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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시대, 10명의 감독과 10개의 이야기

Ending Credit | 2009. 9. 9. 00:12 | Posted by 맥거핀.



조금 특이한 영화를 보았다. 10명의 감독들이 10개의 이야기를 하는, 10개의 단편을 묶은 옴니버스 영화 <황금시대>. 그리고 그 10명의 감독들에는 꽤나 만만치 않은 이름들이 포진하고 있다. <후회하지 않아>로 독립영화계의 스타로 떠오른 이송희일 감독, <은하해방전선>으로 귀엽고 유쾌한 상상력을 보여줬던 윤성호 감독, <내 청춘에게 고함>으로 가난한 청춘의 감수성을 보여줬던(그러나 그 이후로 <보트>로 약간은 말아먹은) 김영남 감독, <저수지에서 건진 치타>로 꽤나 스트레이트한 묵직함을 보여준 양해훈 감독, 그리고 <여고괴담4>의 최익환 감독, <거울속으로>의 김성호 감독, <새드 무비>의 권종관 감독 등등..지난 몇 년간 큰 대박은 터뜨리지 못하였으나, 어느 정도 나름의 독특한 색깔을 보여준 감독들 10명이 각각 10여분 내외의 단편들을 선보이고 있다. 그래서 그런가. 이 영화 <황금시대>의 가장 큰 장점은 10개의 단편들이 어느 정도 고른 결과물들을 선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솔직히 말해서 매우 놀랍다 정도의 작품들은 없지만, 꽤나 인상깊은 결과물들을 보여주는 작품들은 여럿 있으며, 약간의 편차는 있지만, 그렇게 또 아주 떨어진다 싶은 작품들도 없다.

이 10개의 작품의 흐름을 관통하는 주제는 '돈'이다. 그러나 흐름을 관통한다고 해서, 이야기들이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일부러 의도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 10개의 이야기들은 상당히 다른 이야기의 흐름들을 보여준다. 그것은 일단 이 10개의 이야기들이 서로 다른 장르를 표방하고 있기 때문에서 비롯된다. 짧은 순간 집약되는 공포를 보여주는 김은경 감독의 <톱>이나 이야기의 흐름을 예측할 수 없게 흥미진진하게 전개되는 사회성 짙은 드라마 <담뱃값>(남다정 감독), 음악을 이용해 감수성을 잘 이끌어내는 김성호 감독의 멜로 <페니러버>, 현재 사회 이슈들에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있으면 누구라도 미친듯이 웃어제낄 수 있는 사회 패러디물 <신자유청년>(윤성호 감독), 묘한 분위기로 관객의 마음마저 불안하게 만드는 이송희일 감독의 <불안>...각 10개의 이야기들은 코믹반전, 생활스릴러, 공포특급, 슬로우액션 등 비슷한 소재를 다양한 이름으로 변주한다. 또 한편으로는 이러한 다양한 장르 속에서 각 감독들의 전작을 기억하고 있는 관객들이라면 색다르게 이 이야기들을 즐길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김성호 감독의 독특한 공포 스릴러 <거울 속으로>를 기억하고 있는 관객이라면 약간은 쓸쓸하게 느껴지는 감성 멜로 <페니러버>가 흥미로울 것이고, 양해훈 감독의 <저수지에서 건진 치타>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이상하고 의도적으로 어설픔을 강조하고있지만, 전작에서 보여줬던 독특한 직구를 이번작 <시트콤>에서도 살짝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돈이라는 소재를 내세웠다는 것은 연막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 돈을 이야기하겠다는 것은 결국 우리 사회를 이야기하겠다는 것과 같은 의미이기 때문이다. 사회 전반적인 것을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돈이라는 소재만큼 좋은 소재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 돈 빠지고 이야기가 되는 것이 있던가. 그래서 한편으로는 이 돈을 소재로 한 10편의 단편을 보는 것은, 젊은 영화인들이 현재 우리 사회를 바라보고 있는 프레임이 어떤 것인가를 바라보는 좋은 기회가 아닐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약간은 불행하게도, 이들이 보는 우리 사회는 뭔가 망가져가는 상당히 어둡고 불안한 사회다. 그 사회에서는 젊은 청년들이 자살하기 위해 유언을 작성하며(<유언>), 부부는 서로를 믿지 못하고 계속해서 싸우고(<불안>), 소녀는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해서는 안될 일들을 저지르며(<동전 모으는 소년>), 노숙자는 지금도 어디선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누구보다도 빨리 달린다. 그래서 아무도 그들에 주목하지 않고, 그들을 보지도 않는다(<가장 빨리 달리는 남자>).

그래서 어떤 이야기들은 명백하게 농담을 표방하고 있는데도, 별로 농담처럼 느껴지지 않는 이야기도 있다. 예를 들어 <신자유청년> 같은 것들. 이 이야기는 임경업(임원희)이라는 청년이 50주 넘게 로또 1등에 당첨되어 벌어지는 일들을 이야기하면서, 정신이 없을 정도로 수없이 많은 패러디로 계속 농담을 던지는 영화이다. 이 짧은 이야기는 우리 사회의 모든 측면을 건드리고 있으며, 거의 모든 것들이 농담으로 희화화되고 있다. 그것은 소위 말하는 좌파나 우파를 가리지 않는다. 심지어는 진중권 씨도 진중권 씨 본인에 의해 희화화된다. 그쯤 되다 보니, 영화가 끝날 때 쯤에는 묘한 물음이 생긴다. 이게 농담일까. 어쩌면, 실제로 혹시 만약 그런 일이, 즉 누군가가 50주 넘게 로또 1등에 당첨되는 일이 벌어진다면, 실제로 이렇게 되지 않을까. 계속 웃게 만들긴 하지만, 이 웃음은 언젠가 영화 속 어떤 사건과 꽤나 비슷한 신문기사를 보고 웃었던 웃음과 비슷한 것 같은 기분이 떠오르는 것은 단지 기분 탓일까. 아..50주가 넘게 로또 1등에 당첨되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을 거라구요? 무슨 소리. 이 사회가 항상 상상하던 것 이상을 보여주는 것을 몰라서 하는 소린가. 그래서 한편으로는 <시트콤>에서 끊임없이 깔리는 방청객들의 웃음소리가 참으로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이 시트콤은 전혀 웃기지 않기(혹은 웃을 수 없기) 때문이다. 웃기지 않는 코미디의 방청객의 녹음된 가짜 웃음소리만큼 기이하게 들리는 것이 있던가. 그리고 하나 더. 어떤 시트콤의 현실이 우리의 현실이 된다면, 우리는 웃을 수 있을까.

그래서 중간중간 꽤나 코믹적인 요소들이 들어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이야기들이 어떤 씁쓰레한 뒷맛을 남긴다. 그렇다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우리가 사는 이 사회는 그렇게 힘들고 고달프고 버텨나가기 어려운 일만 있을까. 그렇지 만은 않을 것이다. 아니 그렇다고 해도 인간은 버텨낼 수 있다. 김연수 작가가 말하지 않았던가. 인간은 백 팔십 번 웃은 뒤에 한 번 울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고 말이다. 그리고  아홉 개의 마음을 건드리는 이야기들이 지나간 후에야, 마지막 웃을 수 있는 하나의 이야기가 찾아온다. 김영남 감독의 <백개의 못, 사슴의 뿔>. 모질지 못한 공장노동자 미숙(조은지)과 빈틈이 많아 보이는 사장(오달수)과의 밀린 월급을 받기 위한 한판 대담은 유쾌한 속에서, 꽤나 명징한 해답을 남긴다. 결국 돈 밑에 사람 없고, 사람 위에 돈 없다는 것. 인간이 살기 위해서 돈이 만들어졌지, 돈이 살기 위해서 인간이 만들어진 건 아니라고 말이다. 이 명징하고도 당연한 대답을 하기 위해 영화는 꽤나 긴 시간을 달려온다. 달려온 긴 시간만큼 이 마지막은 꽤나 안도하게 만든다. 사슴의 뿔을 싣고 어디론가로 가는 할머니의 모습을 비추는 이 엔딩은 그래서 안도의 엔딩이다.



- 2009년 9월, CGV 압구정 



덧.

시사회에서 본 영화인데, 중간에 일어나는 관객이 조금 보였다. 아마 단편들의 옴니버스라는 이 영화의 성격을 잘 몰랐던 관객들이 아니었나 싶다. 단편들은 시간의 제약상 아무래도, 완결된 이야기나 잘 얼개가 짜인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 아닐 때도 있으니까 말이다. 그래도 한편으로 보면, 역으로 이 단편들의 재미가 그런데서 있는 것이 아닐까. 이야기의 얼개를 스스로 짜맞추고, 어떤 상상을 해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김은경 감독의 <톱> 같은 작품. 톱을 사간 그 여자는 그날 밤 어떤 일들을 겪었을까. 어쩌면 진짜 공포는 그가 꾼 악몽이 아니라, 그녀가 톱을 사가고, 그 후에 다시 찾아온 그 아침 사이에 그녀에게 일어난 어떤 일들이 아니었을지. 그 일들은 무엇이었을까. (물론 단편도 단편 나름. 잘 짜인 얼개와 짧은 이야기에서 기막힌 반전을 보여주는 작품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좋은 작품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우리나라의 경우 반전 영화들에 지나치게 호의적인 평가들이 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또 한편으로는 이 영화들의 배열을 좀 달리 해봤으면 어땠을까 싶은 생각도 있다. 작품들의 수준은 고른 편이지만, 관객에게 친절하게 설명하는 영화도 있고, 한편으로는 조금 실험적으로 보이는 작품들도 있다. 일부러 그렇게 했는지도 모르지만, 초반과 마지막에 조금 친절한 작품, 중간에 조금 덜 친절한 작품들을 배열한 듯한 느낌이 든다. 그런 영화들을 번갈아 배치하는 것도 괜찮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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