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원래 눈물이 없었다

The Book | 2014.12.02 19:00 | Posted by 맥거핀.

112263.1
카테고리 소설 > 영미소설
지은이 스티븐 킹 (황금가지, 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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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소설의 프롤로그는 인상적이다. 그것은 "나는 원래 눈물이 없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여, "그 뒤로 이어진 모든 일들이, 끔찍했던 그 모든 일들이 그 눈물에서 시작됐으니 말이다."로 끝난다. 일단 이 프롤로그는 예고편의 기능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다. 무릇 모든 예고편의 목적이란, 본편을 보게 만드는 것. 우리는 그 눈물이 없는 인간이, 눈물로 시작하여 보게 되는 끔찍했던 모든 일들이 무엇인지, 꽤나 궁금해지게 된다. 그리고 동시에 이 프롤로그는 한 일화를 통해 주인공이 어떤 인간인지 독자에게 각인시킨다. 부모님 장례 때도 울지 않은 고등학교에서 성인 영어반을 가르치는 교사 제이크 에핑. 그가 어느날 수강생들에게 낸 작문 리포트 주제는 '내 인생이 바뀐 날'이었다. 어쩌면 아마도 그런 주제는 내는 사람에게도, 그리고 쓰는 사람에게도 그렇게 좋은 주제는 아닐지도 모른다. 인생이 동전처럼 뒤집히려는 기로에 서 있을 때, 인간이 아무리 어떤 애를 써도, 지금이 그런 순간이라고 알 수 있을까. 그것을 돌아보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누구는 임신한 십 대 조카를 거두어 먹인 이모 이야기를 썼고, 또 누구는 용기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몸소 보여주었던 전우에 얽힌 감동적인 이야기를 썼다. 그리고 그 중의 한 리포트는 그런 리포트를 읽는 일이 가슴뭉클한 일이기는 하지만, 끔찍하고 사람 진을 빼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이 제이크 에핑을 울게 만들고 글 위로 눈물이 떨어지지 않도록 눈가를 훔쳐가며 한 군데도 수정하는 일이 없이 결국 A+를 주게 만들었다. 그 리포트는 그가 '정규 교육이 가능한 정신지체인'보다 손톱만큼 낫다고 생각했던, 아이들에게 두꺼비 해리라고 불리는, 그러면서도 아이들을 혼내는 일 한 번 없는 고등학교 수위 해리 더닝이 쓴 것이었다. 그 리포트는 이렇게 시작했다. "어떤 날이 아니라 어떤 밤이었다. 내 인생이 바뀐 것은 아버지가 우리 어머니와 두 형제를 주기고 나를 심하게 다치게 만든 밤이었다. 여동생도 심하게 다쳐서 혼수상태가 됐다. 여동생은 깨어나지 못하고 3년 만에 주겄다. 이름은 엘렌이었고, 내가 정말로 사랑했는데. 꼿을 따서 꼿병에 담는 걸 좋아하는 아이였는데." 

스티븐 킹의 소설 <11/22/63> 얘기다.

2. 
그러니까 이 소설은 인생이 뒤집히려는 기로에 서 있는 사람의 이야기이고, 동시에 이미 뒤집힌 사람의 기록 - 다시 말해서 해리 더닝의 기록과 같은 의미를 담은, 제이크 에핑의 기록("그 뒤로 이어진 모든 일들이...")이기도 하며, 또 한편으로는 착한 사람이 옳다고 믿는 일을 하기 위해 분투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상당수의 독자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이런 이야기에 약하다. 착한 사람이 옳은 일을 하기 위해 분투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그 분투가 어떤 결과를 가져온 후에 뒤늦게 그 일들을 돌아보는 것 말이다. 그것은 적어도 형식적인 면에서는 몇 가지 장치를 가능하게 해준다. 즉 이는 모든 일들이 지나간 후의 기록이므로, 각각의 작은 사건에서 주인공의 후일의 감정을 붙이는 것이 가능하며, 그것은 동시에 어떤 복선으로서의 기능을 한다. 그리고 물론 그런 복선들은 읽는 이의 감정을 증폭시키기도 하면서 동시에 어떻게든 책을 끝까지 읽게 만드는 데에 효과적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스티븐 킹은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음을 알려주면서도 이야기를 조금씩 지연시켜 독자의 궁금증을 끌어낼 줄 안다(크리스토퍼 놀란의 <인터스텔라>에서 이와 비슷한 것을 느꼈다. 적절한 지연말이다. 물론 이야기로 지연하는 것과 숏으로 지연하는 것은 다르지만). 그리고 그것은 전반적으로 이야기를 지배할 줄 아는 작가만이 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때로 어떤 작가들은 자신의 이야기에 휘둘리기도 하지만, 스티븐 킹은 자신의 이야기들이 위치해야 할 곳을 알고 있다.

물론 이것은 어떤 기법적인 측면에서 그렇다는 것이고, 보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결국 독자를 해리 더닝의 리포트를 읽는 제이크 에핑의 자리에 가져다 놓기 때문이다. 해리 더닝의 인생이 바뀐 날을 읽는 제이크 에핑, 그리고 제이크 에핑의 인생이 바뀐 날(로부터 시작된 이야기)을 읽는 우리들. 당신은 눈물이 많은 편인가, 아니면 눈물이 없는 편인가. 아니, 그것은 별로 상관이 없다. 아무튼 이 이야기는 부모님 장례 때도 울지 않은 사람도 눈물을 흘리게 만든 일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당신은 부모님 장례 때는 울었겠지.

3.
많이 알려졌듯이, 그리고 제목이 말해주듯이 이 이야기는 존 F. 케네디를 살리기 위해, 다시 과거로 돌아가는 이야기이다. 그것의 성공 여부를 밝히는 것은 이 리뷰의 몫이 아니고, 다만 내가 흥미롭게 보았던 것은 스티븐 킹이 보는 미국의 1950년대 말에서 1960년대 초까지의 모습이다. 당시는 전후의 혼란에서 벗어나 번영이 시작되는 시기였고, 지금보다 모든 것이 덜 발달된 시기였을지 몰라도, 한편으로는 더 풍요로운 시기였다. 그것은 예를 들어 주인공이 처음 1950년대로 건너와 마시는 루트비어 맥주와도 같은 것이다. 즉 그의 표현을 빌자면, "이 50년 전 세상은 내 예상을 훌쩍 뛰어넘을 만큼 냄새가 지독했지만, 맛은 훨씬 더 훌륭했다.(p.63)" 사람들은 순박했고, 지금처럼 계산적이거나, 이기적이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스티븐 킹이 그 시기를 찬양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무엇인가 무서운 것이 그 시기에는 도사리고 있었다. 예를 들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인종차별. 퍼거슨 시의 사건에서 보듯 인종 문제는 여전히 미국 사회의 뇌관이기는 하지만, 당시에는 차별이 뉴스거리도 안되는 그야말로 당연시되는 시기였고, 그것은 작가가 소설에 묘사한 실개울 위에 가로로 걸쳐진 널빤지, 즉 '흑인용 화장실'과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작가는 잊지 않고 경고를 한다. "만약 당신이 내 글을 읽고 1958년이 마냥 평화로운 세상인 듯한 느낌을 받았다면 그 비탈길을 기억해 주기 바란다. 덩굴 옻나무가 즐비했던 그 길을. 그리고 실개울 위에 얹혀 있던 널빤지도.(p.415)"

그러니까 그것은 한편으로 작가가 소설에 건 한 가지의 장치, '과거는 고집이 세다'와 같은 것이다. 즉 이는 과거가 바뀌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말도 되지만, 동시에 과거에서 미래로의 흐름은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의미도 될 것이다. 느리고 때로는 돌아가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시간은 조심스럽게 과거에서 미래로 나아가며, 우리를 조금씩 앞으로 밀어낸다. 그것은 한편으로 그가 만들어낸 다른 장치, '과거는 화음을 만들어 낸다'와도 통한다. 과거와 현재 혹은 미래는 시간 속에서 화음을 만들어낸다. 소설에서의 맥락은 약간 다르지만, 그것은 어떤 비유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그것은 때로 과거의 어떤 일은 현재에서 반복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완전한 반복이라기 보다는 화음에 가깝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동일한 것이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무엇인가가 살짝 바뀌어 반복된다는 것. 즉 과거라는 음악은 이미 연주되었고, 우리가 (그 음악을 조금이라도 바꾸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은  그 연주를 완전히 지워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어울리는 적절한 화음을 넣는 것 뿐이라는 점이다. 이 소설의 마지막에 이루어지는 춤처럼 말이다.
 
4.
이 소설은 크게 두 가지의 축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하나는 과거로 돌아가 존 F. 케네디를 살리기 위해 제이크 에핑이 벌이는 일들이며, 다른 하나는 그가 돌아가 만나게 되는 해리 더닝을 비롯한 주위 사람들과의 이야기이다. 그것은 물론 독자가 너무 큰 이야기나, 혹은 반대로 너무 작은 이야기만 읽다가 흥미를 잃지 않게 하려는 작가의 장치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다른 당연한 진리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것은 우리 모두는 각자의 작은 사건들 속에서 살아가기도 하지만, 동시에 시대의 큰 사건들을 같이 겪고 있기도 하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예를 들어 존 F. 케네디의 동생이자 민주당의 유력한 대통령 후보이기도 했던 로버트 F. 케네디의 암살을 다룬 영화 <바비> 같은 것을 연상시키는데, 이 영화가 흥미로운 것은 이 영화는 로버트 F. 케네디, 즉 '바비'의 죽음이 있었던 하루를 다루기는 하지만, 그의 죽음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그와 언뜻 연관이 없어 보이는 여러 사람들의 그 하루를 모자이크 식으로 엮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이 영화가 잡아내고자 하는 것은 그의 죽음이 끼친 직접적인 영향이 아니라, 그가 상징하는 시대성이며, 어떤 시간의 공기이다. 즉 이들 각자의 삶은 개별의 삶으로 분리된 것이기는 하지만, 완전히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그것을 묶는 하나의 상징적인 사건으로 보여준다.

다시 소설로 돌아온다면, 결국 스티븐 킹이 말하고자 하는 것도 비슷한 것이다. 하나의 삶은 과거의 어떤 것을 바꾼다 할지라도 완전히 바뀌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의 삶은 분리된 하나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으로 과거의 어떤 큰 사건(예를 들어 존 F. 케네디의 죽음)을 바꾼다 할지라도 개개인의 삶은 또 그렇게 쉽게 바뀌지는 않는다. 우리는 아무리 발버둥친다 해도 그렇게 서로 연결되어 있으면서, 동시에 완전히 연결되어 있지 않다. 그 당연한 진리를, 그러나 우리 종종 잊고마는 사실을 좋은 소설은 다시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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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papierlune.tistory.com BlogIcon papierlune 2014.12.06 17: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실은 저 이 글을 알라딘 북플을 통해 어제 처음 읽었답니다. 솔직히 스티븐 킹의 소설제목이 딱 뜨는데 깜짝 놀랐어요! 언젠가 맥거핀님 블로그에서 스티븐 킹 소설 리뷰를 읽을 수 있을까? 그런날이 올까? 그런 생각을 한두번쯤 했었거든요.
    근데 (기다린 보람이있어) 마침내 읽게되었으니 말입니다.
    좋아하는 작가의 소설 리뷰라서 조금 들떠있기도했고 그랬습니다 ^^;
    저도 얼마전 이 소설을 구입했거든요. 지금은 다른책 읽는라 아직은..

    "어떤 시간의 공기" 라는 말! 이 특히 다가오네요. 개인이 살아가는 일상의 작은 시간들과 그것을 둘러싸고있는 특정시대의 시간. 그 시간의 공기 말이죠.
    리뷰를 읽다보니 <바비>라는 영화도 보고싶어졌어요.
    언뜻 연관성 없어보이는 사건들이 배경처럼 깔려있고 그런 시공간에서 역사적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이 원인과 결과가 뚜렸한 사건보다 더 흥미로운것 같아요. 실제로 그런 일들이 더 많을것 같기도하구요.

    *다음번에도 혹시 스티븐 킹 소설 읽으면 리뷰 올려주세요 : )

    • Favicon of https://noracism.tistory.com BlogIcon 맥거핀. 2014.12.08 11: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기다리셨던 글이라니까 기분이 좋네요.^^ 스티븐 킹 소설 좋아하시나 봐요. 그런 의미에서 스티븐 킹 소설 중에 좋았던 거 추천 좀 해주세요. 그나저나 북플을 쓰시는 모양이군요. 저는 한 번 깔았다가 너무 어지러워서 지웠어요.

      저는 스티븐 킹 소설 오래전에 한 두어 권 읽은 거 빼고, 정말 오랜만에 읽었거든요. 그런데 오래만에 읽어서 그런가 너무 재미있더라구요. 확실히 스티븐 킹이 이야기를 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을 손에서 놓고 싶지 않게 하는 마력이랄까..그런 걸 지닌 사람이란 것 같아요.

      사실 그렇잖아요. 우리는 같은 시대에 같은 사건을 겪고 있고, 알게모르게 서로 영향을 주고 받죠. 예를 들어 만약 이번에 박근혜 정부가 아니라 다른 정부가 들어섰다면 조금이라도 제 삶의 어떤 부분이 달라졌을 수 있겠죠. 그렇다면 선거에서 박근혜를 선택한 다른 사람이 제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고 거칠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구요. 소설에서 주인공이 케네디를 살리려고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일테죠. 물론 역사는 가정할 수 없는 것이어서, 케네디가 만약 살아났다면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 단정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만..

  2. Favicon of https://papierlune.tistory.com BlogIcon papierlune 2014.12.14 18: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 많이 읽지도 않았는데 추천이라기보다는..
    12월이고 조만간 크리스마스도 다가오니 생각나는 소설이 있네요.
    스티븐 킹의 <사계> 에 실린 봄.여름.가을.겨울편이 다 좋았지만 전 겨울편에 수록된
    <호흡법>이라는 단편 소설을 이야기하고싶어요. 이 소설은 사실 크리스마스 이브가 시작되기 전에 읽으면 더 어울리는데 그 이유는 읽어보시면 알게되요 ^^;
    전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클럽의 분위기며 소설속의 또 하나의 이야기가 액자처럼
    펼쳐지는 구성도 맘에 들었어요. 스티븐 킹을 공포소설이 제왕이라고 하지만 그 안에 녹아있는 따스함과 품위를 잊지 못할것 같아요.
    어쩌면 맥거핀님은 <톰고든을 사랑한 소녀>도 좋아하실지 모르겠어요.

    * 북플은 지난달에 충동적으로 깔았는데 그냥 몇몇 친구들 새글 읽는 정도로만 사용중이랍니다. 좀 정신없긴 하더라구요.

    • Favicon of https://noracism.tistory.com BlogIcon 맥거핀. 2014.12.17 18: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그러고보니까 <톰 고든을 사랑한 소녀>는 읽었었어요! 예전에 저도 야구 좋아해서 일부러 찾아서 읽었었습니다. 소녀가 미지의 존재에 위협을 받던가..뭐 그런 이야기였죠.

      <사계>는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되도록 크리스마스 전에 읽어야하는데, 요새 쌓아놓은 책들이 많아서 그리 빨리 읽지는 못하겠군요. 도서정가제 대비한다고 산 책들이 여전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대비를 했으면 읽어야 할텐데, 읽지를 않으니...이거 참 왜 대비를 하는지 미스테리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