 있었다. 무겁다는 것은 우울하거나, 힘든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무거운 울림으로 머리와 마음을 때리는 구석이 있다는 말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저자의 어떤 필사적인 자세가 느껴졌다. 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가짜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저자는 필사적으로 맞서고 있었다.

이 전반적 위기는 '근대'의 붕괴를 불러오고 있습니다. '근대'가 만들어 낸 수많은 화려한 유산 - 자유와 시장경제의 풍요로움, 민주주의와 평화라는 인류사적 유산 - 이 지금 위태로운 시련의 때를 맞이했고, 그 와중에 우리는 각자의 인생에 담긴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묻고 있습니다. (p.8-9)

저자가 느끼고 있는 우리의 세계는 붕괴되어 가고 있는 세계다. 어떤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의 가치관이 점점 사라지고, 전도된 가치관과 특이한 방식의 배금주의와 '유사 종교'와 상대방을 소멸시키고 싶어하는 사랑이 존재하는 사회. 이 사회에서는 점점 '가짜 인간', 혹은 껍데기만 가지고 있는 인간들이 양성된다. 이 '껍데기 인간'들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겉으로 보았을 때는 사리판별을 잘하고, 여러가지 일을 잘 해내는 기술도 가지고 있고, 말도 잘하고 여러가지 많은 것을 알고 있으나, 그 말이라는 것, 그리고 생각이라는 것을 곱씹어보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 사람들, 자기나름의 가치관도 있으나, 이 가치관이라는 것이 실로 모호하며, 본인이 무엇을 추구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를 잘 모르고 있는 사람들, 각기 여러개의 모순된 가치관을 스스로 안고 있으면서도, 무엇이 어떻게 충돌되는지 잘 알지도, 알려고 하지도 않는 사람들...여러가지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런 껍데기 인간들을 생각할 때마다 배수아의 <에세이스트의 책상>에서 보았던 '수미'의 경우가 떠오른다. 좀 길지만 인용한다.

수미가 그 영화를 선택했기 때문도 아니고 수미의 어떤 말이나 행동이 나에게 불쾌했기 때문도 아니었다. 수미의 말대로 그 영화는 수미에게도 무의미한 것이었다. 비록 수미가 극장 안에서는 그것을 즐겼다 할지라도 말이다. 그것 때문에 수미가 비난받는다면 부당한 일이리라. 수미는 자신의 일상의 환경을 받아들이는 긍정적인 천성대로 행동했을 뿐이었다. 수미는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마음껏 영양을 섭취하면서 자유롭게 유영하는 물고기와 같았다. 냉정하게 관찰해보면, 수미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서 수미 자신에게서 나온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지식이건 스타일이건 수미는 환경에서 최대한 많은 것을 빨아들이며, 학교나 단체나 집회에서 배운 것을 이해하고 실천하기도 했다. 겉으로 보기에 수미는 건강하고 확고하며 공명정대하게 보였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수미는 어떤 의미로든 매스미디어의 각광을 받지 않거나 시각적인 쾌감을 주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둔감한 편이었다. 아니 그런 것들에 대해서 친절했으나 냉담했다. 수미가 알거나 믿고 있는 것들은 엄밀하게 말하자면 각종 미디어에서 배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수미가 사랑하는 것은 비극적이고 이타적으로 보이는 종류의 화제 그 자체였다. 수미는 인간이 가장 비속하게 오감에 충실할 때 사랑하게 되는 것들을 스타일리시하게 사랑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단지 그것을 위해서 지나치다 싶은 해석과 변명과 명분과 휴머니즘과 인과관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식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욕구를 발산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수미는 혁명과 가장 멀리 떨어진 존재이면서도 그것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에 대해서 아무런 저항이나 죄의식을 갖지 않고 도리어 쾌감을 느끼는 21세기의 잡동사니에 불과했다. 수미는 그런 식으로 그 안에서 마음껏 개방적이면서 동시에 기묘한 폐쇄성을 가지고 있는 하나의 세계로 명명될 수 있었다. 영상의 언더그라운드, 은둔을 중계하는 텔레비전, 대중친화적인 파괴자로 말이다. 수미는 마음에 드는 것과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명확하게 구분해냈으며 마음에 드는 것들에게 명분과 이름을 부여했다. 수미 자신에게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표면적으로 수미는 비합리적인 폭력에 대항해서 싸웠으나 역시 그 중요한 동기는 불특정 다수인 수많은 타인의 마음에 드는 것, 타인의 마음을 빼앗는 존재가 되는 것, 혹은 그런 존재를 추종하는 것, 사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유형 무형의 정서적인 권력을 획득하는 것이었다. 수미가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그 개별적 대상이 아니라 추상적인 무리로 존재하는 캐릭터 상품과 같은 어떤 유형이었다. 


저자가 이러한 껍데기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 찾은 실마리는 나쓰메 소세키와 막스 베버이다. 이 두 사람에게서 실마리를 찾고 있는 것이 흥미롭다. 먼저, 흥미로운 부분은 이들이 살았던 시대이다. 나쓰메 소세키는 일본의 소설가, 막스 베버는 독일의 철학자이자 사회학자. 언뜻 보아서는 별로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 이들은 살았던 시기가 겹친다. 막스 베버는 나쓰메 소세키보다 3년 이른 1864년에 태어났고, 나쓰메 소세키보다 4년을 더 살았다. 즉 근대가 폭발하던 시기, 독일은 프로이센 제국에서 제1차 세계대전이 촉발하던 시기로 이행하는 단계이고, 일본은 '메이지 유신'의 시기. 저자의 말대로 이 시기는 자유가 폭발하던 시기였다. 새로운 문물과 사회계급이 출현하고, 과거의 종교라든가, 신분 체제같은 사회적, 종교적 억압에서 벗어나 개인이 처음으로 어떠한 가치관에도 휘둘리지 않고, 개인으로서 그 자신을 마주하던 시기. 이 시기에 처음으로 사람들은 넘쳐나는 자유 속에서 개인의 고독감, 사회적 소외를 겪었으며, 삶을 지탱하는 가치관을 잃어버렸다. 저자는 현재의 시기를 이러한 것이 반복되는 시기로 보고 있는 듯 하다. 즉 나쓰메 소세키나 막스 베버가 살았던 시기가 중세가 붕괴되고 근대가 도래하는 시기였다면, 현재의 시대는 근대가 붕괴하고, 근대 이후가 도래하는 시기라는 것이다(물론 근대가 붕괴된 시점이 어디인가의 문제는 훨씬 복잡한 문제이다). 따라서, 어떤 의미에서는 근대 이후 세계대전을 일으켰던 껍데기 인간들이 만들어졌던 것처럼, 현재 시기에도 가치관의 전도와 사회적 소외 속에서 이런 껍데기 인간들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각주:1].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나쓰메 소세키와 막스 베버의 다른 공통점이다. 이들은 모두 신경쇠약을 겪었다. 막스 베버는 아버지가 사망한 후 내내 신경증과 우울증을 겪었으며, 나쓰메 소세키 역시 본인이 신경쇠약을 겪었을 뿐 아니라, 그의 소설에서는 신경쇠약에 걸린 사람이 빈번하게 나온다. 이들에게는 왜 이러한 공통점이 있는 것일까. 저자는 이를 근대 이후 망가져가는 가치관에 대한, 일종의 그들 나름대로의 저항의 산물로서 보는 듯 하다. 하기는 나쓰메 소세키와 막스 베버는 먼 곳에서 각기 다른 일에 몰두했지만, 그들이 해온 생각의 파편들은 서로 겹치는 부분이 많다. 나쓰메 소세키는 근대국가 건설이라는 '메이지 유신'의 가치관에 동조하지 못하며,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성이란 무엇인가의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였으며, 막스 베버 역시 인간이 만든 근대 체제와 자본주의 체제에 대해 최선을 다해서 고민했다. 즉 다른 사람들이 소멸해가는 중세, 잃어버리는 가치관들 속에서 혼란을 겪으며, 국가라는 것, 유사 종교 혹은 제국주의에 그들 자신들을 다시 소속시키는 것으로 (고민을 버리고) 삶을 이어나가고자 했다면, 이들은 이 시기에 맞서서 인간에 대해 생각하는 것, 그 인간들이 작동하는 방식에 대해 고민하는 것, 그리고 자신의 가치관의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대응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나가려고 했던 것이다. 그래서 신경쇠약은 이들이 이러한 세상에 필사적으로 맞선 하나의 산물로서 이들에게 남았던 것으로 볼 수도 있다.
........................................

따라서 저자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 책의 제목대로 '고민하는 힘', 고민 그 자체가 가진 파괴력에 대해서이다. 저자는, 나는 누구인가, 돈이 세계의 전부인가, 제대로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청춘은 아름다운가, 믿는 사람은 구원받을 수 있을까, 무엇을 위해 일을 하는가 등등 여러 형이상학적인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나름의 생각을 제시하고 있지만, 그것 모두를 몰라도, 이해하지 못해도 상관없다. 다만 한 가지, 그래 나도 가끔 무엇인가를 고민해보아도 괜찮겠지, 또는 적어도 뭔가 껍데기 인간은 안 되었으면 좋겠는데, 혹은 나도 껍데기만 있는 인간은 아닐까(바로 나의 고민이다), 라고 생각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된다.

사람을 소모품처럼 쓰고 버리는 가혹한 경쟁 시스템, 점점 얇아지고 약해지는 사회 안전망, '승자'와 '패자' 사이의 격심한 차이. 젊은이들이 견뎌야 할 현실은 너무나도 혹독합니다. 따라서 잔혹하고 박정한 취급을 받는 그들, 그녀들에게 세련된 정신론을 제시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런 일을 할 바에야 살아남기 위한 노하우를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나 실업자의 경우처럼 살아남아야 하는 입장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하루바삐 자기방어책을 알려 주어야 합니다. (p.172-173)

저자가 말한 대로 이는 살아남기 위한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는 '가짜 인간', 껍데기만 있는 인간들에 필사적으로 대항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가짜 인간들의 가장 무섭고도 커다란 특징은 본인만 가짜 인간이고 싶어하지 않아한다는 점이기 때문이다. 즉 가짜 인간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을 어떻게 해서든 가짜 인간으로 만들려고 한다. 어떠한 의미에서는, 지금의 우리 사회도 이러한 것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닐까. TV를 틀면 "고민고민하지마, Girl~"(물론 이건 반농담이다.) "생각만 하면 생각대로, 비비디 바비디 부"(참 반(反) 나쓰메 소세키적인 말이다.)와 같은 말들이 넘쳐나고, 이 사회의 시스템의 상층부에는 엄청난 가짜 인간들이 버티고 있으면서 어떻게 해서든 다른 사람들을 가짜 인간으로 만들려고 하고 있다[각주:2]. 그렇게 해야만 본인들이 가짜 인간인 것이 드러나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루쉰의 유명한 책 <광인일기>의 마지막 구절 '사람을 잡아먹어 본 일이 없는 아이가 아직도 남아 있을지 몰라. 아이들을 구하라......'를 패러디한 다음의 말로 끝을 맺고자 한다. 고민을 두려워하지 않는 아이가 아직도 남아 있을지 몰라. (가짜 인간들로부터) 아이들을 구하라...... 




  1. 책에도 잠깐 언급되는, 일본의 비평가 가라타니 고진의 생각이 여기와 좀 겹치는 듯 하다. 가라타니 고진도 그의 저서 <근대문학의 종언>이나, <역사와 반복>에서 이러한 반복되는 역사에 대해, 주기적으로 진행되는 체제와 자본주의의 발달에 대해 논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세계의 체제, 자본주의의 체제가 전체적으로 반복되는 것은 물론이고, 일본 자체만 보아도 그러하다.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가라타니 고진 역시 이 이야기를 하면서 막스 베버나 나쓰메 소세키를 언급하고 있다는 점이다. [본문으로]
  2. 예를 들어,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한예종의 통섭교육과 황지우 총장의 사퇴여부를 둘러싼 논쟁이 그렇다. 유인촌 장관과 문화부 친구들은 한예종의 통섭 교육과 관련하여 여러 의문을 제기하며 황지우 총장을 사퇴시켰다. 인문학과 예술, 기술을 결합시키는 통섭 교육, 어떻게 보면 예술교육에 있어서 하나의 핵심적인 부분이라고 볼 수 있는 이것이 어떻게 좌파적 인간을 양성시키는 문제와 연결되는지..그야말로 놀라운 발상이다. 전형적인 가짜 인간들의 가짜적인 공세. 관심있는 분은 대표적인 가짜 인간 변희재의 동아일보의 이 칼럼(http://www.donga.com/fbin/output?n=200904030102) 부터 다른 기사들을 읽어보시길. [본문으로]
TAG 강상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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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 법관들이 보고 싶다

The Book | 2009. 5. 20. 02:27 | Posted by 맥거핀.
불멸의 신성가족 - 8점
김두식 지음/창비(창작과비평사)


"본 도서 리뷰는 TISTORY와 알라딘이 제공하는 서평단 리뷰 포스트입니다"

흥미진진한 이야기였다. 불멸의 신성가족들의 이야기. 그곳에도 어떤 일종의 관계가 있고, 그 관계 속에서 오가는 정(情)과 다툼과 욕망이 있으며, 흥미롭고도, 약간은 황당한 사건의 뒷이야기가 있고, 이상한 음모와 알려지지 않은 비밀스러운 마무리들이 있었다. 무슨 암흑가 이야기냐고? 음..그게 아니라면, 정계(政界)의 이야기냐고? 아니다. 이 책의 부제는 이렇다. '대한민국 사법 패밀리가 사는 법'. 그래서 흥미롭게, 재미를 느끼며 읽기를 시작했지만, 결국에는 씁쓸한 뒷맛만 남았다.

요즘 '패밀리'가 유행이지만, 한편으로 '패밀리'는 위험하다. '패밀리'는 '우리가 남이가'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내가 그 패밀리 안에 들어가 있을 때에는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은 무엇보다도 강력한 보호막으로 다가오지만, 그 패밀리가 우리의 외부에 있는 것이고, 우리가 그들과 어떤 관계를 맺게 될 때에는 이는 우리에게 엄청난 장벽이 된다. 대표적인 예가 이 책에서 말하는 사법 패밀리이다. 이 책에서 차근차근히 논증하는대로, 그 패밀리가 되는 것은 실로 어렵고, 힘든 과정을 통과해야만 한다. 바로 '사법시험'이라는 장벽이다. 그러나 그 장벽을 넘어 그 안으로 진입하게 되면, 그에 따른 결혼과 도제식 선후배 관계와 술자리와 오고가는 돈을 통해 그들은 강력한 패밀리가 되어 외부를 향해 보호막을 둘러친다. 그래서 이들을 이 책에서는 신성가족(神聖家族)이라고 묘사한다. 저자가 말하는 대로, 신성가족은 맑스와 엥겔스의 공동저작인 <신성가족, '비판적 비판주의'에 대한 비판: 브루노 바우어와 그 일파를 논박한다>에서 유래된 말이다. 

맑스는 "불경스러운 대중과 모든 것으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키기 위해 어마어마한 투쟁을 겪어온 비판적 비판주의는 마침내 고독하고 신을 닮았으며 자기만족적이고 절대적인 존재로 되는 데 성공했다"고 그들을 묘사합니다. (p.146)

저자는 현재 한국사회의 신성가족인 사법 패밀리들을 이 책에서 잘게 해부하고 있다. 이 사법패밀리에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판사, 검사, 변호사만 포함되지 않는다. 변호사 사무실 실장 및 직원들 (또는 사실상 브로커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 법무법인의 직원, 법원의 일반직원들이 포함된다. 그리고 이들의 주변에 밀접하게 관계하고 있는 사람들로서 경찰, 국회의원, 법과대학 교수들, 검찰이나 법원에 출입하는 기자들, 그리고 심지어는 결혼소개업자(일명 마담뚜)들이 있다. 그리고 그 외면에 우리같은 '일반 사람'들이 있다.  물론 이 책에서 말하는대로, '일반인'들을 제외하고 이들 중 어디까지가 진정한 사법 패밀리인가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건 사법 패밀리의 범위가 아니다. 문제는 이들 사법 패밀리가 만들어진 시스템, 작동하는 방식이다. 왜냐하면 이들 사법 패밀리는 일반 국민들과 유리되어, 그들만의 작동방식으로 작동하고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유리(遊離)는 완전한 유리가 아니다. 왜냐하면 일반 사람들 중의 상당수는 삶의 어느 순간에서 이들 사법 패밀리들을 만나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로 다른 언어로 말하고 사고하는 이들 사법 패밀리와 일반인들 사이에는 오해와 불신만이 가득차 있다. 특히 일반인들의 사법부에 대한 불신은 심각하다. 책에 나온 통계를 빌리자면, 사법 서비스에 만족하는 국민이 전체의 약 34%밖에 되지 않는다(2003년 1000명 조사). 바로 이것이 이 책이 쓰여진 이유다. 일반인들은 왜 사법부에 만족하지 못하는가, 그것은 사법부의 구조 안에 어떤 문제가 있기 때문은 아닐까. 그렇다면 그 문제는 무엇일까.

이 책에서 그런 사법부를 해부하기 위해 사용한 방법은 질적인 연구방법론이다. 즉, 판사에서부터 말단직원에 이르기까지 사법부의 구성원들은 물론이고, 위에 얘기한 기자나 경찰, 마담뚜, 그리고 여러 사법에 대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일반인들에 이르기까지 총 23명의 사람들을 심층 인터뷰해서 이 사법부라는 시스템, 그리고 이 시스템의 작동 방식을 해부하고자 하였다. 책에서도 언급하고 있지만, 사실 질적인 연구방법은 위험이 따른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위험은 '과연 이들이 전체를 대표한다고 볼 수 있는가'라는 물음이다. 즉 이들만 그런 것 아닌가, 혹은 이들이 일부 과장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질문말이다. 저자도 이를 우려해서인지 시작부분에 연구방법과 과정에 대해 길게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래서 처음에는 약간 우려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이 연구에 어느정도 믿음이 갔다. 무엇보다도 각 구술자들의 이야기가 서로가 서로를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런 거다. 우리가 '사과'가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사과의 겉을 살피는 것이 양적인 연구방법이라면, 질적인 연구방법은 그 사과를 바늘로 찔러 그 안의 과육을 아주 살짝이나마 맛보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이 책에서는 그러한 바늘이 여러개 꽂혀 바늘과 바늘의 끝이 맞닿아 있는 느낌이랄까. 질적인 연구방법에서는 상당히 어려운 일이지만, 이 책은 사법 시스템이라는 구조와 작동 방식을 어느 정도 해체하여 드러내보이기에 근접했다는 느낌을 준다. 물론 이에는 구술자들의 성실하고도 현장감 넘치는 구술과 저자의 그 구술들을 다시 해체하여 쉬운 언어로 엮어내는 글솜씨가 큰 몫을 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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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마지막 장의 제목은 '나가는 글: 억지로 찾아본 희망'이다. '억지로 찾아본'이라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나 역시도, 책을 읽으면서 과연 이 구조에, 이 작동방식에 희망은 있을까..이런 생각이 들었다. 책에서 말하는 사법 패밀리 구조의 가장 큰 문제점은 '패밀리 내에서의 그리고 외부와의 의사소통의 부재'와 '원만함이라는 이데올로기가 불러오는 구조의 폐해(이른바 '좋은 게 좋은 거지 뭐')'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여기에는 판검사를 증원하고, 변호사의 숫자를 늘리고, 로스쿨 제도를 통한 선발방법의 변화나 법조일원화 같은 현실적인 방법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저자가 말하는 최종의 해결책은 다름아닌 '시민만이 희망이다'. 즉 일반인들의 인식과 사법을 대하는 방법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책에서 말하는대로 사법부 불신을 낳게 한 데에는 사법부만의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다. 일반인들에게도 책임이 없다고 말하기 어렵다. 일례로 판사 출신 변호사나 브로커가 돈만 밝힌다고 욕하면서도 그들에게 돈을 가져다 주는 것은 판사 출신 변호사(전관 변호사)가 판사와 더 잘 통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진 '일반인'들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말하는 것은 그러한 방어적이고 소극적인 의미에서의 시민 의식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그보다 더 훨씬 적극적인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찾는 행위 모두를 포괄한다.

우선 시민들 입장에서는 판검사들도 자신과 똑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공부 잘한 사람들이라고 무조건 한 수 접고 들어가는 습관도 바꾸어야 합니다. 그 장벽이 마치 없는 것처럼 생각하고 용기를 내 판검사들에게 말을 걸어야 합니다. 일단 용감하게 "판사님, 저하고 얘기 좀 하시죠?" "검사님, 제 얘기도 좀 들어주시죠"라고 말을 붙이면 의외로 판검사들이 귀를 기울이는 모습을 발견할 겁니다. 그렇게 했더니 판검사들이 자꾸 말을 끊고 무시한다고요? 그럴 때는 편지를 쓰십시오. (p.322)

물론 이는 쉬운 일이 아니다. 솔직히 나도 책을 덮고 나서 위와 같은 '억지로 찾아본 희망'같은 이야기보다는 '어떤 일이 생겼을 때 사법 패밀리에 전화 한 통 걸어 부탁할 수 있는 인맥이 있는 사람이 우리나라 국민 중 14.2%'라는 책 속 통계를 떠올리며, 나는 그 14.2%에 들어가나..대학 때 동기들이나 선후배들 중에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판사나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들을 인맥이라고 봐야하나..그래도 뭔 일 생기면 그 사람들에게 전화라도 해봐야 되겠지...그러고보면 나는 나쁘지 않은 편인가..등등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책에서 말하는 대로 사실 그 14.2%라고 해봐야 기껏해야 립서비스나 받는 수준이니 아무 것도 아닐는지도 모른다. 문제는 구조고, 그 구조의 작동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그래서 한편으로 책 속 표현대로, 선배들이 돈을 건네고, 청탁전화를 하고, 술을 마시자고 했을 때 거절하고, 사법 패밀리가 되기를 거부하는 '또라이' 법관들이 보고 싶다. 그리고 그런 '또라이'들에게 바보같은 질문도 하고, 중언부언 자신의 이야기도 하고, 때로는 편지도 쓰고 전화도 하는 당찬 일반인들도 보고 싶다. 물론 (그럴 일이 없으면야 더 좋겠지만) 나도 포함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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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haerang.tistory.com BlogIcon CITY 2009.05.20 10: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참 흥미롭게 읽은 책입니다. 사법계의 현실을 들여다 볼 수 있었던것 같고요.
    리뷰가 참 좋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 Favicon of https://noracism.tistory.com BlogIcon 맥거핀. 2009.05.20 14: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반갑습니다.^^ 간만에 흥미로운 책이었습니다. 잘 알지 못하는 세계를 보는 일은, 살짝만 들여다 보아도 늘 재밌습니다. 더구나 그 동네가 복마전 같은 곳이라면요.
      나중에 블로그 놀러갈께요.~^^

문화 공간으로서의 도시 돌아보기

The Book | 2009. 5. 9. 22:33 | Posted by 맥거핀.
마음이 머무는 도시 그 매혹의 이야기 - 6점
이희수 지음/바다출판사


"본 도서 리뷰는 TISTORY와 알라딘이 제공하는 서평단 리뷰 포스트입니다"


가벼운 여행기다. 글쎄. 가볍다는 말이 조금 부정적인 느낌이라면 이렇게 말해도 괜찮겠다. 가볍고 깔끔한 여행기다. 이 책에는 모두 18개의 소위 '문화도시'가 소개되어 있다. 각 도시마다의 소개글은 천천히 읽는다해도 약 5-7분 안에 읽을 수 있는 짤막한 분량. TV에서 하는 짤막한 스팟 형식의 여행 프로그램을 보는 느낌이다. 도시의 주요 관광 장소 몇 군데 소개하고, "와우~정말 멋있네요~"하는 성우의 기분좋은 감탄사 몇 개 붙이고, 거리 먹거리 한두 가지 소개한 후, 야경을 배경으로 끝맺는 '~따라 세계여행'같은 프로그램 같은 거 말이다. 그게 이 책의 단점이자 장점이다. 이 책에 베르나르 앙리 레비의 <아메리칸 버티고>나, 유재현의 <아시아의 기억을 걷다>와 같은 인문학적인 또는 역사서술적인 글쓰기를 기대했다면 실망할 것이다. 저자는 가끔 도시의 역사적인, 혹은 문화적인 배경에 대해 소개하기도 하고, 독자들이 잘 모를 용어들에 대해 친절한 주석을 덧붙이기는 하지만, 교과서의 수준을 크게 넘지 않는다. 물론 이는 위에서 말했듯이 단점으로만 기능하지는 않는다. 세계의 문화도시를 잠깐 둘러 본다는 가벼운 느낌으로 보면, 또는 가벼운 교양서적을 본다는 생각으로 대하면 어느 정도 기대감은 충족시켜 줄 것이다. 어떤 면에서 보면 이도 저자의 능력이다. 가벼운 교양서적의 수준을 유지한다는 것도 꽤나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이다.

지중해라는 '문명의 호수'를 끼고 인류가 일구어 낸 다양하고 풍요로운 문화를 받아들인 크레타 섬은, 그 때문에 수많은 이민족의 침략과 약탈에 시달려야 했다. 기원전 27년, 아우구스투스(Ceasar Augustus, 기원전 63-14)는 로마의 대권을 장악하고 중부 그리스와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차지해 버렸다. 그 뒤 로마가 비잔틴 제국과 서로마 제국으로 갈리자 크레타 섬은 비잔틴 제국의 통치를 받게 되었고, 이곳에는 초기 바실리카가 많이 세워졌다. 그런가 하면 9세기에는 아랍 사람들의 지배를 받아 모스크가 난립하기도 했다. 결국 크레타 섬은 1670년에 오스만 제국의 수중에 들어갔고, 뒤이어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다가 1913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그리스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이처럼 복잡한 침략의 역사를 겪었기 때문인지 크레타 섬을 둘러보고 있노라면 오스만 제국 시대의 성채와 유적은 물론 고대와 현대가 한자리에 모여 있는 마치 '문명의 종합 전시장'에라도 온 느낌이다. (p.91-92)  
 
무엇보다도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꽤나 다양한 문화권의 다양한 느낌의 도시들을 엮어서 소개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이 책에는 이탈리아 밀라노, 피렌체, 체코 프라하, 캄보디아 앙코르 와트 등 그간 다른 여행기나 매체에서 자주 소개된 도시들도 있는가 하면, 파키스탄 라호르, 러시아 이르쿠츠크,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 등 우리나라 사람들이 거의 접하기 어려운, 잘 소개되지 않았던 도시들도 있다. 이 외에도 알제리의 알제나 이집트 룩소르 같은 여러 다양한 문화들의 다양한 도시들을 폭넓게 소개하려고 했다는 인상이 짙다. 이 책을 읽고 처음으로 러시아 이르쿠츠크가 러시아 혁명가들의 유배지로서 시작되어 발전된 도시임을, 파키스탄 라호르가 무굴제국의 수도로서 찬란한 이슬람 문화로 번성했던 도시임을 알게 되었다. 하기사 어느 여행기가 키르기스스탄의 비슈케크까지 그 발길이 가 닿겠는가. 저자의 이슬람권에 대한 관심과 다문화적이고 잡식적인 발걸음이 빛나는 순간이다. 다만,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이러한 여러 다양한 도시들이 조금 더 체계를 가지고, 혹은 주제를 가지고 유기적으로 구성되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포르투갈 포르투에서 시작해, 미국 시애틀에 다다르는 이 책의 구성은 유럽과 아시아, 아메리카를 넘나들며 다소 산만하게 느껴진다. 어떤 역사적인 흐름이라던가, 각 문화가 전파되는 경로을 따라 이동한다던가 하는 유기적인 흐름을 이 책의 구성에 도입하였으면 조금 더 체계적이고 독자들도 덜 혼란스러운 경험이 되지 않았을까.

다만, 책을 읽다보니 몇 가지는 확실하게 알 수 있을 것 같다. 일단 하나는 어떠한 문화권의 어떤 도시이건, 도시의 문화(즉, 음식이나 건축물 등)는 그 자신의 역사를 반영한다는 것이다. 이탈리아 밀라노의 여러 두오모(대성당)들과 거리, 그리고 도서관과 극장 등의 오래된 건축물들은 위대한 문화유산이자 르네상스라는 하나의 거대한 역사의 일부분이다. 즉 이 건축물들 각각이 별개로서 여겨지지 않고, 그 전체가 거대한 르네상스의 유산으로 여겨질 때 그 가치는 위대한 것으로 기록된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이러한 문화들, 혹은 그 문화를 구축시켜 온 역사를 돌이켜 볼 때 '종교'라는 것을 결코 간과할 수 없다는 점, 어떤 의미에서는 인간의 위대한 문화유산들은 모두 종교적인 의미를 가지고 구축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는 점이다. 성당과 신전 혹은 오벨리스크 같은 명백한 종교적인 의미를 가진 건축물들은 물론이려니와 일반건물 벽면의 벽화에서부터 크노소스 유적지의 뱀 모양의 대형 항아리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인간의 문화유산들은 종교적 또는 주술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거의 모든 도시들의 문화가 온전히 그들 자신으로부터 비롯된, 즉 하나의 폐쇄된 체제로서 구축된 경우는 없다는 것이다. 전쟁이건, 혹은 무역이건 간에 대부분의 문화는 주변의 영향을 받고, 이러한 주변으로부터 도래된 문화와 그들 자신의 문화가 섞여 또다른 제3의 문화를 만들어내며, 이러한 제3의 문화는 또 주변으로 영역을 확장해 나간다. 이것이 한 문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이자, 역사이다.

카르나크 신전과 열주의 양식은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의 그것과 닮아 있다. 파르테논 신전보다 1000년이나 앞서 세워진 카르나크 신전의 규모와 정교함이 오히려 돋보였다. 서구 문명의 뿌리를 로마와 그리스에 두고 검은 아프리카의 이집트와 동양의 오리엔트 문명과의 단절을 시도했던 유럽 인들의 오만이 너무나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이집트 문명이 그리스·로마 문명에 준 영향은 단순히 형태나 양식에 그치지 않는다. 미라와 파라오의 부활 사상은 그리스의 디오니소스 신앙으로 연결되어, 기독교 부활 사상의 바탕이 되었다.
그뿐 아니라 이집트의 많은 신들은 이름을 바꾸고 옷을 갈아입어 그리스와 로마의 신으로 둔갑하였다. 그러나 흰 것만이 선이고 최고라고 믿었던 유럽 인들은 자신들의 가슴 속에 뜨겁게 흐르고 있는 이집트의 정신을 느낄 수가 없었다. 그리스의 파르테논은 지금 유네스코가 지정한 인류 문화유산 제1호이지만 카르나크의 의의와 존재를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될는지. (p.134-135)


글쎄. 누군가는 '뭐 또 이런 당연한 소리를...'이라고 할 것 같다. 문화가 역사를 반영한다느니, 모든 문화는 종교성을 그 바탕으로 한다느니 하는 소리는 너무나도 '교과서스러운' 말이 아니냐고 말이다. 그렇다, 당연한 사실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는 것, 그게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 책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교과서에 나열된 지식이 아니라, 세계의 여러 소위 '문화도시'들을 돌아보면서 문화란 어떻게 구축되고, 발전하는가를 아주 살짝 생각해보게 하지만, 결코 그 이상, 깊숙한 수준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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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책장을 덮으면서 한 가지 생각은 들었다. 이러한 문화도시들에 우리나라의 도시들은 들어갈 수 있을까. 지금 내가 발을 디디고 있는 백제시대로부터 이어진 '문화도시'로서의 고도(古都) 서울은 어떤가하고 말이다. 글쎄. 엔고 현상으로 서울 거리를 가득 메웠던 일본인들이 '명동' 이외에는 갈 곳이 없어서 한 번 방문한 후 발길을 끊고 있다는 신문기사를 보며 마음이 편치는 않다. 명동에서 화장품 사고, 쇼핑하고, 명동칼국수 먹고 청계천 살짝 보는 것 이외에는 그들이 할 일은 정말 별로 없는 건지, 몇 천년을 이어온 거대한 문화의 총합으로서의 서울은 어디에 숨어 있는건지 잘 모르겠다. 우리가 지향하는 것은 밀라노 또는 라호르인가, 계획된 성채로서의 두바이인가. 있는 남대문마저 홀랑 태워드신 분들, 그리고 멀쩡한 4대강 파헤쳐 운하 만드신다는 분들께 묻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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