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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그 미 투 헬, 샘 레이미

Ending Credit | 2009. 6. 19. 00:31 | Posted by 맥거핀.



사실 샘 레이미 감독들의 전작을 거의 못 봤다. 아마도 이 영화 <드래그 미 투 헬>을 보러 온 관객들 중에는 그의 유명한 전작들, 그러니까 <이블 데드> 시리즈라든가, <스파이더 맨> 시리즈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이블 데드> 시리즈 때는 영화를, 더구나 그런 공포 영화를 좋아하지는 않았던 때라, 그리고 무엇보다도 꽤나 어릴 때라 보지 못했고, <스파이더 맨> 시리즈는 워낙 '~맨' 시리즈들을 좋아하지 않는 터라 보지 않았다. 그나마 본 것은 그가 기획에 참여한 <그루지> 시리즈지만, 그 때는 원작인 <주온>을 보고 받은 인상이 워낙 강렬하던 터라, 그 영화의 리메이크 작인 <그루지> 시리즈들을 씹기에 바빴을 뿐이다. 아..할리우드는 또 이 무서운 공포 영화를 이렇게 꼬아 비틀어 버리는구나..하고 말이다.

그리고 이 영화를 보니까 다시 조금은 알 것 같다. 샘 레이미와 <주온>은 엄청나게 맞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주온>을 비롯하여 한 때 유행했던 일본산 공포물들은 뭐랄까,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그 분위기는 뭔가 어둡고 무거운 것과 맞닿아 있다. 예를 들어 주온에서 출몰하는 토시오를 비롯한 혼령들의 그 원한 같은 것들 말이다. 한 때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링> 시리즈라든가, <주온>이나 <검은 물밑에서>와 같은 시미즈 다카시, 나카다 히데오 등의 영화들을 보면, 살아있는 사람을 괴롭히고, 그들을 어딘가로 같이 데려가려 하는 혼령들은 대부분 어린 시절 학대를 받았거나, 주위의 따돌림을 받았거나, 학대를 받은, 사실은 불쌍한 영혼들이었다. 여기에는 유머는 없다. 단지 엄숙한 비장미와 감추고 싶은 비밀, 몸서리쳐지토록 슬픈 이야기들만이 남을 뿐이다.

그리고 아마도 공포영화의 계보도를 그린다면 그런 일본산 공포영화들과 상당히 먼 지점에 이 영화 <드래그 미 투 헬>은 위치하게 될 것 같다. 이 영화에는 묘한 밝음이 있다. 또한 상당한 유머가 있다. 물론 이 영화에도 일본산 공포영화들처럼 유령이나, 악귀가 나온다. 그러나 이 유령이나 악귀는 어딘지 모르게 밝다. 예를 들어 일본산 공포영화들의 악귀들이 아주 깜깜한 밤에, 엘리베이터 같이 폐쇄된 공간에서, 혹은 아주 깊은 오래된 우물 속에서 슬며시, 아주 조심스럽게 나타난다면, 이 영화의 악귀는 밝은 대낮에, 낄낄 웃어가면서 쩍 하고 나타나는 식이다. 물론 상당수의 할리우드 영화에서 공포물은 그다지 어둡지 않다. 예를 들어 그 유명한 <스크림> 시리즈도 사실 얼마나 은근히 밝고 코믹적인가. 아름다운 선남선녀들이 뛰노는 청춘물 같은 분위기에, 여전히 이곳저곳에서 패러디되고 있는 코믹한 대사들과 상황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우스꽝스러운 가면이라니. 그러나 이 영화는 또한 <스크림> 시리즈와도 다르다. <스크림>이 밝은 웃음이라면, 이 영화의 웃음들은 어딘지 모르게 자조적이고, 냉소적인 데가 있다. 아마도 그것이 어느 정도는 샘 레이미 본인을 반영한 것이겠지만.

(미리니름이 시작됩니다)

이 자조적이고 냉소적인 유머들은 영화 곳곳에서 은근히 빛난다. 몇 가지만 예를 들어보자. 일단 첫번째, 이 여자 크리스틴(알리슨 로먼)이 혹염소 악귀(물론 여기서부터 유머다)에 시달리게 되는 이유부터 홀딱 깬다. 혹 일본산 공포영화였으면, 어린시절의 학대 혹은 주위의 왕따 같은 무거운 얘기들이 들어갔을 거다. 그러나 크리스틴이 노파에게 저주를 받게 되는 이유는 너무 현실적이라 픽 웃음이 난다. 바로 은행직원인 크리스틴이 노파의 대출 상환 기한 연장을 거부했던 것. 그후에도 이 현실성은 악귀에게 지옥으로 끌려들어간다는 이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상황 속에서 계속 나타나며, 하나의 유머 코드로 작용한다. 예를 들어, 나중 크리스틴과 만나게 되는 영매는 예전 다른 영혼을 흑염소 악귀에게 빼앗긴 사연을 처음에 보여주며 나름 비장하게 등장하지만, 여기에도 여전히 만 달러라는 돈은 필요하다. 그러나 더욱 어처구니 없게도 꽤나 잘나가는 은행직원인 크리스틴은 그 만 달러도 구하지 못해, 전당포에 가재도구를 넘기며 받은 부족한 돈을 앞에 두고 눈물을 흘리며 아이스크림이나 꾸역꾸역 먹고 있다(전직 뚱녀였던 크리스틴은 스트레스를 먹을 것으로 극복해왔던 것). 아니, 지옥으로 끌려들어간다는데, 집을 팔아서라도 마련해야지, 지금 아이스크림이 넘어가니. 하. 

(미리니름이 강해집니다)


유머는 계속되니, 영화의 처음에 '악귀에게 복수할거야'를 외치며, 비장하게 등장한 이 영매는 어처구니 없게도 허망하게 죽어버리고(그것도 일종의 심장마비인 듯 하다), 그 영매를 소개해준 심령술사는 기껏 한다는 소리가 "영매는 악귀에 대항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며, 사실은 그 저주받은 물건을 다른사람 주면 되는 방법이 있었노라고 뒤늦게야 고백한다.(하..고객 데리고 장난하니?) 옳거니, 그럼 되었구나, 그 물건을 알코올 중독에 빠진 어머니 드리면 되겠구나, 하고 생각한 것은 내가 <링>에 너무 빠진 까닭. 다시한번 말하지만, 이 영화는 일본산 공포물이 아니고, 그런 윤리적인 문제를 슬며시 제기할 만한 심각한 영화가 아니다. 이건 그냥 샘 레이미의 유머 공포물이다. 물론 이후에도 이 유머는 여전히 계속되니, 공동묘지에서 하필이면 십자가에 머리를 맞고, 물속에 빠져들어가는 크리스틴의 모습은 아마도 그 정점이라 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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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나는 이 영화를 까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영화의 스토리가 너무 어처구니가 없다거나, 무섭지는 않고 웃기기만 하더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것이 샘 레이미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아주 약한 공포와 아주 약한 유머, 그리고 그 이후에 약간은 센 공포와 조금은 더 센 유머, 그리고 마지막에는 커다란 공포와 그 이후에 터지는 허탈한 유머를 적절히 배합하는 것이 샘 레이미의 작전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이 작전은 어느정도 꽤 들어맞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이것이 <씨네 21>에서도 지적했던 이 영화의 리듬, 그 리듬의 훌륭함인지도 모른다. 관객을 쥐었다가 놨다가, 다시 조금 쥐었다가, 놨다가 하는 것, 그리고 여기에 소리와 장면전환으로 리듬을 부여하는 것 말이다. 사실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샘 레이미의 소리를 활용하는 방식은 상당히 고전적이다. 그리고 많은 관객들이 사실 영화를 보고 나온 뒤에 "뭐야 괜히 소리로 놀래키기나 하고, 소리없으면 하나도 안 무섭겠네."라고 푸념하는 것은 소리를 그만큼 적절하게 사용했다는 반증이 아니겠는가.

아무튼 그래서 이 영화는 은근히 재미있다. 그리고 꽤나 무섭고, 꽤나 웃기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일본산 공포영화들처럼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기분이 찜찜하다거나 이상야릇하거나, 무겁게 만들지 않고(사실 나는 이것도 나름대로 괜찮다고 생각한다. 하.), 그저 사우나에서 땀 뺀 기분으로 상쾌하게 나올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이 영화의 매력이 아닐는지 모르겠다.



- 2009년 6월, 롯데시네마 건대입구.



p.s.
며칠 전에 홍상수의 신작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 대해 이야기하며 남자의 찌질함에 대해 썼었는데, 거기에 하나의 경우를 추가해야 할 듯하다. 바로 남자 둘이서 공포영화 보면서 조잘조잘 떠드는 것. 내 옆자리에 한 칸 띄어 앉았던 어떤 두 녀석 이야기다. 나는 니들이 왜 떠드는지 잘 알지. 입 꼭 다물고 보면 너무 무서워서잖아. 물론 혼자서 보러오지 않은 것도 그런 이유일 테고.
그런데 나가면서 "별로 무섭지도 않네."하고 허세는 왜 부리실까. 에라 이넘들아. 아까 영화관에서 니들이 양 주먹 꼭 쥐고, 팔걸이 움켜쥐는 팔에 힘줄 나오는 거 다 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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