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을 강탈해 가는 것은 그 자신이다

The Book | 2009.10.20 09:16 | Posted by 맥거핀.
심장강탈자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딘 R. 쿤츠 (제우미디어,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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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도서는 Daum책과 TISTORY가 제공하는 서평단 리뷰 포스트입니다."


딘 쿤츠의 이 소설 <심장강탈자>는 스릴러 혹은 추리물적인 성격을 표방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읽어보면 이러한 성격 규정이 딱 맞아떨어지지 않음을 알게 된다. 사실 일종의 스릴러나 추리물을 원하는 독자에게는 이 소설 <심장강탈자>는 원하는 만큼의 만족감을 주지 않을 것 같다. 이해되지 않는 사건들이 벌어지기는 하지만, 그 강도는 낮으며, 어떤 명확한 적이나, 혹은 보이지 않는 적들이 주인공을 뒤쫓는 것도 아니다. 소설이 중반을 넘어갈 때까지 주인공 라이언 페리는 몇 번의 이상스런 심장발작을 겪기는 하지만, 그것이 전부다. 어떤 그를 도사린 음모나, 보이지 않는 적들이 존재한다고 보기에는 그 근거가 여러모로 미약하다. 대신 소설은 주인공 라이언 페리의 심리묘사에 상당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그리고 결국에는 그 조밀한 심리묘사가 나중에는 어느 정도 그 힘을 발휘한다.

사실 결국 소설을 다 읽고 책장을 덮고 나면, 약간은 맥이 빠지는 부분이 있다. 그 결말은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맥빠짐은 적어도 우리가 그 결말에만 주목할 때만 그렇다. 아마도 이 소설에서 그가 나중에 겪게 되는 일들은 부수적인 문제일 것이다. 그가 후에 겪게 될 여러 일들이 단지 그가 모르는 어떤 일들(혹은 그가 어쩌면 예상했음에도 애써 모르는 척 했던 어떠한 일들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 가능성은 제외하기로 하자) 때문에 벌어진 일들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조금 모자란 부분이 있다. 그러한 결말은 상당히 이해되지도 않거니와 상당한 부분에서 우스꽝스럽게 보이기조차도 하다.

아마도 그에 대한 해답은 소설 중에서 상당히 중요하게 제시되는 이 말 “폭력의 가장 근원적인 원뿌리(‘근원적인 원뿌리’? 이상한 번역이다)는 진실에 대한 증오다.” 속에 있을 것이다. 아마도 그가 나중에 당해야 했던 일들, 그리고 그가 행한 죄악들이 이 말 안에 있을 것이다. 그는 자수성가한 사업가다. 자신의 노력으로 자신이 부를 이루었다고 생각하고, 자신이 이 부를 누릴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는 어느 정도는 자신이 주위 사람들에 합리적으로(또는 ‘어떤 의미에서는’ 공정하게) 대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아무튼 그는 적어도 돈의 힘은 안다. 그리고 그것의 힘을 또 적절히 이용할 줄 안다. 그러나 그는 한편으로는 주위 사람들을 잘 믿지 못한다. 여자친구인 사만다를 매우 사랑하면서도, 자신에게 계속 심장발작이 일어나고, 점점 자신이 약해진다고 생각하자, 그녀를 의심하고, 그녀의 어머니나 주위 사람을 의심한다. 그리고 집안일을 해주는 싱 부부도 철저히 뒷조사를 하고 채용했음에도, 의심하기 시작한다.

아마도 그래서 초반에서 중반에 이르는 그 많은 이야기들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 이야기가 우스꽝스러워지지 않으려면, 주인공 라이언 페리가 어떠한 사람인가를 보여주는 것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독자들에게 어느 정도 받아들여졌을 때에만 이 마지막은 어느 정도 의미가 있어 보인다. 그는 최후의 순간에 도달해서야, 즉 자신의 목숨이 경각에 달리고서야 진실을 이해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어떠한 의미인가를 이해하게 된다. 그가 이 마지막 순간에 이르지 않았다면, 그가 진실을 받아들였을까. 아마도 그는 또다른 변명으로 또다른 허구적인 세계를 만들어내려고 했을 것이다. 그 진실의 일부란, 이런 것이다. 그가 쌓아온 부가, 그가 사는 삶의 방식을 설명하지는 않는다는 점, 그리고 그가 살아나가는 세상에 그 자신만 존재하지는 않는다는 점, 그가 결국 보아야 하는 진실은 그가 구축한 세상의 바깥에 존재하고 있다는 점, 어쩌면 그가 진실을 깨닫고 살아나가는 그 후의 삶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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딘 쿤츠의 이 소설 <심장강탈자>는 사실 이야기의 중간에 약간 모호한 부분들도 존재한다. 간호사 이스메이 클렘을 둘러싼 이야기들이라든가, 사람들의 자살(혹은 안락사)을 도우며, 그 사체를 수집하는 스티브 바게스트를 둘러싼 이야기들이 그렇다. 그 부분을 둘러싼 어떤 상징성들은 강하지만, 그것이 왜 필요한 이야기인가를 생각해보면, 약간은 모호한 부분이 있다. 그것에 대한 어떤 판단을 유보하고 있다는 부분에서도, 작가의 철학적인 사유가 잘 드러나지는 않는다. 어쩌면 작가가 이야기를 끌어나가기 위한 하나의 자극적인 도구로만 이러한 이야기들을 억지로 끌어들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마도 이에 대한 판단은 딘 쿤츠의 다른 소설들을 읽어본 후에 행해야 할 듯하다. 책 소개에 보면, 오컬트적인 요소를 잘 사용하는 작가이나, 이 소설에서는 그러한 요소가 상당 부분 배제되어 있다고 하는데, 그런 부분이 잘 드러난 소설들이 어떤 이야기들인지 궁금해진다. 구미권에서는 스티븐 킹과 비슷한 명성을 지닌 작가라고 하는데, 이것이 출판사의 어떤 선전문구에 불과한지, 아니면 스티븐 킹이 지닌, 어떤 불가해한 일들을 다루면서도 그 속에서 어떤 철학적인 상징성을 끌어내는 능력을, 이 작가도 갖추고 있는지는 이 작가의 다른 작품들을 읽어보고 판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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