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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제리전투, 질로 폰테코르보

Ending Credit | 2012. 4. 22. 21:43 | Posted by 맥거핀.




(영화의 결말부에 해당하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영화 <알제리전투>는 프랑스 식민통치의 지배하에 놓여있던 알제리에, 알제리민족해방전선이 구성된 1954년부터 알제리가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쟁취하기 직전인 1962년 봉기까지 8년간 민중들이 펼치는 거대한 이야기를 흑백의 다큐멘터리 화법을 빌려 재구성한 이야기이다. 다큐멘터리 화법이라고만 이야기하는 것은, 물론 이 이야기는 실제 일어난 사건들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 영화에 나온 모든 컷은 일체의 뉴스 릴이나 실제의 사건을 촬영한 영상을 배제하고 배우들의 연기를 통해 재구성된 장면들만이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즉 이 영화는 상당히 다큐멘터리처럼 보이지만, 명백하게 극영화이다. 이 영화에 극영화의 요소가 두드러지는 것은 그 서사의 구성방식에 어느 정도 있다고 해야 할 것인데, 이 이야기는 한 명의 주인공을 행적을 뒤쫓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 인물이란 알리 드 쁘왕뜨(브라힘 하쟈드)라는 민족해방전선의 (실제 인물을 모델로 한 가상의) 지도자인데, 이 영화는 말썽이나 부리는 식민지 청년에 불과했던 그의 각성으로 시작하여 1962년의 독립 2년 전 그가 최후를 맞이하게 될 때까지를 집중하여 다루고 있다. 이 영화는 그 내용으로 인해,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1966년의 베니스 영화제에서 수상 직후 프랑스 대표단의 항의를 담은 퇴장 해프닝이 있었고, 우리나라에서도 2009년에 이르러서야 처음으로 정식 개봉되었다.  


영화의 역사적인 배경이나 흑백의 미학적인 문제, 흔히 시네마 베리테로 이야기되는 이 영화의 형식적인 면도 흥미롭지만, 한편으로는 영화를 보다보니 다른 것에 흥미가 간다. 먼저 하나는 이와 같은 극사실주의적인 영화가 과연 어느 정도까지 가능할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 예를 들어 인물의 심리를 이야기하는 방식을 생각해보자. 극단의 리얼리즘에서 결국 인물의 심리란 어떻게 표현될 수 있을 것인가. 심리라는 것은 결국 작가의 전지적인 시선으로 구성되는 것이며, 미묘한 뉘앙스로도 보는 사람에게는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이다. 일반적인 영화에서는 2시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인물의 심리를 관객들에게 효과적으로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 감독들은 여러 다양한 장치들을 구성하고 시도한다. 그러나 일체의 인위적인 조작이나 특정한 의도를 가진 편집을 배제하는 소위 시네마 베리테의 경우, 이것은 영화의 형식과 자주 충돌한다. 따라서, 인물의 심리를 구체화하는 특정의 시퀀스는 계속 배제되며, 관객은 인물의 심리에게서 계속 멀어지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를 생각해볼 때 이 영화는 어느 쪽인가. 과연 그들의 심리를 우리는 어느 정도까지 받아들이게 되는가. 여전히 의문이다. 예를 들어 마지막 알리의 마지막과 또다른 지도자인 자파의 최후를 비교해보면 우리는 어떤 심리를 읽어낼 수 있는가. (혹은 읽어낼 수 없는가.)

이것은 물론 프랑스인들의 죽음과 알제리인들의 죽음을 다루는 측면에서도 비교해 볼 수 있다. 영화에 잘 묘사되어 있지만, 알제리전투 기간 내내 폭탄이나 총에 의한 테러리즘은 만연했으며, 많은 프랑스 시민들, 그리고 알제리 시민들이 죽음을 당했다. 이 영화의 흥미로운 점은 분명 이 영화는 알제리 쪽에 무게를 더 두고 있기는 하지만, 알제리인들과 프랑스인들의 죽음 모두에 동일한 애도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는 점이다. 죽은 이들의 모습은 클로즈업되며, 매번 어김없이 (엔니오 모리코네의) 애도의 스코어가 깔린다. 이것은 프랑스 군대나 경찰이 행하는 폭력적인 억압과 그에 맞서 알제리민족해방전선이 행하는 테러에 의해 발생하게 되는 모든 희생자들에게 동일하게 적용된다. 이것은 한편으로 이 영화에서 논쟁적이고, 흥미로운 인물이라고 말할 수 있는 프랑스 레지스탕스 출신으로 프랑스 공수부대를 지휘하는 수장인 메튜 대령에 대한 묘사에서도 같은 기조를 살펴볼 수 있다. 그는 적들(민족해방전선)에게 경의를 표하면서도, 그들이 벌이는 테러나 저항에 고문 등의 폭력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맞선다. 일반적으로 상당수의 영화에서 이러한 인물은 거의 악마와 같이 그려지는 반면에, 이 영화에서의 그는 이해할 수 있는 인물로 그려지는 것처럼 보인다. 예를 들어 그는 매번 민족해방전선의 지도자들에게 투항을 요구하며, 투항하면 공정한 재판을 보장한다고 이야기하는데, 마치 정말 그의 말이 사실인 것처럼, 즉 공정한 재판을 할 사람처럼 영화는 그려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의문은 그것이다. 과연 공정한 재판이 가능할까. 아니, 테러의 주범들인 이들에게 공정한 재판이란 무엇을 말하는가(예를 들어 어떤 판결이 내려져야 공정한 재판이란 것이 되는가. 이들에게 사형을 내리지 않는 것인가, 아니면 단지 이들에게 단두대형이 아닌, 교수형을 판결하는 것이 공정한 재판인가. 아니면 이것은 단지 절차적인 면에서의 공정함만을 말하는 것인가). 그것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은 과연 이 영화는 일견 보이는 것처럼 시네마 베리테에 충실한 즉, 일체의 주관적 판단을 제외한 시각으로 이야기를 이끌고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즉 이 영화에서라면 이는 그저 극사실적인 사건의 나열들인가, 아니면, 특정의 시선으로 교묘하게 처리된 사건의 나열인가. (한편 서구의 비평가들은 '카메라를 들이댄다는 것 자체가 사물에 대해 주관적 판단을 하려는 의도가 담긴 행동'이라고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면서 '고의성이 없다고 해도 특정 지역에서 발생하는 사건만을 담는다는 것에는 이미 인위적인 구도가 가미된 것'이라며 '시네마 베리테'와 같은 시도에 대해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네이버 백과사전) 물론 이 질문에는 중요한 한 가지가 빠져 있기는 하다. 그것은 "특정의 시선이 배제된 것이 영화적으로 객관적인 것인가"라는 물음이다. 예를 들어 위의 경우로 다시 돌아가 본다면, 프랑스인들의 죽음과 알제리인들의 죽음에 동일한 애도를 건네는 것이 (영화적으로) 과연 객관적인 것인가. 물론 이 물음은 불편하다. 그렇다면 다음의 질문은 어떨까. 고문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인물로 그려지는 것은 공정한 것인가. 물론 이는 휴머니즘, 인도주의적인 부분과는 다른, 영화에서 다루는 것에 국한한 질문이다. (그러므로 이 질문은 다시 처음으로 환원된다. 시네마 베리테란 가능한가, 의미가 있는가. 즉 결국 '어떤 특정의 시선이 배제되는 것'은 극사실주의라고 말할 수 있는가. 말할 수 있다고 해도, 우리가 그로부터 무엇을 얻는가.)

그러므로 내 느낌은 이 영화도 결국 표면상으로는 주관적인 의도를 배제한 사건의 나열이지만, 그 본질적인 것은 여전히 영화에 남아있으며, 보아야 하는 것은 그 본질적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예를 들어 그 본질을 프랑스의 경우와 알제리민족해방전선의 경우로 나누어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것들은 아닐까. 고문의 반인도주의적인 행태와 사르트르의 알제리의 저항에 대한 시선 등을 이야기하는 프랑스 기자들에게 메튜 대령은 일갈한다. 여기에 그렇다면 프랑스가 알제리에서 완전히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어떤 프랑스 기자도 여기에는 대답하지 못했다. 제국주의적인 정책의 수혜자는 본국의 지배층이기도 하였지만, 동시에 일반국민들도 마찬가지였다. 즉 어떤 의미에서는 제국주의적인 정책에 비판을 가하는 시민들 역시도, 동시에 그 제국주의의 공범들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것은 물론 현재의 많은 부분에도 여전히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우리는 외국인 노동자 문제에 있어서 자유로운가.) 알제리의 경우라면 혹 다음과 같은 것들은 아닐까. 영화의 말미, 알리의 자발적인 선택에 따른 죽음으로 영화가 끝을 맺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프랑스인들은 모든 것이 마무리되었으며, 앞으로는 조용할 것이라고 안심한다. 끝날 것처럼 보였던 영화는 갑자기 2년 후로 점프한다. 들불처럼 일어나는 봉기들과 프랑스인들의 어리둥절한 외침. 왜 갑자기 이러는거야. 그 때 민족해방전선은 완전히 끝났잖아, 왜 지금 갑자기 봉기들이 일어나는거야. 여기에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장면들은 바로 영화 속의 몇 가지 장면들이다. 장면 하나, 막다른 곳에 갇힌 알제리민족해방전선의 사람들에게 투항을 요구하는 프랑스 군대의 말. 너희들은 졌어, 어차피 다 끝난 것 알잖아, 그냥 나와. 장면 둘, 포기하고 투항하는 자파와 그의 물음. 여기서 죽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장면 셋, 죽음을 선택한 알리의 컷 다음에 모두 멈춰서서 곧 눈물이 터질 것 같은 얼굴로 알리의 죽음을 애도하는 알제리인들.

뜬금없이 독립이 된 2년 후로 점프했던 영화처럼 나도 갑자기 뜬금없이 다음의 글을 붙인다. 영화 <마이 백 페이지>를 소개하는 정성일 평론가의 글의 한 대목(경향신문 2012-04-08).

1968년 3월11일, 도쿄대는 의과대학의 개혁을 요구하는 학생 12명과 연수생 5명을 퇴학시켰다. 이 처분의 철회를 요구하는 의대생들이 6월15일 도쿄대 야스다 강당을 점거했다. 이틀 후 학교는 기동대를 투입하여 전원을 끌어냈다. 갑자기 이것이 화약고가 됐다. 안보투쟁 중이던 일본 전국학생연맹은 7월2일 다시 야스다 강당을 점거했고, 전공투(全學共鬪會議)의 ‘학원투쟁’이 시작됐다. 총장이 사임했고, 의대 학장이 처분 철회 성명을 발표했다. 하지만 전공투는 점점 더 강도 높은 요구를 했다. 마침내 이듬해 1월18일 8500명의 기동대가 투입됐고 72시간 동안 헬리콥터와 최루가스를 동원한 진압을 시작했다. 그리고 전원 체포됐다. 이 투쟁을 ‘도쿄전쟁’이라고 부른다. 그때 야스다 강당의 벽에 남겨진 수많은 낙서 중에는 “지는 줄 알면서도 싸워야 하는 싸움이 있다”는 말이 적혀 있었다. 




- 2012년 4월, CGV 압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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