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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빈 감독의 새영화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는 인상적이라고 말하기에는 조금 주저하게 되지만, 꽤 흥미롭다고 느껴지는 시작을 보여준다. 실화가 아니라는 자막을 보여주며 시작하는 이 영화는 바로 몇 개의 사실, 실화들, 즉 실제가 기록된 사진이나 컷들을 붙인다. 그것은 박정희가 정권을 잡고, 정치깡패 이정재가 길거리에 끌려다니는 모습이며, 전두환이 정권을 잡고 삼청교육대가 만들어져, 깡패들(그리고 많은 무고한 이들)이 목봉을 잡고 있는 모습이고, 이 영화의 배경이기도 한 노태우가 정권을 잡고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는 모습이다. 그리고 영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한 남자가 폭력배들에 의해 물고문을 당하고, 뭔가를 이야기할 것을 강요당한다. 남자가 거부하는 듯 하자, 이번에는 무자비한 폭력이 가해진다. 그리고 거기에 이어지는 컷. 주인공 최익현(최민식)이 감옥에 갇혀있고, 검사가 그의 정체성을 묻는 질문을 한다. 최익현이 의뭉거리는 대답을 하자, 검사의 무자비한 폭행이 시작한다. 처음에 보여지는 이 기록된 '사실'들과 이 두 장면의 대비. 실화가 아님을 애써 자막으로 밝히고 시작하지만, 윤종빈 감독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이미 여기에서 다 드러난 것처럼도 보인다. 그리고 영화는 1982년으로 시간을 돌려 그 질문 - 너는 누구인가 - 의 기원에 있는 것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즉 이 영화는 최익현이라는 존재의 기원과 무엇이 현재의 그를 만들었는가를 묻는 영화다. 영화 속 몇 번 반복되는 최익현에게 반복되는 질문들이 있다. 검사도 묻고, 그와 동업하는 최형배(하정우)도 묻고, 그와 잠을 자는 여자도 묻는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그러나 이 대답은 끝까지 명쾌하게 주어지지 않는다. 반달(반건달)이라는 의뭉스러운 대답만 살짝 제시될 뿐, 질문만 끊임없이 되풀이된다. 그러므로 영화 속 최익현이 들고다니는 '총알이 없는 총'은 마치 그를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가 그 혼자서는 결코 트리거를 당길 수 없다는 사실도 그렇지만, 최익현은 안이 비어있는 기표라는 사실에서도 그렇다. 그는 그 내부에 어떠한 의미도 담고 있지 않다. (<피와 뼈>의 김준평) 그가 그렇게 보이는 이유는 한편으로 그 스스로는 자신의 정체성을 묻지 않고, 고민하지도 않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최익현이라는 인물은 오로지 눈앞의 것만 보고 달려갈 뿐이다.
 
윤종빈 감독은 아마도 최익현에게 건달도, 공무원도, 반달도 아닌, '아버지'라는 정체성을 부여한 듯 하다. (<씨네 21> 839호 윤종빈 감독 인터뷰: "최익현은 그렇게 살 수 밖에 없었던 우리 시대를 대변하는 보통 아버지이지만 보수기득권층을 대변하는 인물이기도 하다.""말하자면 아까 없다고 했던 아버지의 자리에 정치인들이 있었다. 그러다보니 노태우 대통령이 당선된 뒤 깡패들이 정치권에 힘을 보태준 게 우리라며 막 설쳐댔다.") 뭐 '아버지'라는 말이 마음에 안들면 '형님'이라고 해도 좋다. 윤종빈 감독이 그려내는 이 영화의 세계는 그러므로 기표만 남은 아버지들의, 형님들의 세계이며, 총알이 없는 빈총의 세계이다. 그리고 그것은 동시에 감독의 말대로 하나의 거대한 '쇼'인 '범죄와의 전쟁'이라는 텅빈 기표이기도 하다. 공무원인지 건달인지, 반달인지 자신의 정체성을 도무지 알 수 없었던 최익현과 마찬가지로, 군인인지, 정치인인지 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던 박정희나 전두환이나 노태우는 자신의 정체성을 결코 묻지 않았고, 오로지 눈앞의 것만 보고 달려갔다. 그리고 그 대표적인 사례 중의 하나가 국민들의 환심을 얻기 위한 삼청교육대니, 범죄와의 전쟁이니 하는 아무 의미 없는 텅 비어있는 쇼들이었을 것이다. 즉 이것은 학연, 지연, 혈연, 종교연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가족 사회에서 벌어지는 하나의 코믹한 재롱극이었다. (그러므로 이 영화를 일종의 느와르로 보는 시선은 조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버지들이, 형님들이 벌이는 가족을 위한 재롱잔치였다. 아무리 극이 벌어져도 아버지들은, 형님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계속 그 자신의 정체성을 내보이지 않은 채로. (그러므로 최익현이 총알 좀 구해달라고 징징댈 때 웃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는 설혹 총알을 구한다해도 결코 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총알을 쏘는 것은, 즉 방아쇠를 당기는 것은 그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낸다는 것이 되므로. 그가 그럴 이유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윤종빈 감독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동시에 보여줄 수 밖에 없는 한계는) 그 빙빙 돌아가는 회전문이고, 쳇바퀴이다. 아무리 세상이 돌고, 극이 몇 번 장과 막이 바뀌어도(누가 집권하든) 그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는 것. 영화 <부당거래>와 비슷한 세계(그리고 동일한 결말). <부당거래>가 회전문이 돌아가는 현재의 공간을 그려냈다면, 이 영화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는 그 회전문이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없이 돌아가고 있었다는 멈추지 않는 시간을 그려냈을 뿐이다. 그러므로 사실 이 영화는 1980년대 초반부터 1990년 '범죄와의 전쟁'의 선포 그리고 느슨하게 현재까지를 다루고 있지만, 굳이 이 시대일 이유는 없다. 그것은 이승만의 시대이어도 되고, 박정희의 시대이어도 되고, 전두환의 시대이어도 되고, 물론 MB의 시대이어도 된다. (그리고 누군가는 동의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김대중이나 노무현의 시대이어도 된다.) 즉 다른 말로 하자면 이 영화에서 시대는 양념일 뿐이고,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형님들과 아버지들이다. 그러므로 이용철이 <씨네21>에 남긴 20자평인 "시대를 버리는 대신 인물을 확실하게 부여잡는다"라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물론 이 말은 역으로 생각해 볼 때, 이 영화가 그 시대의 공기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데에 실패하고 있다는 말도 된다. 윤종빈 감독은 정밀하게 보여주는 데 능한 세공술사이기는 하지만, 그 세공술은 인물들에 국한될 뿐, 특정한 시대적 공기를 정밀하게 그려내는 데에까지 나아가지 못한다. (예를 들어 이런 장면들. 최형배가 상대 조직원의 습격을 받는 것과 시위학생들의 경찰서 습격이 어우러지는 장면 같은 것. 이는 보다 풍성한 함의를 담을 수 있는 장면임에도, 거의 별개의 무의미한 시퀀스처럼 보인다. 이 장면이 <써니>에서 여학생들이 시위대와 어우러지며, 'Touch By Touch'가 깔리는 장면과 무엇이 다른가? 물론 윤종빈 감독 스스로가 이 장면에서 내가 추구한 것이 그런 코미디였다고 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그리고 이것은 그의 전작들에서부터 이어지는 것이다. 윤종빈 감독의 영화들은 한국 사회의 남성들에게 드리워진 음울한 그림자들, 군대 문화, 밤의 문화, 형님 문화 등을 다루면서도, 그 그림자들을 정밀하게 해부하는 데에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 그는 그 메커니즘을 정밀하게 해부하여 그 이상의 것을 우리에게 생각하게 하기 보다는, 그 메커니즘의 세밀함 혹은 그 수준에도 이르지 못하는 그 메커니즘을 이루는 부속물들의 세밀함에 스스로 감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전작들에서 결국 기억에 남는 것이 전체의 메커니즘이나 그 메커니즘의 이면에 있는 것들이기 보다는 캐릭터와 그 캐릭터의 디테일이라는 것이 그의 반증이 아닐까?

그러므로 이 영화를 잘 만든 영화라고 부를 수 있을지 몰라도, 좋은 영화라고 부를 수 있는가의 문제에 대해서는 여전히 주저하게 된다. 그의 장편 극영화들 <용서받지 못한 자>, <비스티 보이즈>,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에 결국 마지막에 깔리는 체념의 정조들과 보이지 않는 쳇바퀴의 출구들. 영화는 여전히 그 쳇바퀴의 정밀한 묘사에만 천착하고 있다. 그의 인터뷰에서도 그렇고, 글의 처음에 이야기한 초반의 장면들에서도 그렇고, 윤종빈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 조금 더 거대한 것을 담고 싶었던 듯 하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도 전작들이 가졌던 어떤 한계가 조금은 드러나고 있으며, 비슷한 문제들을 조금은 드러내보이고 있다. 이동진씨의 표현을 역으로 비틀어 말하자면, 이 영화에는 현미경은 있지만, 망원경은 없다. 그러나 물론 희망적인 것은 윤종빈 감독의 이번 영화는 아직 세번째 장편 극영화이며, 그에게는 앞으로 찍어야할 많은 영화가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그의 세계가 더욱 자라나길 바랄 뿐.


- 2012년 2월, CGV 명동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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