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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류승완

Ending Credit | 2013. 2. 6. 15:43 | Posted by 맥거핀.




(영화의 내용이 약간 들어 있습니다.)


액션 영화는 다른 무엇보다도 액션이 좋아야 한다는 데에 동의한다. 그러나 그것이 액션'만' 좋아도 된다도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액션 영화는 액션 영화이기 이전에 영화이기 때문이다. 즉 이 액션들은 액션이기는 하되 이야기로 이어지는 액션이어야만 하고, 2시간 동안 그것을 앉아서 볼 동력을 제공해주는 액션이어야 한다. 단절적인 액션만이 중요한 것이라면 굳이 그것을 2시간이라는 긴 시간으로 묶어서 영화로 볼 이유가 있는가. 상당수의 평들에서 지적하듯이 영화 <베를린>이 아쉬움을 주는 부분은 액션이 아니라, 액션 이외의 나머지 부분이라는 의견에 동의한다. 많은 평들에서 이야기의 중요한 부분을 전달하는 북한 리학수 대사(이경영)의 대사가 잘 안들렸다, 발음이 좋지 않았다, 사투리를 잘 알아들을 수 없었다, 등등의 이야기가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사실 발음이나 사투리가 아니라, 그것을 굳이 설명하는 이야기로 풀어내려고 한다는 점이다. 설명을 특정전략으로 구사한다면 모를까, 대체로 이야기의 이러한 기본 구조를 한 인물의 대사로 풀어낸다는 것은 감독이 그것을 효과적으로 잘 드러낼 자신이 없거나(즉 이야기가 잘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사후적 처치이자 고백이거나), 혹은 사실은 이야기에 별 관심이 없다는 뜻이고, 류승완의 선택은 후자에 가까운 것 같다. 그렇다면 의문이 남는다. 이야기에 별 관심이 없는데, 왜 이렇게 이야기를 복잡한 것처럼 보이려 할까. 그게 아니라면 이야기를 잘 풀어내려 했지만, 그것에 실패한 것일까.

도리어 이렇게 물을 수도 있다. 이 이야기를 이렇게 복잡한 것처럼 꾸며낼 이유가 있을까. 좋은 액션 영화에서 이야기는 도리어 상당히 간결하다. 이 영화와 자주 비교되는 '본 씨리즈'의 핵심도 사실은 간단한, 그러니까 기억과 정체성을 잃어버린 본 요원이 자신의 정체성을, 그러니까 아이덴티티를 찾아나가는 이야기이다. 그 주 플롯은 영화의 처음부터 관객들에게 제시되며, 세부적인 다른 플롯은 본 요원이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익스큐즈'된다. 즉 (영리하게도) 이 영화에서는 그렇게 자세하게 설명할 필요도, 이유도 없고 처음부터 관객은 본 요원과 마찬가지로 기억을 잃어버린 상태에서 아무 것도 모른 채 이 영화를 흥미진진하게 보게 된다. 이 영화 <베를린>의 주 플롯은 뭘까. 처음에 얽혀 있는 여러 개의 플롯 중에서 마지막까지 살아 남는 플롯은, 그러니까 일종의 주 플롯은 북한 내부의 권력 암투와 그것이 주독 북한 대사관의 요원들의 시효 만료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 주 플롯은 영화의 중반부까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이것은 통상 액션 영화가 아니라 미스터리나 스릴러 영화가 쓰는 전략이다. 그러니까 다시 말해서 이 영화 <베를린>은 액션을 보여주고자 하는 영화 같은데, 이상하게도 미스터리나 스릴러 영화인 척 한다. 물론 그럼으로써 어떤 이야기에서 얻게 되는 쾌감을 노릴 수도 있다. 그러나 영화라는 매체는 시간이 한정되어 있고, 얻고자 하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게 마련이다.

잃는 것은 캐릭터를 구체화할 시간이다. 영화의 중반부 북한 요원 표종성(하정우)과 남한 요원 정진수(한석규)는 서로에게 묻는다. 도대체 니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왜 그렇게 목숨을 걸고 이 일에 매달리는지 모르겠다고 말이다. 문제는 그게 서로 모르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관객마저도 잘 모르게 된다는 데에 있다. 즉 이야기를 설명하느라 영화의 시간을 소비함으로써 캐릭터를 구축할 시간은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따라서 그럴 수록 캐릭터는 평면화된다. 한석규나 하정우가 좋은 배우들이고 좋은 연기를 보여주는 것 같기는 하나, 그들에게 자주 어떤 기시감을 느끼게 되는 것은 이 영화에서 캐릭터를 관객 안에 구축시킬 시간이 충분히 주어지지 않다보니 관객은 그 캐릭터를 자기 스스로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그들에게서 비슷한 과거의 캐릭터들을, 그러니까 한석규에게는 <쉬리>의 요원이나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형사, 하정우에게는 <황해>의 조선족 남자 등을 찾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것은 한편으로 그 '중요하게 보이려는' 액션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액션 영화에서 액션의 합 못지 않게 한편으로 중요한 것은 그 액션을 행하는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즉 '어떻게' 액션을 하는가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누가' 액션을 하는가이며 그 '누가'라는 캐릭터는 액션의 형태와 관객의 쾌감에도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우리가 <미션 임파서블>의 '이단 헌트'에게 바라는 액션과 <스카이 폴>의 '제임스 본드'에게 바라는 액션은 다르며, 그것은 그동안 충분히 구축된 캐릭터의 힘인 것이다. 


그러므로 다시 질문할 수밖에 없다. 이 이야기를 이렇게 복잡한 것처럼 꾸며낼 이유가 있을까. 왜냐하면 궁극적으로 감독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이야기보다는 액션인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예를 들어 이 영화에 내내 비장하게 깔리는 배경음악으로도 유추해 볼 수 있는데, 이 비장한 배경음악은 유독 액션씬이 등장할 때만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감독은 우리에게 이 액션씬을 비장한 어떤 것으로, 예를 들어 오우삼 영화 속의 어떤 비장함처럼 보아주길 바라는 중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 캐릭터들이, 즉 성냥개비를 잘근잘근 씹는 그 쌍권총의 사나이들이 없으니 어쩌나. 즉 이상하게도 이 비장한 음악이 깔리는 액션씬들은 영화의 이야기들과 다른 것을 이야기한다. 다시 말해서 지금까지 애써 설명하려던 이야기들은 이것이 사실 그저 소모품 버리기임을, 그것이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사실적으로' 보기를 원한다. 그러나 액션씬에서 이것은 갑자기 비장한 생존투쟁이 된다. 지금까지 이 생존투쟁이 비장한 것이 아니었음을 애써 설명한 다음, 다시 그것이 비장하게 등장할 때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어차피 많은 액션 영화에서 이야기는 브릿지에 불과한 것이고, 그것은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는 이야기이면 된다. 그러므로 이 필요 이상의 많은 이야기가 붙은 이 이야기에서 남는 것은 잉여적인 몇 가지의 질문일 수밖에 없다. 이 영화는 스파이 첩보 영화일까, 아닐까. 그렇다면 굳이 베를린이라는 분단의 상징과 같은 도시를 배경이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없을까. 아니 어쩌면 (사실은 아니지만) 남북한이 얽힌 복잡한 스파이 영화인 척 하는 것, 바로 이것에 정성일의 말대로 무의식적인 메시지가 들어 있는 것일까. 


 - 2013년 2월, 메가박스 강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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