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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온 남자, 도쿄에서 온 여자 - 6점
권진.이화정 지음/씨네21


"본 도서 리뷰는 TISTORY와 알라딘이 제공하는 서평단 리뷰 포스트입니다"


오래전 자주 갔던 곳을 한동안 찾지 않다가, 오랜만에 거기 들렀을 때, 유달리 심한 낯설음을 느끼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 같다. 자주 찾던 단골집, 작은 헌책방들, 길가의 벤취, 골목 사이사이에 난 작은 길, 그런 것들이 사라졌을 때 나는 길을 잃고 헤매고, 약간 비애감을 느낀다. 이곳 서울은 그런 일이 유독 잦다. 그만큼 서울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으며, 많은 공간들이 점점 새롭게 변하고 있다. 물론, 어떤 공간이든 낡은 것들을 새롭게 바꿀 수는 있으며, 오래되고 쓸모 없어진 것들을 없애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공간이 사라진다는 것은 거기 있던 사람도 없어진다는 이야기다. 공간만 새롭게 변하면서 사람은 그대로인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 공간에 들어설 때면, 나는 반드시 묻고 싶어진다. 여기 있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어딘가에서 다시 새로운 공간을 만들었을까, 아님, 그저 어디론가로 사라져 버렸을까. 30년이 넘게 서울에서 살아온 나에게 비친 서울은, 사람들이 사라지는 도시다. 그리고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어야 하는 복잡하고 어려운 도시다.

이 책 <뉴욕에서 온 남자, 도쿄에서 온 여자>는 외국인의 눈에 비친 서울을 말한다. 이들의 눈에 비친 서울은 어떨까. 여기에는 총 7명의 인터뷰이가 나오는데, 이들은 유럽, 미국, 아시아 등 다양한 국가 출신의 사람들이며, 인종이나 나이, 성별 등도 조금씩 차이가 있다. 그러나 왠지 이들 7명은 비슷비슷한 것을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서울은 복잡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도시라는 것, 과거의 것과 현재의 것, 미래의 것이 공존하는 칼라풀하고 파워풀한 도시라는 것, 때로는 지나치게 빠른 변화가 어리둥절하고, 슬프게 만든다는 것,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현대적이고 편리하다는 것 등등. 이들의 눈에 비친 서울이 왠지 비슷비슷하게 보이는 것은 몇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먼저 눈에 띄는 한 가지 이유는 이들이 모두 아티스트, 작가, 댄서, 미술가 등 예술적인 일들을 해나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할 수 있겠다. 이들의 눈에 비친 서울은 예술적인 창의성에 도움을 주는 어떤 역동적인 요소들을 가지고 있는 도시이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역동성이 획일화된 개발풍경에 의해 점점 사라져가는 도시라고 말할 수도 있다.

아마도 그래서, 이들 대부분이 서울에서 기억에 남는, 혹은 자신이 좋아하는 장소를 꼽으라면 서울 강북권에 있는 곳들을 이야기하고 있을 것이다. 홍대 근처나 북촌, 통의동, 연신내, 종로 같은 곳들 말이다. 왜냐하면 강남은 정말 획일화되어 가고 있으니까. 이제는 강남 어디를 돌아보아도 대부분 비슷한 풍경이니 말이다. 늘어선 건물들과 잘 정돈되어 있는 가로수와 아파트촌들. 이제 강남의 다양성이란 그저 건물의 디자인의 다름을 가지고 말하는 수 밖에는 없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서울 거의 가장자리지만, 이곳에도 그야말로 '잘 정돈된' 어떤 풍경들 밖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곳도 거의 강남권이 되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보았을 때 이들이 본 서울이 비슷비슷하게 보이는 것에는 다른 이유도 있는 것 같다. 물론 그 하나로, 이 책의 인터뷰의 질문들이 약간은 피상적인 것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도 있다. 이 책의 많은 질문들은 어떤 구조화되고 체계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인상 보다는 그저 카페에서 차 한 잔 나누면서 여러가지 것들을 편안하게 묻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따라서 어떤 것에 대한 생각이 깊이 이루어진다기 보다는 그저 느낌이나 인상들에 그치는 것처럼 보여진다. 그것은 어쩌면 이 책의 컨셉과도 관계가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어떤 서울의 문제점을 나열하거나, 개발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제공하기 위해 기획된 책이 아니다. 그저 가볍게 외국인의 눈에 비친 서울이란 곳이 어떤 느낌인지 살펴보고, 그리고 그 속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서울의 공간들은 어디인지 가볍게 전달하는 책이다. 다른 말로 하면, 가벼운 트랜스 음악이 흘러나오는 카페에서 차 한 잔 홀짝거리며, 주위를 잠시 둘러보다가, 다시 펴고 읽으면 되는 그런 종류의 책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조금 더 냉소적으로 보자면, 결국 외국인이 말하는 서울이란, 이 정도가 한계인 듯 하다. 그들 눈에 비친 서울이란, 과거의 어떤 전통들이 아직은 어느 정도 남아있는 곳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스타벅스가 널리 깔려있어서 편리한 도시, 외국인에게 약간은 배타적인 면도 있지만, 또 친절한 사람들이 많이 있는 도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우리가 그들에게 듣고 싶었던 것도 결국 그 정도였을 것이다. 어떤 비판을 듣고 싶기는 하지만, 날이 선, 아프게 들려오는 비판이 아닌, 그래도 어떤 면에서는 긍정하고 안심할 수 있는 그런 정도의 비판. '미수다'에서 아주 살짝 더 나간 정도의 그런 비판 말이다. 그래서 이들이 어떤 개발의 문제, 사라져가는 풍경들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그것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된다. 이들이 옛것, 어떤 전통적인 풍경들을 서울의 참모습이라고 이야기할 때, 그것은 단지 이들에게는, 도리어 그것들이 새롭고, 흥미로운 풍경들이어서가 아닐까. 이들이 사라져 간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그 '사라졌다'라는 것은 과연 '무엇'이 사라졌다는 의미일까. 그래서 어쩌면, 이 책의 카피에 나온 '누구나 다 안다고 생각하지만 아무도 몰랐던 서울 이야기'를 이들에게서 듣기란 애당초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 아니었는지도 모르겠다.


p.s. 이 책의 사진들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공간을 찍은 수많은 사진들은 공간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서울의 어느 곳이나 점점 비슷비슷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까지는 남아 있는 것들이 꽤 많은 것 같다. 하긴 이 마저도 위태위태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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