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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스탠드, 김지운

Ending Credit | 2013. 3. 7. 17:26 | Posted by 맥거핀.




보안관이 할 일이라고는 길 잃은 고양이를 집에 데려다주는 것이 다인 국경 근처에 위치한 조용한 시골 마을 섬머튼. 그 곳으로 슈퍼카를 타고 국경을 넘어 탈주하려는 마약왕이 그의 군대를 이끌고 온다. 그러나 이 조용한 시골마을에 이들과 대적할 사람들이라곤, 은퇴한 후 조용한 시골마을이 좋아 일부러 이곳을 선택한 이제 다 늙어빠진 보안관과 총조차 제대로 못쏘는 것처럼 보이는 몇 안되는 그의 부하들과 각종 무기를 모으는 것이 취미이나 그 무기를 다룰 수나 있는지 의심스러워 보이는 우스꽝스러운 괴짜와 한때 촉망받았던 사람이었으나 이제는 사고를 치고 유치장에 들어가 있는 청년 뿐. 이들이 이에 맞서서 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이쯤되는 이야기라면 사실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이야기이다. 프레드 진네만의 <하이 눈>이나 하워드 혹스의 <리오 브라보>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많은 서부극, 혹은 현대의 변형된 서부극들에서 익숙한 구도이고, 익숙한 스토리이다. 그러므로 이 짧은 줄거리가 익숙한 사람들은 굳이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몇몇 숨겨진 사실들, 그러니까 예를 들어 사실은 이 늙어빠진 보안관이 사실은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 이 마약왕을 뒤쫓기 위해 애쓰는 FBI가 사실은 별로 이 영화에서 할 일은 없을 것이라는 점, 혹은 이 마약왕이 이 국경 근처의 조용한 시골마을에서 어떠한 운명을 맞게 된다는 것 쯤은 능히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여기에는 소위 B급 무비, 혹은 블랙스플로이테이션 무비 같은 것의 익숙한 클리셰들이 있다. 여기에는 먼저 실패한 자들, 루저들이 벌이는 축제라는 요소가 있다. 즉 예전의 전투에서 부하들을 잃고 낙향한 나이든 보안관과 어떻게든 이 시골마을을 벗어나려 애쓰는, 그러나 그 능력으로 봐서는 이곳을 절대 벗어날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신참과 좋은 재주를 가졌으나 술과 범죄에 빠져 사랑하는 여자마저 잃어버린 남자와 사회부적응자 밀덕 같은 시골마을의 패잔병들이 모여 도저히 이길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거대한 적을 상대하여 승리를 쟁취한다. 동시에 그것들은 감각적이고 말초적이다. 즉 근육이 터질듯한 남성들과 매력적인 여성들, 혹은 강인한 여전사 등을 보여줌과 동시에 기꺼이 그 매혹적인 육체들을 파괴시킴으로써 이같은 목적을 수행한다.


그러므로 이런 영화에서 사실 개연성을 따지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예를 들어 이 영화 <라스트 스탠드>에서 나이든 보안관은 그렇다 치고, 변변한 경험이 없어 보이는, 시작부에 제대로 대응을 못하고 허둥대던 보안관의 부하들이 갑자기 왜 총격전은 그렇게 잘 할 수 있는지, 혹은 그 빗발치는 총알들이 왜 그 보안관과 그의 부하들을 그렇게 잘 비껴나가는지, 왜 뜬금없이 시골마을에 그렇게 또다른 슈퍼카가 떡하니 등장하는지 등등의 질문을 캐묻는 것은 그렇게 현명한 질문이 못된다. 그것은 일종의 장르적 전통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그것은 뱀파이어 무비에서 뱀파이어가 박쥐로 변할 때 아유,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박쥐로 변해요,라고 묻는 것과 비슷하다.) 도리어 중요한 문제는 다른 것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이 영화에서라면 더 중요한 것은 그 총기에 장탄이 몇 발이 되는지, 실제 그 슈퍼카가 그런 방식의 이동액션이 가능한지가 더 중요한 문제이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동시에 카덕과 밀덕의 영화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 영화를 보고 가장 즐거워할 부류 중의 하나를 꼽는다면 그런 카덕과 밀덕들이 아닐까 싶은데,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이야기의 실제성이 아니라, 무기 혹은 슈퍼카의 실제성이다. 개인적으로도 얼마전 개봉한 영화 <베를린>에 대한 리뷰들 중에서 그 무기와 관련된 문제의 개연성을 지적하는 글을 재미있게 읽었는데, 예를 들어 그런 관점에서라면 그 무기들이 과연 요원들이 사용할 만한 무기들인지, 그리고 장탄수를 정확하게 지키고 있는지(화면에 총탄의 소리가 들릴 때마다 그 갯수를 꼼꼼이 세는 광경을 상상해 보라)가 아주 중요한 문제가 된다. 그것을 감독 김지운은 의식하고 있는지 그것을 노련하게 이용하는데, 예를 들어 이 영화에서는 중간중간 총알이 떨어지거나, 새로 장탄을 하는 장면들이 몇번 의식적으로 등장한다. 또한 본인이 아마도 밀덕이거나 카덕일 듯한 김지운은 물론 이에 대한 안전장치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개조'라는 무기이다. 즉 그 슈퍼카가 그런 속력을 내거나, 특이한 기능을 보여주는 것이 불가능하다, 혹은 그 무기의 장탄수를 지키지 않았다,고 볼멘소리를 해도, 뭐 한 마디면 끝난다. "개조되었으니까."

물론 김지운이 노련함을 보여주는 것은 그런 부분에서만은 아니다. 서부극과 B급무비의 결합이라는 틀 안에서 그 장르적 규칙을 철저하게 지킴으로서 별로 야심을 보여주지 않는 것 같은 김지운은 이야기의 뼈대를 단순하게 구성하면서도 그 안에서 능수능란한 리듬을 보여줌으로써 도리어 그의 야심을 드러내는 것처럼 보인다. 즉 이야기의 전체 구도는 아주 전통적인 구성을 따른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가 있고, 전초전 격인 처음의 대결에서 아군은 상처를 입지만, 그것은 도리어 아군의 결속력을 다지는 계기가 된다. 더욱 규모가 커진 중간부의 대결에서 아군은 승리를 거두지만, 적의 보스를 놓치는데, 이는 적의 보스와 우리의 영웅 간의 일대일 대결을 위한 익숙한 장치이다. 그리고 결국에는 마을에는 평화가 되돌아온다는 식의 이런 단계적 구성의 뼈대는 익숙하지만, 그 안에서 액션과 그 액션의 휴지기에서 액션을 준비하는 과정의 감정과 유머들을 적절히 뒤섞음으로써 영화는 단지 정해진 액션으로만 질주하는 영화 이상의 것이 된다. 또한 김지운은 단지 이야기의 구성에서뿐만이 아니라 액션의 구성에서도 이런 리듬을 적절히 구사하는데, 예를 들어 마을의 도로에서 이루어지는 총격전이 느슨해질 즈음에 그것을 좁은 계단에서의 총격전으로 바꾸고 다시 긴장감을 부여하는 장면 등에서 그가 상당히 세심한 구성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마도 누군가는 이 영화 <라스트 스탠드>가 별로 김지운의 영화처럼 보이지 않는다고 말할지 모르겠다. 확실히 이 영화에는 예전 김지운의 영화들에서 보여줬던 이상한 서걱거림들, 혹은 잉여처럼 보였던 이상한 이질감, 이물감들은 확실히 줄어들었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에는 그 어떤 불안감이 없다. 심지어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에서조차 있었던 어떤 부조화, 그러니까 이런 것이 왜 여기에, 하는 그 묘한 불안감은 이 영화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대신에 이 영화에서 김지운은 본인이 잘할 수 있는 것에 대한 선을 그어 놓고, 그 잘할 수 있는 것을 확실히 잘 살려서 보여준다. 그것은 예를 들어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에서 터득한 체이싱의 노하우 같은 것이다(물론 말 체이싱과 카 체이싱이라는 차이점이 있지만). 그리고 여기에는 여전히 김지운 식의 검은 유머들이 있다. 예를 들어 피와 살이 터지는 순간들, 혹은 아주 심각한 장면들에서도 싱긋 웃을 수 밖에 없는 장면들을 넣음으로써 영화에 적절한 이완과 활력을 부여한다. (이 영화에서라면 영화 속 괴짜가 총격전 중에서도 사람이름을 붙인 자신의 총기를 애지중지하는 장면이라든가 혹은 <달콤한 인생>에서의 총기 구매씬 같은 것.) 아니 어떻게 보면 그 검은 유머가 거의 한 편의 영화 전체로 보여진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주인공 보안관 레이로 나오는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한 때 인류의 명운을 걸고 싸웠던 그(<터미네이터>)가 이제 늙고 힘이 빠진 상태에서 한 시골마을에서 약간은 우스꽝스러운 무기들을 휘두르며 루저들과 어울려 잘나가는 마약왕과 맞선다는 이 이야기 자체가 바로 그런 것 아닐까.

아놀드 슈왈제네거의 개인적인 추문과 미국의 총기난사에 대한 불편한 시선 속에서 영화는 비록 흥행에 실패했지만, 이 정도라면 김지운의 할리우드에서의 시작은 꽤 괜찮다고 본다. 물론 그것은 영화가 꽤 괜찮기 때문이다. 스필버그의 초기작 <듀얼>은 별다른 야심 없이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달려갔지만 그 영화에서 우리는 그의 스타일을 봄으로써 대가의 시작을 느껴볼 수 있을 뿐더러, 그럼으로써 그 자체로도 오락영화로도 손색이 없는 작품이 되었다. 이 김지운의 <라스트 스탠드>는 마치 그것을 연상시키는데, 그의 스타일도 약간 보여줌과 동시에 그가 잘할 수 있는 것을 잘 드러냄으로써 앞으로의 작품을 기대하게 한다. 물론 이 자체가 오락영화로도 일정 수준에 올라있다. 자신의 장기를 효과적으로 잘 드러내는 감독의 영화를 보는 것은 즐겁다. 그는 할리우드에서 아직 보여줄 것이 많은 것 같은 느낌이다.


- 2013년 2월, CGV 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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