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의 일상화가 아닌 일상의 축제화

The Book | 2013. 12. 17. 17:09 | Posted by 맥거핀.
일베의사상새로운젊은우파의탄생
카테고리 정치/사회 > 사회학
지은이 박가분 (오월의봄, 20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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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박가분의 책 <일베의 사상>은 일베, 혹은 일베라는 어떤 현상에 대해 다루고 있다. 따라서 이 책에 대한 리뷰를 쓰기가 조금은 조심스러운 면이 있는데, 개인적으로 '일간베스트저장소(이하 일베)'라는 사이트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서 '모른다'라고 하는 것은 '그것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다'는 의미와는 조금 다른 것으로 굳이 따지자면 '하지 않는다'와 비슷한 의미가 될 것인데, 과연 어느정도까지를 '안다'라는 것으로 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제쳐 두고라도, 아무래도 들어가서 글 몇 개 본 정도로 일베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란 곤란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아무튼 그래서 비유를 하자면 지금 상황은 영화를 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어떤 영화를 본 평론에 대해 어쩔 수 없이 댓글을 남겨야 하는 상황인데, 아무래도 이런 댓글은 무엇인가 방어적이 될 수 밖에 없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적대적 호수성의 희생양이 되지 않으려면 말이다.

이 책은 '일베의 사상'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다. 아마 상당수의 사람들은 이 제목만으로도 무엇인가 의아할 것 같은데, 도대체 일베에 '사상'이라고 불릴만한 것이 있는가, 혹은 그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는가,라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저자는 이 책의 제목을 마루야마 마사오의 <일본의 사상>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것임을 밝히고 있다). 왜냐하면 적어도 내가 아는 상당수의 인터넷 커뮤니티, 혹은 현실의 집단에서는 일베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거의 금기시되는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물론 여기서의 금기란 그것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에 대해 조롱하거나 비난을 퍼붓는 것은 거의 일상화된 수준에 가깝다). 예를 들어 방송에서 (실수이든 다른 무엇이든) 일베의 용어를 쓴 아이돌 가수가 사과문을 올리고, '일밍아웃' 같은 용어가 있는 것은 그런 풍경을 어느정도 보여준다고 보아야 할 것인데, 그것의 이면에는 일베를 어떤 '쓰레기'와 비슷하게 생각하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 그러니까 그런 입장에서라면 일베는 매우 더러운 무엇인가가 모여 있는 어떤 곳이며, 굳이 들출 필요가 없으며, 곧 폐쇄시키는 것이 마땅한 무엇인가이다. 예를 들어 저자도 이 책에서 조지 레이코프의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를 이야기하며, 코끼리, 그러니까 보수주의의 프레임과 마찬가지로 일베도 생각할 필요가 없는, 혹은 생각해서는 안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런 관점에서라면 문제는 보다 간단할 수 있다. 쓰레기는 버리거나, 어딘가에 묻어두면 된다. 예를 들어 인터넷 사이트라면 그 사이트를 폐쇄하거나, 법적인 제재를 가하거나, 접속을 차단하거나 하는 등의 방안을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는 것이, 이것이 쓰레기라고 했을 때, 그것은 썩지 않는 쓰레기라는 점이다. 즉 썩는 쓰레기라면 그것을 어딘가에 버리면 언젠가는 한낱 유기물로 돌아가겠지만, 이 괴이한 쓰레기는 썩지 않고 계속 엄청난 악취를 풍기는 데다가, 때로는 사람에게 달려들기도 한다. 다시 인터넷의 문제로 돌아가자면 아마도 이 일베를 없애거나, 제재를 가하거나 한다면 분명히 비슷한 다른 무엇인가의 형태로 분명히 나타날 것이라는 이야기이다(오백원 건다). 그러니 적어도 이것이 현재 사회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고, 궁극적으로 사라져야 할 것이라는 점에 동의한다면, 그것을 없앨 수 있는 다른 방안을 생각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의 시작 방법 중에 한 가지는 이 책처럼 그것에 내재되어 있는 무엇인가를 살펴보는 것이 될 것이다. 즉 이것이 무엇으로 만들어져 있길래 안 썩지,하고 보는 것이다. 혹은 조지 레이코프처럼 굳이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는 책을 쓰는 것이다(물론 '코끼리'를 정말로 쳐다보기도 싫다면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고 굳이 말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박가분은 인터넷 논객답게 마지막에 자신의 이야기를 '세줄 요약'의 형태로 제시한다. 그것은 첫째, 일베는 2002년부터 시작된 촛불의 사상을 계승하며(이 말이 정 불편하다면 일종의 거울상이라고 할 수도 있다), 둘째, 일베는 현실의 국가, 현실의 요구를 단념하고 인터넷에서의 인정투쟁 방식을 현실로 '끌고 오는(이 말이 특히 중요하다)' 새로운 유형의 젊은 우파이며, 셋째, 이러한 일베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광장, 즉 인터넷에 모인 사람들이 각자의 일상적인 공간에서 자신의 이상을 작게나마 실현할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은 저자의 일종의 제언이기 때문에 제쳐두고라도 첫째와 둘째, 특히 첫째에서 고개를 갸웃거릴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일베가 이 촛불을 든 내 손에서 시작되었다고, 나한테서? (물론 모든 쓰레기는 쓰레기가 아닌 것에서 시작된다. 처음부터 쓰레기였던 것은 없다. 쓰레기는 결국 버리는 자, 그 자신이 애초에 만들어낸 것이다.)

직관적으로 보이듯이, 이 첫째와 둘째, 셋째는 각각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이야기한다. 이 미래, 즉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는 공간을 만들어내기 위해 인터넷의 인정투쟁을 현실로 끌고들어오는 현재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며, 이 현재는 과거, 그러니까 2002년부터 시작된 촛불에 의해서 배태되었다. 즉 박가분의 방식은 일종의 거슬러오르는 방식이다.  마루야마 마사오가 일본의 사상을 살펴보기 위해 그 기원을 거슬러 올랐던 것처럼, 아니 썩지 않는 쓰레기가 왜 썩지 않는지 보기 위해서는 그것이 만들어진 공장을 살펴봐야 하는 것처럼, 박가분은 그 기원을 거슬러오르는 작업을 시작한다. 물론 가장 가까이에, 즉 시작지점에 있는 것은 디시인사이드의 인기자료를 저장해 놓는 데이터베이스에서 출발했던 일간베스트저장소, 그러니까 일베지만, 그 이전에는 디시, 혹은 디시와 비슷한 다른 인터넷 커뮤니티들이 공유했던 어떤 것들이 있고, 그것은 예를 들어 부정과 긍정의 양식이 공존했던 증여와 답례의 호수성(짤방이나 콘텐츠를 공유하는 것이 한 예이다), 인정투쟁과 계급투쟁, 혹은 정상국가에 대한 열망과 같은 것들이 그와 같은 것들이다.  

즉 저자의 분석에 따르면 일베의 어떤 행동양식은 하루아침에 나타난 것이 아니다. 자생적으로 자라난 수많은 인터넷 커뮤니티의 어떤 행동양식이나 공유하는 무의식이 일베의 행동양식의 초석이 되었고, 일베는 그것을 더 위악적으로 변형시켰을 뿐이다. 아니 어쩌면 변형이라기 보다는 집적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이 좋을지도 모르겠다. 일베라는 것은 집적된 데이터베이스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집적은 여기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촛불도 결국은 집적의 한 형태이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우파의 집적이 일베라는 것으로 나타났다면, 좌파의 집적은 촛불이라고 말할 수도 있는데, 2002년에 시작된 촛불은 현실의 정치인 노무현을 탄생시켰으나 노무현 정권은 궁극적으로 촛불의 의미를 담아내는 데 실패했다(극단적으로 말하자면 2002년의 반미정서는 이라크 파병으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실패한 무엇인가는 두 가지의 형태로 나타났다. 하나는 다시 한번 반복하는 것, 즉 2008년의 촛불이다. 그러나 이것마저 미완이었고, 이것은 곧 일종의 그 거울의 형태, 혹은 전향자를 만들었다. 그것이 곧 일베이다. 

물론 이것은 거친 도식화이고, 일베의 모든 것이 일종의 '전향'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며, 이는 촛불에 책임을 묻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전향의 형태가 그렇듯, 전향자와 전향하지 않은 자들은 공유하는 것이 있다. 예를 들어 일베가 감성적인 이상주의를 비웃으며 '몰이상의 이상'을 추구했다면, 촛불은 중심에 구속받지 않으며 즐기면서 외치고 싶은 것을 외친다는 '몰이상'을 공유했으며, 일베가 인터넷의 인정투쟁을 현실에 끌어왔다면, 촛불 역시 자신들의 목소리를 국가가 들어달라는 인정투쟁의 한 형태였다(물론 이 부분은 촛불의 형태를 어떻게 규정하는가에 따라서 논란의 여지가 많은 부분이라 생각한다). 또한 그 정상국가의 양태는 다를지언정 그들은 여전히 각자 다른 의미에서 정상국가가 도래하기를 꿈꿨다. 즉 그들은 어떤 의미에서 결국 국가를 넘어서지 못하고 국가의 언저리에 머물고 있었다. 그래서 일베는 이러한 것들, 즉 과거의 인터넷 무의식과 촛불에 대한 반동이 뒤죽박죽 얽혀 있다. 그들의 최종의 정언 명령, 즉 '인터넷의 방식으로 다같이 동물이 되자'는 것은 집밖으로 촛불을 들고나온 촛불집회에 대한 반동과 과거인터넷의 행동양식이 결합되어 있으며, 다른 일베의 행동양식들, 그러니까 팩트의 (나름의) 논리적 정합성을 찾는 행위(누군가의 글을 반박하기 위해 그의 과거 글을 논박의 재료로 삼는 태도와 같은 것이 일례이다. 이른바 '팩트'를 찾는 일베 유저의 태도는 일베충을 몰아내기 위해 그의 과거글을 찾는 다른 커뮤니티의 자세와 통하는 점이 있다), 혹은 타인혐오(와 자기혐오)에 깃들여 있는 것들도 이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즉 이는 무의식의 계승과 촛불(로 대변되는 무엇인가)에 대한 반동이 결합되어 있는 일종의 정념덩어리인 것이다.

물론 다시 강조하자면 결국 이 모든 것, 즉 과거로 거슬러오르는 것은 미래를 끌어내기 위해서 하는 몸부림이다. 그리고 그 미래란, 일베라는 것을 없애지는 못해도, 적어도 현재의 어떤 형태에서 바꾸기 위함이다. 다시 비유로 돌아가면 썩지 않는 쓰레기에서 썩는 쓰레기로 바꾸는 과정이다. 그리고 저자의 분석대로라면 그 기원에서 보게 되는 것은 쓰레기를 만들고 있는 나의 손, 촛불을 든 나의 손, 혹은 촛불의 대의에 일정부분 공감한 나의 모습이다. 이것은 위험한 끝맺음일까. 그렇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쓰레기를 버린 사람을 잡아 족치려고 애타게 찾아 헤맸지만, 그것이 결국 나라면, 문제는 더 간단할 수 있다. 내가 안버리면 되니까. 물론 저자가 제시한 해결책(위에 셋째)은 미완의 해결책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인정투쟁이 불필요한 공간, 최소한의 인정이 가능한 각자의 공간을 만들자는 것, 그것은 환멸을 견딜 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는 것이니까. 환멸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것을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과거의 촛불에서 참가자들은 축제가 지속되기를 바랬다. 환멸을 견뎌내야 하니까. 축제가 영원히 지속된다면 환멸을 잊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축제는 끝났고, 환멸을 견뎌내지 못하는 누군가는 일베라는 것을 만들었다. 그러니 필요한 것은 축제의 일상화가 아니라, 일상의 축제화다. 나의 일상이 작은 나만의 축제들로 이어진다면 외부의 축제는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것에는 '국가'가 하등 필요하지 않다. 저자가 인용한 조윤호의 글(나는 '국가'를 넘어서지 못한 '국민'이 촛불집회 실패의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조윤호 <개념찬 청춘>, 248p, 박가분 <일베의 사상> 257p에서 재인용)도 그것을 말해준다. 나의 축제에 국가가 초대받을 이유란 없다.


덧.
가연님도 지적하셨지만, 과연 이 책에 수많은 사상가들의 이름이 필요했나 하는 것은 의문이 든다. 이것은 그 옳고그름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문제다(물론 솔직히 말해서 지적할 능력이 안된다). 개인적으로는 닭을 잡는데 소잡는 칼을 쓰는 듯한 느낌이다. 예를 들어 한 영화에 대한 분석에서 약간 포커싱이 나간 장면을 두고, 이것은 우울하고 몽환적인 당대의 배경을 담아내며, 키예슬롭스키에서 소쿠로프로 이어지는 유미주의적 전통을 계승하려는 시도라고 말하는 격이다(그냥 손에서 나오는대로 쓴 문장이다). 사실은 단지 촬영감독이 어제 마신 술이 덜 깼거나, 카메라 포커싱을 맞추는 능력이 떨어져서 그런 것일수도 있다. 뭐 아무튼 그렇다고 해도 나름 재미있게 읽었다. 다시 영화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개인적으로 어떤 영화에 대한 글에 동의하기 위해서 는 일단 그 글이 무엇인가 생각해 볼 수 있는 지점이 있으면 되지 않을까라고 (나를 방어하는 차원에서) 생각한다. 그가 설혹 잘못된 인용이나, 얼토당토 않은 이론을 끌어온다고 해도, 일단 그 글의 구조, 혹은 분석이 나름 여러가지를 생각케 한다면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뭔가 들어맞는 듯 보이면서도 미심쩍게 만드는 이 수많은 사상가들의 인용목록이 다시 한 번 아쉽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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