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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라이' 법관들이 보고 싶다

The Book | 2009. 5. 20. 02:27 | Posted by 맥거핀.
불멸의 신성가족 - 8점
김두식 지음/창비(창작과비평사)


"본 도서 리뷰는 TISTORY와 알라딘이 제공하는 서평단 리뷰 포스트입니다"

흥미진진한 이야기였다. 불멸의 신성가족들의 이야기. 그곳에도 어떤 일종의 관계가 있고, 그 관계 속에서 오가는 정(情)과 다툼과 욕망이 있으며, 흥미롭고도, 약간은 황당한 사건의 뒷이야기가 있고, 이상한 음모와 알려지지 않은 비밀스러운 마무리들이 있었다. 무슨 암흑가 이야기냐고? 음..그게 아니라면, 정계(政界)의 이야기냐고? 아니다. 이 책의 부제는 이렇다. '대한민국 사법 패밀리가 사는 법'. 그래서 흥미롭게, 재미를 느끼며 읽기를 시작했지만, 결국에는 씁쓸한 뒷맛만 남았다.

요즘 '패밀리'가 유행이지만, 한편으로 '패밀리'는 위험하다. '패밀리'는 '우리가 남이가'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내가 그 패밀리 안에 들어가 있을 때에는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은 무엇보다도 강력한 보호막으로 다가오지만, 그 패밀리가 우리의 외부에 있는 것이고, 우리가 그들과 어떤 관계를 맺게 될 때에는 이는 우리에게 엄청난 장벽이 된다. 대표적인 예가 이 책에서 말하는 사법 패밀리이다. 이 책에서 차근차근히 논증하는대로, 그 패밀리가 되는 것은 실로 어렵고, 힘든 과정을 통과해야만 한다. 바로 '사법시험'이라는 장벽이다. 그러나 그 장벽을 넘어 그 안으로 진입하게 되면, 그에 따른 결혼과 도제식 선후배 관계와 술자리와 오고가는 돈을 통해 그들은 강력한 패밀리가 되어 외부를 향해 보호막을 둘러친다. 그래서 이들을 이 책에서는 신성가족(神聖家族)이라고 묘사한다. 저자가 말하는 대로, 신성가족은 맑스와 엥겔스의 공동저작인 <신성가족, '비판적 비판주의'에 대한 비판: 브루노 바우어와 그 일파를 논박한다>에서 유래된 말이다. 

맑스는 "불경스러운 대중과 모든 것으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키기 위해 어마어마한 투쟁을 겪어온 비판적 비판주의는 마침내 고독하고 신을 닮았으며 자기만족적이고 절대적인 존재로 되는 데 성공했다"고 그들을 묘사합니다. (p.146)

저자는 현재 한국사회의 신성가족인 사법 패밀리들을 이 책에서 잘게 해부하고 있다. 이 사법패밀리에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판사, 검사, 변호사만 포함되지 않는다. 변호사 사무실 실장 및 직원들 (또는 사실상 브로커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 법무법인의 직원, 법원의 일반직원들이 포함된다. 그리고 이들의 주변에 밀접하게 관계하고 있는 사람들로서 경찰, 국회의원, 법과대학 교수들, 검찰이나 법원에 출입하는 기자들, 그리고 심지어는 결혼소개업자(일명 마담뚜)들이 있다. 그리고 그 외면에 우리같은 '일반 사람'들이 있다.  물론 이 책에서 말하는대로, '일반인'들을 제외하고 이들 중 어디까지가 진정한 사법 패밀리인가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건 사법 패밀리의 범위가 아니다. 문제는 이들 사법 패밀리가 만들어진 시스템, 작동하는 방식이다. 왜냐하면 이들 사법 패밀리는 일반 국민들과 유리되어, 그들만의 작동방식으로 작동하고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유리(遊離)는 완전한 유리가 아니다. 왜냐하면 일반 사람들 중의 상당수는 삶의 어느 순간에서 이들 사법 패밀리들을 만나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로 다른 언어로 말하고 사고하는 이들 사법 패밀리와 일반인들 사이에는 오해와 불신만이 가득차 있다. 특히 일반인들의 사법부에 대한 불신은 심각하다. 책에 나온 통계를 빌리자면, 사법 서비스에 만족하는 국민이 전체의 약 34%밖에 되지 않는다(2003년 1000명 조사). 바로 이것이 이 책이 쓰여진 이유다. 일반인들은 왜 사법부에 만족하지 못하는가, 그것은 사법부의 구조 안에 어떤 문제가 있기 때문은 아닐까. 그렇다면 그 문제는 무엇일까.

이 책에서 그런 사법부를 해부하기 위해 사용한 방법은 질적인 연구방법론이다. 즉, 판사에서부터 말단직원에 이르기까지 사법부의 구성원들은 물론이고, 위에 얘기한 기자나 경찰, 마담뚜, 그리고 여러 사법에 대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일반인들에 이르기까지 총 23명의 사람들을 심층 인터뷰해서 이 사법부라는 시스템, 그리고 이 시스템의 작동 방식을 해부하고자 하였다. 책에서도 언급하고 있지만, 사실 질적인 연구방법은 위험이 따른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위험은 '과연 이들이 전체를 대표한다고 볼 수 있는가'라는 물음이다. 즉 이들만 그런 것 아닌가, 혹은 이들이 일부 과장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질문말이다. 저자도 이를 우려해서인지 시작부분에 연구방법과 과정에 대해 길게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래서 처음에는 약간 우려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이 연구에 어느정도 믿음이 갔다. 무엇보다도 각 구술자들의 이야기가 서로가 서로를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런 거다. 우리가 '사과'가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사과의 겉을 살피는 것이 양적인 연구방법이라면, 질적인 연구방법은 그 사과를 바늘로 찔러 그 안의 과육을 아주 살짝이나마 맛보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이 책에서는 그러한 바늘이 여러개 꽂혀 바늘과 바늘의 끝이 맞닿아 있는 느낌이랄까. 질적인 연구방법에서는 상당히 어려운 일이지만, 이 책은 사법 시스템이라는 구조와 작동 방식을 어느 정도 해체하여 드러내보이기에 근접했다는 느낌을 준다. 물론 이에는 구술자들의 성실하고도 현장감 넘치는 구술과 저자의 그 구술들을 다시 해체하여 쉬운 언어로 엮어내는 글솜씨가 큰 몫을 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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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마지막 장의 제목은 '나가는 글: 억지로 찾아본 희망'이다. '억지로 찾아본'이라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나 역시도, 책을 읽으면서 과연 이 구조에, 이 작동방식에 희망은 있을까..이런 생각이 들었다. 책에서 말하는 사법 패밀리 구조의 가장 큰 문제점은 '패밀리 내에서의 그리고 외부와의 의사소통의 부재'와 '원만함이라는 이데올로기가 불러오는 구조의 폐해(이른바 '좋은 게 좋은 거지 뭐')'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여기에는 판검사를 증원하고, 변호사의 숫자를 늘리고, 로스쿨 제도를 통한 선발방법의 변화나 법조일원화 같은 현실적인 방법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저자가 말하는 최종의 해결책은 다름아닌 '시민만이 희망이다'. 즉 일반인들의 인식과 사법을 대하는 방법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책에서 말하는대로 사법부 불신을 낳게 한 데에는 사법부만의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다. 일반인들에게도 책임이 없다고 말하기 어렵다. 일례로 판사 출신 변호사나 브로커가 돈만 밝힌다고 욕하면서도 그들에게 돈을 가져다 주는 것은 판사 출신 변호사(전관 변호사)가 판사와 더 잘 통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진 '일반인'들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말하는 것은 그러한 방어적이고 소극적인 의미에서의 시민 의식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그보다 더 훨씬 적극적인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찾는 행위 모두를 포괄한다.

우선 시민들 입장에서는 판검사들도 자신과 똑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공부 잘한 사람들이라고 무조건 한 수 접고 들어가는 습관도 바꾸어야 합니다. 그 장벽이 마치 없는 것처럼 생각하고 용기를 내 판검사들에게 말을 걸어야 합니다. 일단 용감하게 "판사님, 저하고 얘기 좀 하시죠?" "검사님, 제 얘기도 좀 들어주시죠"라고 말을 붙이면 의외로 판검사들이 귀를 기울이는 모습을 발견할 겁니다. 그렇게 했더니 판검사들이 자꾸 말을 끊고 무시한다고요? 그럴 때는 편지를 쓰십시오. (p.322)

물론 이는 쉬운 일이 아니다. 솔직히 나도 책을 덮고 나서 위와 같은 '억지로 찾아본 희망'같은 이야기보다는 '어떤 일이 생겼을 때 사법 패밀리에 전화 한 통 걸어 부탁할 수 있는 인맥이 있는 사람이 우리나라 국민 중 14.2%'라는 책 속 통계를 떠올리며, 나는 그 14.2%에 들어가나..대학 때 동기들이나 선후배들 중에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판사나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들을 인맥이라고 봐야하나..그래도 뭔 일 생기면 그 사람들에게 전화라도 해봐야 되겠지...그러고보면 나는 나쁘지 않은 편인가..등등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책에서 말하는 대로 사실 그 14.2%라고 해봐야 기껏해야 립서비스나 받는 수준이니 아무 것도 아닐는지도 모른다. 문제는 구조고, 그 구조의 작동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그래서 한편으로 책 속 표현대로, 선배들이 돈을 건네고, 청탁전화를 하고, 술을 마시자고 했을 때 거절하고, 사법 패밀리가 되기를 거부하는 '또라이' 법관들이 보고 싶다. 그리고 그런 '또라이'들에게 바보같은 질문도 하고, 중언부언 자신의 이야기도 하고, 때로는 편지도 쓰고 전화도 하는 당찬 일반인들도 보고 싶다. 물론 (그럴 일이 없으면야 더 좋겠지만) 나도 포함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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