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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서 자기(self)와 대면하기

The Book | 2009. 6. 20. 20:51 | Posted by 맥거핀.
 
미술관에는 왜 혼자인 여자가 많을까? - 6점
플로렌스 포크 지음, 최정인 옮김/푸른숲


본 도서 리뷰는 TISTORY와 알라딘이 제공하는 서평단 리뷰 포스트입니다"


미술관에는 왜 혼자인 여자가 많을까? 아마도 사회학자들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문화에 대한 관심과 충분한 재력과 넉넉한 시간을 가지고 있는 여성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는 것에 대해 이야기할는지도 모른다. 혹은 전직 큐레이터라면 요즘 여성들을 타겟들을 한 기획성 전시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는 추세와 문화에 목말라하는 여성들과 효과적인 마케팅 방법의 결합에 대해 이야기할는지도 모른다. 혹은 영화사 홍보팀에 다니는 사람이라면 최근 미술관에 점점 손님을 빼앗기고 있는 것에 대한 걱정과 이런 혼자인 여성들을 어떻게 영화관으로 발걸음을 하게 만들지가 훨씬 더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할는지도 모른다. 출판계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추세에 재빠르게 발맞추어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집과 현대 미술을 알기 쉽게 소개한 글들에 주목하는 기획을 내놓을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엄청난 야구광이자, 몇 년 째 혼자 살아온 좋게 말하면 싱글남, 나쁘게 말하면 노총각인 선배 J는 아마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야, 뭐, 야구장에 혼자인 남자들이 많은 것과 같은 이치지."

<미술관에는 왜 혼자인 여자가 많을까?>의 저자 플로렌스 포크(Florence Falk)는 심리치료사이다. 그래서 그녀는 일종의 심리학적인 입장에 입각한 대답을 내놓는다. 그녀들이 미술관에 가는 이유는 그곳에서 자기(self)를 대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위대한 화가의 작품을 감상하는 것이 주목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혼자인 여성들은 그곳에서 여러 작품들을 대면하며, 그것을 감상하는 것과 동시에 스스로를 마주하고, 마음을 가라앉히며, 평소에 돌아보지 않았던 자신에 대해 고민하며, 고독을 만끽한다. 물론 이렇게 말하면 몇몇은 물음을 제기할 것이다. 아니, 고독을 즐기러 꼭 미술관까지 가야하나. 그냥 집에서 혼자 조용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고독을 만나면 될 것이 아닌가. 그러나 저자가 얘기하는 고독은 다른 이와 관계를 끊고 집안에 고립되어 내면에만 침잠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랫동안 혼자 지내다 보니 나는 고독이 선물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모든 여성이 나와 같이 삶이 바뀌는 경험을 할 수 있다. 그러나 혼자라는 것을 바로보기 위해서는 먼저 혼자인 것이 외로움을 뜻하는 것이 아니며, 고립이나 소외나 실패가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혼자인 것이 이런 것들과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혼자 사는 여자로서 나의 첫 번째 과제였고, 여성 내담자들과 상담을 할 때 내가 강조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혼자임이 무엇인지 이해함으로써 가장 큰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어떤 의미로든 혼자인 여성들이라고 확신한다. (p. 60-61)


이 책은 명백히 여성 독자를 타겟으로 쓰여졌다. 따라서 나같은 남성 독자들이나 혹은 일부의 여성 독자들은 나름의 해석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 책은 그저 독신녀들, 혹은 이혼녀들이 자신의 입장을 합리화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이 아니겠냐고(아마도 이렇게 생각한다면 두 번이나 이혼했다는 저자의 경력이 고려되었을 것이다), 혹은 그렇게 혼자 있는 것이 중요하고, 자기를 만나는 것이 중요하고, 고독을 즐기는 것이 중요하면, 지금 당장 남편 있는 모든 여자들은 이혼 서류를 들고 법원으로 달려가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말이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그것은 오해에 가깝다. 이 책은 이혼이나 독신을 합리화하지도, 이혼을 선동하지도 않는다. 일단 간단히 생각해보면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든 하지 않든 간에, 실제로 독신인 여성들은 점점 늘어가고 있으며, 이혼하는 여성들은 꾸준히 늘어가고 있다(물론 남성들도 그러하지만, 이 책의 타겟은 여성이다). 그리고 독신의 여성들(결혼적령기가 지났건 아니건 간에)이나 이혼한 여성들은 현실적인 여러 문제로, 혹은 심리적인 여러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다. 이 책은 그런 여성들에게 일종의 도움을 주고자 하는 의도로 쓰여졌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더 큰 것은 여기서 말하는 고독을 즐기고, 자신을 대면하는 일이 남편, 혹은 남자친구, 혹은 동성친구가 없는 여성들에게만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모든 여성들에게 요구되는 일이다. 혼자 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어린시절을 돌이켜 보며, 타인과 관계를 맺고, 혼자인 것과 친해지며, 밖으로 나가, 고독을 즐기고, 마침내 자신을 찾는 것(지금까지 얘기한 것은 한편 이 책의 목차이다)은 모든 여성들에게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 물론 쉽게 이야기해서 그것은 누구나가 혼자가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그렇게 하지 않고 자신을 잃어버리면, 상대방(혹은 타인)에게 의지하게 되고, 상대방이 자신을 떠날까봐 끊임없이 두려워하게 되고, 자존감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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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이러한 류의 심리학적인 문제를 다룬 책들이 늘어가고 있는 듯 하다. 그리고 서점에서도 이러한 책들을 모아놓은 코너가 요즘에는 대부분 따로 있으며, 항상 사람이 북적거린다. 그리고 그러한 책들 중에는 대박을 친 책들도 몇 권 있다.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와 같은 책들이 아마도 대표적일 것이다. 나는 이러한 책들은 대부분 그 책의 내용이 어떠한 것인가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 책에 어떠한 내용이 있건, 어떤 중요한 얘기가 있건, 혹은 얼마나 정곡을 찌르는 말들이 있건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아마도 그것들의 많은 부분은 당신이 이미 알고 있는 점일 것이다. 문제는 책을 중간중간 손에서 놓고 생각을 얼마나 하게끔 하도록 하는가에 그 책의 진정한 효용이 있다. 책 안에 아주 수많은 이야기들, 혹은 정곡을 찌르는 이야기들이 있다고 해도 그것을 읽고, 그냥 내려 놓은 후, 자신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않고, "그래 좋은 말씀들이시네."하고 넘어간다면, 이러한 책들의 효용은 아마도 거의 없다고 해야할 것이다.

이 책 <미술관에는 왜 혼자인 여자가 많을까?>의 경우도 그러하다. 이 책의 저자 플로렌스 포크는 심리치료사답게 자신이 다룬 수없이 많은 사례들(여기에는 무엇보다도 자신의 사례가 포함된다)을 충분히 이야기하고 있다. 이 모든 이야기들이 재미있고, 때로는 가슴아프게 하고, 때로는 어떤 깨달음도 주지만, 중요한 것은 한가지이다. 결국 이 모든 사례들은 모두 타인의 사례라는 점이다. 이 모든 사례들은 모두 타인의 각기 다양한 사례들일뿐,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문제, 혹은 내 주위의 상황과 일치할 경우란 거의 없을 것이다. 혹은 일치한다해도 그 사례가 해결된 방식이 정답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책을 덮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것에 있다. 스스로에 대해 생각하고, 현재의 나 자신을 마주하는 것, 그것이 아마도 이러한 류의 독서가 완결되는 방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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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책의 제목으로 다시 돌아가 보기로 하자. 미술관에는 왜 혼자인 여자가 많을까? 아까, 농담삼아 선배 J의 이야기를 했지만, 어쩌면 그 말에 어떤 진리가 담겨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야구장에 혼자인 남자들이 많은 것, 그것은 야구장이 혼자인 남성들이 주위의 비난어린, 혹은 이상한 눈초리를 피해서 혼자 숨기에 적절한 장소라고 인식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남성들은 상대적으로 여성에 비해 이러한 주위의 시선에서 훨씬 자유롭다. 일례로 미술관에 간 혼자인 남성은 별로 그런 시선을 받지 않지만, 야구장에 간 혼자인 여성은 상대적으로 그보다는 어떤 시선을 받지 않는가.(여기서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여자 혼자 야구장에 가면 남들이 괴롭힌다거나 집적댄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최근에는 많이 사라졌지만, 아직도 뭔가 그것을 어색하게 보는 시선, 그리고 그것이 당연한 것으로 느껴지지 않는 어떤 생각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의미이다.) 즉 미술관 같은 공간들이 '그나마' 여성들에게 혼자인 공간으로 허용되고 있다는 것, 그것에 어떤 우리 사회의 어떤 보이지 않는 폭력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닌지도 모르겠다는 조심스런 물음이다. (일례로 남자 혼자 삼겹살 집에서 고기를 구워 먹는 것, 그런 사소한 것도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에서 얼마나 희화화되는가? 여자는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이 책의 제목에서는 왠지 그러한 보이지 않는 폭력이 읽혀진다.


여성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뭔가 결점이 있는 존재로 생각하게 만드는 사회, 그리고 우리 여성에게 직접 가해지는 수많은 폭력을 생각하면, 여성이 혼자 있을 때 불편한 감정을 느끼고 혼자 있는 것을 피하게 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혼자 사는 여성들의 과제는 이런 감정과 대면하고 싸워서 고독이 주는 보상을 즐기는 것이다. (p.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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