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일본 뉴웨이브 특별전에서 본 영화들

Interlude | 2009.10.06 01:38 | Posted by 맥거핀.


꿈꾸는 것처럼 잠들고 싶다 (夢みるように眠りたい / To Sleep so as to Dream)
1986 / 하야시 가이조


독특한 느낌의 영화이다. 몽환적이고 아름다운 제목처럼, 영화도 묘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이 영화는 1986년도에 제작되었지만, 일종의 무성영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일부의 대사들은 음성으로 전달되지만, 그 예전의 무성영화들처럼 이 영화는 거의 모든 내용을 화면과 자막과 음악으로만 전달하고 있다. 하야시 가이조 감독의 무성영화에 대한 오마주라고 하는데, 이 영화의 독특한 내용에 이러한 형식이 잘 어울리는 듯 하다.

전체적으로 이야기는 3개의 층으로 전달된다. 먼저 첫번째 층은 주인공 우오츠카 탐정이 조수와 함께 납치된 소녀를 찾는 이야기. 이 이야기는 하나하나 문제를 해결해나가며, 조금씩 답에 근접하는 일반적인 추리물의 형식을 가지고 있는데, 중간에 슬랩스틱적인 코미디와 액션들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흥미로운 전개로 이어진다. 또한 중간에 등장하는 의문의 3인조(오래된 필름에서 튀어나온 듯한) 역시 여기에 독특한 느낌을 더해준다. 그리고 다른 한 층은 영화 속 영화로 진행되는, 주인공 탐정과 조수가 나중에 보게되는 이야기이다. 여자를 구하기 위해 적들과 맞서는 주인공 흑두건이 등장하는 영화 속의 또 하나의 (무성)영화.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이 흑두건의 이야기를 종이 그림극으로 구성하여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영화의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이 세 가지의 다층적인 이야기가 영화의 마지막에는 하나로 통합되는 것에 있다. 이는 마치 영화 속의 영화가 그대로 스크린을 부수고 나와 우리가 보고 있는 영화와 통합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는 한편으로 보았을 때 영화 속 영화가 본 영화 그 자체와 이어지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 본 영화 자체가 이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들(우리들)을 다른 공간으로 이끄는 듯한 기묘한 체험을 가능하게 한다.
 
이는 단순히 이야기의 중첩적인 연결로만 가능했다라고 보기에는 모자란 측면이 있다. 여기에 한편으로 영화 속 회전목마나 회전하는 물체와 같은 독특한 씬들, 그리고 이 영화의 형식이 한 몫을 한다. 즉 영화 속 분리된 상태에서 연결되는 것처럼 보이는 물체들(회전하는 물체들)과 그 물체들에 접근하는 카메라는 중첩되고 있는 이야기를 별 무리가 없이 받아들이게 하는 어떤 몽롱한 경험을 관객들에게 전달한다. 즉 '꿈꾸는 것처럼 잠들고 싶다'라는 말은 꿈꾸는 것처럼(즉, 그 꿈이 완성된 상태에서) 영원한 잠에 들었던 마지막 영화 속 여주인공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라, 꿈꾸는 것처럼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게 되는 관객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일 것이다. 




친구여, 조용히 잠들라 (友よ,靜かに瞑れ / Tomo yo shizukani nemure)
1985 / 최양일


이 영화는 왠지 다른 어떤 영화들을 떠올리게 한다. 물론 이는 이 영화의 어떤 부분부분이 다른 영화들에게서 영향을 받아 이루어졌다는 말은 아니다. 내 머리 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몇몇 장면들은 모두 이 영화보다 훨씬 후에 만들어진 영화들 속 장면이므로, 도리어 다른 영화들이 이 영화에 영향을 받아서 만들어졌다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 영화에 대한 설명에 있었던 말처럼 '이후 만들어진 하드보일드 영화들에 일종의 모델이 될 만큼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80년대 하드보일드 영화의 최고 걸작'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럼에도, 아무튼 몇몇 장면들은 어쩐지 비슷한 느낌에 피식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마지막 장면들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그랜 토리노>를 떠올리게 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분명히 이 영화를 보고 이 장면을 흉내냈을거야 하는 의심마저 든다.

아무튼 이 마지막 장면은 앞의 장면들을 모두 잊게 만들 정도로 인상적이다. 이상한 삼각형 구도. 나쁜 놈들(경찰)과 조금 더 나쁜 놈들(건설회사 측)과 주인공 신도와 그의 곁에 있는 친구의 아들이 균형을 이루고 있는 길거리에서의 기묘한 삼각형. 여기에 경찰이 그간 붙잡고 있던 주인공의 친구 사카구치를 풀어주면서 이 삼각구도의 균형에 균열이 생긴다. 그리고 이어지는 총격씬과 떨어지는 레몬과 고개를 들어 그 장면을 보도록 하는 주인공 신도와 다시 급커브를 그리며 그 곳을 떠나는 신도와 레몬을 깨물어먹는 아이를 교차하여 보여주는 장면은 짧은 순간에 많은 것을 응축하여 보여준다. 이 싸움에는 승자도 패자도 있을 수 없다는 것, 즉 시스템의 붕괴는 가능하지 않으며, 오로지 일시적인 균열만이 가능하다는 점, 그리고 언젠가는 저 아이도 세상에 맞서서 싸워야 한다는 것(그러나 한편으로 그 승리가 가능한가(혹은 의미가 있는가)라는 물음에는 쉽게 답하기가 어려워진다).

이 장면 외에도 주인공 캐릭터를 만드는 데 일조하는 주변의 풍경들이 인상적이다. 외딴 마을에 들어온 주인공을 모두 외면하는 이상하게 적막해 보이는 마을 풍경과 그에 대비되는 주인공의 모습은 폭력과 권력의 균형으로 이루어진 이 작은 공간을 균열시키는 하나의 점으로 주인공을 관객들에게 각인시킨다. 그리고 말없는 이 캐릭터는 그가 무슨 일을 하려는지 영화 속 다른 인물들은 물론이고, 이를 보고 있는 관객들마저도 알 수 없게 함으로써 어떤 특유의 아우라를 만들어낸다("가장 무서운 사람은 무엇을 하려는지 알 수 없는 사람이지요."). 그리고 적막한 마을의 풍경과 대비되는 주인공이 머무는 호텔의 자유롭고 시끌벅적한(그리고 한편으로 따뜻해 보이는) 공동체의 모습은 이러한 주인공의 캐릭터를 더욱 도드라지게 보이도록 한다. 즉 어떤 의미에서 이 영화는 하드보일드한 캐릭터를 창조시키는 하나의 전형을 보여준다.

영화 속 적들의 모습이나 추격씬, 그리고 나중에 적의 중간 보스와 벌이는 결투 등, 수많은 클리셰들이 도사리고 있고, 한편으로 그 클리셰들을 우리가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장르적 굳건함이 유지되는 흥미로운 영화.



- 2009년 9월, 서울아트시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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