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볼루셔너리 로드>, 샘 멘데스

Ending Credit | 2009.03.03 17:57 | Posted by 맥거핀.





꽤나 오래전 얘기다. 대학 2학년 때의 어느 술자리. 갑자기 한 친구가 내게 말했다. 너는 말이야. 어딘가모르게 부자연스러워. 매사 연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다고 할까. <레볼루셔너리 로드>에서 프랭크(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그러는 것처럼, 정곡을 찔린 사람은 화를 내기 마련이다. 나는 아마도, 네가 나에 대해서 뭘 안다고 그래, 너나 잘 하시지 같은 뻔한 대사를 내뱉었던 것 같다. 20살의 인간들이란, 돌려서 말하는 법을 잘 모른다. 더구나 술에 취한 상태였으니, 그저 내뱉고 지르고 만다. 그리고 그 날의 술자리는 어그러졌고, 나와 그 친구의 관계는 그날 이후로 조금 서먹해졌다.

그리고 나는 조금 놀랐다. 그 친구가 그렇게 말했다는 것에 대해서. 글쎄, 내가 놀란 부분은 무엇이었을까. 그 친구가 나의 진심을 몰라줬기 때문에? 그 친구가 나를 오해했기 때문에? 그런 것 보다도, 나의 놀라움은 이것에 가까웠던 것 같다. 내 연기가 그렇게나 어설프다니. 그다지 친하지 않았던 저 친구도 이 연기의 어설픔을 알아차렸을 정도였으니, 가까운 데 있는 사람들은 어땠을까.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랬었던 것 같다. 나는 누구와도 불편한 관계로 지내고 싶지 않았고, 좋은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고 싶었으나 그 방법을 잘 몰랐다. 단지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아는 좋은 사람들의 행동을 모방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위에서도 말했지만, 20살의 인간이다. 실체가 없는 모방은 한계가 있고, 그 모방마저도 어설픈 모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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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이 꽤나 오래전 일이 생각난 것은 전적으로 이 영화 때문이다. <레볼루셔너리 로드>. 처음부터 나는 프랭크와 에이프릴(케이트 윈슬렛), 이 두 사람이 뭔가 '연극적인 연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두 남녀가 차를 옆에 두고 다투는 장면에서도 합(合)이 딱딱 맞는다고나 할까. 그 적절한 대사들과 과장된 손동작과 고함들. 그리고 이 연극적인 연기는 그 이후에도 계속 반복된다. 그러나 이 연기들은 그들에게서만 보이는 것은 아니다. 프랭크와 에이프릴 부부의 옆집 부부 혹은, 이들에게 집을 소개한 여자도 이 예의 연극적인 연기를 선보인다. 이들의 말투나 행동은 어딘지모르게 부자연스럽다. 이 미묘한 부자연스러움은 무슨 이유때문인가[각주:1].

이의 해답은 곧 밝혀진다. 이들이 사는 세상은 하나의 매트릭스(Matrix)였던 것. 에이프릴이 이 '레볼루셔너리 로드'가 하나의 매트릭스임을 쓰레기를 버리러 나와 갑자기 깨달았을 때, 이들의 부자연스러움은 설명이 된다. 즉 이들의 부자연스러움은 정교하지 않은 소스코드였던 것. 혹은 언캐니 밸리(uncanny valley)와 같은 것[각주:2]. 물론 나는 에이프릴이 진짜 매트릭스를 발견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그녀가 이 세계를 매트릭스와 비슷한 어떤 것, 즉 실체가 없고, 가짜만 존재하는 세계, 위선과 위악과 공(空)만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깨달았다는 것이다[각주:3]. 그리고 에이프릴은 이 매트릭스에서 탈출하고자 한다.

그러나 에이프릴의 말에 진정으로 동의하는 사람은 없다. 일견 에이프릴의 말에 동의하는 것처럼 보였던 프랭크도 이미 매트릭스에 길들여져 있는 것. 프랭크가 이것이 매트릭스임을 몰랐던 것 같지는 않다. 가벼운 마음에 장난처럼 내뱉었던 기획안이 사장에게 엄청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기이한 세계. 그것을 가까이에서 보고도 이것이 매트릭스임을 깨닫지 못한다는 것은 이상하다. 단지 그는 그 매트릭스를 선택한 것 뿐이었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네오와 무리들을 배신한 남자가 스미스 요원을 만나 스테이크를 먹으면서 내뱉는 대사처럼. "나는 이게 가짜임을 잘 알고 있지. 그러나 맛있단 말이야. 너무나도." 에이프릴을 유일하게 이해하는 사람은 집을 소개한 여자가 데려온 '미친 남자' 뿐이다. 어찌보면 역설적이지만, 어찌보면 당연하지 않은가. 예를 들어 내가 거리로 나가 '이 세상은 매트릭스, 가짜로 만들어진 세계'라고 주위 사람들에게 말한다면 어떨까. 대부분은 피할 것이고, 친절한 몇몇은 경찰서로 전화를 걸어줄 것이다. "여기 미친 사람 있어요!"

그래서 이 마지막은 숨이 막히게 한다. 에이프릴의 이 선택이. 매트릭스에 길들여지지 못한 그녀의 선택이[각주:4]. 그러나 이 선택만 있었을까. 매트릭스를 사는 우리들에게는 죽거나, 미치거나, 길들여지거나의 답지만 있는 것일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예를 들어 보청기를 끄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듣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만 적당히 골라서 보고 듣는 것. 물론 나이가 들고 보청기를 낀 연후에만 가능한 것이겠지만.

그전까지는? 그저 계속 어설픈 연기를 선보이는 것 밖에. 완벽한 연기보다는 어설픈 연기가 낫다고 생각하면서. 물론 완벽한 연기를 할 능력도 안되지만.


p.s.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케이트 윈슬렛의 두 번째 만남. 이 둘이 처음에는 잘 안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니 이 둘은 세트로 있는 것이 나아 보인다. 디카프리오의 불안한 에너지를 잡아주는 케이트 윈슬렛의 묵직한 덩치. 뭐 아무튼 이제는 소설 <레볼루셔너리 로드>를 읽어야 할 때.


- 2009년 3월, 씨너스 센트럴






  1. 그러고보면 이 영화의 배우들은 고난도의 연기를 선보이고 있었다. 자연스러우면서도 미묘한 부자연스러움을 보여주는 것. [본문으로]
  2. "나는 로봇이 점점 사람이 가까워질수록 친밀도가 증가하다가 어떤 계곡에 도달하는 것을 관찰했다. 나는 이런 관계를 '섬뜩함의 계곡'이라 부른다." 계곡의 발견자는 일본의 로봇공학자 마사히로 모리(政弘森). 처음에는 로봇의 인간유사성(human likeness)이 친밀도를 증가시킨다. 하지만 어느 정도를 넘어서면 그것이 외려 혐오감을 준다. 그러다가 인간과 거의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똑같아지면, 친밀도가 회복되어 정상에 도달한다. - 진중권, <진중권의 Imagine>에서 [본문으로]
  3. 아마도 그녀는 이를 깨닫는 감각이 다른 이들보다 조금 더 발달했을 것이다. 그러고보면 극 중에서 연극배우로 나오는 그녀의 연기가 형편 없음이 이해가 된다. 부조리극이나 일부의 실험극을 논외로 하고 본다면 모든 연극에서 최고의 연기는 만들어진 어떤 것이 아니라, 관객에게 그것이 '실제 감정과 거의 같은 것'이라고 믿게끔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는 자꾸만 이것이 하나의 연극임을, 이것이 거짓 세계임을 깨닫고 있는 것. 본인이 이를 거짓 세계라고 생각하는데, 소위 말하는 '진실된 연기'가 나올 턱이 없지 않는가. [본문으로]
  4. 이 선택은 아래의 질문에 조그만 암시를 준다. 프랭크와 에이프릴에게는 두 명의 자녀가 있음에도, 그들은 왜 거의 나오지 않은 것일까?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