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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픽션, 전계수

Ending Credit | 2012. 3. 12. 20:37 | Posted by 맥거핀.



(영화의 결말에 대한 내용이 일부 들어있음)


<러브 픽션>은 확실히 흥미로운 구석이 있는 영화다. 일단 먼저 간단하게만 그 이유를 말하자면, 이 영화가 그간 한국의 전형적인 로코물, 연애물들이 보여줬던 공식을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남녀의 만남 과정에서 웃음을 이끌어내고, 마지막에는 두 주인공의 숨겨진 사연이 드러나면서, 감동 혹은 따듯한 이해로 마무리되었던 그 공식을 이 영화는 따르지않기로 마음을 먹은 것처럼 보인다. 이 영화의 프로듀서가, 이 영화가 애초의 제작사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새로 영화사('삼거리 픽처스')를 설립해 나왔다고 하던데, 그 까닭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다. 아주 신선하다고는 말하기 힘들지만, 몇 가지 서사적 실험들을 이 영화는 행하고 있다. 그러나 물론 그 실험들이 순조롭게 효과적으로 진행되었는가라고 물으면 조금은 갸웃거려지는 측면은 있다. '공식'을 따르지 않고, 새로운 실험을 하겠다는 것은 그만큼 위험부담이 따르는 것이고, 면밀하고도 조심하게 다루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공식에 따른 쉬운 풀이를 하지 않겠다는 것은, 조금은 돌아가되 그 과정에서 무언가 흥미로운 것을 이끌어내겠다는 이야기도 된다. 이 영화는 그 무언가를 이끌어냈을까.

눈에 보이는 실험은 이 영화가 구주월(하정우)의 시점으로 내내 전개되는 이야기이지만, 그 자아를 여러 갈래로 분열시키고 있다는 점. 그것은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나는데, 하나는 그의 이야기를 주로 들어주는 분리된 자아(이병준)가 자꾸만 등장한다는 점이다. 구주월이 뭔가 의문에 빠지거나, 생각을 하고자했을 때 여러 모습으로 나타나는 이 분리된 자아는 프로이트 식으로 말하자면 일종의 수퍼에고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이 둘의 대화의 형태(하정우와 이병준)를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주로 이야기를 하는 쪽은 자아(하정우)이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쪽은 수퍼에고(이병준)이며, 수퍼에고는 아주 지극히 이성적이고, 온당한 해결책(그러므로 사실은 그렇게 큰 의미가 없고, 따를 수도 없는 해결책)을 제시해준다. 그것의 반대편에서 또하나 제시되는 것은 구주월이 만들어낸 이야기속의 인물들인데, 구주월의 소설들에 나타나는 이 등장인물들- 팜므파탈, 액모부인 등에 등장하는 마형사 같은 인물- 의 행동과 모습들은 구주월의 내면의 욕망, 그러니까 다시 프로이트 식으로 말하자면, 그의 이드의 한 단편을 드러내보인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 영화에서 구주월이란 인물의 욕망과 초자아와 그리고 그의 입으로 제시되는(영화에 깔리는 구주월의 내레이션) 자아를 한꺼번에 보고 있는 셈인데, 이는 무엇을 위한 것일까.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심리학 같은 학문에서는 필연적으로 인간을 유형화하게 된다. 즉, 100만명의 인간을 그래, 뭐 100만명에게는 100만개의 정신이 있겠지, 하고 놔둔다면 이러한 학문은 성립할 수 없다. 그렇게해서는 우리는 영원히 타인의 심리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떻게든 인간을 몇 가지의 한정된 유형으로 나누고, 그에 걸맞는 이름을 붙이게 된다. 이것은 다른 말로 하면, 객관화한다는 말이다. 즉 어떤 유형의 성격들이 공통된 어떠한 이름을 갖기 위해서는 공유하는 속성들이 있어야 하고, 그것에는 객관화된 동의, 객관화된 공감이 필수적이다. 이 객관화한다는 것의 의미, 이 의미를 영화 속 어떤 것들과 연관지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다시 말해서 구주월을 분리시켜 보도록 하는 것은, 그를 객관화하여 바라보게 하려는 시도의 하나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두 남녀주인공의 직업도 심상치 않은데, 여주인공 희진(공효진)의 직업은 영화수입 담당자, 남주인공 구주월은 소설가이다. 영화수입 담당자에게 일반적으로 요구되는 능력은 이야기의 객관화 능력이다. 즉 수많은 영화들 중에서 어떤 이야기가 관객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것인가를 객관화된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소설가는 어떨까. 소설가야말로 가장 주관적인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아닌가. 그러나 구주월이 영화 내내 소설을 제대로 써내지못해 골머리를 앓던 소설가라는 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는 왜 소설을 쓰지 못하는가. 그가 자꾸 자신의 소설을 객관적으로 판단하려 하기 때문이다. 아..이건 좀 아닌데, 이건 좀 밋밋하고, 이건 지나친 설정이고..그리고 그렇게 하는 순간 소설가는 무간지옥에 빠져 아무 것도 쓰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문제는 이 두 사람이 연애를 한다는 것. 그것이 문제란 것은 자신의 연애는 객관화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연애에 대해 코치하는 책들을 신뢰하지 못하는데, 그것은 거기에 쓰인 이야기들이 틀렸기 때문이 아니다. 그 이야기들은 읽어보면, 정말 그럴 것 같고, 정말 맞는 말씀이고, 구구절절이 공감이 간다. 그러나 문제는 그 이야기들을 내 연애에 도저히 적용시킬 수가 없으니, 그 책들을 어찌 신뢰할 수 있으랴. 그것을 적용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내 연애를 객관적으로 봐야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타인의 연애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날카로운 해결책과 관점을 짚어낼 수 있다. 그것은 물론 자신의 연애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날카로운 관점들은 대체로 늘 공감을 얻지 못한다. 객관화될 수 없는 자신의 연애에 대해서는 누구나 객관적인 관점과 해결책보다는, 철저히 자신의 입장에 동조하는 공감만을 원하기 때문이다.) 구주월은 그래서 괴롭다. 그는 계속 욕망과 자아와 초자아로 분열되는, 주위의 객관화된 시선을 상당히 중시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가 희진의 과거에 그토록 분노하는 것은 그것이 자신만이 아는 '겨털'이 아니라 누구나 아는 '스쿨버스'이기 때문이다. 그는 희진의 부끄러운 이야기에 얼마나 주위의 시선을 살폈던가.)

그랬던 그는 결국 그 주관에 투항한다. 단적으로 그가 처음에 희진에게 보낸 편지와 마지막에 보낸 편지를 비교해보자. 처음에 개그적인 패러디로만 점철된 그의 편지(당연히 모든 패러디는 객관적인 공감 지점이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나중에 자신의 안부와 주위 친구들의 안부를 전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평범한(그러니 아주 주관적인) 편지가 된다. 무엇보다도 그것은 이 마지막이 결국 구주월의 일종의 환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의 친구들과 상담센터에서 만난 사람들과 옛친구(수녀 등등)가 모두 어우러지는 이 마지막은 실제로 가능한가. 글쎄. 이것은 아무래도 환상의 삼거리극장으로 보인다. 그리고 물론 환상은 자신의 주관성의 극대, 즉 자신만의 세계의 다른 이름이다. 그러므로 개인적으로는 이 마지막이 좀 아쉬워 보이는데, 이 영화의 지속적인 유머는 자신의 연애라는 주관과 그 주관을 거스르려는 객관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계속적으로 발생하였기 때문이다. 그 유머들을 끝까지 밀어붙였어도 괜찮지 않았을까. 어차피 이 영화는 똘끼로 밀어붙이는 영화, 이른바 병신같지만 귀여워 류의 영화가 아닌가. 조금 더 이상하고 우스꽝스러운 결말을 기대했는데, 너무 온건한 결말인 감이 없잖아 있다(뭐 상업영화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일지도...).

추가해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지적하고 싶다. 그것은 이 영화가 구주월의 분리된 자아를 그려내면서도 그 분리된 것들 사이에 최소한의 연결고리도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 특히 구주월이 쓰는 소설 속 이야기들은 본편의 이야기와 거의 잘 붙지 않는다. 즉 이 이야기 속의 이야기들은 무슨 기능을 하는가를 자꾸 되묻게 만든다는 점. 영화 속 등장하는 판타지는 전체 이야기에 교훈을 주거나, 아니면 아예 반대로 비틀거나, 그 자체로 아주 재미있거나 해야 하는데, 그도저도 아니다 보니, 이 부분들이 지루하게 느껴지며 구주월의 욕망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보이지도 못했다.


덧.
하정우와 공효진의 연기는 무난한 편인데, 자꾸만 다른 영화들의 이미지가 겹쳐보이기는 한다. 하정우의 느물거리는 연기는 <비스티보이스>와 <멋진 하루>가 겹쳐보이며, 공효진의 쿨한 모습은 <행복>과  <가족의 탄생>이 오버랩된다. 하긴 공효진의 경우는 남성캐릭터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이 이야기에서 어쩔 수 없어 보이기도 하고. 속을 알 수 없는 쿨한 캐릭터야 말로 '이상화된 그녀'가 아닌가.


- 2012년 3월, 롯데시네마 에비뉴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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