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14'에 해당되는 글 2

  1. 2021.01.14 붕괴하는 것들
  2. 2021.01.14 작년에 만난 최고의 책
 

붕괴하는 것들

Interlude | 2021. 1. 14. 15:13 | Posted by 맥거핀.

 

본 사람들은 대부분 욕하지만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영화들이 있다. 며칠 전에 본 영화 <콜로설>이 그런 경우인데, 네이버에 들어가니 아니나다를까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영화를 만든 거임?"이라는 반응이 대부분인 것 같다. 사실 스토리만 보면 그렇게 욕을 먹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느껴지는데, "내가 마음먹은 대로 조종하는 거대괴수가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어린이들(혹은 낮술먹고 덜깬 어른들)의 헛소리(아니, 로망(老妄))를 끝까지 밀고 나가면 아마도 이 영화 같은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싶기 때문이다.

 

영화의 제목인 colossal은 '거대한'이라는 의미이지만, 사실 나는 살짝 비슷한 collapse(붕괴)라는 단어가 내내 연상되었는데, 주인공의 모습을 그대로 따라하는 거대 괴수가 서울(그렇다, 우리 수도 서울)을 붕괴시키는 게 꽤 마음에 들었기도 하지만(가끔 서울을 때려 부수고 싶은 거는 나만 그런거 아니겠죠?), 그보다는 이 영화가 어떤 자아의 '붕괴' 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밤새 술먹고 거짓말하다 얹혀사는 남친 집에서도 쫓겨나면서 영화 속에 첫등장하는 주인공 글로리아(앤 해서웨이)도 어떤 붕괴의 양상을 보여주지만, 그것은 글로리아의 친구(이자 사실은 빌런) 오스카(제이슨 서디키스)도 마찬가지다. 즉 그녀(혹은 그)가 서울을 때려 부술 때 사실은 그들은 그들 자신의 내면을 때려 부수고 있다. 글로리아가 뉴스를 보고 경악하며 어떻게든 서울을 붕괴시키지 않으려고 애쓸 때 사실은 그녀는 그녀 자신을 붕괴시키지 않으려 애쓴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니까 사실은 나는 그냥 이 영화가 어떤 은유처럼 느껴진다. B급 괴수물의 외양을 두른 이 영화는 사실 붕괴되어 가는 어른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인사이드 아웃'이다. 하필이면 아침 8시 5분에 동네 놀이터에 등장하여야만 괴수 분신 기제(개인적으로는 '로보트 태권브이 방식'이라고 부르고 싶다. 주인공 훈이의 태권동작을 그대로 따라하는 로보트 태권브이!)가 작동한다는 설정은 바로 그 시간과 장소야말로 대책없는 술꾼들이 자신의 붕괴되어가고 있는 내면을 가장 잘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자 장소이기 때문이다. 초등학생들이 가방을 메고 줄줄이 학교로 향하는 그 시각(저 아저씨는 뭐야 엄마? 아유 빨리 학교나 가! 나중에 저렇게 되고 싶어?), 밤새 먹은 술이 여전히 덜깬 채로 차마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집앞 놀이터 그네에 앉아 있노라면, 혹은 (더 최악으로는) 모래밭에 파전이라도 하나 부쳐낸다면 밀려오는 자괴감을 그야말로 어찌할 수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영화의 마지막도 그렇게 단지 농담처럼만은 느껴지지 않는데, (혹시라도 이 쓰잘데기 없는 리뷰를 보고 영화를 보실 분을 위해서 자세히 쓰지는 않겠다.) 그것은 어쩌면 결국 그 붕괴를 이겨내는 길은 누군가의 위치에 서보는 것이라는 의미가 아닐까. 타인의 자리에 서서 결국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 알코올이든 혹은 자기혐오든 무엇인가에 찌든 자신을 조금은 먼 거리에서 바라보는 것, 그것이 이 붕괴의 양상에서 조금이라도 기어나오는 방법임을 영화는 말해주는 게 아닐까(라는 헛소리).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것은 한 가지 더 있다. 나는 앤 해서웨이가 가끔은 정신줄을 놓고 이상한 짓을 하는 영화가 왜 그렇게 좋은지 모르겠다. 진지하게 각 잡고 등장하는 <인터스텔라> 같은 영화에서보다는 <신부들의 전쟁>이나 <겟 스마트> 같은 영화에서의 그 큰 눈을 굴리며 살짝 맛이 간 앤 해서웨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는 마음에 들거다. 또한 제이슨 서디키스의 연기도 상당히 인상적이다. '멀쩡한 미친 짓' 연기는 꽤나 무시무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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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만난 최고의 책

The Book | 2021. 1. 14. 11:42 | Posted by 맥거핀.
구하라, 바다에 빠지지 말라 - 10점
리처드 로이드 패리 지음, 조영 옮김/알마

 

 

일 때문에 자료조사를 하다가 우연히 이 사건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뒤늦게 찾아본 기사는 이 사건에서 일어난 일들을 무심하게 나열한다.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 46분. 일본 근대지진 관측사상 최대 규모(리히터 규모 9.0) 지진이 일본 도호쿠 지방을 강타했다. 몇 차례의 여진이 이어졌고, 한 시간 뒤 최대 높이 40.5m의 초대형 쓰나미가 연안 지역을 덮쳤다. (중략) 사고 당일 쓰나미로 이 지역 어린이 75명이 사망했는데, 그 중 74명이 미야기현의 작은 시골 마을 가마야의 오카와 초등학교에서 목숨을 잃었다. 당시 이 학교의 재학생은 108명. 이 중 78명이 파도에 휩쓸렸고 단 4명만이 살아서 나왔다. (중략)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이는 쓰나미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교사 엔도 준지 뿐이다. 그는 교실에서 운동장으로 대피하는 과정에서 파도가 들이닥쳤고, 모든 절차를 따랐지만 속수무책으로 파도에 휩쓸려 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지진은 오후 2시 46분에 일어났고 학교의 시곗바늘은 3시 37분에 멈췄다. 아이들에게는 51분의 시간이 있었다. 200m 남짓 떨어진 대피소까지는 달려서 고작 몇 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51분 동안 아이들에게는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한국일보 기사 '동일본 대지진 당시 오카와 초등학생들은 왜 가만히 있었나' 중에서>

 

그러나 가끔은 사실의 무심한 나열이 더 무섭게 느껴질 때가 있다. 이 사건을 6년에 걸쳐 취재하고 그 내용을 담은 리처드 로이드 패리의 책 <구하라, 바다에 빠지지 말라>을 읽으면서 나를 사로잡았던 정서는 그 어떤 '고도로 조작된 무심함'에서 비롯되는 무서움이다. 그는 <더 타임스>의 아시아 담당 특파원으로서 한 걸음 뒤에 물러서서 이 책을 썼다. 한 걸음 뒤에 물러섰다,라는 것은 내용을 부실하게 담았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는 아이들을 잃은 부모가 아니었고, 그 사건을 실제로 목격한 주민도 아니었고, 지방 공무원도 아니었고, 부모들을 위로한 승려도 아니었다. 그는 한 걸음 뒤에 물러서려고 어떻게든 애썼기 때문에 보다 많은 것을 들려줄 수 있었다.

 

이 책은 단지 사실을 나열하고 그것 자체에서만 어떤 해답을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왜 교사들은 바로 학교 뒤에 있던 산으로 아이들을 데려가지 않고, 멀리 떨어진 교통섬으로 가려 했던가, 왜 시간은 지체되었고 아이들은 살아 돌아오지 못했는가,와 같은 사건의 진실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은 물론 중요하지만,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단지 그 뿐만은 아니다. 도리어 나의 흥미를 끌었던 부분은 조금 다른 방향이라고 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시신을 빨리 찾은 부모와 그렇지 못한 부모는 어떻게 달라지고, 어떻게 서로 서먹한 사이가 되었다가 결국 얼굴을 안 볼 정도로 갈라서는가, 혹은 참고 견디는 것이 미덕으로 간주되는 일본인의 특징이 이 사건에 어떤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는가와 같은 사회학자적인 입장에서 흥미를 가질 이야기도 있고, 아니면 아이들과 이야기하려고 심령술사를 찾는 부모들과 쓰나미에 휩쓸린 영혼들에게 사로잡힌 사람들의 이야기 같은 조금은 그대로 믿기 어려운 내용들도 이 책에는 켜켜이 쌓여있다. (그러나 나는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담담한 술회들은 마음을 짓누른다. (물론 그 부모들을 인터뷰한 저자의 마음도 짓눌렀을 것이다. 위에 '고도로 조작된 무심함'이라 한 것도 그 때문이다.) 책의 초반부, 사건이 일어났던 그 날 아침과 아이들의 시신을 찾던 날을 회상하는 부모들의 목소리를 담은 몇 줄의 문장들을 읽어내려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예를 들어 부모들은 견딜 수 없게 하는 것은 지진이 일어난 후 '시간이 있었다'라는 사실이다. 즉 지진이 일어난 후 쓰나미가 오기까지는 한 시간 정도 시간이 있었으며, 아이를 데리러 학교에 갈 수도 있었다. (실제로 몇몇 아이들은 이렇게 살았다.) 그 공백에서 자신은 무엇을 하고 있었나. 부모들의 기억은 때로 한 가지 사물이나 사실에 포커스를 맞춘다. 아이들이 그날 아침 신고간 신발이나 옷, 아침에 아이들이 던졌던 싱거운 질문.

 

그렇게 연말에서 올해로 넘기는 시간 동안 나는 이 책을 느릿느릿 읽었다. 코로나19라는 거대한 재난 상태에서 또다른 재난에 대한 책을 읽는 것은 조금은 이상한 느낌이었고 몇 가지 질문을 하게 했다.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오고 있다고만 말해지는 무서운 쓰나미. 그것은 다르지만 묘하게 닮아 있다. 재난을 겪고 아이들을 잃은 부모들은 그것을 다른 무엇으로 바꾸려 애쓴다. 그러나 그것은 쉽지가 않다. 부모들은 어쩌면 '그들 자신이 살기 위해서' 아이들의 죽음을 다른 무엇으로 치환하려 한다. 예를 들어 그것은 아이들의 시신을 찾기 위해 굴착기 자격증을 따고 매일 진흙을 퍼올리는 일일 것이며,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심령술사를 찾아 매일 밤마다 이야기를 나누는 일일 것이다.

 

물론 그 부모들에 비길 수야 없겠지만, 우리도 크건 작건 이 재난들을 무엇으로 바꾸기 위해 애를 쓴다. 우리는 이것들을 무엇으로 바꾸고 있는가. 내 노력 중의 하나는 이 책을 읽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작년에 만난 최고의 책. (이라고 해두자. 올해까지 읽기는 했지만 올해의 최고의 책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지나간 시간이 너무 짧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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