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인간들로부터) 아이들을 구하라

The Book | 2009.05.22 17:23 | Posted by 맥거핀.

고민하는 힘 - 10점
강상중 지음, 이경덕 옮김/사계절출판사


"본 도서 리뷰는 TISTORY와 알라딘이 제공하는 서평단 리뷰 포스트입니다"

처음에는 가벼운 책이려니 싶었다. 무게도 가볍고, 안에 들어있는 내용도 가벼운 그런 책, 비슷한 어조로 비슷한 방법을 이야기하는 많은 자기계발서 류의 하나. 더구나 표지의 그 커다란 저자사진이라니. 저자사진이 앞면에 커다랗게 박힌 책들은 왠지 신뢰하기가 어렵다. 이 책의 경우와는 조금 다르지만, 대체로 연예인들이나 유명인사들이 쓴 책들이 그렇다. 책의 내용보다는 유명인사의 인기도의 덕을 보려는 책들. 그런 책들은 대체로 실망감을 주고 끝난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 책은 조금 달랐다. 책의 무게는 가볍지만, 생각보다는 훨씬 진중하고, 무거운 내용들을 담고 있었다. 무겁다는 것은 우울하거나, 힘든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무거운 울림으로 머리와 마음을 때리는 구석이 있다는 말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저자의 어떤 필사적인 자세가 느껴졌다. 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가짜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저자는 필사적으로 맞서고 있었다.

이 전반적 위기는 '근대'의 붕괴를 불러오고 있습니다. '근대'가 만들어 낸 수많은 화려한 유산 - 자유와 시장경제의 풍요로움, 민주주의와 평화라는 인류사적 유산 - 이 지금 위태로운 시련의 때를 맞이했고, 그 와중에 우리는 각자의 인생에 담긴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묻고 있습니다. (p.8-9)

저자가 느끼고 있는 우리의 세계는 붕괴되어 가고 있는 세계다. 어떤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의 가치관이 점점 사라지고, 전도된 가치관과 특이한 방식의 배금주의와 '유사 종교'와 상대방을 소멸시키고 싶어하는 사랑이 존재하는 사회. 이 사회에서는 점점 '가짜 인간', 혹은 껍데기만 가지고 있는 인간들이 양성된다. 이 '껍데기 인간'들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겉으로 보았을 때는 사리판별을 잘하고, 여러가지 일을 잘 해내는 기술도 가지고 있고, 말도 잘하고 여러가지 많은 것을 알고 있으나, 그 말이라는 것, 그리고 생각이라는 것을 곱씹어보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 사람들, 자기나름의 가치관도 있으나, 이 가치관이라는 것이 실로 모호하며, 본인이 무엇을 추구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를 잘 모르고 있는 사람들, 각기 여러개의 모순된 가치관을 스스로 안고 있으면서도, 무엇이 어떻게 충돌되는지 잘 알지도, 알려고 하지도 않는 사람들...여러가지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런 껍데기 인간들을 생각할 때마다 배수아의 <에세이스트의 책상>에서 보았던 '수미'의 경우가 떠오른다. 좀 길지만 인용한다.

수미가 그 영화를 선택했기 때문도 아니고 수미의 어떤 말이나 행동이 나에게 불쾌했기 때문도 아니었다. 수미의 말대로 그 영화는 수미에게도 무의미한 것이었다. 비록 수미가 극장 안에서는 그것을 즐겼다 할지라도 말이다. 그것 때문에 수미가 비난받는다면 부당한 일이리라. 수미는 자신의 일상의 환경을 받아들이는 긍정적인 천성대로 행동했을 뿐이었다. 수미는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마음껏 영양을 섭취하면서 자유롭게 유영하는 물고기와 같았다. 냉정하게 관찰해보면, 수미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서 수미 자신에게서 나온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지식이건 스타일이건 수미는 환경에서 최대한 많은 것을 빨아들이며, 학교나 단체나 집회에서 배운 것을 이해하고 실천하기도 했다. 겉으로 보기에 수미는 건강하고 확고하며 공명정대하게 보였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수미는 어떤 의미로든 매스미디어의 각광을 받지 않거나 시각적인 쾌감을 주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둔감한 편이었다. 아니 그런 것들에 대해서 친절했으나 냉담했다. 수미가 알거나 믿고 있는 것들은 엄밀하게 말하자면 각종 미디어에서 배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수미가 사랑하는 것은 비극적이고 이타적으로 보이는 종류의 화제 그 자체였다. 수미는 인간이 가장 비속하게 오감에 충실할 때 사랑하게 되는 것들을 스타일리시하게 사랑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단지 그것을 위해서 지나치다 싶은 해석과 변명과 명분과 휴머니즘과 인과관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식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욕구를 발산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수미는 혁명과 가장 멀리 떨어진 존재이면서도 그것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에 대해서 아무런 저항이나 죄의식을 갖지 않고 도리어 쾌감을 느끼는 21세기의 잡동사니에 불과했다. 수미는 그런 식으로 그 안에서 마음껏 개방적이면서 동시에 기묘한 폐쇄성을 가지고 있는 하나의 세계로 명명될 수 있었다. 영상의 언더그라운드, 은둔을 중계하는 텔레비전, 대중친화적인 파괴자로 말이다. 수미는 마음에 드는 것과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명확하게 구분해냈으며 마음에 드는 것들에게 명분과 이름을 부여했다. 수미 자신에게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표면적으로 수미는 비합리적인 폭력에 대항해서 싸웠으나 역시 그 중요한 동기는 불특정 다수인 수많은 타인의 마음에 드는 것, 타인의 마음을 빼앗는 존재가 되는 것, 혹은 그런 존재를 추종하는 것, 사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유형 무형의 정서적인 권력을 획득하는 것이었다. 수미가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그 개별적 대상이 아니라 추상적인 무리로 존재하는 캐릭터 상품과 같은 어떤 유형이었다. 


저자가 이러한 껍데기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 찾은 실마리는 나쓰메 소세키와 막스 베버이다. 이 두 사람에게서 실마리를 찾고 있는 것이 흥미롭다. 먼저, 흥미로운 부분은 이들이 살았던 시대이다. 나쓰메 소세키는 일본의 소설가, 막스 베버는 독일의 철학자이자 사회학자. 언뜻 보아서는 별로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 이들은 살았던 시기가 겹친다. 막스 베버는 나쓰메 소세키보다 3년 이른 1864년에 태어났고, 나쓰메 소세키보다 4년을 더 살았다. 즉 근대가 폭발하던 시기, 독일은 프로이센 제국에서 제1차 세계대전이 촉발하던 시기로 이행하는 단계이고, 일본은 '메이지 유신'의 시기. 저자의 말대로 이 시기는 자유가 폭발하던 시기였다. 새로운 문물과 사회계급이 출현하고, 과거의 종교라든가, 신분 체제같은 사회적, 종교적 억압에서 벗어나 개인이 처음으로 어떠한 가치관에도 휘둘리지 않고, 개인으로서 그 자신을 마주하던 시기. 이 시기에 처음으로 사람들은 넘쳐나는 자유 속에서 개인의 고독감, 사회적 소외를 겪었으며, 삶을 지탱하는 가치관을 잃어버렸다. 저자는 현재의 시기를 이러한 것이 반복되는 시기로 보고 있는 듯 하다. 즉 나쓰메 소세키나 막스 베버가 살았던 시기가 중세가 붕괴되고 근대가 도래하는 시기였다면, 현재의 시대는 근대가 붕괴하고, 근대 이후가 도래하는 시기라는 것이다(물론 근대가 붕괴된 시점이 어디인가의 문제는 훨씬 복잡한 문제이다). 따라서, 어떤 의미에서는 근대 이후 세계대전을 일으켰던 껍데기 인간들이 만들어졌던 것처럼, 현재 시기에도 가치관의 전도와 사회적 소외 속에서 이런 껍데기 인간들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각주:1].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나쓰메 소세키와 막스 베버의 다른 공통점이다. 이들은 모두 신경쇠약을 겪었다. 막스 베버는 아버지가 사망한 후 내내 신경증과 우울증을 겪었으며, 나쓰메 소세키 역시 본인이 신경쇠약을 겪었을 뿐 아니라, 그의 소설에서는 신경쇠약에 걸린 사람이 빈번하게 나온다. 이들에게는 왜 이러한 공통점이 있는 것일까. 저자는 이를 근대 이후 망가져가는 가치관에 대한, 일종의 그들 나름대로의 저항의 산물로서 보는 듯 하다. 하기는 나쓰메 소세키와 막스 베버는 먼 곳에서 각기 다른 일에 몰두했지만, 그들이 해온 생각의 파편들은 서로 겹치는 부분이 많다. 나쓰메 소세키는 근대국가 건설이라는 '메이지 유신'의 가치관에 동조하지 못하며,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성이란 무엇인가의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였으며, 막스 베버 역시 인간이 만든 근대 체제와 자본주의 체제에 대해 최선을 다해서 고민했다. 즉 다른 사람들이 소멸해가는 중세, 잃어버리는 가치관들 속에서 혼란을 겪으며, 국가라는 것, 유사 종교 혹은 제국주의에 그들 자신들을 다시 소속시키는 것으로 (고민을 버리고) 삶을 이어나가고자 했다면, 이들은 이 시기에 맞서서 인간에 대해 생각하는 것, 그 인간들이 작동하는 방식에 대해 고민하는 것, 그리고 자신의 가치관의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대응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나가려고 했던 것이다. 그래서 신경쇠약은 이들이 이러한 세상에 필사적으로 맞선 하나의 산물로서 이들에게 남았던 것으로 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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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저자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 책의 제목대로 '고민하는 힘', 고민 그 자체가 가진 파괴력에 대해서이다. 저자는, 나는 누구인가, 돈이 세계의 전부인가, 제대로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청춘은 아름다운가, 믿는 사람은 구원받을 수 있을까, 무엇을 위해 일을 하는가 등등 여러 형이상학적인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나름의 생각을 제시하고 있지만, 그것 모두를 몰라도, 이해하지 못해도 상관없다. 다만 한 가지, 그래 나도 가끔 무엇인가를 고민해보아도 괜찮겠지, 또는 적어도 뭔가 껍데기 인간은 안 되었으면 좋겠는데, 혹은 나도 껍데기만 있는 인간은 아닐까(바로 나의 고민이다), 라고 생각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된다.

사람을 소모품처럼 쓰고 버리는 가혹한 경쟁 시스템, 점점 얇아지고 약해지는 사회 안전망, '승자'와 '패자' 사이의 격심한 차이. 젊은이들이 견뎌야 할 현실은 너무나도 혹독합니다. 따라서 잔혹하고 박정한 취급을 받는 그들, 그녀들에게 세련된 정신론을 제시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런 일을 할 바에야 살아남기 위한 노하우를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나 실업자의 경우처럼 살아남아야 하는 입장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하루바삐 자기방어책을 알려 주어야 합니다. (p.172-173)

저자가 말한 대로 이는 살아남기 위한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는 '가짜 인간', 껍데기만 있는 인간들에 필사적으로 대항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가짜 인간들의 가장 무섭고도 커다란 특징은 본인만 가짜 인간이고 싶어하지 않아한다는 점이기 때문이다. 즉 가짜 인간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을 어떻게 해서든 가짜 인간으로 만들려고 한다. 어떠한 의미에서는, 지금의 우리 사회도 이러한 것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닐까. TV를 틀면 "고민고민하지마, Girl~"(물론 이건 반농담이다.) "생각만 하면 생각대로, 비비디 바비디 부"(참 반(反) 나쓰메 소세키적인 말이다.)와 같은 말들이 넘쳐나고, 이 사회의 시스템의 상층부에는 엄청난 가짜 인간들이 버티고 있으면서 어떻게 해서든 다른 사람들을 가짜 인간으로 만들려고 하고 있다[각주:2]. 그렇게 해야만 본인들이 가짜 인간인 것이 드러나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루쉰의 유명한 책 <광인일기>의 마지막 구절 '사람을 잡아먹어 본 일이 없는 아이가 아직도 남아 있을지 몰라. 아이들을 구하라......'를 패러디한 다음의 말로 끝을 맺고자 한다. 고민을 두려워하지 않는 아이가 아직도 남아 있을지 몰라. (가짜 인간들로부터) 아이들을 구하라...... 




  1. 책에도 잠깐 언급되는, 일본의 비평가 가라타니 고진의 생각이 여기와 좀 겹치는 듯 하다. 가라타니 고진도 그의 저서 <근대문학의 종언>이나, <역사와 반복>에서 이러한 반복되는 역사에 대해, 주기적으로 진행되는 체제와 자본주의의 발달에 대해 논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세계의 체제, 자본주의의 체제가 전체적으로 반복되는 것은 물론이고, 일본 자체만 보아도 그러하다.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가라타니 고진 역시 이 이야기를 하면서 막스 베버나 나쓰메 소세키를 언급하고 있다는 점이다. [본문으로]
  2. 예를 들어,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한예종의 통섭교육과 황지우 총장의 사퇴여부를 둘러싼 논쟁이 그렇다. 유인촌 장관과 문화부 친구들은 한예종의 통섭 교육과 관련하여 여러 의문을 제기하며 황지우 총장을 사퇴시켰다. 인문학과 예술, 기술을 결합시키는 통섭 교육, 어떻게 보면 예술교육에 있어서 하나의 핵심적인 부분이라고 볼 수 있는 이것이 어떻게 좌파적 인간을 양성시키는 문제와 연결되는지..그야말로 놀라운 발상이다. 전형적인 가짜 인간들의 가짜적인 공세. 관심있는 분은 대표적인 가짜 인간 변희재의 동아일보의 이 칼럼(http://www.donga.com/fbin/output?n=200904030102) 부터 다른 기사들을 읽어보시길.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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