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비싼 와인을 만드는가

The Book | 2009.07.24 23:38 | Posted by 맥거핀.
와인 정치학 - 4점
타일러 콜만 지음, 김종돈 옮김/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


"본 도서 리뷰는 TISTORY와 알라딘이 제공하는 서평단 리뷰 포스트입니다"



'정치학'이라는 말을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따라서 이견의 여지는 있겠지만, 이 말은 '와인'과는 분명히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인간사 모든 곳에는 무엇인가의 힘이 작용하고 있고, 그 힘은 보이는 곳에서, 그리고 대부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은 것을 뒤바꾸어 놓는다. 그것은 와인산업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보면 와인을 제조하고 판매하는 것은 간단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와인이라는 것은 어떤 땅에서, 어떤 해에 얼마나 좋은 품종의 포도가 생산되는가에 따라 결정되는 문제이고, 거기에 다른 어떤 힘이 개입될 여지는 비교적 적지 않겠는가..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마도 너무나도 순진한 생각임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와인 비평가와 평론가들은 와인이 최종적으로 병에 담기기까지의 과정에서 재배 지역과 와인 제조방식의 중요성에 대해 널리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와인 소비자들이 인식하는 것보다 더 많은 부분에서 와인 정치학이 영향을 미친다. 정치학은 어디에서 어떤 와인을 재배할지와 라벨에 무엇을 쓸지, 어떤 와인을 수입하고 수출할지, 어떤 와인을 지역 상가에서 구매할 수 있을지, 와인 가격은 얼마로 정할지 결정하지만 가장 중요하게는 병 속에 담긴 와인의 품질을 절대적으로 결정하게 된다. (p. 15)


그렇다면 답은 나왔다. 와인이란, 그저 땅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혹은 그 해의 날씨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일종의 복불복 상품은 아니라는 얘기다. 그것에는 수많은 힘들이 작용한다. 그 힘은 다양하다. 제조업자와 유통업자 간의 보이는, 혹은 보이지 않는 밀고당기기는 물론이고, 그 해의 '위원회'에서 어떤 결정을 내리는가에 의해서, 혹은 국가의 법안이나 시책에 의해서, 다른 여타 산업들과의 관계의 문제와 관련해서, 한 비평가가 그 와인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리는가에 의해서, 그리고 때로는 환경론자들의 압력에 의해서 많은 것들이 달라진다. 그 달라지는 것들이란, 앞에서 말한대로, 어떤 와인이 어느 가격으로 결정되는가, 혹은 어떤 와인이 어디에서 팔릴 수 있는가, 혹은 어떤 와인은 왜 와인으로 남아 있지 못하고, 증류처리소로 옮겨져 연료인 에탄올로 바뀌는 운명을 맞이해야 하는가 같은 것들이다. 

이 책은 와인에 작용하는 그러한 수많은 힘들에 대해 약간은 흥미로운 내용들을 담고 있다. 전체적으로 이 책은 와인을 생산하는 거대한 두 축인 미국과 프랑스의 와인산업을 비교하면서 그 와인산업의 역사를 추적하기도 하고, 때로는 그러한 와인산업에 영향을 미친 다른 영향들을 주목하기도 하면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그리고 너무 산업적인 측면에만 주목하는 우를 범하지 않으면서, 와인 비평들이 행하는 여러가지 문제점이라든가, 와인산업에 환경을 중시하는 사람들이 미치는 영향 같은 것들에도 지면을 허락하는 영민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 정확히 말하면 이 이야기를 칭찬해 줄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이다. 전체적으로 이 책이 가지고 있는 큰 문제점은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압축시키지 못하는 것에 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 책의 가장 주된 내용은 미국과 프랑스의 와인산업을 비교하여 이야기를 끌어가는 데에 있으나 비교의 기준은 명확하지 못하고, 이야기는 중심을 잃고 여기저기서 떠돈다. 와인산업의 역사를 추적하고는 있으나, 그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제시하지 못하고 흔들린다. 설명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어떤 주장을 제시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어떤 것이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식으로 뉘앙스는 살짝 풍기지만, 그것에 대해 확고한 근거를 제시하지도 못한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배는 난파하여 침몰하는 도중에 몇몇 쓸만한 이야기들만이 침몰하는 배 주위에서 어지럽게 떠다닌다. 그것은 예를 들어, 사회적으로 음주가 가진 위해성에 대해 비판을 가하는 주장들과 와인 유통과의 모종의 관련성에 대해 논의하고 있는 다음의 대목과 같은 것들이 그렇다.

경제학자 브루스 옌들은 금주령에는 동의하지만 경제적 이유와 윤리적 이유라는 서로 다른 이유로 협력했던 밀매업자들과 초기의 절제운동 지지자들의 움직임을 묘사하기 위해 "밀매업자와 침례교도들"이라는 표현을 처음으로 사용했다. 지역의 밀매업자들은 자신들의 밀조 과정에서 경쟁 요소를 제거하기를 원했고, 절제운동 지지자들은 성경의 글귀와 함께 음주가 끼치는 사회적 해악에 대한 인식을 기반으로 주류 판매를 폐지하는 데 온 힘을 쏟았다. 금주령 이후에 금주운동 지지자들의 연합세력은 밀매업자들이라기보다는 유통업자들이었다. 각각의 주는 해당 영토 내에서 주류 운반에 대한 자체적인 규정을 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주류의 생산과 유통, 그리고 최종 판매업을 분리하는 규제들에서 많은 이들이 유통업자의 역할을 선택했다. 따라서 와인 양조장은 와인을 유통업자들에게 판매하고, 이들은 소매업자나 레스토랑에 납품한다. (p. 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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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책의 가장 큰 문제점은 번역투의 엉망인 문장들에 있다. 위의 인용한 부분을 다시 한 번 잘 읽어보라. 뭔가 좀 어색하지 않은가. 전체적으로 무슨 내용을 말하고 싶은지는 알겠으나, 문장도 필요 이상으로 길고, 어색한 번역투와 잘못된 문장들이 가득 차 있다. 예를 들어 이런 문장 말이다. "주류의 생산과 유통, 그리고 최종 판매업을 분리하는 규제들에서 많은 이들이 유통업자의 역할을 선택했다." '규제들에서~선택했다'는 이상한 구조는 물론이거니와, '역할을 선택했다'는 어색한 번역투를 고수하고 있다. 그래도 이 인용한 부분은 그나마 문장들이 조금은 나은 부분이다. 전체적으로 이 책은 앞 부분에서 뒤로 갈수록 번역가가 조금씩 정신을 차리는지, 조금은 문장들이 나아진다. 처음에는 "파커의 영향력이 너무나 커서 수많은 와인 양조업자들은 그의 미각을 만족시키기 위해 자신들의 와인을 그가 "쾌락적인 과일들의 폭탄"으로 만드는 데 혈안이 되어왔다."처럼 해괴한 문장들도 나온다.   

아마도 이는 책의 문장들이 원래 엉망이거나, 번역가의 번역 능력이 형편없거나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내 맘대로 추측해 보자면, 이 책의 저자인 타일러 콜만(Tyler Colman)이 박사논문을 책으로 만들었다고 말하는 것을 볼 때 책의 본래 문장 자체가 형편없을 것이라고 여겨지지는 않는다. 아마도 번역가의 초벌번역을 어떤 퇴고의 과정도 거치지 않고 그대로 책으로 낸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혹은 대표 번역가의 이름만 건 다른 새끼 번역가들의 번역인지도 모른다. 여기에도 '정치적'인 어떤 것이 개입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여튼, 엉망인 문장들이 책에서 시종일관 지속된다는 점에서, 이 책의 내용과는 별개로,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다. 아무리 흥미롭고 재밌는 내용을 담고 있어도, 그것이 어떻게 전달되는가의 문제는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좋은 책의 기본은 좋은 문장들을 담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