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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멸망보고서, 임필성, 김지운

Ending Credit | 2012. 4. 13. 15:54 | Posted by 맥거핀.



(영화의 줄거리 들어있음)


아무튼 인류는 멸망한다. 언제가 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언젠가는 멸망한다. 다른 것은 다 부정한다고 해도 우주에는 시작이 있으므로 아마도 끝이 있을 것이고, 뭐 그렇다면 인류도 별 수는 없다.  인류멸망보고서. 보고를 하는 자들의 시각은 늘 냉소적이다. 보고를 하는 자들이 그 보고의 대상들에게 필요 이상의 감정이입을 할 필요는 없다. 오직 중요한 것은 그 원인과 결과이다. 그들이 어떻게 되었건, 얼마나 비참한 최후를 맞았건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왜 멸망하였는지를 고찰하여, 보고를 하는 자들의 멸망을 늦추는 것이다.


<멋진 신세계>-임필성. 2008년의 광우병 촛불정국을 직접적으로 비틀고 있는 이 단편은 인류 멸망의 원인이 인간의 지긋지긋한 탐욕에 의해서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과잉생산과 과잉소비의 지긋지긋한 악순환. 인류 멸망의 시작이 한 잉여의 별 생각없는 분리수거 무시의 결과로 나타났음을 보여주는 이 유머러스한 시작은 쓰레기 처리과정을 직접적으로 길게 보여주는 몇 가지 컷들로 흥미롭게 이어진다. 과잉생산과 과잉소비는 필연적으로 과잉된 쓰레기를 낳고, 과잉된 쓰레기는 동물의 몸을 통하여 다시 인간에게 들어간다. 이것이 인간의 탐욕의 결과임은 처음 좀비 바이러스에 걸리는 자들의 면모를 살펴보아도 알 수 있는데, 아무 생각없이 살며 여자 뒤꽁무니만 쫓는 주인공과 그보다 더 생각이 없어 보이는 여자친구, 그리고 불량청소년, 탐욕스럽게 고기를 뜯고, 클럽에서 그 욕구를 발산하는 사람들, 이들은 이 좀비 바이러스의 기원이 되어 곧 온거리로 이 바이러스를 퍼뜨린다.

그리고 광우병 촛불시위의 비유. 광우병 촛불시위가 한창일 때, 누가 만들어낸 말인지 모르지만 '촛불 좀비'라는 말이 보수의 히트상품이 되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섰을 때, 그 말을 만들어내고 유통시킨 자들은 각자의 컴퓨터 앞에 웅크리고 앉아 '촛불 좀비'라는 말의 다양한 변이체들을 이리저리 널리 전파시켰고, 보수언론은 그 말들을 어김없이 받아적고 규정지었다. 그리고 영화. 두 가지의 시사점이 있다. 하나는 좀비 바이러스가 퍼트려지는 곳은 길바닥이라는 점. 미안하게도 좀비 바이러스는 싼 고기를 먹고, 길거리에서 그 욕망을 분출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먼저 전파된다. 그리고 그들을 좀비라고 규정지은 사람들은 각자의 집 문을 걸어잠그고, 길거리에 쏟아져나온 좀비떼들을 (아마도 곧 좀비가 될, 사실은 좀비와 별다르지 않으므로 그 자리에 나올 수밖에 없는) 전경들이 막아주기만을 기다린다. 그리고 두 번째는 영화 안에서 이 좀비들과 별개인 것처럼 전개되는 무감각한 TV 리포트들. 시시각각으로 페허가 되는 건물들과 별개로 이 TV 리포트는 도대체 어디에서 쏟아지고 있는 것일까. 이 TV 리포트를 하는 자들은 도대체 어디에 숨어있나, 어디에 숨어서 이 공정한 리포트들을 토해내고 있는 것일까.

그러므로 좀비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 분별력을 다시금 찾게해줄 사과(선악과)이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거리로 뛰쳐나오게 해줄 심장과 함께 차갑고 날카로운 이성의 사고이다. 그와 동시에 돌이켜보면 MB 정부의 가장 큰 위기였던 촛불정국이 다른 어떤 것도 아닌 광우병, 소고기 때문에 촉발되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무엇을 던져주고 있나를 생각해보게 한다.
멸망 실현 가능성 : 27.2%.


<천상의 피조물>-김지운. 그렇지만 결국 실패한 좀비들은 로봇이 되었다. 인류의 예정된 노예, 로봇. 앞의 <멋진 신세계>와 이 <천상의 피조물>은 전혀 별개의 작품이지만, 왠지 이 두 단편은 대구를 이루는 듯 하다. 모두 다른 육체지만, 머리가 포맷되어 비슷한 행동패턴을 보이는 좀비, 그리고 그 반대로 모두 동일한 형태를 가지고 있지만, 그 중에 다른 정신을 가지게 된 단 하나의 로봇. 단지 절의 가이드 로봇에 불과했던 개체들 중의 하나 RU-4는 스스로 깨달음을 얻고 '인명'이라는 법명을 가진 스님이 되었다. 그러나 이들의 창조주이자 소유주인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로봇의 깨달음이란 오작동에 불과한 것이며, 어쩌면 그 오작동을 넘어서 인류에 대한 위협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는 '인명'이라는 개체 하나에 대한 파괴가 아닌, RU-4 모델 전체에 대한 폐기 시도로 이어진다. 기계의 법칙 하나. 개체 중의 하나에서 오작동이 일어나면 반드시 동일한 다른 개체에서도 오작동이 일어난다는 것.)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깨달음을 얻은 로봇이란 인간 이상의 어떤 존재인 것, 만약 인간 중에 깨달음을 얻어 신 이상의 어떤 존재가 생겨난다면, 그 존재를 신은 과연 가만 놔둘 것인가. 그리고 그 입에서 나오는 말들도 인간에게는 위험하기 짝이 없다. 그것은 불교에서도 가장 체제전복적인, 일체의 현상들에게서 전혀 어떤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붓다의 공(空)의 사상이다(여기에 팔을 잘라 법을 구했다는 혜가(慧可)선사의 이야기가 오버랩된다). 인간세계 그 모든 것에 대한 비판적인 해체에 가닿아 있는 이 말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마지막에서 RU-4, 즉 인명은 스스로 정지를 택함으로써 결국 인간 이상의 어떤 존재가 된다. 그리고 이 소멸은 이 체제전복을 스스로 실천, 증명해보인 것으로 아마도 이 이후 로봇들, 즉 노예들의 연대는 시작되고, RU-4들은 개체 멸망에 맞서 인간에게 대항할 것이고, 인간은 멸망의 길로 들어서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역으로 말해서 인간이 개체 멸망을 막는 유일한 방법은 스스로 지금 행하고 있는 파괴들을 중지하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그게 가능할까.) 
멸망 실현 가능성 : 5.7%. 


<해피 버스데이>-임필성. 세 편 중에 가장 재기발랄한 작품이다. 인류는 어느날 거대한 소행성과의 충돌 위기에 빠진다. 그러나 이 소행성이란 한 소녀가 자신의 실수가 드러나는 것을 막기 위해 인터넷에서 몰래 주문한 8번 당구공인 것. 당구공을 되돌려보내기 위한 필사의 반품 시도는 끝내 실패로 돌아가고 인류는 예기치 않았던 종말을 맞는다. 

코믹한 농담에 불과한 것일지 모르지만, 아마도 인류의 멸망이란 어쩌면 이렇게 올 수도 있는 것이 아닐까. 물론 거대한 8번 당구공이 지구에 쓰리쿠션으로 맞을 확률이야 거의 0에 수렴하겠지만, 이들이 멸망을 앞두고 벌이는 한바탕 소동을 보며, 실제로 멸망이 눈앞에 다가온다면 그것은 비극적이면서도 분명히 코믹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적어도 할리우드처럼 갑자기 거대한 희생정신과 인류애가 꽃피지 않을 것임은 확실하다). 결국 모든 것은 아주 사소한 것에서 시작되며, 멸망의 마지막에는 철학도 이성도 고찰도 사랑도, 그 무엇도 없다, 오로지 멘탈 붕괴만 있을 뿐. 그러니 그대여, 인터넷 쇼핑 시에는 판매자 확인은 필수, 그리고 빠른 배송에 집착하지 말 것.
멸망 실현 가능성: 가까스로 0에 수렴.




덧.
세 편 모두가 공통적으로 초반의 아이디어를 끝까지 지속시킬 힘이 부족해보인다. 어차피 초반의 아이디어를 넓게 확장시키기가 어렵다면, 차라리 더 재기발랄하고, 도발적이고, 폭력적이고, 야했으면 어땠을까. 또 하나, 전체적으로 각각의 단편으로는 흥미로우나 세 가지 이야기가 따로 노는 듯한 느낌이 강해, 하나의 주제의식으로 묶어내기가 마땅치 않다. 세 개 중에 하나의 이야기는 버리고 두 이야기를 조금 더 유기적으로 결합하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지각 개봉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현재 관객의 눈높이에 맞추기는 여전히 부족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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