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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미네이터: 미래 전쟁의 시작, McG

Ending Credit | 2009. 6. 6. 01:45 | Posted by 맥거핀.



(미리니름 절대 있음)





시작부터 어쩔 수 없이 니름질을 상당히 하면서 이야기를 해야할 것 같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 영화는 미리 내용을 알고 보았을 때의 느낄 수 있는 '다른 재미'가 있을 것이라고 본다. 허나, 물론 많은 사람들이 그 '다른 재미'를 별로 원하지 않을 것도 사실이기 때문에, 되도록 영화를 보실 분들은 읽지 마시기를 부탁드린다.

이 영화 '터미네이터: 미래전쟁의 시작(이하 T4로 지칭)'을 비롯한 터미네이터 시리즈에는 묘한 결정론적인 세계관이 있다. 전체적으로 그 이야기를 살펴보아도 그러하고, 각 편의 이야기를 따로 떼놓고 보아도, 각각의 이야기에는 일종의 결정론적 세계관, 즉 '이미 정해진 미래(혹은 과거)를 바꿀 수 없다'는 식의 세계관이 스며들어 있다. 예를 들어 '터미네이터 3'의 경우에도 결국 존 코너는 스카이넷이 일으킨 전쟁을 막지 못한다. 존 코너는 마지막에야 벙커 안에서 깨닫는다. 터미네이터의 임무는 전쟁을 막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자신을 보호하는 것 뿐이었다는 점을. 전쟁을 막는 것은 '지금의 시점에서는' 이미 불가능했다는 것을 말이다. 이번 영화 T4는 어떠한가. T4에서는 존 코너(크리스천 베일)가 아니라 마커스(샘 워싱턴)가 마지막에 깨닫는다. 이 모든 것은 사실 이미 프로그래밍 되어있는 것이었다는 점을 말이다. 그가 카일 리스를 만나고, 저항군 본부에 찾아가며, 탈출하고, 존 코너를 스카이넷 본부에 오도록 만드는 이 모든 것이 사실 이미 스카이넷의 거대한 계획의 일부분이었다는 점, 그는 그렇게 하도록 프로그래밍된 침투형 로봇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프로그래밍 되어있다는 것, 그것은 다른 말로 하면 '모든 것은 이미 정해져 있다'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만약 그것이 그대로 안 된다면, 그건 일종의 프로그래밍 오류인 셈이다.

어떤 측면에서 보자면 이의 반대편에 존 코너를 비롯한 저항군 세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래는 결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 미래는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존 코너와 저항군 세력은 신봉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아마도 이 영화의 존 코너의 마지막 대사가 어쩌면 이 영화의 주제의식을 설명해준다고 봐야 할 것이다. 운명은 스스로의 힘으로 개척한다는 것, 이미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 말이다. 그것은 영화 중간에 여러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된다. 예를 들어 존 코너가 다른 저항군 세력에게 전하는 메시지도 그렇다. 명령에 불복종하라는 것, 우리가 정해진 명령에만 무조건 따른다면 그것은 기계와 다를 바가 무엇이 있겠느냐고 항변하는 것 말이다. 존 코너의 이 말들은 비정결론적인 세계관과 맞닿아 있다. 정해진 대로만 움직이는 것, 그것은 기계다. 인간이 가장 인간적으로 보일 때는 예측하지 않는 방향으로 움직일 때일 것이다. 그것이 한편으로 실수가 될지라도 말이다. 우리는 그렇게 말한다. 인간이기 때문에 실수도 하는 거야, 거참 얼마나 인간적이니.

그러나 이 존 코너의 세계는 어딘지 모르게 묘한 점이 있다. 그것이 내가 묘한 결정론적인 세계관이라고 말한 이유다. 시리즈 전체적으로 보면, 터미네이터 시리즈는 존 코너를 살리려고 하는 인간들과 죽이려고 하는 기계들간의 대결이다. 그래서 기계들은 존 코너를 아예 태어나지 못하게 하려고, 그 어머니 새라 코너를 죽이려고 하기도 하고, 그 아버지가 될 카일 리스를 새라 코너와 만나기 이전에 죽이려고 하며, 어린 존 코너를 공격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에 맞서서 2018년 현재의 존 코너의 가장 큰 임무는 자신을 태어나도록 하고, 보호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어머니 새라 코너를 지키기 위해, 그리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 터미네이터를 과거로 보내기도 하며, 무엇보다도 자신의 아버지가 될 카일 리스를 과거로 보내야 한다[각주:1]. 이렇게 보면, 앞의 이야기들은 역전되는 것처럼 보인다. 즉, 기계들은 현재의 존 코너가 있는 이 저항군의 세력 자체를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만들기 위해 과거를 뒤바꾸어야 하며, 존 코너는 결정되어 있는 과거를 확고히 공고한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즉 카일 리스라는 자신의 아버지와 새라 코너라는 자신의 어머니가 존재하고 있는 이 과거, 결정되어 있는 이 과거가 있어야 결정되어 있는 이 미래의 저항군 세력 및 자신도 존재할 수 있다. 따라서 어떤 의미에서는 기계들이 결정되어 있는 미래(존 코너가 존재하는 미래)가 없다고 생각하고, 미래를 다른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노력하는 반면에, 인간들이 결정되어 있는 미래가 있다고 생각하고, 이를 오도록 하기 위해(존 코너를 존재하도록 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볼 수도 있다.

여기에는 묘한 역설이 존재한다. 기계들이 미래를 새로운 것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그에 반해 인간들이 정해진 미래를 오게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말이다. 따라서 여기에서 기계와 인간은 뒤섞이고 역전된다. 어떻게 보면 여기에 이 시리즈의 묘한 매력이 있는 것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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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면서 이와 연관지어 재미있던 것은 기계가 인간을 닮으려고 노력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T4의 현재 시점(2018년 시점)에서 가장 발달된 터미네이터인 T-800(아놀드 슈워제네거가 맡았던)은 왜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어야 할까. 그것도 근육이 아주 우락부락한, 어떤 의미에서는 완벽한 몸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인간의 형상으로 말이다. 영화에도 등장하는 T-800의 이전 모델인 T-600은 마치 골격이 전부 드러난(인체해부도에 등장하는) 인간을 연상시킨다. 영화에 더 등장하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그 이전의 모델들은 더욱 인간답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스카이넷과 기계들이 그렇게 인간을 잡아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인간을 이용해서 더욱 인간에 가까운 터미네이터를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 또, T4에 등장하는 여러 인간을 공격하는 기계들의 형상을 보면 왠지 이것이 인류의 어떤 진화과정, 혹은 자연세계를 연상시킨다. 마커스 일행을 공격했던 거대한 기계(아마도 '하베스터'라고 부르는 것 같은데..)는 과거의 시기에 있었던 거대한 맘모스나 공룡들을 연상시키고, 물에서 인간들을 공격하는 그 기계는 큰 벌레나 피라니아를 연상시킨다. 즉 이것들은 자연의 어떤 세계와 그 형태와 발달 모습이 비슷하게 조응한다. 왜 이것들은 기계이면서도 인간이 존재하는 이 자연세계와 그 형태와 기능을 닮으려고 하는 것일까.

어쩌면 이는 단지 그 형태와 간단한 기능만이 아닌지도 모른다. 스카이넷 본부의 그 구조. 밑에는 총을 든 T-600 감시병들이 포로들을 지키고, 위에는 작전실과 실험실(?) 등이 존재하는 그 구조 말이다. T-800이 생산되는 그 밑의 공장의 검고, 뜨겁고, 약간은 더럽고, 불이 활활 타오르는 이미지와 그 위의 작전실의 깨끗하고 하얗고 샤프한 이미지의 대립. 이것이 보통의 인간 사회의 이미지와 거의 같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당연하다고 생각될지도 모르지만, 어떻게 보면 스카이넷의 본부가 꼭 이렇게 생겨먹을 필요는 없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물음이 생긴다. 왜 이렇게 그 형태나 기능 뿐만이 아니라, 전체적인 구조마저 인간과 같아지려고 하는 것일까.

아마도, 이는 우문(愚問)일지도 모르겠다. 기계라는 것은 결국 인간이 만들어 낸 것, 따라서 그 기계가 인간을 닮아가려고 애쓰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신이 인간을 만들어냈다고 믿는 인간들이, 한편으로는 신을 닮으려고 애쓰는 것처럼 말이다[각주:2]. 그리고 여기에 아마도 이 영화의 중요한 포인트가 다시 반복되는 것이 아닐는지도 모르겠다. 기계가 인간들을 아무리 닮으려고 애써도, 하나 결코 닮을 수 없는 게 있다는 점 말이다. 그것은 위에서도 말했지만, 예측하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 어떤 의미에서는 그것이 커다란 실패가 될지라도, 모든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자신의 의지대로 나아가려는 것 말이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기계들이 존 코너를 결국 죽이지 못했던 것이 이해가 된다. 영화에서 기계들은 존 코너의 심장을 멈추게 하는 게 성공했다. 다만, 그들은 한 가지를 결코 고려할 수 없었던 것 뿐이다. 마커스가 자신의 생명을 버리는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점 말이다. 그래서 나는 한편으로 궁금해졌다. 신이 되고자 하는 인간, 그 인간이 결코 고려할 수 없는 점이란 어떤 걸까. 





- 2009년 6월, 씨너스 단성사.

 
  1. 이와 관련하여 영화 속에서는 짧게 스치고 지나갔지만, 이 문제를 자세히 다뤄보는 것도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존 코너가 그 자신이 태어나도록 하기 위해, 카일 리스가 죽을 것을 알면서도 그를 과거로 보내야 하는 것 말이다. [본문으로]
  2. 이와 관련하여 또 하나가 흥미롭다. T-800의 다음 모델인 T-1000이 형상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다는 것 말이다. 형상을 마음대로 바꾸는 것, 그것은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신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또 한편으로는 3편의 T-X가 처음 여자의 모습으로 등장했던 것도 재미있다. 신은 아마도 여자? ^^;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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