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Recent Post»

Recent Comment»

« 2024/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당연한 말(言)들의 향연

The Book | 2009. 6. 11. 23:49 | Posted by 맥거핀.

지혜의 숲에서 고전을 만나다 - 8점
모리야 히로시 지음, 지세현 옮김/시아출판사


본 도서 리뷰는 TISTORY와 알라딘이 제공하는 서평단 리뷰 포스트입니다"

어떻게 보면, 요즘 여러가지 새로운 방식으로 이른바 '고전(古典)'들이 그 힘을 얻고 있는 듯 하다. 학교에서 고전을 다룬 강의도 많고, 그 외 여러 고전을 강독하는 강좌들도 많으며, 출판사들에서도 앞을 다투어 여러 고전들을 새롭게 소개하고, 조명하는 책들을 발간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반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고전은 여전히, 어떠한 의미에서는 예전보다 훨씬 더, 경시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고전은 고루하고 당연한 말만 가득한 지루한 책,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며, 고전을 읽으려고 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애써 외면하려 하는 사람들도 많다.


아마도 이것은 고전 자체의 문제라기 보다는, 그 고전을 이어받은 후세 사람들의 문제라고 해야 할 것 같다. 특히 이는 그간 고전을 탐독하고, 이야기해 온 '어른들'에게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소위 배웠다는 사람들, 혹은 어떤 높은 위치에 오른 사람들은 종종 고전을 인용하며 '한 말씀' 하시기도 하고, 고전 중의 한 말씀을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고 자랑스레 소개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이들이 가끔 보여주는 자신의 말들과 너무도 다른 행동들, 자신의 좌우명과 완전히 배치되는 행동들은 그 사람 뿐만이 아니라, 이 고전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우리가 때로 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공자님 말씀 하고 있네, 흥."하고 냉소적으로 내뱉을 때, 우리는 은연중 그 고전들까지도 냉소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소개할 <지혜의 숲에서 고전을 만나다>의 저자 모리야 히로시는 다음과 같은 그렇게 '입만 살은 자들'에게 일침을 가한다.


나는 이 책을 30대 이상의 이 사회를 열심히 지탱해나가고 있는 사람들, 특히 40대 이상의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다. 중국고전은 단순히 지식과 교양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적합하지 않다. 이는 어디까지나 실학實學으로, 머리로 이해하기보다는 실천했을 때 의미가 있으며 비로소 그 값어치가 살아난다고 할 수 있다.
(p. 5)



따라서 이 책은 어디까지나 실용서다. 이 책은 <채근담>, <논어>, <맹자>, <삼국지>, <역경> 등 30여 개에 달하는 중국 고전 중에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도움이 될 만한 몇몇 구절들을 뽑아 소개하고, 그에 대해 간단한 설명을 붙이는 구조로 되어 있다. 그리고 읽는 이가 실제로 생활을 살아가는 데에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각 고전 별로 구절을 뽑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고전들을 섞어 다시 재배열 하고 있다. 즉 이 책의 큰 챕터들은 다음과 같다. 인간관계의 지혜, 사람을 쓰는 지혜, 소박한 일상의 지혜, 상황에 대처하는 지혜, 인생을 위한 지혜, 세상을 현명하게 사는 지혜. 

이러한 실용서들은 처음부터 독파하는 것보다는 필요할 때마다 필요한 부분을 읽으면 그만이다. 꼭 필요하지 않더라도 별로 재미없다 혹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느끼면, 다음 파트로 넘어가면 된다. 그래서 나도 고백하건대, 책을 다 읽지 못했다. 굳이 분량을 이야기하자면 한 3분의 2 가량 읽었다. 그러나 사실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완독한 후, 책장 멀리에 꽂아두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 생각된다. 이 책은 한 번 덮은 후 다시 읽지 않아도 되는 그런 류의 책이 아니다. 그보다는 가까이에 두고 생각날 때마다, 혹은 마음이 울적할 때마다, 혹은 답답할 때마다 가끔씩 꺼내어 조금씩 읽는 것이 좋은 그런 류의 책이다. 그래서 나도 책장 가까이에 대학 때 선물로 받은 <논어> 옆에 꽂아두었다.

전체적으로 이 책은 당연한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 그러나 가끔 당연하지만,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 혹은 과거의 내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구절들이 있다. 그런 부분들이 한 두 군데가 아니지만, 그 중의 한 부분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이 부분은 최근의 정치상황과 맞물려서도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사람을 책망할 때는 함축이 필요하다
                                   責人要含蓄 <신음어呻吟語>

'함축含蓄'이란 하고 싶은 것을 전부 드러내지 않고, 여운을 남긴다는 뜻이다. 사람을 책망할 때는 이러한 '함축'이 필요하다고 한다.
왜일까? 이에 대해 두 가지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우선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다. 비록 상대방에게 100퍼센트 잘못이 있다고 해도 마구잡이로 몰아붙이면 당하는 사람으로서는 좋아할 리가 없다. 그런 식으로 하다 보면 반드시 불만과 반발이 생겨난다. 잘못하면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무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
(후략) (p.80)



이 책에는 이러한 당연한 말들이 가득 들어 있다. 아마도 이러한 당연한 말들은, 당연한 말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시대, 상식이 상식으로 받아들여지는 사회에서는 별 의미를 가지지 못할 것이다. 누구나가 이러한 삶의 원칙들을 중시하는 사회라면, 이러한 말들이 더 이상 무슨 의미, 무슨 힘을 가질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지금의 현재는 어떤 의미에서는 비상식적인 것들이 출몰하는 시기, 상식이 통하지 않는 시기이다. 당연한 말을 하면 불온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시기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 꼭 어떤 정치적인 의미를 가지고 하는 말은 아니다. 책을 읽으면서 어떤 부분은 너무 정치적인 의미를 담아 읽히기도 했고, 파란 기와집 사시는 분이 생각나기도 했지만, 그것은 부차적인 문제이다. 아마도 어떻게 보면, 처음에 이야기하였듯이 고전이 강조되고, 고전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 그리고 이런 책들이 출판된다는 것은 일종의 위기의식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느끼고 있는 일종의 위기감 말이다.

그래서 역설적이지만, 더 이상 이런 책이 출판되지 않는 사회가 오기를 희망한다. 당연한 이야기를 하면, 그것이 의미심장하게 들리지 않고, "뭐 그리 당연한 이야기를 하시나." 이러면서 사람들이 별 의미를 두지 않는 사회가 오기를 희망한다. 이 당연한 말들의 향연이 더 이상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 곳, 그곳은 아득히 멀기만 한 것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